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 반여 중리마을
반여 중리마을 청도 김씨 세거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 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반여동은 해운대구 서부에 위치하여 서쪽은 수영강과 접하고, 동쪽은 장산(634m)에서 북쪽의 위봉(274m)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발달하였다. 이곳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서쪽으로 흘러 수영강으로 유입하며,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석대천으로 유입한다. 석대천 하류와 수영강 유역에 평지가 발달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 손이다. 영헌공 김지대의 12세 손으로 1500년경 연산군(燕山君) 때 청도에서 동래로 이거한 김갑손(金甲遜)이 입향조다(청도 김씨 서동파). 김갑손의 아들 김용견(金用堅)은 참봉, 손자 김경은 연일 현감, 증손 김사위와 현손인 김국간(金國幹), 김국주(金國柱)는 향안에 입록되어 있다.청도 김씨 영헌공의 15세 손 김사위(金士偉)는 1592년(선조 25) 4월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양산과 울산 간 유격전에서 전사하였으며, 선무원종 3등 공신의 녹권과 선략장군 만호로 증직되었다. 훗날 이 공적이 인정되어 1991년 9월 선무 원종공신과 함께 3등 공신의 위패를 충렬사 본전에 합사 봉안되었다.
원래 묘는 해운대 석대동 재궁곡(齋宮谷)에 있었으나 쓰레기 매립장 조성으로 인하여 기장 철마 선영으로 이장하였다. 공의 충혼을 모신 사우는 반여1동의 동영재(822번지)와 동래의 충렬사이다.
2013년 조사에 의하면 해운대구 반여 1동에는 청도 김씨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반여동과 우동, 금정구 금사동에서 모두 60여 가구가 거주한다. 그 외에는 아미동, 전포동 등지에도 거주한다. 지역별로 양산, 해운대, 반여동, 서동 등 소문중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동래구 사직동에 청도 김씨 위토답이 있어 사직 운동장이 조성될 때 보상받아 금정구 서동 산 71번지에 청도 김씨 재실인 동영재(東嶺齋)를 마련하였다. 그 후 1983년 11월 5일 해운대구 반여동 823번지에 신축 이전하여 입향조 김갑손을 비롯하여 10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11월 14일 추향제를 지낸다.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