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제 와 나직이 묻는다
강신형
파란시선 0124
2023년 4월 1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99쪽
ISBN 979-11-91897-52-4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맑은 대낮 한나절 보름달 같은 간절한 밥
[내게 이제 와 나직이 묻는다]는 강신형 시인의 여섯 번째 신작 시집으로, 「밥 1」, 「수구레국밥」, 「변명 1」 등 6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강신형 시인은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으며, 1978년 개천예술제 대상 수상, 1985년 [민족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빛 그리고 둘] [표적을 위하여] [꿈꾸는 섬] [꿈,꾸다] [관심 밖의 시간] [내게 이제 와 나직이 묻는다]를 썼다. 남명문학상 신인상, 마산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마산문인협회 이사, 경남문인협회・민족작가협회 회원, [문화통신] [경남예총] [창원시보] 편집장, 마산예술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 마산대동제 운영위원장・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강신형의 이번 시집 [내게 이제 와 나직이 묻는다]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이미저리는 얼굴빛을 살피거나 옷차림을 고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의 내면까지 비추는 역능을 가진 거울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자기 성찰에 매진하는 주체를 시집의 도처에서 조우한다. 어떤 시에서는 정갈하고 홀가분하게 늙은 모습을, 다른 시에서는 늙어 가는 일을 받아들인 자의 자조와 해학을, 또 다른 시에서는 늙어 감 자체를 우주적 사유와 접목시키는 시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강신형의 시에서 반성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의 시는 훈계하지 않는다고 해도 되겠다. 그가 동시대의 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저에는 이러한 젊음이 있다. 그는 “굳이 억지스럽게 미학을/말하지” 않는 “구수한/사람의 노래”를 요청한다(「다시, 시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시는 “감사하고, 고마웠다는 한 말씀//나에게 전하는 일”이어야 한다(「세월」). 우리를 대신해 부르는 노래가 시이므로, 여기서의 ‘나’를 시인이라고만 읽는다면 오독이다. ‘나’를 위한 노래가 ‘너’를 위한 노래로 화하고, ‘너’를 위한 노래가 ‘나’를 위한 노래로 바뀌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퍼져 나가는 것이 강신형이 생각하는 시의 권능인 까닭이다.” (이상 김영범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삶은 늘 빈칸을 메우는 일이다. 새 원고지같이 허허로운 빈칸. 이 빈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우라질 놈의 이야기들/씨부럴 잡것들의 이야기들/즐비한” 세상을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빈칸, 빈칸, 빈칸」) 제주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한라산을 등반한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빈칸이다. “생김대로 물들어 가는 단풍의 마음으로 햇살과 구름과 바람에게 그저 고마워할 뿐이다.”(「시인의 말」) 돌아가겠노라고 발길을 돌려도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 수구레국밥을 먹고 술에 취해도 삶은 여전히 빈칸이다. 걷고 또 걸어온 길이, 그 길의 발자국들이 바람에 지워지듯 흔적만이 남을 뿐이다. “먹이를 사이에 두고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검은 고양이와 긴 수염을 곧추세운 흰 고양이가 잔뜩 몸뚱이를 웅크린 사이”를 우리는 걷고 있다(「흔적의 노래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걷고 있다. 다시, 시라는 이름으로 “묵은 된장 뚝배기 같은 구수한/사람의 노래를 읊”는다(「다시, 시라는 이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입 닫고, 귀 닫고, 눈 닫아도/귀싸대기가 벌겋게 뒤집어지는” 빈칸이다(「향일암 가는 길」). “오늘 걸어갈 길을 생각해 보면/기쁨도 슬픔도 모두가/하나인 듯한데”(「단풍 들었네」) 내 삶은 이명에 “귀를 열고 막는다고 되는 일도 아닌 듯싶”고 “눈을 감고 뜨는 일 또한 상관이 없는 듯하”다(「이명―달팽이 감옥」). 이 빈칸을 메우는 일은 언제 끝날 것인가? “정작, 새는 없고 어둠이 들고나는/환청만이 가득하다”(「이명―봄날」). “이즈음에 와서는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는 중요하지가 않다.”(「시인의 말」) 세상은 오리무중(五里霧中),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 꿈꾸듯이 아직 빈칸이다.
―성선경(시인)
•― 시인의 말
하얀 도화지에 찍은 점 하나로 시작된 삶에 대한 생각이 어느덧 서산에 걸렸다.
이즈음에 와서는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는 중요하지가 않다.
아직은 파랗게 혹은 노랗게, 빨갛게, 생김대로 물들어 가는 단풍의 마음으로 햇살과 구름과 바람에게 그저 고마워할 뿐이다.
•― 저자 소개
강신형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1978년 개천예술제 대상 수상, 1985년 [민족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빛 그리고 둘] [표적을 위하여] [꿈꾸는 섬] [꿈,꾸다] [관심 밖의 시간] [내게 이제 와 나직이 묻는다]를 썼다.
남명문학상 신인상, 마산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마산문인협회 이사, 경남문인협회・민족작가협회 회원, [문화통신] [경남예총] [창원시보] 편집장, 마산예술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 마산대동제 운영위원장・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생애
가시 – 11
찬란한 – 12
돌아가겠노라고 – 13
무화과 – 14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 15
거울 1 – 16
거울 2 – 18
거울 3 – 19
거울 4 – 20
별을 생각한다는 것은 – 21
이랴~이랴, 자랴~자랴 – 22
아라리 아라리요 –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 25
고요로움 – 26
어디 있을까 – 28
제2부 흔적
흔적의 노래 1 – 31
흔적의 노래 2 – 32
흔적의 노래 3 – 33
밥 1 – 34
밥 2 – 35
쓰레기들 1 – 36
쓰레기들 2 – 38
삼복(三伏) – 39
빈칸, 빈칸, 빈칸—비가 내리네 – 40
이명—달팽이 감옥 – 42
이명—봄날 – 43
이명—여름날 – 44
이명—좌우 – 45
요즘, 시(詩)들 – 46
고독은 – 47
제3부 바람
TV가 근거 없는 똥을 싸면 – 51
발치 – 52
내 친구 진한 씨 – 53
마두금의 노래 – 54
이사 – 55
변명 1 – 56
변명 2 – 57
매화 – 58
작약을 말하다—꿈 – 59
소풍 – 60
나의 우주는 – 61
그리움 – 62
창동 골목 – 63
다시, 시라는 이름으로 – 64
향일암(向日庵) 가는 길 – 66
제4부 섬
수구레국밥 – 69
단풍 들었네 – 70
가을날 – 71
세월 – 72
항아의 노래 – 73
섬 1 – 74
섬 2 – 75
섬 3 – 76
꽃, 적멸 – 77
이편한세상 16층 1 – 78
이편한세상 16층 2 – 79
시집을 읽다가 문득—노 시인에게 – 80
바람・꽃 – 81
날갯죽지 꺾인 새들을 보았네 – 82
만취—1979 부마항쟁을 기억함 – 84
해설 김영범 나직한 질문, 결연한 수치 – 85
•― 시집 속의 시 세 편
밥 1
세상의 가장자리에 선 그대가
굶주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허기진 그대를 위해 기꺼이
뜸이 잘 든 밥이 되겠습니다
맑은 대낮 한나절 보름달 같은
간절한 밥이 되겠습니다
가마솥에 눌은밥인들
꽃대궐에 버무려진 밥인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저 꼭꼭 씹어 삼키는 그대의
목구멍과 뱃가죽을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단물이었음 합니다
슬슬 땀이 솟구쳐 나는
부뚜막 앞의 시간입니다. ■
수구레국밥
한 솥 가득 펄펄 끓어 넘치는 수구레국밥에 막걸리 한잔이 그립다는 오랜 벗 박 원장을 따라 창녕군 이방면 옥야마을 오일장에 갔었네.
산토끼가 깡충깡충 뛰어서 산 고개고개를 넘어 알밤을 주워 온다는 그곳.
이승에서 힘을 다한 쇠 한 마리가 가죽으로 생명을 걸어 두기 전, 마지막 남긴 이름 수구레. 입안에서 슬슬 녹는 그 이름이 살아 있는.
뭇사람들의 사랑이 마음의 숨골에 아직도 노란 알 계란 동동 띄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향기다방 버젓한 시골 마을.
수구레국밥 한 그릇에 바짝 치켜든 고개가 절로 수그러지는. ■
변명 1
한 갑자를 훌쩍 뛰어넘은
저녁노을에 얼굴을 담가 봅니다
아직도 새파랗게 돋아나는
마음은 세상 어디에 던져 놓아도
살아 나갈 법도 한데
자꾸만 뒷짐을 지고 선 생각은
어제의 허방다리가,
오늘의 작심삼일이
영 께름칙합니다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는
눈송이 같은 믿음에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입 닫고, 귀 닫고 저녁노을처럼
고요히 저물겠습니다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