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카(Deborah Kerr,1921∼2007)
영국태생의 '데보라 카'는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갖춘 여배우로 헐리우드
고전영화 시기의 명 여배우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영국 '브리스톨'에
위치한 숙모가 운영하는 드라마학교에서 무용을 배웠고, '웰스 발레학교'
에서 수학(修學) 후, 17살 되던 해에 영국 연극 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Thunder in The East>라는 작품에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긴 했지만, 본격적인 데뷔작은 <콘트라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위대한 바바라>를 포함해서 수 많은 영국 영화에서 뼈대있는 가문
(家門)의 숙녀로 자주 등장하여 기품있는 외모를 뽐냈다.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거의 7년간 영국에서 활동한 데보라 카는 <러브
온 더 돌>, <직업 군인 캔디씨 이야기>로 뉴욕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흑수선>에서 수녀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뉴욕 비평가 협회 여우 주연상을 획득하고 헐리우드로 날아간다.
'클라크 케이블'과 <헉스터스>를 함께 공연한 '데보라 카'는 <철부지
아가씨의 첩보작전>으로 다시 한번 뉴욕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연기파 배우임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주로 요조숙녀(窈窕淑女)역을 맡아 연기의 폭이 넓지 못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지나치게 기품있고 우아한 그녀의 이미지가 다른
배역을 맡기에는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1953년, 불후의 명작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성인 연기를 펼친
'데보라 카'는 그후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맡게 되었고, 영국 영화에도
종종 출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오는 해변에서의 '키스신'은 아직 까지도 최고의 '키스신'으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1956년에는 <왕과 나>에서 '시암왕'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영어교사역을
맡아, '율 브린너'와 절제된 사랑을 보여주었다. 1957년 '캐리 그란트'와
함께 출연한 <잊지 못할 사랑>은 불멸의 고전, 멜로의 정석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영화 <시애틀에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맥 라이언이 이 영화를 수십 번 다시 보는 장면으로 또 한번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데보라 카'는 <에드워드, 나의 아들>, <지상에서 영원으로>, <왕과 나>,
<미스터 앨리슨>, <세퍼레이트 테이블>, <선다운너스>로 총 6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으나,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상복(賞福) 없는
여배우라는 뼈아픈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만큼 아카데미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은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그녀는 1969년 은막에서 은퇴하고 조용한 야인의 생활로 돌아갔으며,
1994년이 되어서야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게 되어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했다. 2007년 10월 16일 파킨슨병으로 사망하였다.
<인천 아이러브색소폰 클럽 원장 윤양로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