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
- 피천득(1910.05 ~ 2007.05 서울시 종로구 출생)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 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에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得了愛情痛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이상.
첫댓글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23년의 오월은 이제 돌아오지 못 할 곳으로 갔습니다.
@걸음동무 23년 5월은 갔네요
@혜운 태양의 퍼붓는 정열을 어떻게 피해야 할런지~
@걸음동무 맘준비 단디하고 기억에 남는 23년 여름이 되겠네요
@혜운 작렬(炸裂)하는 태양의 추억? ㅎㅎ 싫어싫어~
@걸음동무 금북정맥의 아찔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