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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정과 구정
새해 달력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날. 바로 1월 1일 ‘신정’이죠.
그런데 달력을 보면, 2월에 또 설날이 있어요.
예전에는 '구정'이라고 불렀지요.
우리나라는 왜 신정과 구정을 따로 두고, 설날을 두 번이나 챙기는 걸까요?
새로울 '신', 처음 '정'. 사전에서 신정은 양력 새해 첫날을,
옛 '구', 처음 '정'. 구정은 음력으로 새해 첫날을 뜻합니다.
한자를 살펴보면 신정은 새롭다, 구정은 옛 것이라는 의미가 있죠?
그런데 구정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강요로 생겼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전통 풍속을 없애기 위해 음력설 쇠기를 금지하고 자신들의 문화와 똑같이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지내라, 이렇게 신정을 강요했다는 주장인데요.
그래서 양력 1월 1일을 새롭고 진취적인 설이라는 뜻으로 ‘신정’이라고 이름 짓고,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구정’이라고 불렀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신정', '구정' 용어가 단순히 일본에서 사용됐다고 해서 일본어 투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정, 구정 다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논란을 피하고 싶다면, '양력설', '음력설' 이렇게 표현하시면 됩니다.
2. 민족의 명절 설이다. 쇼핑몰마다 설 선물세트가 가득 진열돼 있고,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설 연휴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저마다 양손에 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는 이들의 설렘은 고속도로 정체로도 억누를 수 없다. 명절 연휴를 맞은 사람들은 평소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전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는 1월1일(신정·新正)에도 똑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왜 새해 명절을 두 번에 걸쳐 지내는 것일까.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고(故) 윤극영 선생이 1924년 일제강점기 때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을 안타까워해 만든 동요 《설날》이다. 동요에 등장하는 까치의 설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내려온다. ‘어저께’로 등장하는 섣달그믐날을 과거에 ‘아치 설’로 불렀다는 해석이 정설로 여겨진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와 엮여 까치 설날이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에는 가설이긴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엮어 동요를 해석하는 흐름도 있다. 양력 1월1일 신정을 설날로 쇠던 일제를 까치로 비유했고,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어저께’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3. 100년 수난 견디고 민족 명절이 된 ‘구정’
이 같은 해석이 나온 이유는 설날이 안고 있는 수난의 역사 때문이다. 실제로 설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민족의 수난과 함께 부침(浮沈)을 겪은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 전통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설날은 1989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명절 대접을 받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설도 불과 33년 전까지만 해도 공휴일이 아니었다.
음력설(구정·舊正)은 한때 역사 속에서 지워질 뻔했다. 설날이 폐지된 시점은 1896년 1월1일이다. 대한제국을 건립한 고종은 이날부터 태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도입했다. 그렇다고 해서 음력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임금이 결정한다고 해서 수백 년간 지속돼 온 전통이 사라질 리 만무했다. 왕실조차도 음력설에 각종 행사를 지냈다. 양력 1월1일에 대해선 휴일로 지정했을 뿐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았다.
음력의 진짜 위기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친일 내각이 구성된 순종 시절부터 시작됐다. 1907년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이 “국가는 이미 태양력을 준수해 쓰고 있는데, 음력 원단(새해 아침)과 동지에 의식은 이제부터 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순종은 이를 허락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모든 명절과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꾸고, 완전하게 태양력을 시행해 왔다. 일제는 신정 때 학교에 10일가량의 방학을 주고, 관공서와 기업은 그날을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 반면 구정에는 일부러 조업을 강요하고 학생들이 학교를 빠지지 못하게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4. 군사독재 겪고 나서야 부활한 설
전두환 신군부는 매년 국무회의에서 ‘음력설 공휴일 지정 여부’를 놓고 논의했지만 번번이 합의에 실패했다. 1984년 12월 민주정의당이 “내년부터 구정 하루 동안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민적 여망을 수용해 나가기로 정부 측과 원칙적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결국 1월21일 대통령령이 개정돼 처음으로 음력설은 공휴일이 됐다. 다만 명칭은 ‘민속의 날’이었다.
‘민속의 날’이란 불분명한 이름으로 이어지던 음력설이 본래의 이름을 찾은 것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무너진 뒤 1989년에 이르러서다. 1989년 2월 정부는 ‘민속의 날’의 명칭을 ‘설’로 바꾸고, 음력설과 추석을 3일 연휴로 하는 방향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음력설’을 인정한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수난과 군사독재 정권을 지난 후에야 우리 민족은 전통을 지켜낼 수 있었다.
방송통신대학교 통합인문학연구소 이임하 학술연구교수는 저서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에서 음력설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것은 다 바뀌었는데 유독 음력설만큼은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 의례나 기념 투쟁은 하나의 역사적 상징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새해 새 출발을 하는 ‘설’만큼은 서민들의 뜻대로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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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유지만 기자
5. 설의 유래
어느덧 2020년의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매년 다가오는 한국 최대의 명절 ‘설날', 우리 민족 고유의 설날에는 어떠한 풍습들이 전해져 내려오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1. 설의 유래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로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새해의 첫날에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에서 연유했다는 견해와 17세기 문헌에 ‘설’이 ‘나이’, ‘해’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을 통해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떡국 먹기
떡국은 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에 가래떡을 얇게 썰어 넣고 끓인 음식으로 설날에 먹는 절식 중 하나입니다. 긴 가래떡과 같이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3. 차례 지내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상 뒤에는 병풍을 두르고 상에는 설 음식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4. 세배 드리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와 부모에게 절하며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합니다.
5. 연날리기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자른 연살에 종이를 붙여서 연을 만들고, 공중에 띄우며 노는 설날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입니다. 연줄끼리 서로 닿게 하여 줄을 끊는 연싸움을 하며 설날을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6. 윷놀이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입니다. 인원수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전통 놀 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상으로 설의 유래 및 풍습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았는데요~!
2020 한 해를 여는 최대 명절 ‘설날’에 사랑하는 가족, 친지와 함께 풍성한 설 연휴 보내세요 :)
6. 삼국시대의 설
설의 유래
‘설’이란 새로 시작되는 날이라 ‘설다’, ‘낯설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없는[가난한] 사람은 없어서[가난해서] 서럽다’고 하여 ‘설’이란 말이 생겼다는 말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의 기준은 역법의 존재와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설의 뜻
설의 뜻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루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옛 기록들에 의하면 원일(元日) · 원단(元旦) · 원정(元正) · 원신(元新) · 원조(元朝) · 정조(正朝) · 세수(歲首) · 세초(歲初) · 연두(年頭) · 연수(年首) · 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대개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니 만큼,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았다. 설날은 우리나라 세시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크게 즐기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복되고 탈 없는 한 해를 기원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행해진다.
8. 차례
차례 절차
(1) 재계(齋戒): 근신하고 목욕재계하며 안팎을 깨끗이 청소한다.
(2) 설위, 진기(設位. 陳器): 차례 지낼 곳의 위치를 정하고 기구를 배설한다.
(3) 수축(修祝): 평소에 신주가 안 계시면 지방으로, 축문을 읽을 예정이면 축문을 쓴다
(4) 척기, 구찬(滌器, 具饌): 제기를 닦고 제수를 마련해서 큰 상에 차린다.
(5) 변복취위(變服就位): 자손들이 옷을 챙겨 입고 정한 위치에 선다.
(6) 설소과주찬(設蔬果酒饌): 식어도 상관없는 제수를 먼저 차린다.
(7) 신위봉안(神位奉安): 윗대부터 차례로 교의 위에 신위를 모신다.
(8) 분향(焚香): 제주가 읍하고 끓어 앉아 향을 세 번 사르고 재배한다.
(9) 강신(降神): 제주가 읍하고 끓어 앉아 집사가 강신잔에 따라 주는 술을 모사기에 세 번 나누어 모두 지우고 재배한다.
(10) 참신(參神): 제주를 비롯한 모든 남자는 재배 여자는 4배한다.
(11) 진찬(進饌): 적과 함께 식어서는 안 될 모든 제수를 웃대 제상부터 차례로 올린다.
(12) 헌작, 유식(獻爵, 侑食): 제주가 주전자를 들어 윗대 고위의 잔부터 아랫대 비위의 잔까지 차례로 다르고 주부는 윗대 고위부터 아랫대 비위까지 차례로 숟가락을 떡국에 꽂고 젓가락을 골라 시접에 걸쳐 놓는다.
(13) 낙시저(落匙著): 7~8분가 조용히 시립해 서 있다가 주부가 윗대 고위부터 차례로 숟가락을 뽑고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담는다.
(14) 사신(辭神): 모든 자손이 남자는 재배, 여자는 4배 한다.
(15) 납주(納主): 신위를 원래 자리로 모신다. 지방이 있으면 태워서 재를 향로에 담고, 축문을 읽었으면 축문도 태워 재를 향로에 담는다.
(16) 철찬(撤饌): 제례음식을 제상에서 내린다.
(17) 음복(飮福): 자손들이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유덕을 기린다.
9. 세배
세배는 정월 초하룻날 첫 인사다. 세배는 본래 하늘의 신에게 무사고를 기원하며 절을 올렸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며 존경심을 표하였던 것이 웃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풍속으로 변하게 되었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정초에 웃어른께 드리는 의례적인 문안인사이며 새해를 맞이하여 심신을 바로 하고 새출발을 다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몸을 말끔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경건한 마음으로 세배를 올리는 풍속이 생겨났다. 아랫사람은 존경을 담아 세배를 드리며 "건강하세요"등의 축원을 올리고 웃어른은 아랫사람에게 새출발과 다짐을 격려하는 덕담으로 화답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좋은 한해가 되기를 빈다는 뜻으로 정중한 격식을 갖추어 행하였다. 설 차례를 지낸 뒤 자리를 정하여 앉는다. 조부모, 부모에게 먼저 하고 형, 누나 등 나이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한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때에는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배하러 오는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일 등을 내놓는다.
● 절하는 법
<남자>
1) 공수한 자세로 선다.
2) 허리를 굽혀 공수한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손을 벌리지 않는다.)
3) 왼쪽 무릎을 먼저 꿇는다.
4) 오른쪽 무릎을 왼쪽과 가지런히 꿇는다.
5) 왼발을 아래로 오른발을 위가 되도록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
6)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가 손등에 닿도록 조아린다(이때 엉덩이가 들리면 안 된다.)
7) 머리를 들며 팔꿈치를 바닥에서 뗀다.
8)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운다.
9) 공수한 손을 바닥에서 떼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는다.
<여자>
1) 공수한 손을 풀어 양 옆으로 자연스럽게 내린다.
2) 왼쪽 무릎을 먼저 꿇는다.
3) 오른쪽 무릎을 왼쪽과 가지런히 꿇는다.
4) 오른발이 아래로 왼발이 위로 가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
5)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 모아서 손끝이 밖(양 옆)을 향하게 무릎과 가지런히 바닥에 댄다(엄지를 벌리지 않는다.)
6) 윗몸을 반쯤(45°) 앞으로 숙이며 손바닥을 바닥에 댄다(이때 엉덩이가 들리지 않아야 하며, 어깨가 들려 목이 묻히지 않도록 팔꿈치를 약간 굽히는 것이 좋다.)
7) 잠시 머물러 있다가 윗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을 바닥에서 뗀다.
8)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우며 손끝을 바닥에서 뗀다.
9) 일어나면서 왼쪽 발을 오른쪽 발과 가지런히 모은다.
10) 공수하고 원자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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