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시간째, 정아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하늘에서 땅거미가 대롱거린다. 땅거미 뒤꽁무니에서 흘러나온 점액이 서서히 풍경 속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아래채 창고 옆 기둥에 매단 그네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정아의 손을 억지로 잡아끈다.
어제 오후나절이었다. 마당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정아의 행동이 퍽 의심쩍게 느껴졌다. 몹시 궁금하여 뜰로 나갔다. 창고 한쪽에 세워 놓은 자전거 앞에서 짹짹거리며 참새 흉내 내는 정아가 의아스레 보였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니?
정아가 자전거 핸들 앞쪽에 달린 바스켓을 가리킨다. 보라색 바스켓 안에서 새끼참새가 꼼지락거린다. 아직 털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벌건 살갗이 듬성듬성 보인다. 엉거주춤한 참새가 눈을 힘겹게 껌뻑댄다.
―이 참새, 어디서 가져왔니?
정아가 손뼉 치고 짹짹거리며 참새 흉내를 낸 까닭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부르시기에 가보니, 울타리 옆 기다란 부추밭에서 새끼참새가 울고 있더란다. 어미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슬피 우는 새끼참새가 보기에 딱하여 살포시 안아서 자전거 바스켓으로 옮겼단다. 떨어진 감나무 잎사귀와 보드라운 강아지풀로 플라스틱 바스켓을 폭신하게 꾸며 어린 참새를 넣어 놓으니, 조금 전보다 더 애타게 울더란다. 혹시 목이 말라서 그러는 줄 알고 오므린 손바닥에 물을 조금 받아 와서 참새 턱밑에 대고 먹이려 했단다. 그런데 참새가 입을 안 벌리고 계속 울기만 하자, 억지로 벌릴 수도 없고 해서 어미처럼 짹짹거리니까 조그만 입을 째지도록 벌리더란다. 아마 어미가 먹이를 물어왔나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막 둥지를 벗어난 아기 새는 발견한 부추밭에 놔두는 게 좋을 뻔했는데…
분명히 어미가 찾으러 와야 하는데 한참 기다려도 주변을 맴도는 참새를 보지 못했기에, 제 딴에는 자전거 바스켓으로 급히 옮겼단다. 처음 발견한 부추밭과 자전거가 놓여 있는 창고가 그리 멀지 않기에, 만약 어미가 새끼를 찾으려고 했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게다가 저번 일요일에 부추밭에서 큰 두꺼비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냥 놔두면, 혹여 두꺼비의 먹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쌀독을 뒤져 쌀바구미 두어 마리를 잡아온 정아가 손뼉 치며 짹짹거린다. 신기하게도 입을 쩍 벌리며 고개를 바동거린다.
―쭈우 쭈우우…
아직 새끼라서 물을 안 좋아할 수 있으니 더는 물은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새끼참새가 기운 차릴 때까지 정성껏 보살펴 주겠단다. 이번에는 파리를 잡아 주겠다며 파리채 들고 사냥하러 다닌다.
파리채 들고 살금살금 나다니는 정아를 보니, 작년 이맘때 일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기름을 짜기 위해 들깨 두 말이 든 자루를 들고 방앗간에 가려는데, 아이들이 졸래졸래 따라나선다. 방앗간은 면소재지 시장 통로에 자리하고 있다. 닷새마다 서는 장날이 아니어선지 장터는 한산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마른 들깨가 어떻게 고소한 들기름으로 변할까, 엄청 궁금한 표정이다. 으레 방앗간 아줌마의 꽁무니를, 귀찮을 만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먼저 들깨를 큰 고무 함지에 넣고 물에 불렸다가 일일이 조리로 거른다. 소쿠리에 건진 들깨에서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자, 김이 펄펄 끓어오르는 솥에 넣고 들들 볶는다. 꺼머번지르하게 볶은 깨알을 착유기에 집어넣고 한껏 비틀어 댄다. 잠시 후―기계 아래쪽에 있는 뾰족한 꼭지로―뜨끈뜨끈한 기름이 새어 나온다. 조르르, 새어 나온 기름은 깔때기를 통해 병으로 흘러든다.
옆에서 똘망똘망 쳐다보던 아이들이 고소한 기름 냄새에 침을 꼴깍 넘어 삼킨다. 기계 옆쪽에서는 깻묵이 푸석푸석 힘없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깻묵을 집에 가져가서 간식거리로 먹곤 했다, 고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에이, 저렇게 푸석푸석한 걸 어떻게 먹느냐는 듯,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는 이렇게 착유기로 빈틈없이 눌러 짜질 않고 기름자루에 넣고 대충 쥐어짜서인지 깻묵에 약간의 고소함이 남아 있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바싹 비틀어 대니 깻묵이 과수원의 거름으로밖에 쓰이지 않지.
착유기 옆에서는 끊이지 않고 깻묵이 대팻밥처럼 삐져나온다. 마치 깨알이 으깨어지며 눈물을 쏘옥, 빼는 것만 같다.
궁금증이 풀리면 이내 흥미가 없어지듯, 아이들은 방앗간 이곳저곳을 쫓아다닌다. 고춧가루 빻는 방아기계와 가래떡 만드는 기계가 마냥 신기한 눈치다. 가래떡이 나온다는 기계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매만지기도 하고, 길게 걸린 피댓줄을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어맛.
시장통으로 향하는 문 쪽에서 놀던 정아가 황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참새가 끈끈이에 붙었단다. 정말로 출입문 한쪽 바닥에 놓아둔 쥐 잡는 끈끈이에 발이 달라붙은 참새가 바동거리고 있다. 파리를 잡으려고 놔둔 모양인데, 참새가 총총거리다 그만, 끈끈이에 붙어 버린 모양이다. 파닥대던 참새가 끈끈이 위에서 그만 넘어지고 만다. 숨넘어가듯 슬픈 몸짓을 한다. 아이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참새를 한 손으로 살포시 잡고 떼어내려 해도 강력하고 끈끈한 점액이 쉽게 용납 않는다. 끈끈이 위쪽에 표기된 한 방 어쩌고저쩌고, 하는 끈끈이 제조 회사의 선전 문구가 얄미워지기까지 한다. 가까스로 떼어냈으나, 가슴팍의 깃털 몇 개는 끈끈이에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끈끈이에 남아 있는 그 조그만 깃털에서 아릿함이 묻어난다. 떼어낸 참새를 수돗가로 들고 간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흐르는 물에 날개와 다리에 묻은 점액을 씻겨 주는데, 손에 점액이 자꾸 달라붙어 끈적댄다. 발버둥질하던 참새 다리가 날갯죽지에 남아 있는 끈끈한 점액에 다시 붙어 버리고 만다. 억지로 떼어내다가는 자칫 참새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이 날갯죽지의 깃털 몇 개를 조심스레 더 뽑아낸다. 약간 찢긴 날개와 가슴팍에서 금방이라도 핏물을 내뱉을 것만 같다. 수돗가 판판한 돌 위에 쫄딱 젖은 참새를 올려놓으니, 쨍쨍한 햇볕에도 추운 듯 후들후들, 떤다.
―아줌마는 파리를 파리채로 잡지, 왜 저런 끈끈이로 잡으려고 할까?
정아가 방앗간 아줌마가 들리게 일부러 목청을 높인다. 아줌마는 별일 아닌 듯, 착유기에서 눈길 떼지 않고 기름 짜는 일에만 신경 쓴다. 애처로운 낯빛으로 지켜보던 정아는 갑자기 출현한 고양이를 쫓느라 한바탕 법석 떤다. 고양이가 기다랗게 노출된 하수구 PVC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며, 쭈그리고 앉아 꼬챙이 들고 단단히 보초를 선다.
한 20여 분이 지났을까. 파르르 떨던 참새가 힘겹게 눈망울을 실죽거리더니 걸음을 떠듬떠듬 뗀다. 기특해 보였는지 정아가 날개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참새도 정아의 손길을 경계하지 않고 열심히 걸음마 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기운이 생겼는지 수돗가 시멘트 턱을 총총,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날개를 퍼덕거려 보지만, 날갯짓이 아직 서툴다.
빨래 삶듯이 푹푹 찌던 날씨가 별안간, 우중충한 낯꽃을 띤다. 하양 분홍 빨강 꽃망울을 터뜨린 봉숭아꽃 촘촘한 장광 옆으로 참새들이 종종거리며 모여든다. 부쩍 기운 차린 참새를 살포시 안아서 장광 옆으로 옮겨 놓는다. 방앗간 아줌마도 흡족한 미소 지으며 잘 익은 토마토 담은 소쿠리를 아이들에게 건네준다. 참새가 친구들과 짹짹거리며 노는 모습에 아이들 얼굴에서도 흐뭇함이 피어난다.
―이제 그만 가자.
그동안 매끈하게 쥐어짠 기름병을 차에 싣고, 시동 건다. 출발하기 전에 장광 쪽으로 슬며시 눈길을 돌려본다. 그러나 참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짹짹거리며 떨던 수다의 울림만 봉숭아꽃 위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 아이들은 참새가 인사도 없이 갔다고 고까워한다.
오늘 아침, 예전보다 일찍 일어난 정아가 마당에서 서성거리더니, 울상 짓는다.
―참새가…
새끼참새가 가만히 눈 감고 있기에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줄 알았단다. 아침이 되었으니 일어나라고 손뼉을 세게 쳐 대며 짹짹거려 보아도 미동도 않더란다. 손가락으로 참새 머리를 톡톡, 건드려 보니까 힘없이 넘어지더란다. 자전거 바스켓 안에는 이미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괜찮아. 그래도 최선을 다했잖아. 그냥 풀밭에 놔뒀으면 분명 두꺼비가 잡아먹었을 거야. 두꺼비 먹이가 되는 것보단 낫잖아.
―그래두…
잔뜩 풀 죽은 정아 마음이 쉽게 풀릴 성싶지 않아 보인다. 너무 불쌍하다고 투덜대는 정아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면서, 처음 발견한 부추밭에 새끼참새를 고이 묻어 주라고 일렀다. 그러면 참새가 예쁜 꽃으로 환생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정아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차근차근 다독였다. 정아도 작년 여름에 끈끈이에 붙어 죽어 가던 참새를 어렵사리 살려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기에 애틋한 마음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 같다.
창고 옆 그네에 걸터앉은 정아가 집 주위를 맴도는 새들을 유심히 살핀다. 혹여 어미참새가 애타게 찾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걸까. 아니면 새끼를 잃고도 찾지 않은 어미가 야속해서, 만나게 되면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벼르는 걸까. 창고 옆에 서 있는 단감나무에서 매미가 유난히 찌르릉댄다. 매미 울음이 풀쐐기의 바지런한 입놀림처럼 감잎사귀를 싹싹, 훑어낸다. 새끼 잃은 어미참새는 기어이 나타나지 않고, 정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부추밭 한쪽에 묻은 참새가 하얀 꽃망울을 활짝 피울 것이라고 어정쩡하게 둘러대긴 했으나, 여전히 궁싯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꽃줄기가 삐죽 돋은 부추밭에 하얀 물결이 넘실댄다. 부추꽃의 꽃말이 바로 ‘무한한 슬픔’이어서일까. 바람이 마치 부추꽃처럼 하얀 색깔을 띠는 듯하다.
―부추가 꽃을 피우려나 봐.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저렇게 손짓하는 거야.
잠시 정아 얼굴에 야릇한 표정이 감돌지만, 아빠가 제 맘 달래 주려고 하는 말인 줄 익히 아는 눈치다. 하지만 머지않아 꽃줄기 끝에 산들산들, 하얀 꽃잎을 피울 것이다. 환하게 필 것이다. 죽은 새끼참새의 순한 눈망울처럼. 그리고 정아의 맑은 가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