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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세 번 할 텐데 연세가 있어서 따라하실지 모르겠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시작 인사하겠습니다. 시작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다 따라하시네요. 오십견 있어서 못 하실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원래 19절에서부터 35절까지 말씀인데 33절에서 35절까지만 읽었습니다. 먼저 19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는 거예요. 설령 여러분과 제가 잊었다 할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는 겁니다. 이 원칙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이에요. 이 사실은 우리가 잊어도 없어지지 않는 원칙이고요. 우리가 부인해도 없어지지 않는 원칙이 인간이 부인하면 없어지는 원칙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세운 원칙은 인간들이 부인하면 없어져요. 그래서 나라와 나라가 계약을 맺고 원칙을 세우잖아요. 근데 우리가 부인해버리면 그 원칙은 쓸모없어져요.
세상에 인간이 피조물인 우리가 아무리 부인해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원칙이 있는데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절대 부인해도 부인되어지지 않는 첫 번째 사실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이고 두 번째 사실은 인간은 피조물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의 영역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인간은 피조물의 영역에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창조주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시간이든 어떻든 간에 인간은 피조물의 영역에 있을 때 행복한 것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의 자리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섭리하실 때 우리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살아야 됩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절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요.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물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 살아가야 하고, 또 하나님의 리듬 안에 시간 리듬 안에 살아 가야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자신의 인간 시간에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의 혼란과 혼돈과 어려움이 오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에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물인 모든 창조하신 만물 또한 하나님의 시간 안에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해와 달을 만드셨고, 빛과 어둠을 만드셔서 모든 생명체가 낮과 밤을 구별해 살도록 하셨어요. 낮과 밤의 변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의 변화는 변화는 변화와 그리고 수고할 때와 쉬어할 때를 하나님이 다 알려주셨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인간의 시간 속에 살아야 돼요. 일할 때 일하고, 잘 때 자고, 쉴 때 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할 때 예배해야 되고, 기도할 때 기도해야 하고, 순종할 때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시간을 떠나 인간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살기 시작하면 우리 삶 속에는 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의미예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역을 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인간의 시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게 하고 우리를 평안하게 하고 우리에게 참 안식일을 주지만, 인간의 시간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눈을 파괴시키고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는 피조물인 우리는 피조물의 시간 안에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에 거할 때 참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살면 인간이든 자연이든 불안해지지 않습니다. 쉴 때 쉬어야 불안하지 않고, 일할 때 일해야 불안하지 않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지 않고 자신의 시간 속에 살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시간을 순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불안이 엄습하게 된 거예요.
인간의 시간은 파괴 시간인 반면에 하나님의 시간은 창조의 시간인 거예요. 그러니까 피조물들이 인간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안에 머물러야 파괴가 아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고 불안이 아닌 평안히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간 간의 불안이 왔을까요? 인간 가운데 왜 염려가 왔을까요? 왜 파괴가 이루어질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시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시간 안에 자기가 결정한 시간 안에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여러분과 저는 인간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안에 머물러야 돼요.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피조물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인간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편해지고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에서 만들어진 불안과 파괴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 때 하나님의 시간 안에 살려고 할 때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인간의 시간을 살아서 불안해졌잖아요. 이 불안과 염려와 걱정을 이기려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하나님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거예요.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가게 되고, 교회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인간의 시간에 머물 때 그 안에는 파괴가 일어나고 그 안에는 불안이 엄습하게 되고 그 안에는 염려가 깃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없고, 인간의 시간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시간을 사랑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자신의 시간 안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참 행복 인간의 참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갈 때 우리가 누리게 되는 거예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시간을 거절하고 거역했을 때 인류의 죽음이 왔고, 불안이 엄습하였고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고, 부끄러움이 시작됐던 거예요.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영원히 하나님의 시간 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아래, 하나님의 시간의 법칙 아래 하나님의 법칙 아래서 그가 살았다면 인류는 죽음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불안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염려와 근심도 경험하지 않았을 거예요.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고 자신의 시간, 인간의 시간을 살아서 불안과 근심과 염려가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하나님의 시간을 거역하게 하고 인간의 시간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인간의 재성이 하나님의 시간을 거역하게 만들고 인간의 시간 속으로 머물게 만듭니다.
문제는 인간의 시간 안에 우리가 거하면 인간의 작품, 사람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시간 안에 거하면 인간의 작품이 만들어져요.
문제는 인간이 만든 작품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더 골치 아프게 만들어요. 반면에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의 리듬은 인간을 평안하게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고 머리를 상쾌하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 인간의 작품이 사람의 작품이 아닌 것은 그 교회가 사람의 시간 인간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 거예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작품이 많다는 것은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머물 때 하나님의 작품들이 내 삶이 만들어지고 반면 우리가 인간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으면 인간의 작품이 내 삶에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만들어진 많은 인간의 작품들, 그 작품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시간에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거예요. 입증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인간의 작품들이 내 삶에서 하나하나씩 떠나가기 시작해요. 내가 불순종해서 만들어진 작품들, 내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결과들, 내가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아서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내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다 내 인생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시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어야 돼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따라 살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따라 살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할 때 교회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만약에 성도들이 목회자인 저가 아니면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고 인간의 시간을 살면 우리 교회 안에는 인간의 작품들로 가득가득 만들어져요.
여러분 우리는 솔직히 이제는 좀 구별은 돼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이런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모습은 아 하나님이 행하심이다. 여러분 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지 않나요? 여러분 가정 안에 일어난 일들 아 이거는 인간의 작품이다. 이거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정도는 이 정도는 구별할 수 있지 않나요? 할 수 있어요. 정말 믿음이 작아도 믿음이 거의 없어도 이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요. 이게 하나님의 일인지 이게 사람의 일인지 이게 하나님의 작품인지 이게 사람의 작품인지 구별할 수 있어요.
근데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행하심이 나타나려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어야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성도가 자신의 시간을 살면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 인간의 작품이 만들어져요.
여러분 가정 안에 만들어진 인간의 작품들은 여러분을 분명히 괴롭히고 있을 거예요. 내가 이거는 불신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이다. 이건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 일어난 일이다. 아마 이런 일들은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을 거예요. 힘들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괴롭게 만들고 있을 거예요.
근데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 가정이 내 삶이 하나님의 시간에 순종하는 순간 인간이 만든 인간의 작품들이 우리 가정 안에서 내 삶 안에서 하나하나씩 떠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시간을 살면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이 만들어져요.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될 사람인데 자신의 시간을 살아요. 자기 일을 잘하기 위해서 사는 거죠. 자기를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사는 거예요. 자기가 좀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사는 거예요. 아니요. 성도의 본분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인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시간을 살 때 하나님의 작품이 늘어나는 것이고 반대로 인간의 시간을 살면 인간의 작품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인간의 작품이 많아지면 교회는 곧 분열이 되더라고요. 교회 안에 인간의 작품이 많아지면 교회는 시끄럽게 싸우게 돼요. 교회 안에 인간의 작품이 많아지면 성도들은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돼요. 교회 안에 인간의 작품이 많아지면 성도들은 괜한 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큰 일이 그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순종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일하심을 놓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는 성도들이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살도록 가르쳐야 됩니다. 훈련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의 파도를 타도록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파도를 타는 사람이 처음에는 작은 파도를 타요. 우리나라는 파도가 크게 이는 해안이 아니잖아요. 근데 강원도에 가면 거기는 다른 지역보다 파도가 조금 더 높게 이는 지역이 있어요. 거기에 서퍼들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계속해서 모여요. 서퍼들의 성지예요. 근데 거기는 높다 하더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는 않더라고요. 파도의 높이가 그래서 그 작은 파도를 타다가 이제 익숙해지면 사람들이 더 큰 바다로 나가요.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로 나가서 큰 파도를 타는 도전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타는 훈련을 해야 돼요. 그래야 나중에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타는 그 시간도 우리가 감당해낼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처음에 여러분과 저를 작은 시간의 파도를 타게 하다가 나중에는 큰 시간의 파도를 타게 해요.
근데 우리가 훈련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큰 파도를 타는 일들이 일어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의 행하심이 내 앞에 막 크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 파도를 내가 올라타지 못해 왜요? 하나님의 시간대로 사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거예요. 내 시간대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내 방식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시간대로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 하나님의 시간이 내 인생 가운데 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를 올라타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시간을 타면 시간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 가운데 보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으면 성도의 삶을 주관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에 여러분의 시간표를 맞춰야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정말 단순한 방법은 내 시간표를 찢어버리는 거예요. 내 시간표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입해야 되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도 업무 일지를 매일 쓰고 그리고 제 목양실, 제 자리 뒷벽에도 한 달 스케줄표가 다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그 시간표에 그 시간표에 자신의 시간을 기입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입하라는 거예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표라고 해서 자기 의도대로 시간표를 기록하고 그 의도대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 적이 없다라고 만약에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살지 않고 여러분의 시간표대로 살아서 그런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이 시간에는 이걸 행하기를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는데 여러분 마음대로 산 거예요. 원래는 한 해 동안 교회에 충성하기를 바라셨는데 그냥 여러분의 생각대로 산 거예요. 원래는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려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는데 그냥 자기 시간표대로 산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산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 삶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자신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을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야 인간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일이 인간 속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시간표에는 어떤 일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정표입니까? 여러분 뜻대로 마음대로 정한 일정표대로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시간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표입니까? 아니면 세상과 함께하는 시간표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시간표에 예배가 견고하게 자리 잡아야 하고요. 우리의 시간표에 기도가 견고하게 자리 잡아야 하고요. 우리의 시간표에 하나님의 일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야 하고요. 우리의 시간표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시간표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시간표에 기입하려고 하면 여러분이 난리가 나는 거예요. 안 됩니다. 하나님 안 됩니다. 하나님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알아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서 지금은 이거 할 때예요.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경험되지 못하는 거예요.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시간표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시간표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살아야 하나님의 일하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33절과 35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에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작정하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대로 자랐더니 하나님이 시편 기자에게 풍성하게 공급해 주셨어요. 이 하나님의 풍요함을 경겁한 시편 기자는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작정하고 결단을 합니다. 33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누가 하나님을 예배할까요?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경험한 자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시간 속을 살았고,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그의 삶에 일어났어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고 나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작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작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먼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고, 다음은 하나님의 시간대로 살아서 이 창조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우리 인생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결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유대함을 경험할 때마다 단을 쌓았어요. 홍해를 건너고도 단을 쌓았고요. 전쟁을 이기고도 단을 쌓고요.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께 예배했어요.
여러분 이 땅에 예배가 크게 일어나려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돼요. 그래야 온전한 예배자들이 이 땅 가운데 세워지게 되는 겁니다. 내가 내 삶과 일하신 하나님을 보니까 예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내 안에 일하신 하나님을 보니까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안에서 역사하는 아버지를 보니까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 헌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예배의 본질인 거예요. 예배드려야 됩니다. 찬양해야 됩니다. 이게 예배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에 감격해서 스스로 예배할 마음을 갖게 한 해가 되는 것, 스스로 하나님의 찬양을 갖게 되는 것 이게 예배의 본질인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을 예배할, 하나님을 찬양할 결단과 헌신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의 크기와 완벽함과 수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하나님을 알게 되고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결단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면 살수록 이 땅에 예배자가 더 많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한 주간 하나님의 시간을 살면 주일 온전히 예배할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의 시간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작전이 생겨나고요.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 시간에 은혜받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작정하고 헌신하고 또 다짐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하심을 보지 못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찬양할 결단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예배할 결단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예배할 결단을 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넣어주셔서 자기를 하나님의 창조물 되게 했다는 것을 시편 기자가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찬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시편 기자가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또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작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영을 부으소서 여러분과 저를 창조하셨을까요? 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존재인 것을 예배할 존재인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18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내 시간을 낭비한다는 개념을 넘어선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놀랍게 행하실 그 하나님의 기회를 우리가 지금 박탈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아서 하나님 우리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은 거예요. 이런 거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 안에 놀라운 일을 행하고 싶어요. 근데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하나님이 행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만약에 이 땅에 교회나 성도들 안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볼 수 없다면 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을 살아서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하나님의 시간을 아끼라는 거예요. 자기의 시간을 아끼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시간을 아끼란 말이에요. 우리는 자꾸 때 세월을 아끼라고 하니까 자기 시간을 아끼니라고 난리예요. 아니요. 하나님의 시간을 아끼라는 거예요. 내가 나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빼앗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할 것을 방해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을 하나님의 시간에 살게 하면 하나님이 자녀들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셔요.
근데 부모들은 자꾸 자녀들에게 자기의 삶을 살래요. 자기 시간을 살래요. 이게 자녀를 곧 망치는 길이잖아요.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의 가정으로 결혼을 했으면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에게 여보 하나님의 시간을 사세요라고 권면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요? 우리는 자꾸 자기의 시간을 살래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자기의 시간을 살려고 권면해요. 교회가 소유 직분자들에게 직분을 주고 주를 위해 헌신하게 했으면 교회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시간을 살도록 권면해야지 자기의 시간을 살도록 권면할 때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해방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약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없어요.
왜 교회가 세상을 못 이길까요?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아서 세상을 못 이기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을 살면 세상을 이길 수 있어요. 근데 인간의 시간을 살아 세상을 못 이기는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모세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서 200만이라는 이스라엘 대군을 출애굽 시킬 수도 있었고요. 40년 동안 광야에서도 이끌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초대했어요.
근데 모세가 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내쫓을 때 모세는 하나님이 그 내쫓음을 당해서 광야로 갔어요. 40년을 광야에 살았잖아요.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랬더니 모세가 그 40년 동안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서 이스라엘 이끌 만한 능력의 사람이 되어서 이스라엘 가운데 등장한 거예요.
제가 목장 교회를 이끌 만한 충분한 지도력을 갖기 위해서 저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가정을 이끌 만한 충분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인간의 시간을 살면 결코 가정을 이끌 힘을 얻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가정을 이끌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살던 애굽의 시간표를 버리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누구도 하기 어려운 출애굽의 역사를 모세는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세 인생의 인간의 시간표는 너무 완벽했어요. 공주의 아들입니다. 양화되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왕도 될 수도 있었어요. 이보다 완벽한 인간의 시간표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만약에 저한테 그게 보장돼 있다면 저는 정말 충성스럽게 살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는 이 모든 걸 다 눈으로 보고도 눈으로 보고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시간표 안으로 들어가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 하나님의 시간표는 광야였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광야 그곳에서 그는 200만 대군을 이끌 지도력을 얻게 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목사도 리더십이 생기고 성도들은 리더십이 생겨요. 이 땅에 많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지 않아서 리더십을 잃어버린 거예요. 영적 리더십, 가정을 이끄는 리더십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 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마지막에 씨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던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았기 때문에 모세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결단할 수 있었던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향한 거룩한 결단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 때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오늘 하루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시간을 살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로 내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이 주일의 예배도 정말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만을 찬양하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예배의 결단이 가능하고 찬양의 결단이 가능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권면의 자 초대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십시오. 할렐루야 여러분의 시간표를 좀 찢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이 한 60 70까지 여러분의 시간표대로 사셨잖아요. 이제 1~20년 아니 30~40년만이라도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좀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초대하는 그 시간표로 들어오세요. 기도로 초청하면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고 헌신으로 초청하면 헌신의 자리에 나오십시오.
우리 교회 이제 은퇴하신 분들이 자꾸 늘어나더라고요. 좀 교회가 걱정은 돼요. 이제 월급을 못 받으시니까 십일조를 안 내게 되고 물론 이제 받는 월 받는 많지 않은 금액들의 십일조는 하시기는 하시지만 걱정이 좀 많이 되긴 되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분들을 보면서 말씀을 준비하며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제는 이제는 이제 세상이 은퇴했으니까 지금만이라도 하나님의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멘을 하지 않는 것은 안 하시겠다는 의미인지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 표절로 살아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써놓은 여러분의 시간표를 좀 떼내세요. 자녀들을 향한 여러분의 시간표도 좀 이렇게 떼내세요. 하나님이 더 잘 아세요?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 하나님의 시간표를 나의 시간표, 저도 목사의 시간표를 좀 떼내려고요. 왜요? 하나님이 저보다 목회를 더 잘해요. 어쩌면 제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목회일 수도 있어요.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두고 우리가 왜 우리의 시간표로 살아가려고 이렇게 용을 쓸까요? 이제 목장 교회는 하나님의 시간표도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초대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반면 인간의 시간의 초대는 거절하십시오. 강력하게 거절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 배도로 살아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