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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을 증거함
사도행전 13:26-37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행 13:26-37 / 아브라함의 자손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여러분, 이 구원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27)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임으로써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예언자의 말씀을 읽고서도 예수께서 바로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이라는 것을 깨닫지도 알아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28) 그들은 예수를 처형할 만한 아무런 정당한 근거도 없이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29) 그분의 죽음에 관한 모든 예언대로 그들이 다 해치운 후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3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31) 그후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동행한 사람들에게 여러 번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사실을 여러 사람들 앞에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32-33) 이제 바나바와 나도 기쁜 소식을 여러분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 기쁜 소식이란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때에 와서 실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제 2편에서 `오늘 내가 너를 내 아들로 세워 영광스럽게 하였다'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34)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음에서 살려 내신 뒤 다시는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내가 옛날에 다윗과 맺은 언약을 그대로 지켜서 그 모든 약속을 너희에게 이루어 주겠다'고 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35) 다른 시편에서는, ㄷ) `주께서 이 몸을 스올로 팽개치지 않으시고 주님만을 애타게 그리는 이 몸 버리지 않으시리라'고 더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36) 이 말씀은 다윗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ㄹ)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며 살다가 죽어서 땅에 묻혔고 그의 몸도 썩어 없어졌습니다. 37)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른 분을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분은 무덤 속에서 썩은 일이 없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이제 그 중심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의롭다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들이 부활의 증인이라(26-31)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선포한 바울은 이제 그 구원계획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선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에 대해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밝힙니다(27). 이들은 선지자들의 말씀, 즉 구약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안식일마다 말씀을 외웠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등잔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신앙의 형식은 갖추고 있었으나 신앙의 중심은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바울의 초점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죽음과 그의 십자가 부활로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서 그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는 빌라도의 확정으로 더욱 분명해 집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심으로 사망을 이기는 승리를 부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은 증인으로 다시 태어나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준비되어지고, 이루어진 구원계획(32-37) 바울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증언에서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고 이루신 구원의 계획임을 밝히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세 번에 걸친 구약 인용을 통해 십자가 사건이 철저하게 구약의 예언이었으며, 성취임을 밝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먼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33)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시 2:7).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35)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가 되심을 증거합니다(시 16:10).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34)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윗이 예표한 진정한 이스라엘 즉, 하나님나라를 세우셨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구약 곳곳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고 있음을 입증하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계획의 완성임을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모인 모든 자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 용 :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부활의 증인입니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철저하게 준비되어지고 성취되었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인도의 전 총리 네루의 말입니다. “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칭송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 설 교 >
믿고 죄사함을 받으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32-33)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34-37)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38)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행13:32-41)
1.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오늘은 바울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구약 메시야 예언의 핵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32-33) 메시아 예언의 핵심은 다윗 왕국의 회복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 왕국, 평화의 왕국 태평성대의 왕국, 영원한 왕국, 축복의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다윗과 관련된 메시아 예언을 세 가지로 언급합니다.
1. 시편 2편에 예언 된 메시아 출현의 예언입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32-33) 시편 2편 7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이 부분은 신약성경에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입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1-22) 둘째는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에게 들려온 음성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눅9:35) 예수님은 다윗이 한 예언대로 오셨습니다.
2. 시편 16편에 나타난 부활 예언입니다.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34-37) 이 부분은 바로 시편 16편의 말씀을 인용한 겁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시편 16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다윗 자신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왜냐하면 다윗 자신은 죽어 장사되어 시신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윗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육체가 썩지 않고 그대로 계신 분은 오직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다윗이 한 예언대로 장사되셨다가,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3. 다윗 왕국의 번영과 영화에 대한 부분입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34) 다윗 왕국의 영광에 대해서는 이사야 55장과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3)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6) 역사상 다윗이 세운 왕국은 BC586년에 바빌론에게 멸망당함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영원한 왕국은 곧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다윗의 영원한 왕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과 그의 왕국입니다. 바울은 지금 비시디아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그냥 무덤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주시며 영원한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 예언대로 다윗 자손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무덤에서 육체가 썩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영원한 다윗 왕국, 즉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구주, 바로 그분이십니다.
2.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러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뭡니까? 바울은 청중들에게 그들이 취해야 될 한 가지 결단과 행동을 촉구합니다. 바울이 권하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반복하는 말씀이 뭡니까? “이 사람을 힘입어....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38,39)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라!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의지할 때에 우리에게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집니다.
1. 죄 사함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38) 우리가 단 하루를 살고 세상을 떠난다 해도 꼭 해결해야 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죄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 이 땅을 떠날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하나님 앞에서는 단 한 가지의 죄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산다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불행합니다. 영적으로는 늘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뭔지도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 때문입니다. 죄란 본질상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지은 죄는 사과 하나를 도적질 한 죄가 아닙니다. 돈으로 치면 사과 하나가 몇 푼이나 되겠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한 겁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몰라서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벌의 규정이 죽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실수로 선악과를 먹은 게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먹었습니다. 고의성과 반역성! 이것이 모든 죄의 본질입니다. 요즘도 보세요. 죄 짓는 사람들마다 이 말 저 말 하지만 결국은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뿐입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이 원리는 영원히 마찬가집니다. 인간은 하나님 계명에 순종해야만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반역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죄를 오직 지옥의 심판 한 가지로 다스립니다. 지옥이라고 하니까 무슨 도깨비들이 있는 곳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지옥은 하나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두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오늘 이 땅에 살면서 지옥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함입니다. 죄는 당사자의 용서로써만이 해결됩니다. 죄는 결코 범죄자가 갚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온갖 죄목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살인, 간음, 강도, 상해, 사기, 횡령, 공무집행 방해 등등. 살인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 값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습니까? 사기 쳐서 남을 망하게 한 사람이 무엇으로 그 죄 값을 갚을 수 있습니까? 인간은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죄 값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 마태복음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얘기가 나옵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평범한 사람이 수 백 억 빚을 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비유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아니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빚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각 나라마다 엄청난 빚에 파산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미국 금융 위기가 어디서 왔습니까? 빚 때문입니다. 국가가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기업이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나라마다 빚으로 살림살이를 하면서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 했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어떤 나라도 자기가 진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방법이 뭡니까? 탕감해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용서의 원리요, 바로 예수님의 속죄를 통한 용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 값을 자신이 갚겠다는 사람이 가장 교만하고 큰 죄인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뭐라고 말합니까?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마18:26)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갚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뭡니까? 인간의 종교적 행위들이고, 인간적 자선 행위들입니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행위로 자신의 죄가 어느 정도 없어지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뜨거운 불 위를 걷거나, 땅에 몸을 묻고 수행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거나, 갖가지 수행들이 실제로 자신의 죄를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한 두 차례 자선 행위를 했다고 그것이 죄를 갚는 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임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 죄 지은 사람은 사람 앞에 당연한 행위를 했다고 공로로 인정될까요? 죄는 아무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가 전혀 없는 분이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저는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죄를 짓지 말든지, 아니면 자기 죄는 자기가 갚아야지 왜 밤낮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하나? 하나님께 용서받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용서의 길이 얼마나 위대한 길인지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 길로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우리가 지은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이 짐을 주님께서 내려놓게 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1-3)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목마름은 죄로 인한 의에 대한 갈증입니다. 누가 이 시원한 생명수를 내게 줄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생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을 중심에 영접하세요. 예수님 오늘 내 마음에 오셔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세요! 그리고 모든 마음의 죄를 용서받으시기 바랍니다. 죄 사함 받으면 영혼이 시원합니다.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기뻐합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된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2. 의롭다 하심을 얻으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두 번째 선물은 의롭다 하심입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을 완전한 의인으로 보십니다. 이것을 힘든 말로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칭의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법을 적용해도 범법, 위반이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실상 이런 상태의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가끔 국가의 요직을 임명할 때에 국회에서 청문회를 합니다. 요즘 청문회는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보다는 흠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무슨 실수나 잘못이 없는지 한 건 올리기 위해 정신이 없습니다. 조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앞에 놓고 심판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감히 아무도 먼저 돌을 들지 못하고 다 도망쳤습니다. 감히 남을 죽여라 살려라 할 만큼 의로운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워서 천국 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완벽한 의인, 완전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 의로움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극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행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하라는 계명이 둘이고 하지 말라는 계명이 여덟 가지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소극적 계명입니다. 최소한 행하지 않으면 의롭게 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 숭배 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탐욕을 내지 말라 등등. 이런 계명은 하지 않음으로써 충분히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적극적인 계명입니다. 즉, 행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어디까지 행해야 되는지 한계가 없습니다. 사랑이란 계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얼마나 사랑하면 됩니까?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의라는 것은 인간적 측면에서 불가능한 요구사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완전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모든 금할 것을 금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고, 모든 행할 것을 행한 것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1-24)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25-26)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1-28)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창세기에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아담이 입은 가죽 옷이 그것입니다. 아담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려고 무화과 잎으로 엮어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마르고 해져서 곧 부끄러움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아담에게 하나님은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의 수치를 가리워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의는 보잘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혀 주신 속죄의 옷, 칭의의 옷은 완벽하여 모든 수치를 가려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장차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 때에 우리는 무죄자의 옷, 완벽한 의인의 옷, 흰옷을 입게 됩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 모든 사람이 의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로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의인 대접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 경고
바울 설교의 결론은 경고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은 선택적 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죄인들의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대세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유대인들이나,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집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40-41)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여 년 전에 이미 이런 예언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합1:5) 역사 속에 놀라 자빠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보세요.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관심이 있습니까? 죄 때문에 멸망에 빠지고, 죄 때문에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죄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돈 얘기만 합니다. 모든 인간이 다 부패하고 타락해서 멸망해 가도 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자신의 의만 내세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합니다.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당신들도 구주를 믿고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놀라고 놀라 자빠질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께 내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고백하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의를 입혀주십니다. 완벽한 의인으로 인정하십니다. 천국 자녀로 삼으십니다. 현재 지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천국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장차 세상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 품에서 영원한 천국 생활이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축복, 하나님 자녀된 축복을 지금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놀라 자빠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