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해, 굉장해, 정말 굉장하다니까요
로고스서원의 희망의 인문학 이야기 01 by 김기현
1.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니까요!”로 마치는 퀜틴 블레이크의 책은 정말 굉장했다. 아니 저자가 굉장하다. 내가 아는 블레이크는 삽화가이었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이야기 작가인 로알드 달의 책의 삽화는 몽땅 블레이크 몫이다. 해서, 블레이크는 글을 떠받들고 글을 돋보이게 하는 만화가인줄 알았다. 지금이야 글 못지않게 그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책을 쓰다니! 책 뒷날개에 적힌 대로, 행복한 부부에게 소포 꾸러미가 하나 배달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가 바뀌고, 부부의 삶도 온통 뒤바뀐다. 그 아이 이름은 ‘자가주’다. 그래서 책 제목도 「내 이름은 자가주」(마루벌)이고. 스포를 안 할 수 없구나. 자가주가 어느 날부터 변신을 시작했다. 동물이다. 그것도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엄마 아빠를 괴롭히는 괴상한 동물 말이다. 새끼 독수리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 잠 못 자게 한다거나, 아기 코끼리가 되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거나 등등.
2. 이 책을 소개해 준 이가 실은 굉장하다. 로고스서원의 대구글쓰기학교의 수련생이다. 초등학교 교사인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수업을 진행하신다. 한번은 그 이야기를 글로 써왔는데 정말 굉장했다. 유아들이 읽는 책으로 분류된 이 책으로 무려 90분이다, 수업을 말이다. 아, 저 책으로 저렇게 진행하면 되겠구나, 감이 왔다. 아니, 선생님이 한 그래도 하면 된다. 하다 보면, 유도리도 생기겠지. 그래서 책을 주문했고, 훑어보았다. 할만하다.
3. 굉장히 고민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도 잘 할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할 수는 있기나 한 건가? 책을 읽고 책을 쓰면서 인생이 확 바뀐 나로서는 책의 힘을 믿는다. 아니 숭배한다. 그렇기에 청소년회복센터 아이들에게도 책을 읽히면 바뀔 것이라는 모종의 확신은 있다. 실제로 18주 동안 서울 명동에 있는 ‘여명학교’ 아이들 일부와 책 읽고 글쓰고 토론하는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아이의 삶이 바뀌었다. 희망이 없기에 남보다 더 좋은 대학을 일찍 결정해서 갈 수 있음에도 포기한 아이가 살아야 할 이유, 글 써야 할 이유를 발견했었다. 굉장하다!
주변에서 말렸다. 회복센터 아이들을 돕더라도 로고스서원 학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와, 댓츠 베리 굿 아이디어! 그렇지만, 나는 만족함이 없었다. 즐겁지도 않았다. 사실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간 것이 아니다. 나는 신학교에 간 것도, 목사가 된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찌 알겠나. 내 의지로, 내 선택으로 가족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행했다. 새빛 청소년회복센터 아이들과의 만남도 걱정이 많았지만, 하고픈 마음이 앞섰고, 말이 빨랐다. 말을 따라서 몸이 뒤따랐다. 그래서 오늘 처음 갔다. 그간의 경험을 믿고서 그러나 쫄리는 마음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4. 진행은 이랬다. 제목 표지를 보고 이야기해 보기, 한 명이 한쪽씩 읽기, 중간 중간에 다음 장면을 예측해서 말해 보기. 예를 들면, “그러던 어느 날”이라는 문장을 읽고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각자 상상, 추론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림과 이야기의 전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 특유의 질문을 계속 쏘아 올렸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뭐지?” 간혹 말로 하지 않고 글로 써보라고 했다. 딱 한 줄이다. 그 정도면 된다. 처음부터 많이 쓰라고 하면 도망간다. 해서, 한 줄이다. 썼다. 그걸 낭독하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또 말하고. 마지막에는 이 이야기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세 줄 정도 쓰라고 했다. 이번에도 낭독하고 또 이야기하고.
자가주가 변했던 동물 중 자신과 가장 닮은 동물을 자기 공책에 쓰고, 모두 돌아가면서 맞추기를 했다. 아이들이 총 7명이었는데, 네댓 명이 서로 일치했다. 서로를 이해하라고, 남이 보는 나를 보라고, 나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인문학의 본령은 자기 성찰이 아니던가. ‘너 자신을 알라!’
왜 부모가 펠리컨으로 변했는지를 돌아가면서 말했다. 아이들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길래, 왜 다른 동물이 아니고 펠리컨이냐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 아이 키우면서 팍삭 늙었다는 말은 굳이 펠리컨이라는 동물로 작가가 특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작가는 구태여 펠리컨을 선택했다. 거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겠니? 그게 뭘까?
5.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못한 것이 두어 개 있다. 하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펠리컨이 누구인지, 그리고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펠리컨이 되고 있는지. 다른 하나는 너희들은 너희에게 시끄러운 독수리, 더러운 멧돼지가 있니? 어떻게 대하니? 등등.
6. 시간이 1시간이 다 되었다. 9시가 약속 시간이었는데, 8시 40분 경에 도착해서 50분에 시작했다. 10시까지 했으니 1시간 10분이 소요되었다. 자가주가 하나 하나 변해가는 동물에서 마침내 의젓하고 듬직한 청년이 된 과정이 뭘 말하는지를 모두 이야기 한 다음, 잠깐 설교 아닌 설교를 했다.
젊어서 착한 범생이들이 나이 들어, 그러니까 40대나 50대가 되어 사고치는 사람이 종종 있더라. 10대 때, 사춘기를 제대로 지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 실체를 잘 아니까 완전히 바뀌어 성실한 사람이 되더라. 그러니 지금 열심히 지랄발광하렴,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거야.
7. 앞으로 일정과 진행에 관해 공지를 했다. 한 달 4주 중에 2 주 정도는 오늘처럼 즉석에서 읽고 말하고 글쓰기를 하고, 한 주는 영화를 보고, 나머지 한 주는 약간 두터운 책을 읽고 글을 미리 써서 모이기로 했다. 그 글을 첨삭해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다음 주는 시작 단계이니 동화책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영화는 시모노세키에서 있었던 위안부 재판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인데, 우리 로고스교회가 후원하는 부산 위안부 역사관 김문숙 회장님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천종호판사님과 통화를 했다. 실제 주인공인 김회장님과 같이 영화보고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집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면서도 적어도 서너 권 이상 있는 책을 한 권 골랐다. 「완득이」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이다.
8. 마치면서 내가 굉장한 사람이라는 홍보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14권 책을 썼고, 7권 번역했고, 학술 논문을 13편 쓴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지옥 같은 시간을 통과한 내가 기특하다. 참, 팔불출이 따로 없구나. 그러자 곁에 계시던 선터장님 부인께서 거든다. 정말 유명한 분인데, 너희들 위해 이렇게 오신 거라고. 팔불출께서는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야 하는데, 한 마디 더 보탠다. ‘야, 내가 좀 비싸다. 싼 사람이 아니야.’ 아이고, 나, 원.
9. 돌아가면서 오늘 첫 모임 소감을 이야기했다. 거의 끝나갈 무렵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19살 남자 아이의 말이 기억난다. 끝나기 10여분 전에 왔는데, 모임하는 것을 본 소감이 어떠니? 라고 물었다. 그 아이 말이 걸작이다.
1) “이렇게 집중하는 것을 첨 봤고요, 이렇게 참여를 잘 하는 것도 첨 봤고요, 늦게 온 것이 너무 아쉽고요. 다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2) “스마트폰 할래, 책 읽을래, 라고 하면 이제는 책 읽을 것 같아요.”
이건 좀 심하다 싶어 말은 그래도 실제로는 폰 볼걸, 그랬다. 맞은 편 아이가 그런다.
3) “혼자 읽는 것은 힘들어서 못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책도 읽고 토론하고 박수도 받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할 것 같아요. 옆의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4) “책 읽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15살짜리 막내의 말이다.
암, 그렇고말고. 책은 재미있단다. 그리고 책을 통해 내 이야기를 보고, 책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니까 말이다.
5) 다음 날 아침, 카톡을 여니까 센터 담당자가 사진과 함께 막내가 한 말을 전해 준다. “선생님 최고예요. 너무 재밌어요.”
굉장한 녀석들이다.
10. 실은 새빛센터장님이 굉장하신 분이다. 울산센터장님을 통해서, 그리고 천종호판사님을 통해서 간단히 들은 바로는 연세와 경험, 경륜이 있는 분이시고, 아이들을 손주처럼 자상하게 대하신다는 것이다. 아이들 얼굴에서 그게 읽힌다. 어느 배우가 시상식에서 말해서 히트친 그대로, 나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오늘 독서 모임은 정말 굉장했다.
처음이 너무 좋으면 나중도 잘 될까 조금 걱정된다. 그러나 처음이 좋았으니 다음도 좋을 확률이 훨씬 높다. 시작이 굉장했으니 나중은 정말 굉장하리라!
펠리컨이 된 부모와 결혼을 약속한 자가주와 애인, 네 사람이 어깨 동무를 하고 사랑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니까요!” 그렇다.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 책도 정말 굉장하다니까요!”
첫댓글 사부님이 굉장합니다.^^
이목사님도 곧 굉장한 일을 하실 거잖아요. 화이팅임다!!
대단하네요.
쑥쓰~ 부끄~
목사님안에 있는 열정은 살아있는 생명체같군요 식물에 새순이 오르듯 ...파릇파릇 이파리가 되어 누군가를 또 새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군요 저도 동화되고 싶은데 저는 요즘 마른 이파리랍니다
정말 오랜 만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고 재미 있어 하는 일을 하고, 그걸로 남도 도우니까 조금 피곤해도 맘과 영은 신이 난답니다. 에공, 힘들다는 분 앞에서 또 자랑질을 ㅎㅎㅎ
아,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아주 작지만 꾸준한 후원을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김기현 음...작지만에 끌리네요 ㅎㅎ 네 알겠습니다 콕 찝어 말씀해주시면 꾸준한 ㅡ도 더해보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6.29 14:39
@제이 제가 가끔 제 정신을 잃고 대담무쌍해져요 ㅎㅎ 감사합니다
23기 글쓰기모임을 시작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사부님 파이팅입니다!!^^
그때가 그립네요. 신설동 나들목도서관에서 그 시간이...
멋집니다~홧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응원에 힘입어 더 홧팅임다!!
멋집니다! 싸부님!! ㅋㅋ
격려하고 후원하는 이들이 있어 하는 거지요~~
읽는 저두 흥분되네요! ㅎ
목사님, 일 내세요!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한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책을 읽는 저도 신나네요. 계속 좋을 수야 있겠냐마는 매번 즐기려고 합니다.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도 이 책으로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댓츠 베리 굿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