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한국”보다 더한 “헬 조선” 이야기 – 임의진의 ⌜숫자 사회⌟에서
저자 임의진은 2030세대의 삶의 기본 값이 전후 베이비붐 시대가 꿈꾼 희망 값이라고 하였다. 2030 세대는 6070세대가 피땀과 눈물로 이룬 꿈, 모두가 선망하는 30평 이상의 아파트, 승용차, 컴퓨터와 가전제품을 태어나면서 누렸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 삶의 기본 값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2030세대는 기본 값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결혼, 육아를 불안해하고 기피한다고 하였다. 저자는 2030의 문제를 자기들의 힘과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기본 값에 대한 좌절이라고 하였다. 결국 그들의 결혼과 육아 거부에 대한 거절은 그들의 욕망의 좌절이다. 꿈과 모험을 위해 시도해보지도 않고 천문학적인 아파트 가격과 대학입시와 취업 고시의 좌절에 자진해서 조상대대로 살았던 삶의 패턴을 내려놓은 자포자기이다. 그들은 자산들의 야망을 위해 탐욕을 부리며 투쟁하기도 전에 불가능을 알고 미리 스스로 일상적인 삶의 대열에서 이탈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로 말미암아 고령화 문제, 저 출산과 인구 감소의 문제, 지역소멸의 문제, 세대 갈등과 대립의 문제 등이 야기되지만 아직 그 어떤 정부 대안, 대척도 2030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들의 탐욕과 갈등은 세계 구석구석에서 불꽃이 튀고 있다. 그들은 욕망의 성취를 법과 상식, 도덕과 양심, 협상과 인내로 풀려 노력하지 않고 곧 바로 전쟁과 폭동, 테러와 약탈로 치닫고 있다.
작은 나라 안에서도 이념과 민족, 계층 차별과 기득권의 문제로 정치 환경이 시계의 추처럼 극 보수와 극 진보로 오가고 있다. 12월 3일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계엄령 선포 또한 이 범주에 속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표현한다 해도 우리 정치 생태계의 무능과 독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회 또는 기관과 단체, 국민들의 생각과 방향이 자기와 다르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는 단세포적인 사고를 하는 지도자들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현실이 40년 민주화 투쟁 속에서 살아온 우리 세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금번 사건은 지도자에 따라 정치는 언제든지 퇴행하며 겨울왕국으로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한 때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비하하여 “헬조선”이라고 불렀다. 춘궁기를 지나오면서도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우리 세대에게 “헬조선”이라는 말은 큰 충격이었다. 열심히 산 우리가 결국 우리나라를 “헬 조선”으로 만들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 밖으로 나가 살면서 아시아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우리 젊은이들처럼 “헬”이라고 말하는 것을 무수히 들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말했던 “헬”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조선을 “헬 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철저한 차별사회였다. 어른과 아이의 차별, 남편과 아내의 차별, 아버지와 아들의 차별, 아들과 딸의 차별 등 유교 의례에 의하여 차별이 일상화된 세계였다. 사농공상의 카스트에 의해 양반과 상놈이 사람과 짐승으로 사는 세계였다. 아무리 조선 시대를 미화시켜도 조선은 양반들만 사람인 세상이었다. 양반들의 지긋지긋한 기득권 싸움이 사색당파 싸움이었고 조일전쟁(임진왜란)이나 조청전쟁(병자호란)도 중국에 대한 사대정신과 기득권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인한 모든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 되는 기형적인 사회였다.
우연히 임의진의 ⌜숫자 사회⌟에서 조선이 “헬 조선”임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다.
임의진의 ⌜숫자 사회⌟138 ~ 140 쪽의 이야기를 그대로 발췌한다.
짧은 본문이기는 하지만 따라서 읽노라면 우리가 세종대왕의 나라, 율곡의 나라, 퇴계의 나라, 정조의 나라, 다산의 나라로 도학정치가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조선 역사의 허울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신양명이라는 ‘성공’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듯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경쟁률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대표격인 문과는 총 다섯 번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급제’를 할 수 있는데 성적순으로 총 33명을 뽑았다.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기까지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총 848회 시행된 과거의 합격자는
약 1만 5000여 명에 불과했으며
평균 응시자는 6만 3000여 명, 평균 경쟁률은 약 2000대 1에 달했다.
❰정조실록❱은 1800년 3월에 시행된 과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1일의 경과(초시)는 세 곳으로 나누어 치렀는데 총 응시자는 11만 1838명에 달했고, 시권(답안지)을 바친 자는 모두 3만 8614명이었다. 다음 날의 인일제(유생들을 대상으로 치른 특별 과거)응시자는 모두 10만 3579명이었고, 시권을 바친 자는 3만 2884명이었다.….”
첫날 경과에서 열 명, 둘째 날 인일제에서 두 명이 합격했다고 하니,
경쟁률은 각각 1만 1184 대 1(제출된 답안지 개수를 토대로 매긴 실질 경쟁률은 3861대 1),
5만 1790 대 1(실질 경쟁률은 1만 6442대 1)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2년 5급 공채와 외교관후보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이 38.4 대 1이었으며,
7급은 42.7 대 1,
9급은 29.2대 1이었다.
범위를 넓혀보면 최근 30년 동안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11년으로 93대 1을 기록했다.
최근 공무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해도, 합격 문턱을 넘기 어려워 몇 년간 시험 준비에 매진한다는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현재는 30대 1에서 40 대 1, 가장 높았을 때도 100대 1을 넘지 않았다.
물론 이 숫자가 만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예전 과거 급제의 어려움,
그리고 그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매진했던 선조들의 노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조선 500년 역사를 통 털어서 공무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이 약 2000 대 1인 “헬 조선”이었다. 500년 역사 속에서 공무원으로 선발된 자가 1만 5000명에 불과하였다면 그 나머지 과거시험에 낙방한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을 것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한국의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가잔 높았던 때가 2011년으로 93대 1이라고 하였다.
조선과 한국은 비교할 수 없는 나라이다.
왕정의 전제국과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한국은 조선이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국민은 “헬”을 “헤븐”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이며 가능성이다. 아무리 국가 독재가 강력하여도 깨어서 함께 외치고 협상하며 노력하면 “헬”을 “헤븐”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헬 조선”은 지나갔다.
지금은 비록 한국이 분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한국은 “자유, 평화, 복지”의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순식간의 방심으로 “헬”이 몰려올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헬”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40여 년 동안 분투노력하였다.
결코 자유 민주공화국인 한국은 양반만이 사람이던 조선의 헬로 돌아갈 수 없다.
2024년 12월 22일 주일 자시
우담초라하니
참고서적
임의진, ⌜숫자 사회⌟, 웨일북스,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