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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철학자 토마스 쿤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년 미국 오하이오州 신시내티에서 출생.
1943년 물리학 전공으로 하버드대학 수석 졸업.
1952년 하버드대 조교수로 정통 과학사 강의.
1956년 버클리대학에서 과학사과정 개설 주도, 영구직 교수됨
1958년 스탠퍼드대학으로 옮김. 《과학 혁명의 구조》 집필.
1964∼79년 프린스턴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
1979∼91년 MIT대학 언어학 및 철학 교수.
저서로는 문제작 《과학혁명의 구조》(1962) 이외에 구체적인 과학혁명의 예를 다룬 《코페르니쿠스 혁명》(1957)과 《흑체이론과 양자 불연속성》(1978), 과학철학적 주제를 모은 논문집 《주요한 긴장》(1977)이 있다.
1. 시작하는 말
토마스 쿤Thomas S. Kuhn(1922∼1996)이 얼마나 엄청난 주장을 하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근대 이후 과학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과 과학 기술의 등장은 최근의 일이다. 인류 역사 5백만 년을 30일로 압축하면, 인류는 29일 22시간 30분을 자연에 의존하여 유목민으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살았다. 1시간 20여 분 동안 농업에 종사하며 추수하고, 집을 짓고 고대 도시를 만들었다. 르네상스 이후는 불과 4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대에 현대 국가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출현하고 노예제도도 없어졌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 시대에 접어든 것은 불과 1분 30초 전의 일이다. 전화의 발명을 기점으로 삼으면 전자 정보 시대는 50초 전에 시작하였고, 전자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불과 12초 전의 일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발전은 놀라운 변화를 초래하였다. 공업화가 이루어진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공장이나 회사에 근무하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 성장은 민주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복음으로 찬양 받게 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적어도 지식인 사회에서 과학은 찬양이 아니라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 대전과 환경 위기를 계기로 과학이 역사 진보의 원동력이라는 믿음은 깨어져 버렸고, 객관적인 진리로서 과학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도 상당부분 손상되었다. 이제 과학은 과거의 榮華를 상실하고,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찌그러진 깡통 신세가 되었다. 이성의 총아로 우대 받던 과학이 포스트 모던의 열풍에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참으로 隔世之感이라 아니할 수 없다.
1700년대 후반 한 과학자는 "모든 방향으로… 확장되는 빠른 지식의 진보는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에 있어서도… 모든 오류와 편견을 근절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최근에 특별히 이 나라에서처럼 자연적 지식이 이렇게 진보한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베이컨 경의 지적처럼 지식은 힘이며 인간의 힘은 실제로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상황을 더욱 편안하고 안락하게 만들 것이며 이 땅에 더욱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더 행복해지고, 우리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무궁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라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믿음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과학이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1)는 이러한 전통적인 과학관에 치명타를 가했다. 쿤이 새로운 '과학 혁명의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이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진리를 제공하고, 진보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는 과학사에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과학의 역사를 기존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치하는 非누적적 발전의 에피소드로 기술함으로써 과학 철학과 과학사에 새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인간과 세계를 달리 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주었다.
1962년에 출간된 《과학 혁명의 구조》는 20세기 후반에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학문적인 서적이다. 이 책은 치열한 논쟁을 일으키면서, 100만 권 이상 팔리고, 20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명저가 되었다. 인문 과학과 사회 과학 서적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패러다임'이라는 전문적인 학술 용어를 일상 용어로 만들었다.
쿤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유교적 가치관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는 공자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2)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지식인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개방성과 균형 감각이다"3)라는 문장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패러다임paradigm'이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끼친 영향이다. 그런데 토마스 쿤은 누구인가.
2. 쿤은 누구인가
1996년 6월 17일 암으로 숨진 토마스 쿤은 1922년 오하이오州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1943년에 졸업하였다. 졸업과 함께 미국의 무기 관련 연구소였던 OSRD(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에 2년간 근무하였다. 종전과 함께 하버드대학 물리학과 대학원 과정에 들어갔다. 1949년에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48년 주니어 펠로우junior fellow로 지명되면서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이 자리에 1951년까지 머물렀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 1956년까지 교양 과정 및 과학사 조교수로 재직하였다. 1956년에 버클리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61년에 과학사 정교수가 되었다. 1964년부터 1979년에는 프린스턴대학 과학사 프로그램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그 대학의 고등연구원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79년에는 MIT의 언어학 및 철학과로 자리를 옮겨 1991년까지 그 대학에 머물렀다. 그는 1968년에서 1970년까지 과학사학회 회장, 1988년에서 1990년까지 과학철학회 회장을 맡았다. 1982년에 Gorge Sarton Medal of the History of Science Society을 받았고, 1983년에는 John Desmond Bernal Award of the Society of Science를 수여 받았다.
1940년대 후반 쿤은 당시 화학자이면서 하버드 대학 총장이었던 코난트James B. Conant의 지명으로 Conant가 개설한 비자연계 학생을 위한 자연과학개론 강의를 돕게 되었다. 이 강의를 돕기 위해 17세기 역학의 원천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과학사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과학사 공부를 계기로 쿤은 주니어 펠로우로 지명된 3년 동안 다른 부담 없이 과학사를 비롯하여 철학, 언어학, 사회학, 심리학을 읽고 토론하면서 지적 영역을 확장하고 심화하였다.
1954년 안식년에 구겐하임 펠로우Guggenheim Fellow로 지명되었고, 이 때를 이용하여 그의 처녀작인 《코페르니쿠스 혁명》(1957)을 집필하였다. 1958∼59년에 걸쳐 과학 혁명에 대한 책을 구상하여, 1962년에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1977년에는 《본질적 긴장》을 1978년에는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을 출간하였다.4) 그가 죽고 4년이 지난 2000년에는 1970∼1993년 사이에 발표한 철학 논문들과 인터뷰를 담은 《구조 이후의 길The Road Since Structure》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마지막 20년 동안 연구한 패러다임 轉移, 公約不可能性incommensurability, 진보의 본질에 대한 과학 철학 논문과 파이어아벤트Feyerabend, 포퍼Popper, 헴펠Hempel, 테일러Taylor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쿤의 과학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가운데 하나는 1947년 그가 경험했던 직관이다. 그는 당시 과학사 강의를 준비하면서 뉴튼 역학의 뿌리를 보여줄 수 있는 간단한 역사적 사례를 찾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cs》을 읽게 되었다. 그는 그 책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탁월한 철학자가 어떻게 물리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그릇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불가사의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쿤은 갑자기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운동motion이나 물질matter과 같은 기초 개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뉴턴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이라는 개념을 위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변화 일반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태양이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붉어지는 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나쁜 뉴턴bad Newton'이 아니라 다만 뉴턴과 달랐을 뿐이다.
뉴턴 물리학에서 사용된 'mass(질량)' 'force(힘)'라는 개념은 뉴턴 이전에 사용된 'mass'나 'force'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비교해도 이러한 현상은 잘 나타난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문학에서는 태양과 달은 행성이었지만 지구는 행성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양은 항성이 되었고 달은 새로운 천체 곧 위성이 되었다. 개념의 의미는 전체적인 맥락(패러다임)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하며 전체적인 맥락은 과학 혁명을 통해 변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쿤은 과학이론 변화scientific change의 메커니즘을 연구하였으며, 15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비로소 눈부신 발견을 하였다. 그 돌파구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었다. 쿤은 툴민Toulmin, 핸슨Hanson, 파이어아벤트 등이 주장한 관찰의 이론 의존성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과학 혁명을 통해 이론이 바뀌면 과학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현상을 보게 되는 불연속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론 사이의 단절에 대한 강조는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의 중심 내용을 이룬다. 쿤은 "과학 혁명에서 나온 정상 과학의 전통은 이전의 전통과 兩立不可能할 뿐 아니라 公約不可能uncommensurable하다." 공약불가능한 패러다임의 선택은 "강요될 수 없는 개종의 경험이다." 라는 획기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런 결론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과학 혁명의 구조》는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된다.
"역사가 逸話나 年代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현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과학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 그 이미지는 주로 고전적 서적들 그리고 최근의 교재들에 기록되어 있는 완결된 과학적 업적에 대한 연구로부터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 그려졌다. … 본 에세이는 그것들로 인해 우리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이 글의 목적은 연구 활동 자체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과학에 대한 전혀 다른 개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패러다임에 입각한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한 쿤의 독창적 이론은 과학 이론의 논리적 분석이 아니라 실제 과학자들의 활동과 과학사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3. 패러다임과 정상 과학
쿤은 과학사에 나타난 몇몇 혁명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과학관의 주요 개념을 설정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견해와 달리 과학의 변화 또는 발전은 누적적인 과정이 아니라 혁명적인 과정을 통해서 성취된다. "과학은 개별적인 발전이나 발명을 통한 누적에 의해 발전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변화는 과학 혁명을 통해 이루어지며, 과학 혁명은 한 이론 체계가 포기되고,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이론 체계가 그 자리를 메꿈으로써 이루어진다.
혁명을 통해 과학의 진보가 성취되며, 쿤은 혁명 이전의 안정된 기간을 '정상 과학'이라 부른다. 과학 혁명은 정상 과학이 위기를 맞이하여 무너지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과학 혁명은 또다시 정상 과학으로 정착하게 되며 이 과정은 계속된다. 곧 전(前)과학 → 정상과학 → 위기 → 과학혁명 → 새로운 패러다임 → 새로운 위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5백여 년 전 그리스어 paradeigma에서 영어에 paradigm이라는 말이 도입될 때 이 말은 패턴pattern, 典型examplar, 모델model을 의미하였지만, 쿤은 과학에서 기본이 되는 이론과 법칙들, 기본적인 법칙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는 표준적인 방법, 도구적인 기술, 형이상학적인 원리, 이론의 선택, 평가, 비판과 관계된 원리 등의 총체를 패러다임이라 하였다.
여러 비판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쿤의 패러다임은 매우 애매하며, 많은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는 이러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 혁명의 구조》 1970년 판 後記에서는 패러다임을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의 총체를 지칭하는 개념" 또는 "이 같은 총체 중의 한 구성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인 수수께끼 풀이에 사용되는 모델과 실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다시 정의하였다.
쿤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출현하기 이전을 前科學 단계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현상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인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18세기 전반에 전기electricity의 본질에 대한 최초의 패러다임이 나오기 전에는 전기 실험가의 수만큼이나 전기의 본질에 관한 많은 견해가 있었다. 그러다가 전기의 다양한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전기 현상에 대한 하나의 패러다임이 성립하게 되었다.
"패러다임 이전 시기의 여러 학파들 중에서 한 학파가 승리함으로써" 전과학의 단계는 종결되고 정상 과학의 단계가 나타난다. 쿤은 생물학의 유전 연구에 대해 최초로 보편적 패러다임이 나타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사회 과학의 어느 분과가 그러한 패러다임의 단계에 도달했는가 하는 것은 의문시된다고 말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형성되면 '정상 과학'이 진행된다. '정상 과학'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과거의 과학적 성취, 어떤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일정 기간 동안 그 공동체의 연구 기초로 인정하고 있는 과학적 성취에 확고한 기반을 둔 연구"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의 과학 활동을 뜻한다. 공통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정상 과학의 연구자들은 과학 연구에 있어서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갖는다.
정상 과학은 이미 주어진 비교적 안정된 테두리 안으로 자연을 밀어 넣으려는 시도이다. 이때 테두리는 패러다임에 의해 주어진다. 정상 과학은 절대로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지 않으며, 그 테두리 안에 맞지 않는 현상은 전혀 보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고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고안한 이론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정상 과학 안에서의 연구는 패러다임이 제공한 현상이나 이론의 명료화를 추구할 뿐이다.
정상 과학 안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은 활동의 토대인 패러다임을 비판하지 않는다. 정상 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념적이거나 현상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 과학은 보수적이다. 과학자들은 성공적인 기술을 확장하고, 기존의 체계 안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제거하기 위해 힘쓸 뿐이다. 정상 과학에서는 "패러다임과 일치하지 않는 연구 결과는 과학자의 실수로 생각되며 …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지 못할 때에는 이론에서 잘못을 찾지 않고 과학자에게서 잘못을 찾는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포퍼의 주장과 달리 결코 이론에 대한 반증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상 과학 안에서의 탐구는 패러다임이 적용되는 범주를 넓히고 정확성을 증대시켜 주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 과학의 상태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패러다임의 기본 이론과 모순되는 변칙이 나타나 해결되지 않는 퍼즐이 생기게 되면 위기가 조성된다. 곧 과학자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에 적합하도록 패러다임을 조정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할 때,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변칙 사례가 나타남으로써 정상 과학의 퍼즐들이 예상된 해답을 얻는 데 실패하고 변칙 현상이 기존의 지식 체계로 해결되지 않을 때, 위기에 돌입한다. "변칙이 위기를 초래하면, 그 변칙은 변칙 이상의 것"이 되며, "변칙이 정상 과학의 퍼즐 이상으로 여겨지게 될 때, 위기에로의 전이와 異常과학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학자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이 변칙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그러나 변칙을 위기로 파악하여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을 불신한다고 해서 곧 그 패러다임을 버리지는 않는다. 反證주의자들은 反例가 나타나면 그 이론 체계를 곧 포기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쿤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과학의 역사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4. 과학 혁명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 체계가 나타나고 이 체계를 과학자들이 받아들이면 과학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은 전문가들의 공동 전제가 변하기 때문에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한다. 쿤은 과학 혁명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로 코페르니쿠스, 뉴턴, 라브와지에Lavoisier, 아인슈타인 등이 제시한 이론의 변화를 들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뉴턴, 라브와지에, 아인슈타인 등이 성취한 업적은 과학 혁명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들은 그 당시까지 받아들여져 온 과학 이론을 부정하고 그와 양립 불가능한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과학적 활동의 터전이 되는 세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轉移가 곧 과학 혁명이다. 혁명을 통해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대치되는 이유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계속되는 변칙성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이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이전의 패러다임보다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설명력을 제공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전이가 결코 이전의 패러다임을 수정하거나 확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과정이 누적적이 아니라는 쿤의 주장이다. '과학 혁명'은 낡은 패러다임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치되는 非누적적인 발전의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쿤은 과학 혁명을 정치적 혁명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치적 혁명은 현존하는 제도가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감지함으로써 시작되고, 정치 혁명을 통해서 구축한 제도와 그 이전의 제도를 비교할 수 있는 제3의 기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이 일어나게 되면, 해당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론의 일반화뿐만 아니라 방법과 그 적용까지도 변하게 된다.
"전이가 완료되면, 전문가들은 그 분야에 대한 관점, 방법, 목적을 바꾸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형태 변화에 비유될 수 있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오리로 보이던 것이 산양으로 보인다. 이것은 객관적 관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쿤은 Hanson의 '이론 의존적 관찰theory-laden observation'의 테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Hanson에 의하면 서로 다른 이론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그들이 본 것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이론이 관찰을 결정한다. 따라서 관찰과 이론, 관찰과 해석을 분리하여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Hanson은 《발견의 패턴》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케플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가 언덕 위에서 해돋이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티코Tycho Brahe도 그와 함께 있다. 케플러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으며, 지구가 움직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와 달리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고 있는 Tycho는 지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때 케플러와 Tycho가 동쪽에서 해가 돋을 때 동일한 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Hanson의 대답은 케플러와 Tycho는 다른 사물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케플러는 움직이지 않는 태양을 관찰했고, Tycho는 움직이는 태양을 관찰한 것이 된다. 그 이유는 관찰은 이론 의존적이며, 이론과 관계를 맺지 않는 관찰은 있을 수 없고, 이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관찰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쿤에 있어서도 이론과 관찰과의 관계는 Hanson과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된다. 과학적 개념의 의미는 이론이나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달라지게 되면 관찰의 의미도 이와 더불어 변하게 된다. 쿤은《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합된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한다. 한쪽이 천천히 떨어지는 물체를 본다면, 다른 한쪽은 반복해서 움직이는 진자를 본다. 한쪽이 어떤 용액을 화합물이라 하면 다른 한쪽은 혼합물이라고 한다. …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舊 과학자 집단이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방향에서, 동일한 사물을 볼 때에도 그들은 서로 다른 사물을 본다.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면 세계관이 변하고, 관찰에 대한 해석까지 변한다는 것이 쿤의 입장이다. Hanson이나 쿤의 이론 중립적 관찰의 부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관찰을 통해서 과학 이론을 테스트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과학관은 근원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거나 관찰한 것이 관찰 주체자가 가지고 있는 이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순환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서는 관찰에 의해 이론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
따라서 이론의 반증은 관찰에 의해 입증될 수 없으며, 경합된 이론들을 관찰에 의해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무너지고, 이론 선택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도 단절된다. 과학 혁명으로 대치되는 패러다임 사이에는 不可公約性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쿤에 따르면 다른 패러다임 안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주를 다른 시각으로 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간의 완전한 의사 소통도 불가능하다. 패러다임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다.
옛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公約불가능성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두 패러다임을 서로 비교할 수도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옛 패러다임이 담고 있는 생각을 나타낼 수도 없으며, 두 패러다임을 비교할 수 있는 이론 중립적인 언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현상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들은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정의한 과학을 버리는 일과 동일하다." 쿤의 이러한 말은 과학의 이론 변화가 합리적이고 누적적인 지식의 축적이라고 믿은 전통적인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공약불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이론 선택의 기준은 불변적, 형식적이며, 과학은 진리를 향해 누적적으로 진보한다고 주장한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를 강타하였고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합리주의는 경합하고 있는 이론들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상대주의는 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과학 이론이 더 좋거나 나쁜 것으로 판단되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달린 문제로 생각한다.
전통적인 합리주의자들은 일제히 쿤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였다. 그들은 쿤의 공약불가능성을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패러다임의 우열을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해석하였다. 대표적으로 라카토스Lakatos는 패러다임 선택의 문제가 "다수결, 이론 지지자들의 신앙심과 설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진리는 결국 설득력에 의존하게 되고, 과학 이론의 변화는 "군중 심리"의 문제가 되고, 과학의 진보는 본질적으로 "시위 효과"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비판하였다.
쿤이 이러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말을 많이 하였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종교적 개종에 비유하기도 하고, 새로운 이론에 매혹되어 그것을 받아들인다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정치적 혁명과 같이 패러다임의 선택에 있어서도 관련된 공동체의 동의가 가장 좋은 기준"이라면 선택의 기준은 공동체의 문화적이고 역사적 배경에 따라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은 언어와 같이 본질적으로 어느 한 집단의 공통된 특징이며,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쿤은 과학적 지식을 창출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들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쿤은 자신이 상대주의라는 오해를 벗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의 노력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뒤에 나타난 과학 이론은 그것이 적용되는 아주 다른 환경에서도 수수께끼를 푸는 데 있어서는 그 이전의 과학 이론보다 더 낫다. 이것은 상대주의적인 견해가 아니며 내가 과학의 진보를 확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쿤은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보다 낫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예측의 정확성, 특히 계랑적인 예측의 정확성, 난해한 주제와 일상적인 주제간의 균형, 그리고 해결된 상이한 문제들의 수, 이것들보다 덜 중요한 기준으로, 단순성, 범위 그리고 다른 전문 분야들과의 공약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해명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합리성이 과학 철학의 중요한 이유가 된 까닭은 과학이 합리적인 경우에만 과학과 非과학,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쿤이 결국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할 수 있는 구획 기준을 부정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를 상대주의자로 몰아 붙인 것이다.
과학을 과학 아닌 것으로부터 구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의 탐구는 전통적인 과학 철학의 주요 과제였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검증 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유의미한 언명과 무의미한 언명을 구별하려 했고, 포퍼는 구획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구획 기준을 제시하는 의도 뒤에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과학적 지식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하는 평가적인 주장까지 포함되어 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의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의 범위를 확정하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무의미한 것으로 못박아 학문의 영역에서 추방하려 했다. 검증 가능성에 따르면 경험에 의해 진위를 결정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언명이나 종교적.윤리적 언명은 모두 무의미한 언명이다. 물리학은 구획 기준을 만족스럽게 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지만 점성술이나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쿤은 이러한 구획 기준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과학과 미신과의 구별도 어렵게 된다. 科學史家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力學, 燃燒說에 대한 화학이나 열역학을 주의깊게 연구하면 할수록, 과거의 자연관이 오늘날의 자연관보다 덜 과학적인 것도 아니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더욱더 관련된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
낡은 과학 이론이 버림을 받았다고 해서 그 이론들이 비과학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쿤의 입장에 의하면 非과학과 과학을 구별하는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하며, 그것도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고, 과학이 본질적으로 다른 지식과 비교하여 우월한 것이 되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쿤의 혁명적인 과학관이 과학 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완전히 굳힌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참신한 관점을 제시하고 철학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5. 쿤이 열어준 새로운 세계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지식(과학)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하였다. 논리 경험주의자나 반증주의자들도 플라톤이 시작한 전통적인 지식론 안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하였다. 그들은 '구별짓기와 차별하기'를 위해 지식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플라톤은 '에피스테메episteme'와 '독사doxa'를 구별하였다. 이데아界에 대한 지식은 '에피스테메'이고 감각界에 대한 지식은 '독사'이다. 철학자만이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들만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구별을 통해 지식을 서열화할 수 있는 位階체계를 제시하였다. 그가 제안한 위계에서는 순수한 논리만 사용하는 수학이 맨 위에 있고, 대부분 레토릭rhetoric만 사용하고 전혀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 문예 비평과 정치적 설득은 맨 아래에 있다. 지식에도 인간들 사이의 신분처럼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항상 이 위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어떤 형태의 지식이고,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는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지만, 이 시도만은 끊임없이 존재하였다. 중세의 철학자들, 근대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칸트도 지식의 '구별짓기와 차별하기'를 해왔다. 근대 이후 철학의 이러한 전통에서 과학은 가장 합리적인 지식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은 과학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그 공고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철학자들이었다. 과학을 정당화하는 철학은 논리 실증주의에서 극에 달했다. '구별짓기와 차별하기' 정신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포퍼, 라카토슈, 쿤,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5)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쿤의 공격으로부터 과학을 지키려고 한 라카토슈와 논리 실증주의를 '죽였다'고 공언한 포퍼는 쿤이나 파이어아벤트와는 구별되지만, 이들 모두는 과학이 객관적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격함으로써 과학을 침체의 늪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는 물리학자도 있다. 이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과학의 가장 큰 적'은 파이어아벤트이고 그 다음 자리에 쿤이 앉아 있다.
포퍼와 라카토슈도 전통적인 의미의 확실한 지식으로서의 과학을 부정하였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본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과학자들이 진리를 획득할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수학과 과학을 진리로 떠받들었던 논리 실증주의가 대변하는 전통적인 과학론을 비판함으로써 전통적인 의미의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과학이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이 초래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경계하고 비판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과 인간을 보호하려 했다.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충동이 절정에 이르면 횡포와 폭력에 도달하고, 인간과 문화의 다양성을 짓밟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절대 진리나 과학적 확실성에 대한 인식론적 믿음은 도덕적, 정치적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특히 쿤의 패러다임論은 과학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이 나올 수 있는 촉매 구실을 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로티Rorty의 해석에 따르면, 그는 과학 혁명이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후보자가 형성되는 적절성의 기준이 변화함으로써 일어난다고 하여 논리와 레토릭 사이의 구별을 흐려놓았다. Rorty는 쿤의 혁명적인 통찰에 힘입어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6)
"나를 비롯해서 쿤을 읽은 사람들은 맨 위에 논리적인 것, 객관적인 것, 과학적인 것이 자리잡고, 맨 아래에는 레토릭, 주관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이 자리잡은 인식론적-존재론적 체계의 문화 지도 대신에, 기준이 끊임없이 변하는 왼쪽의 혼돈과 적어도 당분간 기준이 고정되어 있는 오른쪽의 말쑥한 질서를 포괄하는 사회학적인 스팩트럼의 문화 지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스팩트럼에 의해 생각하게 되면, 하나의 학문이 혁명적인 시기에는 왼쪽으로 움직이고 쿤이 '정상 과학'이라고 부른 시기 곧 안정적이고 단조로운 시기에는 오른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철학이 스콜라적이었고, 대부분의 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만족하였던 15세기에, 물리학과 철학은 오른쪽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17세기에 물리학과 철학은 왼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문예 비평은 낭만주의 운동 이후와 비교하여 오른쪽에서 더 멀리 있었다. 19세기에는 물리학은 자리를 잡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철학도 그렇게 하려고 처절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철학은 두 전통 ('분석적' 전통과 '대륙적' 전통)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 분리된 두 전통은 서로 '참된 철학을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각각 자기 분야의 성공에 대한 명백한 내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가치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철학은 현대 자연 과학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 현대 문예 비평과 같은 처지에 있다.
문화의 위계에서 과학을 맨 위에 놓고 싶어하는 과학철학자들은 쿤이나 Rorty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Rorty가 문화의 위계에서 과학을 결코 더 낮은 자리에 앉히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러한 질서를 구성하기 위해 '실재'나 '객관적'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학문의 지위에 대한 질문을 학문의 유용성에 대한 질문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그에게는 분과 학문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거나 문화적 활동 사이에 위계를 세우려는 것은 연장통의 도구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거나 정원의 꽃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쿤은 과학의 발전 과정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과학과 기타 문화의 관계를 참신하게 재정립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의 통찰에 힘입어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지식이 아니라, 여러 문화 가운데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서 벗어나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과학 기술 문명을 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쿤을 과학의 인식론적 특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들로 대치하려고 한 '과학적 지식 사회학'이나 사회구성주의로 보는 것은 지나친 것처럼 보인다.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과학 외적인 요인들 곧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성적 요인들이 과학을 구성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연과학이 사회문화적인 요소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 요소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쿤은 이러한 입장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Kuhian이라고 자청한 사람들이 새로운 과학 이론의 수용이 과학적 증거보다도 사회적 힘과 정치적 힘, 경제적 힘의 투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쿤은 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다이슨Dyson의 증언에 따르면 쿤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Kuhian이 아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7)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마르크스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Kuhian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 전쟁'을 유발할 정도로 번성하였다. 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쿤에 대한 해석권은 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읽는 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쿤은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을 해명하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기도 하였다. 필요하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보완하기도 하였다. 《과학 혁명의 구조》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 책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고전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각주내용
1)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과학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빈 학파의 중요 멤버로서 '논리 실증주의' 또는 '논리 경험주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와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등이 편집한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의 Vol. 2, No. 2로 1962년에 출간되었다.
그 뒤 1969년에 긴 '後記'가 첨부된 Second Edition이 나왔다. 다시 1996년에 Index가 첨부된 Third Edition이 출간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조형 교수와 김명자 교수의 번역으로 각각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와 정음사(뒤에 두산동아)에서 출간되었다.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한 후속 논의는 무수히 많다. 국내에서는 조인래가 편집한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이 있다. 이 책은 쿤이 일으킨 과학 철학의 쟁점을 주제별로 잘 정리하였다.
2) 〈서양인의 공자상은 '인간미 넘치는 참스승'〉, 동아일보, 2001년 12월 15일.
3) 김태익, 〈정치에 배반당한 지식인〉, 조선일보, 2001년 12월 17일.
4) Kuhn의 생애와 학문적인 여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였다. 김영식 《역사와 사회 속의 과학》(서울대 출판부, 1994); 송상용,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들의 구조〉,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민음사); Jed Z. Buchwald, George E. Smith, "Thomas S. Kuhn, 1922∼1966," 《Philosophy of Science》 64 (June 1997).
5) 전통적인 과학 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나온 포퍼, 라카토슈, 쿤, 파이어아벤트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현대 과학 철학을 주도한 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엇갈린다. 이들을 위대한 과학철학자로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들 모두를 '진리의 배반자'로 몰아 비난하였다. 그들은 모두 '너절하고', '무책임하며', 특히 '터무니없는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로 가득 찬 인물이라고 악평을 서슴지 않는 철학자도 있다. John Horgen, 《The End of Science》(Addison-Wesley Publishing Company, 1996) 2장 참조.
6) 로티, 〈토마스 쿤, 바위 그리고, 물리 법칙〉, 신중섭 역, 《과학 사상》(1997년 봄), p. 179.
7) Freeman J. Dyson, 앞의 책, p.16. 과학지식 사회학과 사회구성주의에 대해서는 홍성욱, 《생산력과 문화로서 과학 기술》(문학과 지성사, 1999), 1, 2, 4장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