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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8차시 합평 자료(2026년 4월 20일 월)
1. 바투보기 / 임성림 2
1. 책을 읽는데 애매한 단어가 등장한다. 문맥을 읽고도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생소한 낱말이다. 바로 '바투보기'라는 말이다. 선뜻 넘어가지 못하고 사전을 찾는다. 얼마 만에 꺼내보는지 겉표지에서 먼지가 묻어난다. 사전 옆면에 박힌 색인索引을 따라 비읍 글자에 도달하기까지, 습자지같이 얇은 종이가 찢어질 듯 파르르 떨린다. 그 긴장감이 오랜만이라 좋다. 학창 시절, 숱하게 넘기던 영어사전의 팔락거리는 종이 감촉도 함께 느껴진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말, 또 그와 관련된 언어 표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에서, 나는 얼른 '바투보기'를 찾아 뜻을 읽어 내려간다.
2. 이 단어는 발음 때문인지 몽골의 '울란바토르'가 먼저 생각난다. 영웅을 뜻하는 '바투르'란 말도 떠 오른다. 몽골과 같은 알타이 계열이라 뜻이 통하는 단어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투는 듬직한 순수 우리말로 두 개의 대상이나 물체 사이가 아주 가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투보기는 눈앞에 가까이 두고 세밀하게 보는 것을 말하며, 의학적으로는 가까운 데는 잘 보여도 먼 데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근시近視를 뜻하기도 한다.
3. 의미까지 알고 나니 이 단어는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우리의 삶도 그 의미를 적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삶의 방식이나 형태를, 멀리 보지 않고 가까운 테두리 안에서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모습은 추운 겨울 밤, 소중한 한 사람을 위해 한 코 한 코 떠가는 뜨개질 장면이 연상된다. 코를 놓치지 않으려 손 안의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는 행동과, 반복되는 실과 바늘의 짜임으로 정성스럽게 완성되어 가는 물건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작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바투보기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 같다.
4.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한 편의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 말을 뭉떵그려 보면 멀리서는 전체 흐름만 보여 다소 가볍고 희극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투로 보면, 웃음 뒤에 숨은 낱낱의 사연과 얽힌 이야기가 보일 수 밖에 없다. 말 못 할 사정과 그럴 수밖에 없는 애달픈 구조가, 거미줄 같이 얽힌 각본으로 세상사를 이끌고 있다. 그래서 세상 일은 멀리서 보다 가까이에서 제대로의 진실이 읽히는지도 모른다.
5. 여고시절, 멀리서 지켜보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한 번도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웃으며 다정하게 대하는 아이였다.
"쓸개가 하나 빠진 거 아냐? 맨날 실없이 웃고 다니게."
나는 다른 친구에게 그런 소리를 떠들고 다녔고, 본심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아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앉고 싶은 자리에 맘대로 앉으라 했을 때, 생각지도 않게 그 애가 내 옆으로 왔다. "앉아도 되지?" 하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또 웃었다. 심란한 사춘기 변덕을 나는 그 애에게 툭하면 쏟아냈다. 세상 불만이나 속상함이 마치 그 애 잘못인 듯 열렬히 성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네 말이 맞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라며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수굿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말은 힘들었던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6. 그 애 부모님은 명문고와 여고를 나온 재원들이었다. 주위의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결혼했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로 아버지는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엄마는 속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셨고, 생활비와 공납금은 친척에게 도움받는 실정이었다.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도 그 애는 늘 웃고 다녔다. 괜찮음으로 자신을 붙들었고,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주변인 나에게도 희망을 놓지 않게 했다.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에서 살피고 찬찬히 들여다 볼 때, 그 사람의 진심이나 인품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걸 느꼈다. 우리는 절친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서로에게 정情을 기울이고 있다.
7. 이 기회에 바투보기의 삶을 내 주변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일에 열중하면서, 가까운 주변을 살피는데 마음을 쏟고 싶은 것이다. 앞 길이 창창한 청춘들이야 이상은 높이고 꿈을 멀리하는 게 마땅하지만, 살 만큼 산 나이는, 버거운 먼 곳까지 내다 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과거의 노력과 수고가 한데 모여 지금이 된 것이다. 지금을 즐길 충분한 자격이 있다. 현재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건 아마도 걱정 때문이리라. 노후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걱정, 건강문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걱정할 일도 물론 있겠지만, 걱정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단다. 걱정한다고 해결된다면 애초에 걱정이 아니며, 걱정의 대부분은 사실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걱정은 접고 이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소박한 삶에 집중할 것이다.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작고 세밀한 삶으로.
8. 최근 내게도 가까이 두고 세밀하게 살피고 싶은 일이 생겼다. '풀꽃'의 시인은, 자세히 보고 또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 않았나. 내가 막 시작한 수필 쓰기도 그렇다. 세상 일을 세밀히 살피고 쪼개어 오래 보아주는 일이다. 적절한 단어를 문맥에 맞춰 다듬고 어루만지는 일은, 수필 쓰기의 정석이리라. 수필의 소재를 찾아 나서거나 여행을 다니는 일도 조금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야에 담는 모든 것을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하게 바투보기해야 한다. 면밀한 관찰과 안목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심중에 남아있는 사유나 철학적 편린들로 주제에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이다. 수필은 세상을 바투로 보고 쓰는 작고 섬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9. 책을 읽다 만나게 된 한 단어. 이리 오래도록 생각에 여운이 남을 줄 몰랐다. 세상이라는 멀고 거친 몸피를 여린 속살로 어루만지듯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바투보기의 시선이 아닌가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시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걸음 바투로 다가서 사람을 살피는 눈, 사물이나 자연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이라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바투로 보는 일이야 말로, 삶을 가장 또렷하고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닐까.
2. 어머님의 봄은 방안에 머물고/손정희3
1. 마루에 털썩 앉았다. “저기 진달래가 폈네.”라는 남편의 말에 마지못해 시선을 돌린다. 마당 한쪽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진홍빛. 남편은 시답잖은 표정의 나를 보며 실망하는 눈치다. 일주일 전 방촌마을 강둑에 피기 시작하던 벚꽃과 개나리를 보면서도 그저 ‘아, 봄이네’라며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나였다. 강물의 반짝이는 윤슬과 물가에 흔들리는 연두색 버들가지에 아주 잠깐 가슴이 뛰기도 했다. 그게 다였다. 꽃 소식에 유난을 떨며 호들갑을 부리던 예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마음 한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올봄, 나의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2. “어무이는 좀 어떻더노?”
남편의 물음에 한숨 섞인 대답이 나간다. “여전하시지. 큰일 치르고 나선 기력이 없으셔. 계란찜을 해서 드리니 겨우 몇 술 드시더라.” 방을 나오며 “어머님, 이제 저 가요.” 했더니, 어머님은 “들에 가나?”라고 물으셨다. 대구 집에 간다고 다시 말씀드리자 어머님의 눈에 금세 물기가 비쳤다. “나는 우짜노, 이제 나는 우짜노….”라는 넋두리가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대구 일을 얼른 보고 빨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 나오는 길, 가슴이 먹먹해졌다.
3. 어머님이 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지 어느덧 3주째다. 손목뼈 골절로 병원 문을 두드린 지는 한 달이 되었다. 요양병원에서 옆 침대 환자들이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며, 당신도 저들과 같은 끝을 맺을까 두려워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시골집엔 아주버님과 조카, 그리고 남편까지 남자뿐이라 병간호가 막막했다. 다행히 요양보호사님이 평일에 세 시간씩 도와주시지만, 저녁 시간과 주말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결국 4월부터 나가기로 했던 직장도 포기했다. 농사일에 부엌일로 지쳐가는 남편을 외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돌아눕지도 못하는 어머님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 아들과 하던 일 때문에 당장 청송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 시골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4. 누워 지내는 어머님의 몸은 생기 잃은 나무처럼 무겁다. 하루에 두 번, 요양보호사님과 내가 번갈아 가며 어머님의 뒤처리를 해드린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어머님은 당신의 치부를 아들들에게 보이지 못하신다. 내가 대구에 머무는 날엔 불편함을 견디며 하루 한 번의 처치로 버티셔야 한다. 그 고단한 기다림 탓일까, 어머님의 살결에 붉은 욕창이 돋기 시작했다. 더 심해지면 패혈증까지 올 수 있다는데, 마음이 타들어 간다.
5. 어머님은 4남 2녀를 두셨다. 며느리가 넷에 사위가 둘이다. 하지만 지금 어머님 곁을 지키는 자식은 둘뿐이고, 며느리는 나 혼자다. 조카와 질녀, 큰딸이 가끔 다녀가며 손을 보태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병원 문안 이후로 소식이 없다. 서운함이 불쑥 치밀다가도 이것이 요즈음의 현실인가 싶어 마음이 쓰린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 드문 세상이다. 시설이 더 나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머님은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완강히 고개를 저으신다. 자식의 손길이 닿는 집이 어머님에겐 끝까지 지키고 싶은 안식처인 모양이다.
6. 잠시 대구에 나왔지만, 마음은 이미 청송의 방 한구석에 가 있다. 어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활짝 핀 벚꽃 아래 잠시 멈춰 섰다. 모든 것이 시들하게 느껴지는 올봄이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꽃잎이라도 눈에 담아보려 애쓴다. 바깥출입 한 번 못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이 사소한 꽃구경조차 죄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우울한 기분을 달래야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7.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어머님의 내일에 정말 희망은 없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접고, 내일 청송에 갈 때는 노란 후리지아 한 다발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향기 없는 진달래 대신, 방 안 가득 봄의 냄새를 채워드리고 싶다. 어머님의 마음에 핀 욕창이 그 향기에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면, 나의 회색빛 봄에도 노란 물감 한 방울이 번져갈지도 모르겠다.
3. 호두 / 이자연 2
1. 아버지는 거칠고 단단한 껍질 안에 무엇을 품고 사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어도 속을 다 알 수 없고, 오래 바라본다고 해서 쉽게 열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딸인 내가 오래도록 마주한 것은 그의 마음이 아니라 누구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무심한 표면이었다. 가까이 있어도 늘 한 겹 막혀 있었고,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 같았다.
2. 가을이면 아버지는 붉은 고무가 붙은 장갑을 끼고 호두나무 아래 섰다. 가지를 힘껏 흔들면 익은 호두들이 후두둑 땅으로 떨어졌다. 마른 껍질끼리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소리가 마당에 퍼졌다. 흙먼지가 일고, 풀잎 사이로 굴러가는 소리가 뒤따랐다. 단단하게 맺혀 떨어지는데도 정작 그 안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호두는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껍질에 금이 가야 비로소 속살이 드러난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쉽게 열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오래 닫혀 있는 것들에 대해서.
3. 호두를 주워 담는 일은 대개 내 몫이었다. 떨어진 호두를 치맛자락이나 바구니에 담아 옮기다 보면 손바닥에 푸른 물이 들었다. 덜 익은 껍질에서 밴 떫은 냄새가 오래 남았고, 손톱 밑은 금세 검게 물들었다. 나는 그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이 싫으면서도, 어쩐지 그것이 아버지 곁에서 하루를 보낸 흔적 같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 손을 보고도 별말이 없었다. 다만 너무 익지 않은 것은 따로 골라내며 “이건 아직이다” 하고 짧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바구니 안의 푸른 호두들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4. 평일의 아버지는 정갈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공직자였다. 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와 절제된 언어, 정확한 생활 습관은 몸에 밴 것이었다. 구두는 늘 반짝였고, 셔츠는 주름 하나 없이 다려져 있었다. 약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사람,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러나 주말이 되면 아버지는 낡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뒷산으로 향했다.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그 산 주변 빈터에 어린 호두 묘목을 심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였다. 농사일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퇴직 뒤에도 자주 그 산을 드나들었다. 한번 손댄 일은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었다.
5. 산은 쉽게 사람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산등성이의 어린 묘목들은 거친 풀숲을 이기지 못했다. 기대를 품고 오른 비탈에는 호두 묘목 대신 사람 키만큼 자란 잡풀만 무성했다. 낫질 몇 번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묘목들은 이미 갈색으로 말라 있었다. 햇빛을 빼앗기고 풀에 눌린 채 버티다 스러진 어린 나무들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쓰러진 줄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마른 소리를 냈다.
6. 이듬해 봄, 아버지는 다시 묘목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잡풀을 베고,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며 주말마다 땀을 쏟았다. 손마디가 트고 허리가 굽도록 일을 했다. 흙이 묻은 장화로 땅을 다지며 숨을 고르던 아버지는 장화발로 흙을 꾹꾹 눌렀다.
“나무는 제 몸을 단단하게 만들 줄 알아야 산다. 껍질이 얇은 놈은 산짐승 이빨 한 번에 속살이 다 거덜 나는 법이야.”
그 말은 묘목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아버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몇 번이고 다시 심었고, 퇴직 뒤에도 산을 오르내렸다. 잘 자라든 그렇지 않든, 손을 놓지 않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7. 아버지의 손길은 가족에게도 늘 거칠고 날카로웠다. 특히 딸인 내게는 더욱 그랬다.
“딸은 남의 집으로 가는 거야.”
아버지가 툭 내뱉던 그 말은 어린 마음에 오래 남았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를 들고 가도 아버지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1등을 해도, 100점을 받아도, 상장을 받아 와도 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바랐던 것은 거창한 칭찬이 아니었다. 잘했다는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기쁜 일을 크게 말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났다. 기쁨을 먼저 접는 법을, 기대를 줄이는 법을 일찍 배웠다.
8.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아버지를 오래 미워하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손을 보면 늘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논과 밭, 외양간과 산비탈을 지나온 손. 호두껍질처럼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인 손등에는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이 묻어 있었다. 그 손은 오래 일한 사람의 손이었다. 손등의 갈라진 결마다 지나온 계절이 얹혀 있었다
9. 농사일로 허리를 다친 뒤부터 아버지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한때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삽과 괭이를 들던 사람이 병원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모습은 낯설고도 서글펐다. 늘 먼저 걷고 먼저 일하던 사람이 어느새 몸을 돌리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했다. 병실의 공기는 고요했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10. 병문안을 갔던 어느 날, 아버지의 발톱이 길게 자라 있는 것을 보았다. 늘 제 몸을 스스로 돌보던 사람이 이제는 발끝 하나 정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아버지의 발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자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그 무게를 받아 들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11. 아버지의 발톱은 두껍고 단단했다. 평일의 구두와 주말의 장화 속에서 오래 눌리고 부딪히며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발톱깎이를 대자 마른 껍질에 금 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호두를 깰 때처럼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쩌적, 쩌적. 고요한 병실 안에 낮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마당에서 호두를 까던 때의 소리와 닮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발톱을 깎아 나갔다. 내 손끝에만 힘이 모이고, 시간은 그 주변에서 멈춘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니가 참 이쁘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계속 발톱을 깎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냥 손만 움직였다. 어린 날에는 끝내 듣지 못한 말이었다.
12. 일주일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손은 거칠었고 손등의 주름은 깊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차갑기만 한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다. 병실에서 나를 바라보며 그 한마디를 건넨 아버지로 남아 있다.
호두껍질은 누군가 조심스레 힘을 주어야 열린다. 너무 세면 속이 상하고, 너무 약하면 끝내 열리지 않는다. 그날 병실에서 내가 깎아낸 것은 두꺼운 발톱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끝내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것이, 마침내 미세하게 금이 갔다.
4. 일별 (一瞥) / 임미림3
1 방학이 끝날 쯤이었다. 교정에는 새 학기의 들뜬 분위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본부에 가 등록을 마치고 오랜만에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 예정이었다.
2 웃고 떠드는 사이 누군가가 들어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떤 남자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모든 눈이 나에게 쏠렸다. "우우"하는 소리도 들렸다. 한둘은 내 팔을 잡고 가지 말라고 장난을 쳤다.
3 섭섭함과 짜증을 누르며 밖으로 나왔다. 정문 입구에서 만나자고 하는 걸 보니까 우리 학교 학생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과 전공을 대며 넓은 캠퍼스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4 정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얼핏 둘러봐도 아는 얼굴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웃으며 다가왔다.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내 00다. 동창인데 뭔 말을 높이노, 말 놔라"
그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5 그는 생전 처음으로 대구에 왔다고 했다. 나와 편지하던 여자 동창에게 우리 집 주소를 알아내었다. 그 주소로 어렵게 찾아갔는데 이사 갔다는 말을 들었단다. 할 수 없이 동사무소를 찾아가 두꺼운 전출입 대장을 오랜 시간 대조해 이사 간 집 주소를 찾아내었다고 했다. 직원에게 보여주며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통장 집을 가르쳐 주더란다.
6 통장님이 말하길, 그 집은 왜 찾느냐고 하면서 그 집 인적사항을 대보라고 하시더란다. 아는 대로 얘기했더니, 어느 대학 다니는 딸을 찾느냐고 물으셨단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많이 걱정했다고 했다.
7 그날 여동생이 혼자 집에 있었다. 동생은 멀끔하게 생긴 선배가 언니를 찾아와 대책 없이 서 있으니, 등록하러 갔다며 친절하게 학교까지 안내해 주었다.
8 그는 5학년때 내 짝이었다. 자신도 학교에 등록하러 가는 길인데,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지 장황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맹숭하게 대하는 내 태도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황당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9 그림자가 비스듬히 길어진 국민학교 운동장이었다. 놀던 아이들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예쁜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 '씽씽' 달려 나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호사스런 기분이 들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몇 바퀴 달리다 보니, 저쪽에 동생들을 돌보며 놀고 있는 짝꿍이 보였다. 가까이 지날 때 한 번 흘깃 돌아보았다.
10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일별 하던 순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행복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즐겁고 만족스러워 웃는 얼굴일 때 한 번 흘깃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 일별이 한동안 서로를 힘들게 했다. 모든 것이 서툰 처음이었으니, 만남에 관해서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11 일별이든 눈을 빤히 쳐다보든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행위이다. 사람들이 만날 때 관심이 있으면 무심코 일별을 자주 하게 된다. 요즘 말로 일종의 '플러팅'인 셈이다. 관심이 생기면 눈이 가고 마음도 흘러갈 수 있다. 반면 "뭘 봐요, 왜 봐."라고
소리치며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12 후에도 그는 느닷없이 불쑥 찾아와서 자신의 얘기를 많이 했다. 내 기분은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만해했다. "니가 본모습과 생각은 니가 만들어낸 '허상'일뿐이다. 나도 나를 많이 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냐, 그렇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다."라고 말했더니 조금 수긍하는 눈치였다.
13 그의 기분이 얼마간이라도 행복했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 일로 느낀 것이 많다.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되었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축복 받은 것인지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14 내가 살던 곳은, 유교사상이 남아있던 고지식한 고장이었고, 1970년은 그런 시대였다.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남자아이를 편애했고 여자들을 조금 무시했다. 그렇게 자란 애들이 모여 서로가 "나는 여자애 누구를 좋아하니 만나지 말라"라고 선언했단다. 또 분노한 건 다른 동창들이 다 알도록 소문을 퍼트렸다는 것이었다. 내 경우는 십 년이 지난 뒤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15 일본의 '와타나베' 수녀는 '미소에는 마술과 같은 힘이 있다. 보는 사람을 뿌듯하게 해 주며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라고 했다. 만약, 그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나를 대했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모교 행사에 가면, 서로 일별 하는 그와 나를, 지켜보는 동창들의 장난기 어린 일별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별 : 한 번 흘낏 봄
5. 신작로 / 이원규(1)
1. 고향 집은 삼거리 신작로에 접해 있다. 시골마을 어귀에서 구멍가게를 한 우리 집은 대문과는 별도로 가게 출입구는 신작로에 있었고, 나는 신작로를 우리 집 마당처럼 생각하며 청소하고 이용하였다, 신작로는 비포장 흙길이었고 자동차도 별로 없던 시절에 어린 우리 친구들에게는 넓은 놀이터였다. 뜀박질, 비석치기, 자치기, 전쟁놀이, 땅떠먹기 등으로 골목에서 노는 것과는 달리 시원한 맛이 있었다.
2. 초등학교는 십리길을 신작로로 걸어 다녔고, 중학교는 읍내까지 삼십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대도시인 대구에 간 것도 신작로를 통해서였다. 이렇게 신작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3. 신작로에는 많은 추억이 묻어 있다. 마음씨 좋은 버스 운전기사가 추운 겨울에 공짜로 태워준 인심, 그러다가 버스 안 태워 준다고 신작로에 돌을 굴려 놓는 악동짓, 등하교길에 보리 이삭을 바지 밑단 속에 집어넣는 등 친구들과의 장난질, 학생회 회의를 마치고 어두울 때 혼자 신작로 옆 상여집을 지나면 무서워서 한 손에는 도루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컴퍼스를 들고 달음박질 치던 하교길, 큰 비가 오면 징검다리 밖에 없는 우리 마을 친구들은 상류로 올라가 자전거 메고 산을 넘어 2교시 수업에 들어가 박수를 받던 기억 등.
4. 아버지는 결혼하고 큰집에서 살다가 신작로 옆에 집을 짓고 내가 태어난 후에 분가를 했었다. 그 집은 초가집이었다가 기와집이 되었고, 지금은 양옥으로 바뀌었다. 전부 손재주 좋은 아버지께서 직접 지었다. 집 옆의 논도 사고, 개울 가까이 논을 만들었고, 산 아래 밭을 사서 증조부 묘소를 이장하는 등 많은 일을 하셨다. 그 덕에 우리 형제들은 가난하지 않게 성장하고 진학도 할 수 있었다.
5.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는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논농사는 엄두가 나지 않아 친척이 부치게 하고 쌀을 곡수로 받고, 텃밭은 직접 가꾸기로 했다. 자그마한 텃밭이지만 농사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지런함이 새삼 느껴졌다.
6. 증조부와 조부, 아버지가 묻혀있는 묘소는 면적이 약 400여평인데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잔디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 할미꽃이 너무 번식해서 씨앗을 맺기 전 이른 봄에 꽃만 몇 해를 없애다가 또 두어 해는 뿌리채 뽑아도 보고, 제초제도 뿌려 봤지만 근절을 못하고 있다. 묘소 울타리인 돌담이 무너져도 보수할 엄두가 안나서 방치하고 있다. 울타리 주변의 나무는 십오 년을 방치했더니 거목이 되어 버려 어쩔 수 없이 올해 초봄에 전기톱을 사서 정리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부지런히 산소를 관리했는지 새삼 느꼈다.
7. 고향 뒷 산의 두릅 군락지는 아버지께서 여러 번 데리고 갔었는데 위치를 잊어 버렸고, 앞산의 머위는 산이 높아 힘이 들어 아예 가지 않았다. 고로쇠 물을 채취하는 것도 가르쳐 줬는데 물을 받더라도 등에 메고 산을 내려 올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어버지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하며 그 흔적을 그리워 할 뿐.
8. 나이가 들어 이제는 안다. 아버지가 나의 신작로였다는 것을. 지게에 어린 나를 태우고 신작로를 걸어 가며 넓은 길을 보여 주었듯이, 나의 앞 길에 신작로가 되고자 힘들게 일하고 살았다는 것을 이제사 깨닫는다. 집이 낡아 보수할 필요를 느낄 때, 논농사에 대한 곡수를 받을 때, 텃밭에 채소를 키우거나 산소를 관리하며, 이 모든 것을 마련하고 만드는 것이 아버지께서 자식을 위한 신작로를 닦는 일이었다는 것을. 가끔 종친회 모임을 가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흔적을 발견하면 문중 일을 충실히 하신 아버지를 떠 올리며 ‘이 또한 신작로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9. 지금도 후회되는 것이 있다. 아버지의 신작로 닦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라고 단정하며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다. 집을 새로 짓거나 담장을 쌓고 나서 고생하셨다는 말을 기대하며 은근히 말을 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눈이 잘 안보인다는 말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싶어 했다는 것도 이제야 느낀다. 자식을 위해 신작로를 닦고 포장까지 한 아버지께 생전에 감사를 말로 전하지 못했음을 반성해 본다. “아버지, 아버지의 삶은 훌륭했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은 위대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6. 숨 /김쌍남1
1 지독하게도 무덥던 여름 끝자락이었다. 팔에 미세한 통증이 있었다. 그 후 몸은 몇 번이나 신호를 보냈지만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의사가 내민 처방전에는 ‘오십견’이라는 세글자가 선명했다.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데, 초가을 바람이 부실한 몸을 더 움츠리게 한다. 건강을 잃었다는 씁쓸한 기분이 마음마저 가라앉히며 온몸에 기운이 빠진다.
2 아침에 눈을 뜨자 묵직한 몸살 기운과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오른팔을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쏟아졌다. 팔을 마음대로 돌릴 수도, 들 수도 없다. 삶의 거친 시간을 지날 때마다 생긴 생채기들이 내 어깨를 석고로 만든 모양이다. 스물여덟 해 동안 매일 출근하느라 겉모습만 치장하면서 몸의 반란을 무시한 결과였다.
3 물리치료를 다녔지만, 차도가 없다. 친구의 권유로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요가 강사는 이렇게 굳은 몸은 무리하게 근육 운동을 하면 부작용이 나니, 먼저 몸을 푸는 수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에 손발이 따로 노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강사의 눈빛에 오기가 생겼다. 개척 영업으로 생명보험의 별인 MDRT를 연속으로 여섯 번이나 거머쥔 나인데 무얼 못할까. 하지만 마음속은 숱한 갈등이 소용돌이쳤다.
4 불현듯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사건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몸 상태는 어릴 때 겪었던 연탄가스 중독이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우리 형제는 시루 속에 콩나물처럼 살았다. 작은 방에 네댓 명이 옹기종기 잠을 잤다. 한창 자랄 나이에 몸부림은 오죽했을까. 언니와 동생들의 몸부림에 떠밀려 방문 쪽으로 코를 대고 자다가 가끔 사달이 났다. 한 달에 서너 번은 식구 중 한둘이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엄마는 내 빰을 때리면서 흔들어 깨웠다. 숨을 몰아쉬면서 깨어나면,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했다. 그제야 가족들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엄마는 해마다 커다란 장독에 동치미를 가득 담갔다. 동치미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요긴했다. 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 국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5 요가 강사는 근육 운동을 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숨쉬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생명 있는 것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지 않은가. 숨쉬기가 운동이 되는 줄 몰랐다. 특히 숨 잘 쉬는 게 힘들었다. 숨을 들 쉬고, 한 박자 참고, 길게 내쉬는 숨 쉬는 동작을 매일 반복했다. 수업 일수가 쌓이면서 변화가 생겼다. 특히 ‘아래로 향하는 개犬 자세는 하면 할수록 몸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수개월이 흐르자 거칠었던 숨소리가 잦아들고, 그 자리에 무념무상의 고요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6 요가를 배우면서 내 삶의 뒤안길이 돌아 보였다. 들숨과 날숨을 규칙적으로 쉬어야 생활이 평온할 건데, 들숨만 쉬고 날숨은 잊어버리고 살았을까. 나는 언니 넷, 동생 넷의 중간에 태어났다. 결혼 전까지 형제들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았다. 더구나 친정의 대가족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결혼하고 보니 친정 생활은 한여름 밤의 산책이었다. 시부모는 물론이고 시누이 시동생의 부모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다. 주기만 해야 하는 내 일상은 늘 헉헉거리며 숨이 가빴다.
7 고생 끝에 찾아오는 시원하고 편안한 몸의 반응을 나는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거친 숨을 내 뿜으면서 살기 위해 수행하고 있다. 온몸의 경직된 세포들이 나곤나곤 풀어지고 몸은 끝없는 쉼을 얻는다. 내 인생에서 요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삶의 질이 조금은 높아졌으리라. 가쁜 호흡 뒤에 내쉬는 숨은 그야말로 최고의 휴식이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늘어진 몸에 한 사발의 동치미를 들이켜는 기분이랄까.
8 들여 마신 만큼 길게 숨을 내쉰다. 온몸의 힘을 빼고 어깨를 낮춘다. 고개를 돌리면서 반대쪽으로 허리를 비튼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배가 등에 닿도록 길게 내쉰다. 몸이 고요해진다. 들숨과 날숨의 균형이 내 몸에 스며든 모양이다. 오십견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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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작품 합평하신 문우의 작품은
잠시 대기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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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개인별
최대 합평작품은 5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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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작품은 한 주 넣고 한 주 쉬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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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남옥 문우의 작품에서
이자연 문우의 작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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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