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4월 19일에, 그 전날에 있었던 4.18 고려대생 데모사건을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그 사건을 통해 이승만 정권은 끝이 났다.
그런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군권과 경찰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탄압을 하지 않고 하야를 선택했다.
최근에 있었던 리비아 사태나 시리아 사태, 전두환의 5.18사태와 같이 충분히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던가 측근들을 위해서
강력한 탄압을 충분히 가할 수도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시의 국방장관이었던 김정렬은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결코 당시에 하야 성명이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사실, 이후에 나온 문건들을 통해 드러난 것이었지만 이미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이나 4.18 고려대생 데모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인
1960년 4월 12일에 이 사태, 즉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로 일어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으로 자신이 하야하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고,
실제로 측근들에게 숙고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김정렬 국방장관은 또 4.19혁명이 벌어진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최근에도 논란이 많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부인인 프란체스카와 여러 자유당의 핵심인사들에 의해 정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의 장막에 갇혔었다는 주장이 문건들을 통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무튼 이와 같은 면들을 면밀히 분석해서 봤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에 시위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군인들과 탱크까지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지 않고, 하야를 통해 평화적으로 대통령직이라는 절대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고자료>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유영익(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와 브랜다이스대학교 서양지성사 학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아시아지역학 석사와 동양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림대학교 부총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한일역사공동연구촉진위원회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하성학술상과 제13회 성곡학술문화상 인문사회과학부문, 제3회 효령상 문화부문, 옥조근정훈장, 제2회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을 받았으며 현재 한동대 T.H. Elema 석좌교수,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있다.
그는 40여년을 한국 현대사와 이승만 연구에 힘써왔으며, 이화장 내에 있던 10여만 장에 달하는 이승만의 일기와 편지, 메모 등을 분석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재평가를 처음으도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반대했었다)
<우남 이승만 연구>,
정병준(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우남 이승만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한국외국어대․방송대․조선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3~2002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면서 50여 권의 한국현대사 관련 자료집을 기획․해제․간행했다.
2001년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파견되어 파견되어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백의사 및 미군방첩대 요원임 밝혀주는 문서를 발굴했다.
한국현대사 자료에 정통한 전문가로 여운형․이승만․김구․김용중․김호․박순동 등 해방 전후 인물과 정치사에 대해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역사와현실』,『역사비평』,『한국민족운동사연구』,『역사학연구』의 편집위원,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성 편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목포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국과 부국>,
김일영(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대한국정치외교사와 국제정치경제론, 법정치학을 다룬다.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초빙교수, 일본 규수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한국미래학회 회원, 한국산업사회학회 회원,
국제정치논총 편집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전문위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과학연구소 소장과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는 소통하는 보수로서 보수적 성향에 서서 진보진영의 논리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보수와 진보간 논쟁과 소통을 주도해온 지식인이다)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하영선(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한국 핵 문제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시아연구원
지구넷21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북핵 문제와 전쟁과 평화 등을 연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이다)
<이승만과 그의 시대>,
이주영(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및 동 대학원에서 서양사 석사,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미국사 석사와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대학교와 콜럼비아대학교 사학과에서 연구를 했다.
건국대학교대학원 원장과 서울캠퍼스 부총장, 상허기념도서관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미국사학회 회장,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해방 후 1950년대의 경제>,
이대근(서울대 학사, 미국뉴욕주립대(올바니) 경제학 석사, 서울대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산업은행 조사부 조사역과 과장,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일본 교토대 연구교수,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경제사학회 회장, 중국 북경대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로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6·25 전쟁>,
남정옥(충남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미국 현대사를 전공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우남이승만연구회 이사로 있다)
<뉴욕한인 125년 (38)
불화로 얼룩진 이승만-아이젠하워 정상회담>, 조중무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미주한국일보 기사
<카이로선언>, 정일화(한국과학기술한림원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백석대 강사로 있다)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 초대 대통령 이승만(1~3부작)>, KBS1 특집 다큐멘터리
<참고하면 좋은 자료>
http://cafe.naver.com/nazzis/27012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저명인사들의 긍정적 평가(55인)
http://cafe.naver.com/nazzis/28625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31>이승만의 위임통치론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http://cafe.naver.com/nazzis/29095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41>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부(國父)'가 맞다
http://cafe.naver.com/nazzis/29116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43>이승만 대통령의 귀신같이 뛰어난 설득력
http://cafe.naver.com/nazzis/29128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44>좌파와 우파간의 역사전쟁 서막을 알린 민족문제연구소의 다큐멘터리인 '백년전쟁 본편1 - 두 얼굴의 이승만' 비평문
http://cafe.naver.com/nazzis/29229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50>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베스트셀러를 내고, 일본의 공격을 예측한 이승만
http://cafe.naver.com/nazzis/29543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60>남한의 초대 내각은 친일파를 등용했고 북한의 초대 내각은 친일파를 숙청했다? 반대로 남한의 초대 내각은 독립운동가 세력이었고 북한의 초대 내각은 친일파 세력이었다?
http://cafe.naver.com/nazzis/30178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96>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망명정부를 세우자는 미국 대사의 말에 권총을 꺼내든 이승만 대통령
출처: https://swk3169.tistory.com/109 [swk의 지식저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