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교정 35. 주전부리
주전부리(the habitual snacking)
대체로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은 충분치 않은 끼니에 곧 시장기를 느끼거나 채워지지 않는 입안의 허전함으로 주전부리를 하게 된다. 이때는 떡, 과일, 과자 따위의 군음식을 먹게 된다. 심심풀이로 삶은 계란, 오징어, 땅콩도 포함되겠다. 아니 예전에 뭐든지 부족했던 시절 같았으면 뭐든 눈에 띄이는대로 먹고 싶어 했었을 거다.
거리에 그게 쉽게 눈에 띠는 것이 속에 팥이 들어 있는 꽃모양의 국화빵이다. 아래에는 숯불이나 연탄불을 피워 빵틀을 올려놓고 불에 달구었다, 국화모양의 뚜껑을 열고 기름솔로 눌어붙지 않게 틀 내부에 기름을 발랐다. 이어 주전자 주둥이로 첨가물로 반죽된 밀가루 액체를 틀에 부었다. 다음, 팥을 숟가락으로 떠 한가운데에 넣고 뚜껑을 닫고 눌러 뒤집었다. 잠시 후에 한 바퀴 돌아온 틀에서 뚜껑은 열리고 따뜻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국화빵이 나왔다. 호호 불어가며 날이 추운 날에는 빵틀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얼굴로 느끼며 입안이 따뜻하게 먹었다.
인동시장 앞 인동다리에는 호떡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다른 곳은 호떡을 불에 달구어진 동그란 철판위에 기름을 바르고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어 한 가운데에 황설탕을 넣고 동그랗게 눌러 뒤집으며 구웠지만 여기는 철판 위가 아니라 판 아래 문을 열고 화덕 테두리에 놓아 구워내는 것이었다. 누르지 않아 기포 층이 많아 부드러운 질감이 더욱 맛을 내었다. 철판 위에 호떡은 누르다보면 설탕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것은 그럴 리가 전혀 없었고 호떡을 손에 잡는 감촉도 끈적이지 않고 산뜻했다. 그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얼마 후 그 인기 짱이던 화덕 호떡을 다시 찾아보아도 만날 수 없었다. 더는 먹을 수 없는 그 부드러은 촉감, 그 질감, 더 고소한 맛이 아주 그리웠다.
학교에서 나와 중교다리를 건너려면 해삼 아저씨가 해삼의 배를 칼로 가르고 물로 씻어 토막을 내어 접시에 담고 식초를 뿌려 일자로 곧게 핀 옷핀을 꽂아준다. 동그랗고 작은 나무통을 가리키며 남쪽바다 통영에서 가져온 거란다. 단단한 해삼을 오도독 오도독 얼결에 씹어 먹어본다. 어느 날은 멍게 아저씨가 향이 좋다며 인기가 좋아 군부대가 많은 경기도 북부, 연천까지 간다고 떠드는 말에 사람들은 처음 보는 멍게를 먹어본다.
대전천 뚝방길 학교 담벼락에는 사과상자 위에 철판을 놓고 작은 화덕에서는 큰 국자에 설탕을 녹인다. 국자의 설탕 가루가 액체로 변하면 자전거 모양을 그리고, 칼을 그리고, 새를 그리고, 안경을 그리는 예술 쇼가 찰판 위에 벌어진다.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던 아이들은 너도 나도 돈을 내고 그 앞에 쭈그려 앉는다. 또, 작은 국자에서 녹인 설탕 액체에는 소다를 타 부풀리고 철판위에 쏟아 붓고 원형 쇠판으로 누르고 허리 가는 인형 틀을 놓고 원형 쇠판으로 꽝하고 내려찍으면 아이들은 달고-나를 받아든다. 성공적으로 허리 가는 인형을 빼내면 아저씨는 하나 더 만들어주고 상으로 선물을 준다.
길가에서는 부채꼴 모양의 일본식 센베이 과자를 구워 팔기도 했다. 이를 전병(煎餠)과자라고도 불렀는데 우리말로는 부꾸미이다. 이때 전(煎)자가 달이다, 불에 끓이다, 졸이다, 라는 본래 뜻이 있으나 불에 쬐는 것에도 이 글자를 썼다. 여기에 김 가루나 청태 가루를 뿌려 굽기도 해 달콤하고 바다 맛도 났다. 부채모양의 부꾸미는 숫자 세기에도 좋고 포장상자에 담기도 좋았다. 둥글게 말아 비닐 봉지에 포장하여 팔기도 했다. 주로 저울에 달아 한 근씩 팔았다.
당고는 우리말이 아니라 경단을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안이 들여다보이게 유리문이 달렸고 그 안에는 팥이 들어간 경단꼬치가 나뭇잎이 깔린 위에 있었다. 장사가 잘되는지 두 개를 나무 양 끝에 달아 어깨에 메고 부지런히 다니며 외치며 팔았다.
얼음과자 중에는 소풍가서 서부영화에나 나오는 참나무로 된 맥주 통을 뉘어놓고 흔들흔들 흔들어 주고 연신 주먹만 한 알루미늄 캡슐 같은 것을 꺼내어 가운데 고무패킹을 벗기면 노란 오렌지 빛 얼음과자가 나오는 것이었다. 중교다리를 건너와 대전극장으로 통하는 사거리에는 동네 아이스 께끼(케잌)공장이 있어 기계소리가 들렸던 것에 비해 소풍 길에서 전기장치도 없이 흔들었다고 예쁜 얼음과자가 나오는 것은 정말 눈이 동그랗게 떠질 만한 마술 매직 쇼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중교다리 입구에 엿장수 아저씨가 수레를 세워놓고 복 엿을 맛보라며 엿장수 가위 두 개를 서로 부딪치며 가위 쇼를 벌려 사람들을 모았다. 찰가닥 찰찰- 찰가닥 찰찰- 찰가닥 찰찰 찰- " 복 엿이요. 횡재 엿이 왔어요. 복을 부르는 횡재 엿, 운수대통 엿이 왔어요. 복이 집으로 들어가는 엿이오. 기분 좋은 엿, 온 가족을 웃게 하는 엿이요."
엿장수 아저씨의 멋진 가위춤을 구경하고 구수하고 달콤한 사설에 사람들은 엿가락을 하나씩 집어 들고 엿 가운데를 부러뜨려 엿 단면의 기포로 생긴 구멍을 대조하였다. 구멍의 크기가 작은 사람이 엿 값을 지불하였다. 일명 엿 치기였다. 또 진 사람은 다시 승부를 가리자며 재도전을 하여 엿판의 흥미로운 내기 분위기를 돋았다. 엿을 먹으니 엿판의 분위기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너도 나도 복 엿을 사서 집으로 가져갔다.
이들을 보면 모두가 충실하게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때로는 친구가 횡재한 미제 초코렛을 특별하게도 나누어 주어 입안에서 서서이 녹아 달콤하고 끈적거리는 맛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삼각 종이 봉투에 담아주는 뻔데기와 다슬기와 앵두, 고염 맛도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