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금언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이 책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가진 법정스님과 작가 최인호의 네 시간에 걸친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행복과 사랑, 삶과 죽음, 시대정신과 고독 등 11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있는 사색과 시적 은유로 가득한 언어를 주고받았다.
원래 최인호가 생전에 법정의 기일에 맞추어 펴내려고 했는데 이후 병이 깊어져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도 2013년 9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최인호는 병이 깊은 중에도 반드시 법정 스님의 입적 시기를 전후해 책을 펴내라는 유지를 남겼고, 그의 뜻은 법정의 5주기에 즈음하여 결실을 맺었다.
최인호는 이 책의 '들어가는 글'과 '나오는 글'을 통해 이 책에 대한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샘터라는 잡지에 각기 다른 소재로 인기 연재물을 게재하면서 우연하게 만남이 시작된 이후 30년 동안 두 사람은 열 번 남짓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수필가로서, 소설가로서 당대를 대표한 법정과 최인호는 만남의 횟수와 관계없이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최인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소설 《길 없는 길》이 법정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연이라든가, 빗속에서 헤어지며 친형제와도 같은 깊은 애정을 느꼈다는 장면들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래서 최인호는 생전의 인연을 이 책을 통해 이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한 권의 책 속에서 법정과 동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2010년 3월 11일 법정이 입적한 뒤 최인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법정의 빈소가 마련된 길상사로 숨어든다. 최인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해 1월에 "인연"이라는 수필집을 펴낸 이후 암 투병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그 역시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상을 마친 최인호는 길상사 경내를 걷다가 낯이 익은 요사채의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기억을 더듬던 최인호는 그곳이 7년 전 법정과 함께 네 시간에 걸쳐 대담을 나누었던 장소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2003년 4월의 그날, 월간 <샘터>가 지령 400호를 기념하여 마련한 대담을 통해 법정과 최인호는 길상사 요사채에 마주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법정의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 가족, 자아, 진리, 삶의 자세, 시대정신, 참 지식, 고독, 베풂, 죽음으로 이어진다. 대화 형식을 취하기에 미사여구가 생략된 그들의 언어는 주제의 본질을 날카롭게 관통하면서도 품 넓은 여운을 남긴다. 불가의 수행자로, 가톨릭 신자로 각자의 종교관에 바탕을 두고 대화를 풀어나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두 갈래가 아니다. 문학이라는 '종교"의 도반으로서 한 시대를 같이 느끼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두 사람의 언어는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깊고 넓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대화의 끝에 이르러 최인호가 묻는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한다. "몸이란 그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사람의 맑고 깊은 서(書) ㆍ 언(言) ㆍ 행(行)은 여전히 고운 향기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법정은 입적하기 전에 자신이 지은 책을 모두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때문에 법정을 그리워하는 독자들은 법정의 글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런 때에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를 통해 법정과 작가 최인호의 삶의 본질을 파헤친 글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