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이었을까?
화엄사계곡의 쉬운 길을 놔두고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며 발길은 차일능선으로 오르고 있었다. 엊그제까지 내린 눈이 겨울 지리산으로 나를 끌어들였을까?
황전마을 집단시설지구가 끝난 맨 윗집에서 밀양 손씨 산소가 잘 정비된 곳, 소나무 숲부터 종주는 시작된다.
흰색의 비닐끈이 길옆의 나무에 묶여진 곳도 있어 길은 훤하다. 바닥은 황토색을 드러내어 깊게 패여 수많은 길손들을 증거하고 있었다. 방학의 막바지에 얻은 며칠 간의 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어릴 때 명절을 손꼽듯이 기다림을 배웠다.
종주를 시작하는 날도 여전히 늦잠 때문에 막내 유치원에 가는 걸보고 집을 나서니 10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구례구에서 섬진강을 건너면서부터는 눈 덮인 지리가 보여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언제보아도 좋은 곳이지만 심설의 고산지대는 더욱 우러러보게 만든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구례들(野)은 굳이 ‘이중환의 택리지’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살기에 좋은 고을임을 산과 강이 말해준다.
원시봉으로 오르는 도중 화엄사로 향하는 길이 있는지 절 방향으로 선명한 길이 두 번이나 눈에 띤다. 직접 따라가며 확인을 못해본터라 어디쯤으로 연결되는지는 모르지만 방향은 천년 고찰 화엄사쪽으로 잡고 있다.
바쁠 것도 없고 동행이 있어 누구와 보조를 맞춰야하는 부담감도 없어 나만의 속도에서 몸에 땀이 배이질 않게 한가하게 발걸음을 떼고 있다.
원시봉은 그만그만한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어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단 능선에 올라서니 숲이 열리며 가슴이 확 틔인다. 천은사 계곡과 화엄사 계곡이 발 아래로 자세를 낮추고 있고 고개를 더 들면 성삼재에서 뻗어내린 지초봉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형제봉 월령봉능선이 정겹고 그 뒤로 왕시루봉이 ‘나도 여기 있소’하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응달이 깊은 곳에서는 잔설이 녹지 않고 군데군데 눈으로 덮여있으며 기온이 낮아 벗었던 겉옷과 장갑을 끼게 만든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점심으로 준비한 햄버거를 먹으면서 오늘 저녁의 잠자리를 뱀사골로 할까 연하천 산장으로 잡을까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 의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제일 좋겠다며 자유지대로 남겨둔다.
잠자리 장소로 고민을 한 것도 잠시동안의 사치였다. 차일봉을 얼마 안 남기고부터 고민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눈이 어찌나 많던지 눈밭에서 뒹굴다시피 허우적거리며 기진맥진하다, 제발 노고단까지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며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날등에는 겨우내 내린 눈으로 퇴적된 견고한 성곽을 쌓아두고 있었다. 다리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면서 한 다리에 무게중심을 두며 한 쪽 발을 옮기려면 힘을 준 다리가 다시 한번 눈 속으로 푹 빠져버린다. 양팔에 힘을 주며 어찌어찌 빼내다보면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지친다.
단단하게 묶어둔 스패츠속으로 눈이 들어온 느낌이 드나 스패츠를 풀어 눈을 털어 낼 여유와 힘이 이미 내겐 없다. 십여미터 전진하는데도 기운이 쑥쑥빠져나가 헛개비가 된다. 능선에서 비켜나 잡목을 밟고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으나, 얼굴에 생채기만 남기고 물러나야한다. 눈이 퇴적된 곳에서 잘려나간 끊어진 단면을 살펴보니 층리로 구분이 되어있어 눈은 한 두 번에 쌓인 눈이 아니라 첫눈부터 겨울동안 내린 눈을 모아 놓은 듯하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 견두산, 천마산 능선위에 쥐꼬리만하게 걸려있는 짧은 해가 서두름을 재촉한다. 하지만 몸이 뜻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포기하고 내려가 버릴까하는 나약한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아깝고, 또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생각을 접고는 또 다시 오기의 오름 짓은 계속된다.
배가 고프다.
배낭을 풀어 어제 집사람과 농협마트에서 구입한 쵸코렛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분명히 넣어둔다 했는데..........허. 이 사람이.......언제한번 이런 상황을 만들어 간식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알게 해 주어야겠다. 집에 와서 확인해본 결과 거실에 과자 쵸코렛등을 두었는데 세아이가 밤에 다 먹어치워 버렸다.
그로기 상태로 차일봉에 올랐다. 앞에 가까이에 종석대가 있고 노고단의 중계탑이 선명하니 희망이 보인다.
제발 눈아 무릎까지만 쌓여 있어다오. 대상이 없는 곳에 기도를 하며, 배낭 속에서 꺼낸 헤드랜턴을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길위의 눈은 기대를 져버리고 한계를 시험하는 듯 하다. 걷는 것 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뱀사골 산장, 연하천 산장은 내일에나 볼 수 있을 듯... 오늘 밤 숙소로는 지워버린 지 오래다. 오로지 바램은 노고단의 큰 길까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닿길 바랄 뿐이다.
화엄사계곡으로 편하게 올라올걸 무엇 때문에 이끌리듯 이 고생을 받아들였던고....아고 아고
그러나 지도위의 차일능선은 손가락 하나의 크기만도 못했다.
워낙 지쳐 희망을 멀리 보낸 뒤끝이어서인지 우번암 갈림이 예상보다 빨리 눈앞에 나타났다. 얼굴을 꼬집으며 꿈이 아니길 확인한다. 이제는 지독한 곳에서 풀려났음을 재차 확인하며 안도의 숨을 쉰다. 우번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며칠이 지난 듯한 발자국이 있었다. 눈의 량도 적었고 무엇보다 얼마안가면 노고단 도로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다. 그러나 능선에서 바람 때문에 몹시도 추웠다.
노고단 도로에는 체인을 감은 차바퀴자국으로 럿셀이 잘 되어 있었다. 탈진에 가까운 상태라 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산장의 따뜻한 침상이 그리울 뿐이다. 어둡기는 한데 아직은 눈빛의 반사 때문에 랜턴을 켜지 않고도 오를만하여 다행이다.
산장 매표소 창구에서 직원이
“지금도 밖에 눈이 옵니까?”
라고 묻는다. 눈밭에서 뒹굴 때 옷과 모자에 묻은 눈을 보며 하는 말이다.
“.....”그러나 대답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먹을 것, 쵸코렛 좀 주세요.”
간신히 먹을 것을 들고 노고단실 침상에 쓰러져 버린다.
십여분을 미동도 않은 체 그렇게 누워있다, 정신을 차리고 쵸코렛을 먹으면서 실내를 바라보니 십여명 정도 벌써 침상에서 자고 있었다. 그 얇은 쵸코렛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배낭을 뒤져 새로 구입한 미제 콜맨 버너와 코펠 햇반등 저녁준비를 챙겨 취사장으로 향한다.
실내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넘친다.
먼저 햇반을 데우고는 뜨거운 물로 육개장을 끊인다.
처음 몇 명 없었던 취사장에는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러워진다. 아까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야 저녁준비를 하려고 들어온 것이다. 아마 화엄사 계곡 오름길에서 모두 혼 줄이 난 모양이다.
저녁을 마치고 집에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를 찾으니 고장이었다. 동절기에는 도로가 얼어 통신공사 직원이 올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한다. 건물 앞으로 김이 오르는 뜨거운 물이 흘러내린다. 무슨일이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보일러가 동파되어 그런단다. 빨리 고쳐보기는 하겠지만 오늘밤은 추운 곳에서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하여 모포를 한 장 더 빌렸다. 이래 저래 오늘 밤도 만만치 않겠군.
‘다나’의 오리털 침낭속은 그런대로 아늑하고 포근했다. 내일 주능길의 눈 상태를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데 몸은 무겁지만 눈(眼)은 오히려 말똥말똥해진다.
열시에 소등이 되고 난 다음에도 한참을 뒤척이다,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에 내 숨소리를 밀어넣으면서 잠이 들었다.
주위사람들의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시간이 일곱시 삼십분.
침낭속에서 더 뭉개다 누워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걸 알고는 몸을 빼낸다. 아침은 햇반 통조림 김치우거지국으로 량껏 먹고 커피까지 한잔하고는 여덟시 반에 산장을 출발.
오늘 일정도 모른다. 노고단 고개에서 지리능선을 바라보며 발길이 멈추는 곳에서 벽소령이든 세석이든 장터목으로 시간에 맞춰 잠잘 장소를 정하기로 한다. 보일러가 가동이 안되어 추웠지만 엊저녁 잠은 잘잤다. 덕분에 몸도 가뿐하다. 다만 돼지령을 못간 곳에서 추울 것 같아 아침에 껴입었던 내복 때문에 몸이 둔하고 약간 땀이 나는 게 귀찮을 뿐이다. 능선은 럿셀이 잘되어 있어 걷기에는 힘듬이 없다. 길과 길 아닌 곳의 차이가 눈(雪)의 높이 차이로 뚜렷하며 어떤 곳은 일미터 이상의 고도차를 보이기도 한다.
임걸령 샘의 물줄기가 여전하게 땅속으로부터 맑은 물을 뽑아내고 있고, 목젖으로 넘어가는 샘물은 땅기운을 많이 받아 찬 기운이 없다.
삼도봉에서 목통골을 내려다본다. 산자락에 붙어있는 아랫마을은 물레방아도 남아있고 아직까지도 옛날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있는 곳이다. 초여름에는 실록이 싱그러운 곳인데, 태양의 고도가 낮아진 요즘은 나목(裸木)으로 채워진 토끼봉 능선이 잔잔하게 다가와 마음의 평안을 주고 있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도 눈이 많이 쌓여 계단의 높이 차가 없으며 간혹 지나는 산꾼들도 앞사람이 밟았던 발자국만 따라 걷는다.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앞서가고 있는 한 사람이 뒤따르는 나를 내려다본다. 오름짓이 힘겨운지 자주 쉬어 5분도 못 안되어 따라 잡는다. 아줌마였다.
“혼자다닙니까?”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상태로
“남편이랑 같이 왔어요. 앞에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꼭 같이 다니자고 하는지”
그녀의 투덜거림에 묘하게도 내 몸은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정상 바로 밑 철쭉관목지대에 렛셀이 양쪽으로 되어있어 오른쪽을 선택했는데 얼마안가 럿셀이 끊어져 누군가가 길을 잃었던 곳에서 큰 배낭을 남자가
“니미 #팔”하며 선택의 잘못과 힘듬을 분출시키고 있었다.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사람이 대신 욕을 해주어, 조용히 되돌아나와 처음 선택받지 못한 다른 길로 올라가니 또 다시 갈림이 있었다. 여기서는 길을 잘 살펴봐야지....그곳에는 뒤따라온 아줌마의 남편이 부인을 부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요 밑에 바로 오고 있데요.”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뒤돌아보면 반야쌍봉 아래에 있는 묘향암이 어느 곳에서 보아도 잘 보인다. 눈 속에 둘러쌓인 묘향암이 고독해 보인다. 혹시 다음 번에 도움이 될지 몰라 산세를 비교하며 위치를 동공에 여러 번 기억시켜둔다.
명선봉으로 올라가는 막바지에는 지난번에 볼 수 없었던 나무계단으로 안전하게 등산로를 정비해 두었다. 자일이 매어있던 곳이었는데..... 덕분에 콧노래를 부르며 힘든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연하천에 도착했다. 벽소령에서 점심을 할까하다가 물 사정이 좋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산장지기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아까 화개재에서 보았던 중년 남자에게 자리를 비켜주며 벽소령으로 향한다.
눈의 량이 더 많아져서 럿셀된 길이 더 깊어졌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동부지리의 천왕봉 중봉 제석봉이 날씨가 좋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작년 여름 광대골을 휴양림에서 골짜기만을 따라 올라서 만났던 무명봉이 겨울 햇살을 받아 조용히 몸을 데우고 있다.
공룡같은 벽소령 산장의 건물을 뒤에 두고 차디찬 우체통만이 홀로 반긴다. 너무 조용하고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작전도로의 평탄한 길을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면서 지리산이 내어준 따스함을 느끼며 모처럼의 한가로움을 얻었다. 이생각 저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의 관심사는 내일 하산길에 칠선계곡을 내려갈 수 있을까를 갸늠해보는 것이다. 눈이 얼마나 쌓여 있을지가 잣대가 될것인데..........참고가 될지 몰라 능선의 북쪽 눈의 깊이를 관심있게 보아둔다. 구 벽소령을 지나 오송산 능선의 초입부도 심설에 쌓여 깊은 겨울잠을 자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선비샘도 조용하다. 수통에 물만 채우고는 나그네는 짐을 맨다. 평소 당일 산행으로 삼십리터짜리 작은 배낭만 매다 모처럼 육십리터 큰 배낭을 매니 어깨가 불편하다. 손으로 배낭끈을 받쳐들어 어깨에 닿는 무게를 줄인다.
칠선봉까지 가는데 오르내림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워 보이는 곳이 있었다. 주능선상에 이런 곳도 있었던가? 심설의 겨울 산행의 경험이 많지 않아 내 발자국으로 도배를 했을 만큼 많이 다녔던 길도 처음 오는 것 같다.
여름과 겨울의 계절적 차이의 생소함이었다.
몸은 피곤한지 모르겠는데 정신이 먼저 지쳐버렸을까? 영신봉으로 향하는 철계단을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만난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곳이 여러 곳 있었으나 배낭에는 카메라가 없다. 외제(SONY)의 단점은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맡긴지가 오래되었으나 부품이 일본에서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여 아직이다. 대신 마음의 프리즘속으로 넣어두기로 한다.
이제 좌우의 계곡의 이름이 많이 바뀌었다. 노고단 출발부터 대소골 피아골 뱀사골 빗점골 광대골 백무골을 지나 대성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석에서 산장에는 들리지 않고 곧바로 촛대봉으로 향한다. 장터목까지 가는데도 시간은 충분할 것 같다. 촛대봉 푯말 아래서 쉬는데 거림골에서 올라온 바람이 오래 머물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연하봉 그리고 일출봉 능선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석양의 햇살을 받아 더욱 운치를 더하고 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여섯시로 적당하게 도착하였다. 노고단을 출발할때는 자신이 없었는데 럿셀이 잘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걸어 이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직원의 양해를 얻어 산장전화로 집에 연락을 하였다. 직접 집사람과 통화를 하여 안부를 전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가장(家長)이란 이런거? 인연의 끈이 두꺼워서인지 하루 이틀만 떠나 있어도 궁금하여 마음이 졸인다.
취사장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옆에 가족끼리 온 팀이 콜맨버너 사용법을 몰라 고생을 하고 있어 거들어 주었더니 고맙다며 커피까지 타준다. 사실은 저도 콜맨버너 초보입니다.
배정받은 방이 제석봉실 5번이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크긴 했지만 건물밖의 한파를 생각하면 아방궁이다. 구름과 별의 기운을 받은 아늑한 잠자리였다.
칠선계곡을 초입지에서부터 옥녀탕, 선녀탕까지 구간별로 재생시키며 잠이 든다. 일출은 새벽에 일어나면 보고 일어나기 힘들면 잠을 푹 잘 생각으로 편하게 마음먹는다.
다섯시부터 일출 때문에 어수선하여 눈이 떠진다. 눈만 감은 체 한 시간을 침낭속에서 보내다 텅빈 썰렁한 방에 있기도 뭐하여 무리를 따라 올라간다. 목출모까지 챙겨 중무장을 하여서인지 춥지는 않았다.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불빛에 생명력을 본다.
아랫세상은 아직도 잠에 취해 불빛만 깜박거리지만, 모처럼 부지런을 떨어 새벽의 상쾌한 지리산의 공기까지 분양받았다. 밤새 쏟아져 내린 달빛과 별빛을 쓸어모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제석봉 통천문을 땀이 나지 않게 가장 느린 속도로 천천이 음미하듯 가다 쉬기를 반복한다. 마치 다된 건전지로 테이프를 돌리듯.......
천왕봉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있고, 동쪽하늘은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옅은 주황색의 하늘로 채색되어 있다.
방풍옷을 꺼내입고 바람목을 피하여 바위틈에 앉았다. 웅석봉의 달뜨기 능선부터 동부능선과 황금능선의 밝아옴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지루한 줄도 모른다.
빨간 앵두처럼 정열적인 보석이 어렵게 고개를 내밀자 힘차게 밀고 올라선다. 현란한 원색의 향연이다. 이제 완전한 새로운 이월이 시작되는 것이다. 식구들의 건강을 역동적인 해를 보며 빌었다.
칠선계곡의 초입부에 다행이 한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다. 묘한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험한 계곡에 내 발걸음을 처음으로 눈위에 찍고 싶은 아쉬움이 더 컸는가? 철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 심한 곳에서는 계단의 의미가 없는 눈사태지역이다. 양손으로 난간을 꽉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눈속을 허우적거린다. 걷는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미끌려 내려오고 있다. 마폭까지 내려갈때는 무릎으로 걷는 것도 많았다.
앞서간 발자국이 한 두번 길을 잘 못 든 지점도 있었지만, 이 계곡을 잘 아는 듯, 태양도 눈을 녹이지 못하는 곳을 정확하게 길안내를 하고 있었다. 전에 봤던 것보다도 주목나무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온세상이 하얀곳에서 붉은 기운이 뚜렷한 주목나무가 있어 이유없이 고마움을 느끼며 무서움도 더욱 멀리 쫓아준다.(붉은 색은 잡귀를 쫓아 줄 것 같아서)
아침은 마폭에서.......
왠지 이 폭포는 그냥 스치듯 지나가기가 아쉬워 항상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쉬면서 배낭정리도하고 새벽에 산장을 나서면서 껴입었던 내의도 벗었다. 폭포는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고, 그 위는 눈으로 덮여있어 폭포의 자취는 알아볼 수가 없다. 얼지 않은 곳을 찾아 수통에 물을 담다가 오른발이 물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그 찬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기가 어렵다. 사점지지로 한손은 산죽이나 나무 또는 바위를 거의 잡고 있었고, 다른 손은 넘어질 때를 대비해 긴장상태로 있어야한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덩이가 짐승의 출현이라도 되는 듯 놀라게 만든다. 지나가는 근처의 만만한 나뭇가지를 건들어 나무의 짐을 덜어주며, 계곡으로 깊숙이 들어선다. 무서움도 있긴 한데 몸에 열을 받으면 사라진다. 내려가는 길이라 체력소모는 훨씬 덜하다. 차일능선을 오를 때 워낙 고생을 했던 터라 힘들다는 생각은 없다. 두껍게 얼어붙은 칠선폭포도 키가 작아 보인다.
계곡을 여러번 넘너들면서 고도를 낮추어 기온이 높아졌음을 손끝으로 느끼며 여유로움을 갖다가 머리가 핑도는 순간도 있었다. 사실 어려운 구간은 비선담 옥녀탕 선녀탕 구간이었다. 길이 징담의 옆으로 나 있는데 바위에 눈이 살짝 녹아 굉장히 미끄러웠다.
위험했던 순간이..... 미끌리면 키도 넘는 깊은 소로 빠져버릴 상황에서 ‘손등에 실핏줄이 있는 것처럼’ 바위에 붙어 있는 나무뿌리를 잡고 위기를 모면한적도 있다.
선녀탕부터 추성리까지 평이한 길을 따라 다시금 추억하나를 묻어두고 오미자차의 향내가 그리운 추성산장의 누이집으로 들어간다.
나를 위해 새로지은 따뜻한 밥과 동동주를 사이에 놓고, 그 산을 산 닮게 하는 마을 사람들과 삶의 조각들을 맞추며 산행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