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놓는 말
씨알의 노래 -서문
씨알에게 첫째 주어야 할 것은 읊음(詩)입니다. 씨알은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려면 읊음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읊음이란 그 말 그대로 울음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詩는 言志也라.’ 뜻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뜻이 일과 몬(物)에 부딛쳐 사무칠 때는 그것을 보통 말로는 할 수 없고. 읊음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울품, 곧 읊음입니다.
씨알은 뜻에 사는 것입니다. 삶의 뜻이 괴고 괸 것이, 여물고 여문 것이 씨알입니다. 괴고 여물었기에 무겁지 않을 수 없고. 무겁기 때문에 낮추 떨어져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떨어져 묻힌 것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브라우닝이 대신 외친 대로,
“우리 넘어짐은 다시 일어나기 위해. 꺾어짐은 더 잘 싸우기 위해, 잠은 깨기 위해 ”서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밑바닥에 짓밟히는 씨알을 깨워 일으키려면 반드시 흔드는 읊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흔 살도 못돼죽은 쉘리가,
“아,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엎어졌어,
나는 피를 흘려,
시간의 무거운 짐이 나를 묶고 무릎을 꿇게 했어.
너처럼 그렇게 나도 뻣뻣했고, 날쌨고, 내로라하던 이 나였건만…….” 하고 애가 타서 부르짖었습니다.
공자가 어지러운 시대에 나서 모든 젊은이가 다 하는 것 같이 정치로 세상을 바로 잡아보려 동으로 서로 달리다가 예순이 다 돼서 아니 되는 것을 깨닫고, 씨알 깨우는 길로 나가려 할 때 맨 먼저 한 것이 옛 글과 읊음을 손질해서 바로 잡는 일이었고, 제자들 보고도
“애들아, 읆음을 어째서 아니 배우노? 읊음은 일으키는 것이요, 보게 하는 것이요, 무리 짓게 하는 것이며, 나무라게 하는 것이다.” 했습니다.
보게 한다는 것은 역사의 잘 잘못을 이해하게 한다는 말이고, 무리 짓게 한다는 것은 서로서로 가다듬어서 돕는 것을 말한 것이고, 나무라게 한다는 것은 정치의 잘못을 똑바로 당당 하게 비평할 수 있는 힘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그렇듯 읊음을 공부함으로써 얻는 효과를 말하는데. 첫째 조건으로 일어남(興)을 둔 것은 귀담아 들을 가르침입니다.
혼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야 말로 씨알의 시인이었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 보라……”
“가난한 놈 복 있다. ”
“슬퍼하는 놈 복 있다.”
“주리고 목마른 놈 복 있다.”
“매 맞고 욕먹는 놈들아 기뻐 뛰라.”
“뭐하자고 빈들에 나갔드냐?”
“바람에 불리는 갈대 보려고? 화려한 옷 입은 놈 보려고?”
“그렇지, 내다보는 이 찾으려 갔지!”
“나는 불을 땅에 던지려 왔지.”
“불이 벌써 붙었음 얼마나 좋아!”
이렇게 씨알의 속을 뒤흔드는 읊음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우리에게 아쉰 것은 읆음이 말라버린 것입니다. 해방 후 상당히 일어났었습니다. 그대로 나갔더라면 세상이 오늘같이 이렇게 더럽게는 아니 됐을 것입니다. 6.25, 더구나도 5.16 이후 민족의 혼은 아주 시들어버렸습니다. 꽃이 군화에 밟힐 때 민족의 가슴의 거문고 줄이 끊어졌고. 새들이 총소리에 놀라 숲에서 도망갔을 때, 민족의 머릿속에서 읊음의 혼이 도망갔습니다.
고층 건물 그늘 밑에 짓밟히는 처녀의 모습은 민족의 양심이 짓밟히는 모습이요, 고속도로 위에 잦아먹는 늙은이의 피는 민족의 지혜가 빠져 나가는 꼴입니다. 수그러졌습니다. 쭈구러졌습니다. 사나와지고, 거칠어지고, 비겁하고, 요사스러워졌습니다. 목을 졸리우고 있습니다. 입을 틀어 막히우고 있습니다. 읊음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허지만 그럴수록 읊조림은 필요합니다. 산 마음은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내가 목마르다……” 했습니다.
물이나 포도주가 마시고 싶어서 한 말 아닙니다. 씨알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한 혼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들 딸들아,
나 위해 울지 말고 너 위해 울려므나!” 씨알의 울음이 풀려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새 노래를 못 내고, 옛 노래를 내게 돼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또 이것은 감히 노래와 읊음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우는 강아지를 던져 주어야죠. 꾀꼬리를 붙들려면 꾀꼬리 흉내라도 내야지요. 씨알의 울음이 듣고 싶어서, 동해 바다의 노한 용들이 낙산사 되듯이, 성난 씨알이 통곡을 해야 새로 나시는 우리 엄마의 모의상대를 천둥 치듯 흔들 때 그 울림 속에 관음 모습을 보게 습을 볼 수 있겠기에,그 울음을 불러내려고 이 문드러진 송사리의 살점 같은 것을 씨알의 푸른 바다 위에 던집니다. 지금도 여전히 수평선 너머를 바라는 어부의 심정으로.
1971년 11월 17일
태평양 위를 맴도는 바보새
내 놓는 말( 씨알의 노래-서문 1971 사상사)
저작집 30; 없음
전집 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