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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조력자 외 2편
강순희
전 초등학교 교사
대경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교실 회원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벌써 낙엽이 진다. “가을은 문밖까지 왔다가 금세 가 버리는 손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고개 들어 단풍을 실컷 올려다보기도 전에 발아래 낙엽들은 쌓여만 간다.
토요일 낮에 엄마를 만나러 갔다. 한동안 어지럽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식사도 적게 하셨는데 이런 저런 약을 끊고 나서 오히려 입맛이 돌아왔다. 하얗게 센 머리를 짧게 자른 어머니는 지난번 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요즘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최고의 조력자는 요양 보호사이다. 지난 8월부터 오전에 방문해서 식사, 세탁, 운동, 목욕 등의 가사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 가서 독감 예방 주사도 맞혀주었다. 당연히 할 일이라고 하겠지만 떨어져 있는 자식보다 더 신경 써서 도와주니 너무 고맙다. 나는 요양 보호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힘들었던 이야기도 들어주고 부탁도 하고 있다. 엄마를 만나면 당부를 한다.
“요즘 엄마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요양보호사님이니 맛있는 것 있으면 함께 드시고 섭섭해 할 말 도 하지 마세요.”라고. 그래도 엄마는 자꾸 요양 보호사를 ‘일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평생 고생만 한 엄마가 늦게나마 ‘방문 요양’이라는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올 가을 들어 가장 쌀쌀한 날씨를 보였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들은 공중에서 천천히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다 땅으로 떨어진다. 낙엽처럼 가을에 떠난 사람이 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시어머님은 60대 중반, 한창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우연히 뇌종양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대수술을 받았다. 여러 가지 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도 받았었다. 그 이후로 건강하게 지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술 후 5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새벽에 목욕탕에 가셨다가 쓰러진 것이다.
시어머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었다. 자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면서도 자기주장 또한 강한 분이셨다. 어머니를 어려워하면서도 어깨 너머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어머니가 수술을 하고 나서는 연약해지고 한없이 자애로우셨다. 죽음의 고비에서 힘든 일을 겪으면 많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야에 담긴 어머님의 빨랫감을 보았다. 금방 돌아와서 손빨래 하리라 생각하고 물에 담근 빨래…….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단풍은 산꼭대기부터 물들어 서서히 내려오는데 산 아래 마을은 벌써 만추의 빛깔로 무르익었다. 빨간 단풍은 불타오르고 하얀 구름 머무는 파란 하늘을 보며 가을의 한가운데 와 있다고 느꼈다. 가을에 이끌려 앞산 자락길을 잠시 걸었다. 참나무와 소나무 등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조붓한 오솔길이 하얗게 이어졌다.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잎도 보이고 피톤치드 향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상쾌한 숲 향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투두둑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세찬 바람에 숲은 일렁이고 낙엽이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맨발로 산책하는 여인도 보았다. 뒤늦게 도토리 줍는 부부가 지나간 길에 “동물들의 겨울 식량이니 도토리를 털거나 줍지 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저런 짧은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는 네게 조력자인가?” 말하듯이 몇 줄 써서 보내라고 장난처럼 말했다. 조금 뒤에 답이 왔다. “어려운데 두서없이 써 봤어요.”하며 생각했던 것 보다 긴 글을 보내왔다.
무조건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다. 늘 궁금했다. 우리 어머니는 왜 항상 나에게 무조건적일까? 아들이라는 이유는 확실한 답이 될 수 없다. 내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만 봐도 알 수 있다. 직․간접적인 간섭 혹은 그걸 과도한 사랑이라 말하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는 집착하지 않는다. 멀리 있는 듯 하지만 늘 가깝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 한번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너희들 학업이나 다른 것들을 더 신경 썼더라면 이렇게 고생시키지 는 않았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셨지만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나와 내 동생의 부족함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강하다. 강하지 않고 오랜 세월을 교직에서 버틸 수 없다. 나는 감히 엄마를 조력자라 부르지 않는다. 내게 엄마는 밤하늘 외로이 떠 있는 달과 같다. 내게는 늘 빛을 주는 동시에 슬픈 존재이다. 엄마는 설명이 되지 않는 외계인이다.
아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 물론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글을 읽으면서 눈물은 볼을 타고 자꾸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짧은 답장을 보냈다.
“고맙다! 숙제 줘서 미안, 편히 쉬어.”
푸딩이네 집
강순희
“거기 푸딩집이지요?”
“아니오, 여기 가정집인데요.”
언젠가 동물병원에서 집 전화로 연락이 왔다. 나는 ‘푸딩집’이 무슨 아이스크림 가게라도 되는 듯 전화를 그렇게 받았다. 푸딩은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 강아지 이름, 여기는 푸딩이네 집 맞다.
강아지와의 만남은 갑작스러웠다. 2014년 봄, 딸아이가 반려동물 분양업체에서 푸들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나는 “못 키운다. 살아있는 것 어떻게 키울래?” 하며 화를 내 보았지만 이미 되돌리기 어려웠다. 분양업체에서 보낸 홍보 문자를 보고 구경하러 갔는데 유난히 덩치가 크고 털이 곱슬곱슬 하지도 않으며 못생긴 푸들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2개월이면 분양해서 보내는데 3개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강아지였다.
“어휴! 얘는 이제 새끼 빼러 가야겠다.”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불 쌍해서 안아줬더니 뽀뽀를 하더란다. 그래서 데리고 오기로 했다나 뭐라나…….
그날부터 나는 억지춘향으로 푸딩이의 엄마가 되고 딸아이는 푸딩이의 언니가 되었다.
분양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견종: 푸들, 성별: 여아, 생일: 12월 17일, 분양금액: 43만원, 푸들은 크 기에 따라 토이 푸들, 미니어처 푸들, 스탠더드 푸들의 3가지 견종이 있으 며 크기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영리하고 깔끔한 멋은 모두 같다. 곱슬곱슬 한 털은 털갈이를 하지 않아서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내 눈에, 깡마르고 조그마했던 갈색 푸들과 한집에 살게 된 지도 벌써 4년이나 지났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병아리, 햄스터, 토끼를 키운 적이 있다. 토끼를 키우다가 먹이와 배설물 처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골의 체험 농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나는 애완동물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강아지를 품에 안고 다니거나 두 마리 씩이나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유별나고 좀 지나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터인가 강아지 목줄을 잡고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니게 된 것이다.
강아지를 돌보는 것은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들다. 각종 애견용품이며 사료, 간식도 사야하고 때맞추어 예방 접종도 해야 한다. 동물병원의 진료비, 미용비도 만만치 않다. 양쪽으로 적당히 늘어진 귀가 참 예뻤는데 털에 가려 있지만 왼쪽 귀 끝부분이 조금 뜯겨 나간 모양이어서 안타깝다. 귀가 딱딱해서 상처 때문에 피가 응고된 줄 알았는데, 고무줄에 조여서 피가 안 통했고 조직이 괴사했다. 일부러 고무줄로 묶은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발견 못했기 때문에 강아지는 입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이래서 참 어렵다.
몸집은 작지만 푸들은 우리 집 경비견이다. 바깥에 인기척이 나면 사납게 짖어댄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강아지라서 자기 영역에 접근하지 말하는 방어의 표현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고 앞집의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나면 짖어댄다. 앞집 분들을 만나면 “개가 짖어서 시끄럽지요?” 하며 미안함을 전한다. 앞집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가족들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는 단번에 알아채는 것이 신기하다. 현관문에 두발로 서서 문을 긁는다. 반가움의 격한 표현이다. 문이 열리고 집 안에 들어서면 앞발을 들고 서서, 어서 들어오라는 몸짓을 한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말을 벗기기 시작한다. 그대로 발을 대고 있다가는 날카로운 이빨에 긁힐 수도 있어 얼른 양말 두 짝을 벗어서 준다. 그러면 물고 가서 잠깐 물어뜯다가 돌아와서는 입맞춤을 시도한다.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감지만 그 열정적인 뽀뽀를 막아낼 수가 없다. 혀로 얼굴을 핥고 심지어 혀가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피하면서 그만 하려고 하면 딸아이가 끝까지 받아주라며 난리를 친다. ‘사랑해’라는 말을 딸아이는 강아지에게 가장 많이 한다.
강아지도 바깥세상을 안다.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목줄을 하고 추울 때는 옷을 입어야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강아지 산책은 주로 딸아이의 몫이다. 목줄을 잡고 걷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강아지는 똑바로 걷지 않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다. 밖에 나가면 꼭 배변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배변 봉투는 필수품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의 눈에는 역시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만 보인다. “저기 친구 있네.” 하며 서로 만나게 한다. 유별나게 짖어대거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강아지도 있지만 서로 냄새 맡으며 꼬리도 흔든다. 사회성 훈련인 셈이다. 조금 멀리 산책을 갈 때는 차 뒷자리에 태운다. 뒷자리에 앉으면 창문을 내려달라고 조른다. 열린 창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시원한 바람을 온 얼굴로 맞는다. 스카프 날리듯 얼굴 털을 날리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사람처럼 드라이브를 즐긴다. 창문으로 고개 내민 강아지를 보며 꼴불견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훈훈한 미소로 말을 건네는 사람을 보면서 애견인들이 많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푸딩이의 외모는 곰돌이 인형에 가깝다. 주둥이가 뾰족하지도 않고 털은 길고 부스스하며 까맣고 동그란 눈에 일자형의 입을 가졌다.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귀엽다고 난리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멍멍이, 멍멍이” 하며 만지고 싶어 한다.
강아지도 다양한 눈빛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이 톤으로 노래하듯 소리를 내기도 한다. 혓바닥을 길게 내밀며 눈웃음을 짓기도 한다. 감정을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는 동물이다. 좋으면 풀쩍풀쩍 뛰어 오르고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치를 살핀다. 맛있게 먹고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면 턱 밑을 간질이며 폭풍 칭찬을 해 준다. 어느새 강아지는 냉장고 앞에 가서 혀를 내밀고 헤헤 소리를 내며 당당하고 으스대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밥을 잘 먹었으니 어서 맛있는 간식을 달라.’는 뜻이다. 간식이 아니고 후식이 되어버렸다. 4.8㎏, 만지면 보들보들한 털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푸딩이,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비단고을 봄 여행
강순희
무작정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4월 셋째 주 토요일, 비단고을 산벚꽃 길로 여행을 떠났다. ‘비단고을 산벚꽃, 산꽃둘레길’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는 순간, 즉흥 여행을 결심했다. 산벚꽃은 이미 져버렸으리라 생각했지만 매일 멀리서 바라보던 신록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K산악회 버스를 탔다. 산골 마을이다 보니 평균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섭씨 4,5도 정도 낮아서 개화 시기 역시 반 박자 늦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낙화 소식이 들릴 때쯤 보곡 산골에선 꽃 잔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보곡 산골 산꽃이야기’라는 주제로 펼쳐진 산꽃 축제는 일주일 전에 이미 끝났지만 바람 소리에 실린 꽃향기가 가득한 산꽃 마을을 상상하며 한 걸음 늦게 달려가 보았다.
“사진 찍으러 가시는 분이니까 오늘 함께 앉아서 가세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며 주로 풍경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자신의 사진을 담아가는 것도 허락한다니 그녀의 넓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연밭’ 사진을 보고 그린 화가의 그림이 더 멋졌다고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나이 들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버스는 경부고속국도를 달려 황간에서 빠져나와 대전, 영동 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국악과 과일의 고장 레인보우 영동’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과일의 고장답게 진분홍빛 복사꽃이 군데군데 한창이었다. 복숭아밭에는 나무 한 그루에 비료 한 포대씩 갖다 둔 것이 눈에 띄었다. ‘농부의 정성이 담긴 과일은 더 달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양산면이라는 지명을 지나며 보니 오른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신록으로 물든 산이 강에 비쳤다. 길 양쪽으로는 오래된 벚나무가 빼곡해서 꽃 필 때 오면 벚꽃 터널을 이룰 것 같았다. 내년 봄에는 벚꽃 필 무렵에 한번 와 보리라 생각했다. 길 양쪽에 심어 놓은 조팝나무 꽃길을 버스는 굽이굽이 달려 나갔다. 드디어 버스는 금산군 산꽃벚꽃마을 오토캠핑장에 도착했다. ‘자진뱅이 길’은 9㎞이고 ‘보이네요 길’은 6㎞정도 되는데 ‘보이네요 길’을 걷기로 했다. 길 입구로 접어드니 커다란 산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달고 있었다. 카메라를 맨 그녀가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사진을 찍으면 자꾸 뒤처지게 되니 천천히 오겠다고 했다.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나도 뒤따라 오솔길로 들어섰다. 조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 하얀 손을 흔들며 입구에서 길손을 반겨주었다. 가까이, 나지막하고 편안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있는 산은 초록 융단을 깔고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초록의 산과 연분홍 벚꽃, 산도화가 어우러져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봄빛으로 길은 물들어 있었다. 평탄한 오솔길을 지나 산을 오르자 제비꽃, 각시붓꽃, 구슬붕이 등 고개 숙여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보이네요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에 앉아 조금 쉬었다. 다시 나무 계단을 내려와 세 갈래 길 중 흙길로 접어들어 오솔길 산책을 계속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모여 초록 산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놓은 봄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신록도 분명 꽃이다. 멀리서 바라보던 신록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고 할까? 하나하나 제 모습을 찾은 나무들이 모여 산은 생기가 넘쳤다. 신록 속으로 걸어 들어가 초록에 눈을 씻고 초록의 향기를 마셨다. 왕벚꽃 군데군데 피어 있고 산벚꽃 떨어져 누운 꽃길을 걸어 드디어 ‘봄처녀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와 정자 옆 계곡에는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호젓하게 혼자만의 산책을 마음껏 즐겼다. 일행들과 마주치면 간단한 얘기를 나누었지만 되도록 홀로 걸으면서 작은 풀꽃, 산꽃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개 들어보면 온통 산이고 새 잎을 가득 단 나무들이었다. 각시붓꽃이 바위 앞에 다소곳하게 피어 있었다. 각시붓꽃 위에 거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꽃잎은 흩어지고 꽃술과 꽃받침만 남아 애잔해 보이는 산벚꽃 하나를 나는, 사진으로 남겼다.
갈림길에서 신안리 마을을 향해 하산을 했다. 도로 왼쪽에서 버스는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었고 축제는 끝났지만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비닐하우스 식당과 간이 카페가 있었다. 사진 찍으러 온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는 그녀가 세 갈래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늦게 올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가 방향을 잡고, 산길을 내려와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점심도 못 먹고 급하게 내려왔을 그녀에게, 혼자서 점심 먹은 것이, 미안했다. 어서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점심부터 먹으라고 했다. 그녀는 산벚꽃이 다 져버렸고, “왜 꽃이 진 곳을 공지해서 여행객을 모집했느냐?”며 불만을 이야기 했다. 그녀의 말이 맞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산벚꽃 활짝 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활짝 핀 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활짝 피어 꽃 대궐을 이루면 더없이 보기 좋았겠지! 그래도 신록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긴 겨울을 견디고 살아 돌아와 원래의 수형을 드러낸 나무들은 더 애틋하였다. 형형색색의 산꽃과 야생화가 흩어져 피어있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한 버스는 다행히 교통 정체를 피해 대구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와 첫 번째 정차하는 곳에서 내렸다. 서로 덕담을 건네며 그녀와 헤어졌다. 가이드 분이 버스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며 “산벚꽃이 져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했다. 꽃이 진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흐르는 시간은 하루하루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저 그날 하루, 그 순간 볼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사월의 초록에 흠뻑 물든 하루였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