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모방한다 / 이훈
독서교육에 회의적인 남편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연령에 맞는 양서에 관한 정보는 제공해도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자식이 독서를 좋아하면 부모로서 마음이야 좋겠지만, 자식이 책 말고 다른 것에 취미를 붙이면 그 방면으로 거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로 보았다. 그는 자녀가 책 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독서교육에 기대기보다는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책 읽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봐도 남편의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신순옥, <머리말을 대신하여>, 최성일, <<한 권의 책>>, 연암서가, 2011, 5쪽.
아이는 어른이나 주위의 가까운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자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모방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니 교육은 어른이 모범을 보이는 데서 시작된다.
중년 이상의 연배가 많이 듣는 평생교육원에서 수업하면서 나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부모가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 앞에서는 진짜로 읽지 않더라도 시간이 나기만 하면 책을 들고 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럴듯하게 쪽도 넘기면서. 그러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 사람은 시간이 있으면 책과 가까이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몸에 새기게 된다.
이렇게도 말한다.
책상에 앉아 생각을 거듭하면서 글을 쓰고 지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야말로 자식에게 참된 공부의 모범이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른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아이도 따라 합니다. 자신은 텔레비전의 연속극에 넋을 잃으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위신이 안 서지요. 그리고 남에게 강권할 정도로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나부터 먼저 해야 맞지 않겠어요!
이훈, <‘일상의 글쓰기’ 수업 안내>, https://cafe.daum.net/ihun/kmRs/1
위의 글을 옮긴 것은 다음 대목이 내 마음에 딱 들어서기도 하다.
그는 다 쓴 원고를 서너 번 정도 교정을 본 후 송고했다. 오탈자를 바로 잡고 불필요한 중복되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서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어휘를 골라 문장을 다듬었다. 짧은 글에서 단어까지 중복되면 글에 재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았다.(위의 글, 6쪽)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같은 단어가 되풀이되면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른 말로 바꾸거나 뜻은 그대로 담으면서 구절 전체를 손보라고 한다.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의 머리를 유연하게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반복을 제일 잘하는 것은 기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곗바늘은 늘 정해진 속도로 움직인다. 그런데 사람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서 대응한다.
글을 쓰고 나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특히 자신을 남 보듯 할 수 있을 때 내 글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잘 보인다. 내게서 분리됐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자기 객관화가 조금씩 가능해진다.
“책을 볼 때는 적어도 손을 씻고 봐야 한다.” 남편의 이 주문은 그의 깔끔한 성격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지저분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은 책에 대한 결례라 할 수 있다.(6-7쪽)
이 대목도 새겨 둘 만하다. 나는 필자와는 다르게 책에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는 내 몸이 깨끗해지면 그 일부인 머리도 덩달아 맑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옛날 선비들이 옷차림에 격식을 갖추고 자세를 바로 하여 붓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었던 것은 이런 이치를 깨달아서였을 것이다. 몸이 마음을 만든다.
<머리말>을 쓴 신순옥은, 2011년 마흔다섯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아내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죽은 후에 책이 나온 것이다. <머리말>에 ‘내’가 아니라 ‘그’가 나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봐 적었다.
[덧붙임] 유시민의 <<청춘의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위에서 본, 책을 대하는 태도를 상기시키는 바가 있어 옮깁니다.
솔제니친은 당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잡지 <노브이 미르>에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의-이훈) 원고를 보냈다. 편집장 트바르돕스키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읽기 시작했는데, 원고를 읽는 동안 말할 수 없이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 그는 문학평론가 비사리온 벨린스키가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원고를 읽다가 그랬던 것처럼, 정장을 다시 입고 넥타이까지 맨 다음 책상에 반듯이 앉아 원고를 마저 읽었다고 한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웅진 지식하우스, 2008, 19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