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26
아홉 구비의 물빛을 뽐내는 구곡폭포
<하얀 물줄기 하얀 빙벽>
“아~!”
구곡폭포에서 빚어내는 아홉 굽이 흐르는 물줄기마다 일곱 색깔 무지개가 서릴 때마다 고운 빛깔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사람들은 탄성 이상 말하지 못했다. 시인이 멋진 광경을 보면 말문이 막혀 입만 벌리고, 한참 지난 후 탄성을 지르고, 그런 감탄이 식으면 말을 한다고 한다. 시인의 시는 말문이 막힌 후 가슴으로 느낀 탄성을 낸 글말이다. 오후 3시쯤 햇빛이 구곡폭포로 찾아들 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를 타고 흘러내리는 무지개의 광경이다. 구곡폭포가 아름다워 사람들이 찾는 이유이다.
구곡폭포는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 빙벽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얀 눈이 길을 소복소복 덮었을 때 발자국을 눈길 위에 찍으며 구곡폭포에 가면 낭만 찾아온 등반객이 우릴 반긴다. 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빙벽을 오르는 모습은 가히 환상이다. 사람이 자연인 모습이다. 어찌 얼음에 의지한 채 몸을 맡긴 사람을 자연이라 하지 못할까. 그들은 그저 겨울 빙벽의 다른 풍경일 따름이다.
<아홉 굽이에 얽힌 사연>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아름다운 풍광으로 수놓은 구곡폭포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자연을 말하지 마라. 환상과 상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구곡폭포를 보지 마라. 꿈이 없는 사람도 구곡폭포를 찾지 마라.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은 구곡폭포를 언제든 찾아라.
구곡폭포에는 꿈이 있고, 사람의 일생이 담겼다. 구곡혼(九曲魂)을 담아갈 수 있는 최고의 폭포이기 때문이다. 구곡폭포를 오르는 길에는 꿈, 끼, 꾀, 깡, 꾼, 끈, 깔, 끝의 쌍기역 아홉 가지의 구곡혼이 있다. 굽이를 지날 때마다 세워진 꿈 찾는 푯말이 우리를 환상으로 반긴다. 꿈을 꾸는 사람이 해야 할 아홉 가지 쌍기역(ㄲ) 방법이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일단 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끼도 있고 꾀도 있고 … 색깔도 뚜렷하면 좋으리라. 끝이라고 울지 마라. 《도덕경》처럼 도는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새로운 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가짐은 첫걸음마라 했다.” 끝까지 올랐다고 생각하면 다시 새로운 길을 올라야 한다. 깔딱고개를 지나면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그곳에는 바로 이상향 문배마을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등용문처럼 마지막 고개를 넘으면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문폭이라 일컫기도>
춘천의 의병장 이소응의 문집 《습재집》에서는 구곡폭포를 ‘문폭(文瀑)’이라 했고, 가정리 사람들은 ‘큰 폭포’라 했다. 가정리에 있는 작은 폭포 ‘미나리폭포’의 상대적인 이름이다. 이소응은 강촌리 구곡폭포 바로 아래 구구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때문일까. 그는 속세를 떠나 그곳에 살고 싶어서 <문폭유거(文瀑幽居)>를 짓고, <문폭잡영(文瀑雜詠)>도 지었다. 시 구절마다 알알이 그의 심정이 배어있다. 왜 이소응인들 주자와 같이 무이구곡에서 살고 싶지 않았을까. 구곡폭포가 있는 장소는 이소응이 설정한 동천(洞天)이었다. 긴긴 해외망명 시절 동안 고향에 있는 구곡포포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문폭잡영>을 감상해 보자.
“一天風雪盪烟塵 하늘 가득 눈보라가 티끌 세상 씻어내니/ 灑落江山霽色新 씻은 듯한 강산 그 빛이 선명해라/ 冬烈不容枝葉茂 겨울 추위 매서워 잎 하나 남겨두지 않으니/ 千巖萬樹露其眞 바위며 나무며 참모습을 드러내네”(국역습재선생문집1)
이 시를 읽으면 참 깨끗한 문폭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어찌 이소응의 이상향인 동천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