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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이 필 무렵
최순희
감꽃들이 여기저기 소리 없이 떨어진다. 연두 새잎들이 어느새 짙은 초록색이다.
반짝이는 감나무 잎들 사이로 수줍은 듯 수굿하게 달려있던 감꽃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풀밭으로 나풀나풀 뛰어내린다. 땅에는 하얀 감꽃들이 지천이다. 감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실댁이 히죽 웃으며 늙은 남편을 바라본다. 젊어서는 훤칠한 키에 인물 좋다는 소리도 더러 들었건만 이제는 얼굴과 손등에 검버섯이 꽃처럼 피어있다.
“보소, 감꽃은 와 향기가 없을꼬? 찔레꽃같이 향기가 나믄 좋을낀데.”
“찔레꽃하고 감꽃하고는 다르제. 감은 과실수고 찔레는 줄기 꽃이제.”
“옛날에는 이것 줏을라꼬 새벽부터 소쿠리 들고 감나무 아래를 돌아 댕겼는데.”
“다 옛말이제. 먹을게 넘쳐나는 세상인데 떨떠름한 맛도 없는 감꽃을 누가 먹겠노.”
“감꽃이 억수로 달려서 추려낼라 하믄 식겁하것소.”
“풋감이 빠지며 어디 감당하겠던가. 시나브로 약을 때리는 수밖에.”
하영태는 아내를 돌아본다. 갓 스물 시집올 때 달덩이 같던 얼굴이 이젠 흔적도 없다. 봄볕을 많이 쬐어선지 벌써 검게 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밤색 몸빼에 막내딸이 입다가 벗어놓고 간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염색 손을 놓친 흰머리에 차양 넓은 작업 모자를 썼다. 그네는 아직도 목도리를 목에 둘둘 두르고 있는데 사시사철 목이 시리다고 했다. 늙은 남자는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감나무 아래를 절뚝절뚝 걸어가는 아내를 딱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등짝은 더 굽어졌고 무릎관절수술도 해줘야 하는데, 이놈의 감 농사는 어찌할꼬.
조상 무덤이 있는 선산 아래쪽 덜 가파른 곳부터 개간하기 시작한 게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다. 남의 논을 빌려 소작농을 지어도 허리가 펴지지 않아 산자락을 두 부부가 쫓기 시작하여 계단밭을 일구어 단감나무를 심었다. 주위의 풀을 베어 거름도 많이 넣고 지게로 져다 소똥도 무진장 개간한 땅에 넣었다. 감나무를 심고 삼 년이 지나 작은 단감나무에 달린 단감들이 크고 달았다. 당도도 상품이었다. 산비탈 구석구석을 쫓아 감나무를 더 심었다. 매실나무도 심었다. 그렇게 가꾼 과실주들은 오륙 년이 지나자 가지를 뻗어 그들 부부에게 등골이 휘는 일복과 함께 봄과 가을이며 목돈을 안겨주었다. 가용으로 쓰고 자식들 공부를 시켰으니까. 그러나 이젠 농촌에 매실이나 단감들이 지천이라 농비와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수익이 예전만 못하다. 새 묘목으로 바꿔 심은 감나무들도 이젠 늙었다. 이웃 젊은 산주들은 감나무를 잘라내고 복숭아나 무화과를 심기도 하지만 영태내외는 힘에 부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일구더기 감 농사를 지으려 하는 자식도 없지 않은가. 감나무 아래에는 벌써 온갖 잡풀들이 무성하다. 해충들이 기승을 부려 매실이고 감이고 약을 치지 않고는 되는 농사가 없다. 이른 봄 감나무에 황약을 시작으로 병충해약과 왕성하게 뻗어나는 제초제 등 약통을 안고 산다. 앞으로 얼마나 약을 더 쳐야할지 모른다. 평지가 아닌 산길에 호스를 당겨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가며 약 치기는 좀 어려운가. 정이월 추운 날씨에도 올라와서 내내 가지치기를 하였다. 높게 뻗어가는 가지는 무조건 자른다. 과실 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노인은 금년 단감농사 일이 태산같이 가마득하다. 얼마 전 씨알이 자잘해서 돈도 안 되는 매실 따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러나 단감농사는 그들이 일 년에 단 한번 만져보는 몫 돈이 아닌가. 논농사 댓 마지기는 양식하고 설, 팔월 명절과 제사 밥쌀 떡쌀하고 자식들 집에 쌀 한 포대씩 보내주면 없다. 젊은 시절에는 일이 안 무섭고 힘도 좋아 인건비 한 푼도 나가지 않았다. 부부가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억척스레 일했다. 끝이 없는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소같이 일만 하던 그들에게 몸에 이상이 온 지도 오래이다. 아내는 척추에 무릎관절에 팔이 아파 머리빗질도 어렵다. 큰돈 들여서 불도저로 경운기 오르는 길을 만들기 전까지 산비탈 가파른 길을 덜덜 다리를 떨며 지게로 비료나 거름을 져다 올리고 감들을 어깨에 메다 날랐기에 그의 등뼈는 활처럼 굽어졌고 야윈 두 어깨가 내려앉았다. 밭에서 종일을 일하고 경운기를 끌며 내려오는데 이웃인 동욱이 불렀다.
“영태아재요, 저기 소식 들어십니꺼?”
“뭔 소식?”
“이 근방 밭하고 산들이 다 들어간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더.”
“여기 산은 뭐할라꼬 그라제?”
“농공단지가 뭔가 들어선다는 말이 있심더.”
“농공단지가 우째 이런 산 위에 들어서노? 도통 알 수가 없네.”
“요새 건설장비가 얼매나 좋은데요. 불도저로 확확 밀어서 평지로 맹걸고도 남지예.”
“그럼 우리 조상 산소는 우짜노?”
“산소야 마땅히 이장비 나올낍니더. 문제는 수용보상비인데 우리 산주들이 똘똘 뭉쳐 보상을 잘 받아야 하제요. 아재, 우짜든지 우리가 단합해서 잘 처신해야 됩니더.”
“하모, 두말하면 잔소리지.”
노인은 산소가 우선 걱정이긴 했지만 앞으로 단감농사 못 짓는 섭섭함보다 힘에 부치는 농사일 덜어지는 게 잘됐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보상비만 많이 주면 두 다리 천만 원 든다는 마누라 무릎관절 수술도 시키고 큰 병원서 허리뼈 사진도 찍어보고 해야제. 나도 꾸부러진 등짝 탓인지 숨골이 턱턱 막히는 내 병도 알아보고, 찬바람 숭숭 드는 낡은 집도 고치든지 새로 지으면 늙어서 좀 따시게 살낀데, 네댓 마지기 논농사 그거사 눈감고 지어도 짓제.
선산은 선친의 평생염원이었다. 부자가 몇 년이나 머슴을 살아 산 한 자락을 사서 근본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조상 뼈와 공동묘지에 초라하게 묻힌 조부모 뼈를 이장하여 놓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그 산에 잠드셨다. 영태 자신도 아내도 자식들도 죽으면 당연히 그 산에 묻힐 줄 알고 있는데 산소를 이장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나라에서 하는 일을 어찌하랴. 2남 2녀 아들딸들이 하나같이 고만고만 힘들게 사는 것이 마음에 항상 걸려있다. 내가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고 결혼까지는 해 줬지만 자식들 집 한 칸도 못 거들어줬지. 그러다 언뜻 고개를 저었다. 쯧쯧 내 손에 흙 안 묻히고 입에 밥이 들어갈까. 그런 복이 있을라고. 농공단진가 뭔가도 떠들다 쑥 들어가 버리고 말겠지. 허파에 바람만 들제.
타타타타 경운기를 몰면서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 열두 채 기와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붉게 물드는 감잎사이로 갈바람이 들고나고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여린 감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감들은 살이 오르면서 발그레 보기 좋게 익어갔다. 평상의 고추가 진홍빛으로 말라가며 감실댁은 애가 타서 자식들 집에 일일이 전화를 한다.
“엄마, 벌써 단감 익었어? 우리 단감 맛있잖아. 일도 못 거들고.”
“가계 때문에 몸 빠질 새가 없네. 차후 갈 테니 우선 맛보게 한 박스 부쳐주세요.”
“알았어. 엄마 담 담주 올라갈게요.”
전에는 토요일에 애들 데려고 와서 하루 이틀 산에 올라가서 감도 따주고 하던 자식들이 이젠 새끼들 학교와 학원에 잡히어 당일치기로 와서 차 트렁크에 감 박스들을 싣고는 후딱 가버린다. 단감이 한물로 익을 때에는 감 따는 일손을 빌리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두 내외가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묵묵히 감을 땄다. 품삯이야 농약비 거름 등 나가는 돈이 만만찮기에 그런다. 그러나 이젠 목덜미가 빠지도록 올려다보며 감을 따는 것도, 어깨에 멘 감주머니 무게도 힘에 부친다. 서른 개 남짓 따 넣어도 등이 더 굽어지고 더 절뚝거린다. 감실댁은 스무 개도 못 따서 감주머니 감들을 큰 플라스틱 박스에 갖다 붓는다. 그러니 열 개도 넘는 감 박스를 택배로 보낼 때면 웬만하며 와서 가져가지하는 잔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칠 남매 형제들과 자식들에게 연례행사처럼 감을 보낸다. 더러는 차를 몰고 와서 한나절 거들어주고 가기도 하였다. 그러면 때깔 좋은 감 한 박스와 선별하고 처진 감들을 수북이 자루에 부어주었다. 산자락에 쑥쑥 크는 대파와 끝물호박과 무거워 들기도 어려운 누런 호박들을 얹어주었다. 그들 부부는 그게 인정이요 우애라고 생각하였다. 이웃동네인 중산리에 사는 큰 동생 정태는 옛날에는 며칠씩이라도 부부가 와서 감을 따주고 일을 거들어주었는데 자신들이 하우스 딸기농사를 짓고부터는 바빠서 감 밭 근처에도 못 왔다.
지난여름부터 영태씨 집은 들고나는 이들로 분주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이 애들을 데리고 왔다. 동생들도 찾아왔다. 정태를 비롯하여 부모님 제사 때도 곧잘 빠지던 호태와 성태, 그리고 생전 생선 한 마리 들고 오지 않던 광태까지 수박을 들고 찾아왔다.
“보소, 형제들이 와 갑자기 저리 뻔질나게 찾아 오능교? 새길 나것소.”
“내사 오라 가라 말 한자리 안 했제. 형제간 집에 형제 오는 걸 우짤기고?”
마을에는 보상금이 나온다니 나왔다니 하는 소문들이 한 집 건너 두 집 삼 이웃에 퍼져나갔다. 농공단지에 산이나 밭이 수용되어 보상비를 받게 된 집에서는 웅성웅성 시끌시끌 크고 작은 고성들이 샛바람처럼 새어 나오는 어느 날 밤에 광태가 혼자 찾아왔다.
“큰형님 지하고 좋게 해결 좀 하십시다.”
“뭔 해결을 하노?”
“딱 깨놓고 큰형님 선산 보상금 저한테 5억만 빌려주십쇼. 그럼 지가 책임지고 형제 입을 싹 막겠심더. 내가 다시 재기하여 큰형님 돈 꼭 갚겠심더. 차용증하든 공증을 하던 형님 좋을 대로 하십소, 형님 단도리 안 하믄 보상금 다 뺏기게 생겨서 귀띔하는 깁니더.”
“니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 하노? 그런 말 하려면 오지도 말거라.”
광태는 지지난해 부산에서 근근이 버티던 두부 공장이 넘어가는 사달이 났다. 집도 넘어가고 애들 학업도 중단시켰다. 형제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지난해 추석날 술에 취해 찾아와 집을 난장판을 만들었다. 영태씨가 한마디로 거절하자 광태는 두고 보라며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나갔다. 며칠 후 정태, 광태, 부산 사는 호태, 마산 성태까지 동생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감실댁이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 다리를 더 절뚝거렸다.
“뭔 일로 사흘도리로 우세 두세 다 몰아서 오시능교?”
그들은 큰방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몸살로 누워있던 영태씨 부스스 일어나 앉는다.
“큰형님한테 확인할게 있어 왔심더.”
호태가 입을 열었다. 노인은 순간 짚이는 게 있었으나 태연한 척 했다. 정태를 쳐다봤다. 그간 정태에게는 보상금에 대해 대강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직 선수로 말은 안했지만 정태에게는 보상금에서 얼마간 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가 힘들게 농사짓는 처지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가까이 사는 정태가 힘이 되어 줄 것 같았다.
“큰형님, 저기 단감나무 선산 말입니다. 듣자니 수용비보상이 제법 나온다면서요?”
“그래. 농공단지 맨든다고 금년 감만 따란다. 그런데 그것을 네들이 와 신경쓰노?”
“큰형님!”
넷째 광태가 꽥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봐라.
“말씀이 이상하네요. 그 산은 아버지가 물러준 선산인데 신경 쓰는 게 당연하지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보상이 나오면 당연히 우리가 갈라야지요.”
“명의는 큰형님 앞으로 돼 있어도 그거는 마 형님 것이 아닐시더.”
“산 한 자락이라도 평수가 많아서 큰돈이 나올낀데, 물론 나무 값이야 형님 꺼고.”
광태에 이어 호태, 성태가 말하고 평수가 많아서 큰돈 나온다는 말은 정태가 끄집어내었다. 영태씨는 심장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얼굴에 노기를 나타내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 놈들이 정태 집에서 소상히 듣고 입 맞추었구나.
“뭐라카노? 말이가 똥이가. 그 산은 내 산이다. 나이 칠십 넘도록 새빠지게 일군 산인데 무슨 개떡 같은 소리하고 자빠지노!”
“참, 그 산은 선산 아닙니까. 선산을 혼자 자시면 체하지요. 억지가 대판일세.”
“읍내 사거리 길을 막고 좀 물어보소. 세상에 선산을 장남이라고 홀랑 다 먹는 법이 어디 있답디까? 옛날도 아니고 요즘 같은 훤한 세상에, 몰라도 한참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
“큰형님, 우리 험한 소리 내지 말고 좋게 의논하십시다.”
“형님이 먼저 운을 떼야 우리가 무슨 말을 할 게 아닙니꺼?”
“뭣이라! 니들 결혼하여 살림날 때마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똑같이 논 서 마지기, 육백 평씩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날 보고 제사와 선영봉사 장남책무라며 선산 맡으라고 하실제 니들 다 들어놓고 은자 와서 딴소리고? 윗대 산소 벌초도 잔소리 자꾸 몬하고 내가 다했다. 내 논 서 마지기로 양식이 모자라 삼 년 머슴살이하여 두 마지기 보태서 닷 마지기 논농사 일 년에 열 번 드는 제사 멧밥하고 떡쌀하며 겨우 양식하고 사는데. 정태 말고는 논농사 몇 해 짓다 다들 홀딱 팔아갔제. 그래놓고 이제 와서 뭣이 어쩌고 어째?”
노인은 심장이 덜덜 떨리고 얼굴이 벌겋게 되었지만 그의 동생들은 콧방귀만 뀌었다.
“형님도 똑같이 논 서 마지기 받았지요. 그러니까 선산은 선산이지 형님 것이 아니지요. 보상금이 한 십억은 될끼라 소문이던데 그 돈은 당연히 형제가 나눠야지요.”
“우리가 뭐 택도 없는 소리합니꺼? 세상 이치를 큰형님이 너무 몰라서 탈이제.”
“이놈들아! 너거들 살림 내준 서 마지기 땅도 아버지와 내가 십 년 머슴살이하여 뼈가 빠지게 일해서 조금씩 장만한 땅인데, 그걸 맏이와 똑같이 갈라줄 때 내가 입이 없어 가만 있은 줄 아냐? 논 육백 평이 니들 비빌 언덕 되라고 가만있었다. 니들이 땅 한 평이라도 살 때 거들어 준거 있으면 말해봐라. 니들이 벌어 산 산이라면 벌써 팔아 묵었지 여즉 있겄냐? 허름한 이 집도 갈라묵자고 덤비겠네. 이런 천지분간도 못하는 인간들아!”
“무슨 고래적 이바구합니꺼? 형님이 잘 처신해야지 안 그러면 우리 다 섭섭하지요.”
“말로서 안 되면 법으로 가리는 수밖에 유념하시소. 돈에 환장해도 그렇지.”
“형님은 두루두루 많이 받으셨네. 토지에다 집에다 산까지, 이 집터도 텃밭까지 백오십 평도 넘을 낀데.”
동생들은 방바닥을 내리치며 방을 나갔다. 영태씨는 헐떡헐떡 거친 숨을 모으며 가슴을 끌어안았다. 아무도 8기 산소 이장문제에 입도 뻥끗 않는 게 더 괘씸하다. 감실댁이 음료수를 차려 들고 오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당을 질려가는 그들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기세둥둥 몰려와서 뭐라고 대들었소? 앗따 사람 죽겠네. 뭐라꼬 말이나 해보시우.”
“시방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저 놈들이 감 밭 보상금 내놓으라고 협박하제.”
“뭐라카노? 아무리 부처가 까꾸로 앉아도 그러제. 참말로 얼토당토 않는 소리제.”
자다가 홍두깨라고 가당치도 않는 소리하러 몰려 왔나베. 우리가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 구만리제. 우리 고생한 거사 하늘이 알고 땅은 알낀데 아이고 무서버라. 칼 든 강도 행세하네. 감실댁이 방바닥을 치며 한탄지탄이다. 집도 새로 짓든지 수리를 하면 쪼깐 해선 될 일도 아니고 내사 우리 노후가 젤로 걱정인데 까딱하면 큰 싸움 나게 생겼으니 그만 골머리가 우지끈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제사가 있었다. 칠 남매 그들 선친제사였다. 사정에 한두 집 빠지고는 거의 참례하는 제사여서 불어난 후손들로 옹색한 방이며 마루가 비좁아 마당에 돗자리까지 펴는데 그러나 정태를 비롯한 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감실댁은 마을버스로 제수장을 몇 번이나 봐다 나르고 식혜를 하고 녹두고물 찰떡도 3되를 맞추었다. 그네는 아픈 허리에 복대를 하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무새며 전이며 그 많은 제수를 밤새며 혼자 장만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큰아들 내외가 식당을 거두고 저녁에 왔다. 부모님이 뿌린 후손이 쉰 명도 넘건만 그들 부자만 제상 앞에 부복하였다. 북적북적 우대받던 제사가 조상뼈다귀 파낼 산 때문에 그만 적막강산이 되었다.
요즘 산 이웃들도 만나기만 하면 보상비 말이다. 평당 가격이며 감나무 매실 복숭아 무화과 뽕나무 등 과실주 나무 값을 이웃보다 적게 받을까 혈안이 되어갔다. 보상가격을 놓고 무수한 말들이 돌았고 산주들과 밭 임자들이 두 패로 갈라지기까지 하였다. 전에는 이웃들이 만나면 가지치기를 했느니 감나무에 약을 몇 번 쳤느냐, 제초제는 무얼 썼느냐며 굽은 등을 펴며 두유 한 개라도 나눠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젠 단감 말은 아예 사라졌다. 감농사가 올 한 해뿐이라고 하여도 아쉽거나 서운할 게 하나 없었다. 다들 농공단지수용가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특히 늙은 농부들은 힘겨운 농사지만 감 밭을 묵힐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속으로는 잘됐다고 하면서도 보상가가 적게 나오면 팔지 않겠다고 떠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드러내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집집마다 자식 간 형제간 보상금으로 인한 시비들로 피가 배어나게 마음들을 다치고 있었다.
큰아들 용수 내외가 왔다. 아들 나이도 오십이 되어 어느새 머리가 반백이 되었다. 며느리는 벌린 식당일 때문에 여간해선 집에 못 오는데 같이 왔다. 읍내에서 삼겹살 식당이 크게 잘되는 것은 아니어도 저들 다섯 식구 밥술은 먹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학가고 고등학교라 학비가 많이 들어가 빠듯한지 전날에 아들이 즐겨 다니던 바다낚시도 발을 끊었다. 24평 복도식 아파트도 아버지가 몇 년간 단감 판돈을 모아 보태어줘서 산 것이다.
“식당건물계약만기가 다 되서 걱정이라예. 주인이 몇 번이나 연기해 주었지만 이번에는 세를 올리든 아님 비키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데 걱정임더. 이번에 보상금 나오면 가계 하나 장만하게 해 주이소 예.”
“아버님 어머님, 콩알만 해도 내 가계 하나 있는 게 소원입니더. 다달이 내는 세비가 돌아서면 달세 날이니 만날 그 돈 아귀 맞춘다고 쩔쩔맵니더. 물린 전세 빼고 하여 이참에 내 식당 하나 장만하면 정말 소원이 없겠심더.”
감실댁은 백번을 봐도 반가운 자식인데 그것도 큰자식이라 한숨을 짓는다.
“온냐온냐. 니들 힘든 거사 다 알제. 보소 큰 자석 덜 고단하게 당신이 좀 생각하소. 아직 돈은 안 나왔제. 야들아, 그러니 쪼끔 기다려 보거라 마.”
아들 며느리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침묵을 지키던 영태씨가 시부렁거렸다.
“사람이 우째 말을 앞세우노. 세상일이 어디 맘대로 되는가. 특히 금전가지고.”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더. 식당에 온 마실 사람들도 곧 나올끼라 캅디더. 저희는 가계만 하나 장만하믄 이때껏 주인에게 따박따박 내던 아까운 월세 아버님 드리겠습니더. 정말이라예. 어째거나 아버님 어머님 이젠 힘든 농사일 마시고 노후 편안하게 사시도록 저희가 만반조처를 하겠습니다. 걱정마이소 예.”
아들 내외가 가고 난 뒤 감실댁이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시작했다.
“쯧쯧, 보소 자석 맘 편하게 뚝 떼 준다 하면 될 것을 앞 말은 뭐고 뒷말은 와카요? 나중에 주고도 인사 못 들을라꼬 용써요? 내사 마 큰 자석 주고 연수 줄끼라.”
“이 할망구가 어째 그새를 못 참고 팔랑대고 촐랑거리노. 큰 얘만 자식이고 연수만 아픈 손가락인가. 윤수 혜수는 가만있을 줄 알고 씨부리네. 다리 수술은 안 할끼가?”
“세상없어도 금년 단감 따고는 다리수술 해야제. 질질 끌고 댕기도 아파서 죽겠소. 우짜든지 우리 후사 책임 질 큰 자식 더 줘야하고 아픈 자식 병원비는 대주야제.”
큰 사위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수현이 엄마가 몸이 자꾸 나빠져 걱정입니다. 어지간히 조심을 하고 신경을 쓰는데 어제 검사에서 의사가 혈액투석 말을 하니 걱정이 되어 밥맛도 없습니다.”
영태씨 방바닥이 꺼지게 한숨이다. 감실댁은 놀라서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구 연수야! 아가! 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연수는 자 랄 때부터 몸이 약했다. 거제에서 살림을 차려 애 둘을 낳고 걱정 없이 잘살던 큰딸에게 어느 날 조선회사에 잘 다니던 사위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로부터 사위는 동료들과 몇 년에 걸쳐 복직투쟁을 벌이고, 연수는 포장마차를 차려 추운 날 더운 날 없이 좌판을 놓고 만두며 호떡 떡볶이를 장사를 악바리같이 하더니 언젠가부터 야위어갔다. 당뇨였다. 사위는 할 수 없이 어디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신장염에 걸린 딸은 그간 잘 버텨왔는데 몸이 더 나빠진 모양이다. 연수는 부부에게 아픈 생인손이다. 감실댁은 눈물콧물바람이 되어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한다.
“그놈의 병도 돈 들이며 났것지. 돈 걱정일랑 말고 큰 병원 가서 났아야제 알았제.”
“엄마 잘 버티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자꾸 병원비 대준다 하지 마시고 보상이 나오면 그 집 너무 헐었으니 새집 지어 겨울에 덜덜 떨지 마시고 따뜻하게 사세요. 젊은 사람들은 어째 살아도 사니까 자식들 걱정 마시고 두 분 노후 생각하셔야 합니다. 엄마 내 말 흘러듣지 마세요.”
아이고, 지 몸이 아프면서도 부모 생각하느라고 저러니 저 착해빠진 우리 연수!
둘째 윤수 부부가 왔다. 맞벌이 부부였는데 최근 윤수가 다니던 건설회사 경기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쌍둥이 아들 둘인데 며느리가 마트에 근무한다.
“아버님, 저희 좀 돌봐주셔요. 저이가 몇 달째 저러고 있으니 생활이 안 되어요. 제가 마트에서 일하여 근근이 먹고 살잖아요.”
노인은 벌레 씹은 얼굴이 되었다. 옛날 외양간 얼룩이가 새끼 겨우 면하자 코뚜레 고삐 채워 들판에 끌고 가서 쟁기 끌듯 일흔이 넘은 자신에게 점점 고삐가 조여드는 느낌이다. 부산 사는 막내딸 혜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직장을 다니다 아기를 낳고 휴직을 하였다. 친정시가 아무도 아기 봐줄 할머니가 없다고 혜수는 내내 투덜거렸다. 반년을 쉬고 다시 복직하였으나 직장에 눈치도 보이고 연년생 애들을 맡길 데가 없어 결국 퇴직하여 있으니 살림이 팍팍한 모양이었다. 혜수는 오자마자 감실댁을 붙잡고 늘어졌다.
“엄마, 감 밭 보상비 받으며 우리도 줄 거지 응? 얼마 줄 건데? 아버지한테 물어볼까. 작은 아파트 하나 사게 되겠지. 2년마다 하는 이사 여섯 번 했나. 이사 정말 지긋지긋해. 친구들 친정시댁 덕 보는 게 너무 부러웠는데 나도 큰소리치겠네. 시댁에도 박서방한테도 큰소리쳐야지. 엄마, 요즘 나 꿈꾸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
“너거 아부지가 요량이 있겄제. 고마 암소리 말고 기다려 보거라 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딸인데 무엇이 아까우랴. 감실댁은 입으로 모이 물어다주는 어미 새가 되어 당신 입안의 먹이를 자식들에게 다 꺼내주지 못해 안달복달이 났다.
내년이 칠순인 손아래 누이 태순이 북어처럼 바짝 마른 팔을 흔들며 영태씨 코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눈은 가자미같이 돌아가고 주름진 얼굴에 얄팍한 입술이 빼뚤 꼬여있다.
“오빠요 와 여형제한태는 말이 없소? 삼동네 소문이 파다한데 태선이하고 나는 아버지 자석도 아닌 모양이제. 요새사 아들딸 층거리 없는 세상 아닌가배. 여기 있는 동생들도 다 모를리 없을꺼로. 내사 시집갈 때 시어른 혼숫감을 해갔나, 다문 일 년 입을 옷을 해갔나, 몇 달 신을 버선이라도 가져갔나. 새색시 시집왔다고 대소가 사람들이 새색시 옷 구경 하자고 왔는데 보일 게 있어야지. 부끄럽고 남우세스러워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귀신이나 알지 누가 알꼬. 청석돌보다 야문 아배 어매가 딸 여위고 빚지면 안 된다믄서 무명옷 겨우 입고 벗고만 해서 보냈제. 비단치마저고리 한번 입고 싶어 안달복달을 해도 우리 어매 손톱도 안 들어갔제. 내사 동생들 줄줄이 업어 키우고 정지일 다하고 초등학교도 겨우 댕겼다. 그런데 아배 남긴 산에서 돈이 나온다면서 니들끼리 작당을 해서 처먹을라꼬? 아이구 숭악해라. 내사 오늘부터 오래비 집에 그냥 붙어살기라.”
“언니 말이 하나도 안 틀리제. 나두 오빠 집에 아주 궁둥이 눌어 붙을끼요.”
태선이는 방구석에 후딱 드러눕는다. 정태가 소리쳤다. 고성이다.
“이젠 형님이 결단을 내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밥 얻어먹으러 온 거렁뱅이도 아니고 부모가 남긴 유산 나누자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큰형님, 이만해서 좋게 해결합시다. 사람이 우째 자기 욕심대로 다 하고 삽니꺼?.”
영태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졌다. 울화가 치밀어 토악질이 넘어온다.
“이 날도둑놈들아! 니들이 뭐 형제라꼬? 서천 쇠가 웃겠다. 내 할 말은 벌써 다 했다. 이젠 입 섞기도 내사 싫다. 방구석에 붙어살던지 말든지 니들 맘이제. 으흠 칵칵!”
말을 마친 그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광태가 문 앞을 장승같이 막아섰다.
“형님! 이대로는 못 나가요. 죽든 살든 해결을 짓고 나가소.”
“뭐라고 이놈아! 니가 뭔데 내 집에서 내 발길까지 막냐?”
형이 동생의 멱살을 잡자 동생이 먼저 형을 잡아 방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우당탕하는 서슬에 마루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감실댁이 방문을 밀치며 들어서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영감을 보고 놀라 영감위에 엎어졌다. 영태씨가 새파래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보래 임자, 경찰에 신고해라. 우리 집에 도둑놈들이 몰려와 있다고!”
“이보소, 뼉다구 안 분질러졌소. 이젠 돈독이 올라 엄살도 기가 막히네!”
“말 한번 잘했소. 퍼뜩 신고하소. 동생들 돈 다 띠묵을라꼬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돼지 같은 집구석 동네사람들아 좋은 구경났으니 어서들 좀 오시구려.”
“칠십 넘은 늙은이가 추접스레 용을 쓰네. 배째라하니 불쌍허요.”
“형님, 오늘 이날까지 형제들이 얼마나 애걸하고 빌었소. 같이 좀 살자고. 아배가 물려준 선산인데 나누는 게 열 번 순리지요. 처음에는 한 푼도 못 준다고 펄쩍 하다가 다음에는 이천만 원 묵고 떨어져라 했소. 애들 과자 값 주는 것도 아니고,”
“이놈들아, 내가 백번 양보해서 오천만 원 준다고 했제. 그랬으면 됐지 뭣이 어째?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더는 못 준다. 이 집도 너무 낡아 새로 짓든지 해야 살 형편인데.”
“일흔 넘은 노인네가 몇 백 년 더 살끼라고 추잡스레 집 걱정까지? 아방궁이라도 지어시겠다, 기가 차서 우째 형제들 돈을 가로채어 쓸 궁리만 하는 거요?”
“자꾸 박 터지게 싸우지 말고 누님하고 동생은 출가외인이니 오천만 원 주고 남자 형제들은 일억 오천 주시오. 그래도 형님은 죽을 때까지 그 돈 쓰고도 남것소!”
“뭐라고 이 정태 날도둑놈아, 니들은 일억 오천하고 와 우리는 오천인데, 와 오천인데? 하이고오 택도 없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하늘이 쪼개져도 그리는 안될끼구마.”
“작은 오빠 미쳤소? 오빠나 오천 받고 땡감 떨어지듯 떨어지구려. 내가 법무사한테 물어보니 요즘 유산상속은 마누라만 쪼매 더 받고 장자나 차자나 아들이나 딸이나 똑 같이 받는다카더라. 뭐를 좀 알고나 나서든지.”
태순이와 태선이가 벌떡 일어나서 정태를 향해 시퍼렇게 삿대질하며 달려들었다. 정태는 삿대질에 밀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영태씨는 결심을 했다.
“솔직히 말하마. 내가 처음에는 니들 한 푼도 안주려고 했다. 내 재산이니 주라마라 니들이 상관할 돈이 아니제. 다 사정이야 딱하지. 세상에 딱하지 않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더냐? 니들이 논 홀딱 팔아가듯 내가 옛날 어려울 때 그 산 팔아먹었으면 어쩔 건대? 그러다 맘 바꿔서 이천만원 주려하자 난리를 치고 철천지원수 보듯 대들었지. 니들 형수가 형제간 원수 되지 말자고 사정하기에 내가 큰맘 먹고 오천만원을 주마했다. 그러나 너거들은 오천만 원에도 콧방귀 뀌고 픽 웃었지. 니들이 나한테 돈 맡겨 놨냐? 선산 누가 지켰냐? 선영봉사 누가 하고 제사 때도 못 오는 구실이 더 많았제. 제사음식 쌔가 빠지게 누가 차렸냐? 오천만 원, 싫으면 하지마라. 그것도 내사 피같이 아깝다. 뭐 일억 오천? 나가 지금 죽어도 그렇게는 못해! 니들 소송 낸다꼬? 줘도 원수 안줘도 원수 되는데 미쳤다고 오천이나 줄까. 니들이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입맛대로 떠들어 샀노. 다 내 집에서 나가거라. 꼴도 보기 싫다. 나 갓! 나 갓!”
“흥 오천, 이젠 피차 막 보기네. 누가 이기나 소송이네. 인제 형제고 사촌이고 없다.”
“기고만장하셔. 장남이 뭐 장땡인가. 길을 막고 물어보지 혼자 다 처묵는 긴가
“일억도 아니고 오천? 나이든 양반이 너무 욕심 채우면 한 방에 가지 가!”
“보상금이 십억이나 된다면서 누굴 당달봉사로 알고. 한판 붙어보자 씨발!”
“그깐 돈 오천, 없이도 여태 살았다. 까짓 누가 이기나 갈 데까지 가보자 씨팔!”
모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도깨비가 되어갔다. 시퍼렇게 질린 감실댁이 질질 끄는 다리를 뚜드리며 울부짖었다. 그네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벌벌 떨었다.
“아이구 몸서리야! 차라리 그 단감 밭 보상금 안 나오는 게 골백번 편했제. 무덤 해작질하는 멧돼지도 아니고 무슨 떼강도 패거린가. 오메! 범보다 야차보다 더 무서바라.”
그 곳에는 일곱 마리의 이리 떼가 거친 숨길을 씩씩대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벌겋게 핏발이 서고 살기마저 비쳤다. 한 자궁에서 태어나 육십 여년 한솥밥 먹으며 지내온 형제간 우애도, 다복다복 쌓아왔던 인정의 낟가리도 장마물살 지나가듯 말끔히 쓸려가 버렸다. 돈은 사람 사이를 한순간에 은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철천지원수를 낳기도 한다. 돈은 사람을 짐승 닮은 모습으로 바꾸는데 더 재미있어 기고만장한다.
늦은 밤, 어둑어둑한 화산 마을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쉼터가 있는 마을 복판 길을 가지 않고 대나무들이 둘러선 마을 뒷길로 걸어간다. 사내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동욱이네 집 시멘담장에 서서 달도 없고 별도 없는 밤하늘을 잠시 쳐다본다. 휘익- 매운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림자가 없는 사내는 하영태 집으로 가는 고샅길로 들어선다. 사내의 품에는 날이 시퍼런 식칼이 들려 있었다. 밤은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사내의 모습을 어둠으로 가려주고 그 마음까지도 덮어주었다.
“이걸 목에 겨누어도 설마 말 안 들을까! 결판을 내야지. 어리석은 영감탱이!”
어둠속에서 두 눈만이 짐승의 눈처럼 인광이 번쩍인다. 끼럭끼럭 끼럭 기러기 떼가 밤하늘을 날아간다. 적막한 밤이 홀로 깊어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