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1946.9.1-2009.5.23) 대통령...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의 3남 2녀중 막내로 김해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진영대창초와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1966)를 나왔다.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1968년 입대, 1973년 같은 고향출신인 권양숙
여사와 결혼 아들 건호와 딸 정연을 두었다.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77년 대전지법 판사로 재직 8개월만에 사직하고
1978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다.
1981년 제5공화국의 민주화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87년 대우 노동자 시위도중 사망사건과 관련 제3자 개입으로 검찰에 구속되어 옥고를 치른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 총재의 재야인사 영입사례로 발탁 정치에 입문한다. 1989년 5공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하고,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정치적 스승인 김영삼 총재와 결별한다.
1992년 국회의원, 1995년 부산시장, 1996년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패배한다.
1998년 7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국회에 재입성한다.
2000년 총선에서 당선이 학실시 되는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에서
출마하여 패배한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최초의 국민경선제에 의한 대통령 후보로 선출 되었고 그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2003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가난했고, 그로인한 설움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하고 상처도 받는다. 머리가 명석하여 공부를 잘 하였지만 가난 때문에 어렵게 어렵게 진학을
하여 상고를 끝으로 정규교육을 마감한다.
그가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살아온 봉하마을은 그를 성장 시켜준 꿈의 마을이다. 이곳에서 들과
산야를 헤메면서 기초를 닦은 시골 소년... 그는 이 때, 그 가난을 벗고 배불리 먹는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봉화산을 올라 더
큰세상으로의 탈출을 위한 원대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노무현은 좌절을
경험한다. 모든 것에서 항상 일등이었던 그가 교내 서예 대회에서 2등을 하자 그 상장을 거부하는 당찬 학생이었다. 자신이 더 우수한데도,
선생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못한 학생을 1등으로 선정했다는 불만에서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 예가 아닌가
한다. 그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했다. 약자로 살은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사회 구조의 병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타파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싸웠다.
그는 편한 길을 마다했다.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으면 살리라'라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실천했던 행동주의자였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동키호테다. 정제되지 않은 말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규코스를 밟지 않아 합리적이지 못하다. 논리적이다.
언변이 뛰어나다 등등...기득권과 권위주의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여러분야의 특권을 허물었다. 그로 말미암아 리더십의 붕괴에 직면하기도 했다.
거침 없는 화법,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스스로의 희생,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이전의 결정 등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로 인한 갈등의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그는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격동기의 후진적 한국사회에서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과 질박함, 앞 뒤를 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결단력이 있었기에 인권과, 민주사회를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사회에서의 탁월한 지도자이지, 잘 다듬어지고 성숙된 사회에서의 지도자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지도자였다.
성숙된
사회에서는 아마도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갖춘 것이 적다고 판단하는 기득권층의 지식인이 이를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핍박받고 약자의 세상에서 고통받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우상이지 지식인들의 우상은 아니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그의 결단에 박수와
비난이 늘 함께 상존하도록 했던 그...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간 최초의 대통령.. 소박한 삶을 살겠다고 '사람사는 세상'의
꿈을 안고 친환경적 농사를 짓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던 그를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의 서거가 주는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애도의 물결이 넘쳐나는 눈물바다에 나도 함께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