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을 피해야 하는 이유!
제법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와 소원해진 사건이 있었다. 그는 학계나 심지어 정계에 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늘 자랑(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프로필을 척척 말하곤 했다. 그 점은 나와는 정 반대되는 특성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친구와 관계성을 유지했던 이유는 그는 최소한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고, 취향도 약간 비슷하였고, 또 여로 모로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과거에 제법 이름이 있었던 원로였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문제는... 맙소사. 어떻게 사람이 180도로 바뀔 수 있는지... 그러니까 나와 만날 때에는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좋아할 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등을 자신도 그런 것처럼 말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도 좋아하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자신도 소중히 여긴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원로 앞에서는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나에게 한 말과는 정 반대되는 말들을 너무 진지하게 주절이 주절이 늘어 놓았다. 일종의 ‘처세술’이었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한 말들이 진실인지, 지금 제삼자한테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껏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 하기가 무척 불편하였다.
사람이 60이 넘어가면, 특히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 세계라는 것이 거의 굳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 교수들 사이의 다름이란 세계나 우주가 다른 것만큼 다르다. 그래서 중년들이 서로 관계성을 유지하게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 주는 ‘똘레랑스’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중년을 넘어서면 자연히 친구는 적어지게 된다. 아주 진실한 한 두 명의 친구면 족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과 친분이 있다고 자랑한다는 것은 필시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실은 친분이 없으면서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힘이 있거나 중요한 인물을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피력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인간관계 역시도 ‘권력의 투쟁’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앞서 말한 처세술일 것이다. A를 만나면, A가 좋아하는 말들을 할 것이고, B를 만나면 B의 마음에 드는 말들을 할 것이다. 좌파를 만나면 자신도 좌파라고 할 것이요, 우파를 만나면 자신도 우파라고 할 것이다. 그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더 많은 허상과 위선과 거짓을 말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자아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속이 꽉 찬 사람’이라면 굳이 자랑하면서 자신을 내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자기 자신’이 없다면, 영혼이 비어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불교에서는 ‘무아’를 추구하지만, ‘무아’를 감행하기 위한 조건도 먼저 ‘자아’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비워야 할 자아가 없다면 ‘무아’를 감행할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허수아비를 만나는 것과 같고, 자신의 특성을 훔치고자 하는 고차적인 도둑과 만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야 없겠지만, 신을 믿어도 아파트 문은 닫아놓고 외출해야 하듯이, 사람 관계도 문단속을 하면서 가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