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천현우의 산문 <쇳밥일지> 를 순식간에 다 읽었다. 청년공으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글로 알린다.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파악했던 노동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무척 고맙고 감사한 책이다.
내가 대학 때 졸업논문으로 노동문학의 진수 황석영의 <객지> 에 대해 썼다. 그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당시 떠오르기 시작한 노동문학의 미래를 어림잡아 쓴 것이다. 통과는 되었지만 지금도 겉만 번지르한 어설픈 논문이었다.
그 이후 교사가 되어 중학교 3학년 담임을 하였다. 학기말이 되면 아이들의 진학을 책임져야 했다.인문계를 희망하는 학생이 많다보니 평균 성적 70점 이하는 실업계를 추천한다. 특별히 인문계를 가야겠다고 버티는 학생이 가끔 있지만 대체로 나의 말에 따랐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자마자 합격 통지서가 바로 날아왔고 그 애들은 편안히 잡담과 수다로 졸업식 날짜만 세고 있었다. 전곰 과도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따라갔다. 그야말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성적으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몇 년이 흐른 후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성적이 낮고 자존감이 최저인 아이들, 가정에서 학대받고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그 중에서 장학금을 기대하고 높은 성적임에도 머리 꼿꼿이 세우고 들어선 아이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졸업 때 맞추어 수능공부까지 준비해 주었다. 대학을 꼭 나와야 행복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개뚱 철학이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그 애들의 향후 거취는 지금도 궁금하고 알고 싶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애들 ㅡ 중간에 퇴학이나 자퇴를 하는 3분의 1 아이들, 졸업은 했으나 취업
은 어떻게 돴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살긴 살아지겠지, 그야말로 싸가지 없는 선생이었다. 나의 그런 행태가 미워 나는 명예퇴직에 미련이 없다. 내가 하는 글쓰기 작업도 이런 부끄러움에서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학대받고 가난에 시달리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자신은 절벽만 있었던, 과거를 박차고 나와 용접공이 된 지은이. 시들어가는 산업공단 중소기업의 빡센 노동조건에 맞서 싸우는 지은이, 죽고싶다는 감정에 멏 번이나 시달릴 때 그래도 자신을 살려낸 것이 독서였고 글쓰기였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험악했던 운명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던 거라고 애써 아우성친다.
* 61쪽 ㅡ모든 사람 사이를 호오로만 판별할 수 없으며, 모호함의 경계 속에서 각자가 내린 판단으로 관계를 맺고 끊으며 살아간다는 것, 짧은 생각의 띠를 이어 붙여 결론에 도달하고야 간실히 입을 뗄 수 있었다.
*168쪽 ㅡ 원망스러웠다. 만사 포기하고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 뭐라도 될 것 같은 희망을 품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 221쪽 ㅡ 살벌한 노동강도, 최저임금에서 꿈쩍 않는 시급, 아무짝에 쓸모없는 경력, 한번 당하면 생계와 생명을 위협받는 산재, 공장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귀족정직원과 천만 하청직원, 그 사이를 이간질하는 대기업까지. 교수님은 날카롭게 질문하고 조용히 듣다가도, 이따금 혀를 차곤 하셨다. 다 아는 사실도 당사자한테 들으면 느낌이 다른 법. 교수님은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탄하듯 물었다.
*273 쪽 ㅡ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 견뎌야 할 세상은 분명 만만치 않습니다. 마지만 생각을 포기하지 않다보면 어떻게돈 살길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면서, 누구도 감히 흔들 수 없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냉소하지 맙시다. 자신과 일상, 동료들과 일,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내 주변의 내가 의식한 모든 것들이 우연이고 행운이며 이를 소중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오롯하게 내가 되고, 그때가 되면 반드시 행복은 따라옵니다.
* 학교 성적이나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에 기대 주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는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온갖 비리를 반성하고 사람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지 하는 새로운 맹세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