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국이상국전집 제13권
● 고율시(古律詩)
목차
問謫仙行。贈內翰李眉叟坐上作。
正旦路上逢山人。口占戱贈。
訪金同年延脩家。用古人詩韻。
丁卯十二月初。入翰林夜直有作。示禁中諸公。
次韻諸公見和
釣名諷
己巳年燈夕。翰林奏呈。
依韻仰和駕幸晉康侯第亭御製
復用前韻。上晉康侯。
草堂邀咸子眞。以詩先之。
次韻咸子眞拜右軍判官有作
扈駕靈通寺。借某天院紫衣。以詩奉還。
次韻月首座贈趙侍郞冲
次韻陳學正澕聞琴
雲峯住老珪禪師。得早芽茶示之。予目爲孺茶。師請詩爲賦之。
腹用前韻贈之
孫玉堂得之,李史館允甫,王史館崇,金內翰轍,吳史館柱卿見和。復次韻答之。
孫翰長復和。次韻寄之。
房狀元衍寶見和。次韻答之。
孫翰長家詠春雪。用古人韻。
奇平章挽詞。翰林奏呈。
山呼殿。訪內道場惠首座方丈。賦紫牡丹。
復和
春日。入豪俠家飮有作。
又聞雙琵琶口占
案中三詠
禮成江上偶吟。
焚藁
訪應禪師方丈
再入玉堂有作。書壁上。
李郞中仁老,孫翰林得之見和。復用前韻。
次韻陳翰林題苗正字大隱樓。在市邊。
白天院賁華家賦海棠。用樂天詩韻。
六月二十日。久雨忽晴。與客行園中記所見。
七月十日。遊大安寺留題。
八月見梨花忽開
草堂日暮。値琴客置酒。
詠雪
守歲
走筆謝文禪老惠炭
早春臨津江上。送文禪老還本寺。江上口占。
文禪師見和。復次韻答之。
上元燈夕。文機障子,燈籠詩。翰林奏呈。
次韻金大年贈妓
七夕飮友人家
淵首座方丈。觀鄭得恭所畫魚蔟子。
又次書蔟子詩韻贈之
復和
孫翰長得之見和。復次前韻。
癸酉孟春十七日。與陳翰林澕夜飮林秀才元幹家大醉。林君請觀長篇律詩走筆。予使陳公唱韻賦之。文不加點。不容一瞥。
林君又以畫盤松屛風。請古詩走筆。復使陳君唱韻賦之。
覽鏡。贈梁校勘。
梁校勘見和。復用前韻。
聞鸎
興天寺江上偶吟
游魚
○문적선행(問謫仙行)을 즉석에서 지어 내한(內翰) 이미수(李眉叟)에게 주다
내가 이백(李白)을 보지 못했기에 / 我不見太白
꿈속에서라도 보기 원했었는데 / 思欲夢見之
꿈에도 볼 수가 없으니 / 夢亦不可見
나의 노쇠함이 오래되었네 / 久矣吾之衰
오늘 그대 만나니 참으로 적선인 듯 / 今日逢君眞謫仙
꿈인지 생시인지 마음 의심했노라 / 夢耶覺耶心復疑
그대에게 묻노니 천보 사이에 / 問君天寶中
다행히 당 명황의 알아줌을 받았지 / 幸荷明皇知
침향정 앞에서 목작약(木芍藥)의 시 지었으며 / 沈香亭前賦芍藥
취한 얼굴에 찬물 뿌리고 청평사 지어 올렸었네 / 灑面立進淸平詞
또 편전에서 조서(詔書)를 기초하면서 / 又於便殿草綸誥
차가운 절후에 궁녀가 붓을 불어 녹였네 / 宮娥呵筆天寒時
보석 상에 음식 내리고 옥연에서 내려와 맞이했으니 / 寶床賜食降輦迎
이때엔 임금의 은총 융숭했는데 / 是時恩遇亮不貲
어이 도리어 배척을 당하여 / 胡爲反見斥
집을 떠나 청산에 떠돌며 부질없이 시만 읊단말가 / 謝家靑山浪迹空吟詩
하루아침에 달 잡고자 바다로 들어갔으니 / 一朝捉月入滄海
영주 봉래 어느 곳에서 영지를 캐고 있겠지 / 瀛州蓬萊何處採靈芝
공이 간 지 이미 천년이 지났는데 / 公之去兮已千載
무엇이 이제 그리워서 다시 왔는지 / 胡今眷眷復來思
문장(文章)의 풍류는 옛솜씨 남아 있는데 / 筆下風流餘舊態
술 마시는 풍정(風情)은 이제 어이 시들었노 / 飮中情味今何虧
이미수가 술을 마시지 못하므로 한 말이다.(李不飮。故云。)
당년에 단속하지 않음을 아마 뉘우치겠지 / 應悔當年不自檢
고역사(高力士)의 참소 애매히 당하였네 / 枉被將軍貝錦辭
날개 꺾여 하늘 위에서 떨어지듯 / 塌翼落天上
구만리(九萬里) 전정(前程)을 그르쳤구려 / 遽失九萬圖南期
마음에 옛 처신술(處身術)을 고쳐 / 意欲改舊調
맹세코 벼슬에 올라 고요(皐陶)와 기(虁)를 능가하려 했네 / 唾手取爵凌皐虁
이 때문에 술 마시지 않지만 / 所以不飮酒
이 뜻 알아줄 이 그 누구인가 / 此意識者誰
적선, 적선을 내 이미 보았으니 / 謫仙謫仙吾已見
채찍 잡고 뒤따르는 것 어이 사양하리 / 雖使執鞭安敢辭
[주C-001]문적선행(問謫仙行) : 적선에게 묻는 가사(歌詞)이니 적선은 이백(李白)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당서(唐書)》 李白傳에 “이백이 장안(長安)에 이르러 하지장(賀知章)을 찾아가니, 하지장이 그의 글을 보고 찬탄하기를 ‘그대는 적선인(謫仙人)이라.’고 했다.” 하였다. 이는 이미수(李眉叟)의 문장이 이백에 비길 수 있으므로 찬양한 말이다.
[주C-002]이미수(李眉叟) : 미수는 이인로(李仁老)의 자(字)이니, 고려(高麗) 의종(毅宗)ㆍ명종(明宗) 때의 명신(名臣).
[주D-001]천보(天寶) :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年號).
[주D-002]당 명황(唐明皇) : 당 현종(唐玄宗)의 별칭.
[주D-003]청평사(淸平詞) : 양귀비(楊貴妃)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詩)로서, 삼수(三首)로 되어 있다. 기일(其一)은 “구름 보매 의상 생각나고 꽃 보면 얼굴 연상되는데, 봄바람 난간에 스치고 이슬은 꽃에 짙게 내렸구나. 만약 군옥산 위에서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요대의 달 아래에서 만나겠지.[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臺月下逢]” 하였고, 기이(其二)는 “꽃 한 송이 요염하고 향기에 이슬 어렸는데, 무산의 구름과 비는 부질없이 창자만 끊는구나. 여보게나 한(漢) 나라 궁중에 누구와 비슷하려나, 귀엽게도 조비연의 새 단장 말쑥하구려.[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妝]” 했으며, 기삼(其三)은 “이름난 꽃과 경국 미인 서로 기뻐하니, 임금님도 항상 웃음띠고 감상하누나. 봄바람에 그지없는 한 풀려고 침향정 북쪽 난간 의지하였네.[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恨 沈香亭北倚欄干]” 하였다.
[주D-004]고역사(高力士) : 당 현종(唐玄宗) 때 환관(宦官)이니 소잠(蕭岑) 등을 평정한 공으로 은총과 신임(信任)이 지극하였다. 이백(李白)이 청평사(淸平詞)를 지을 때에 고역사를 시켜 신을 벗기게 한 까닭으로 혐의를 품고 참소하여 마침내 이백을 파출(罷出)시키는 데 이르렀다.
[주D-005]고요(皐陶)와 기(夔) : 두 사람은 모두 순(舜) 임금 때의 명신(名臣)이다.
○정월 원단에 길에서 중을 만나 희롱삼아 시를 지어 주다
나는 속세(俗世)에서 설날을 만났으니 / 我於世上遇王春
근년에 몸이 늙어갈 줄 알지만 / 已分年來老逼身
깊은 산에서는 가는 세월 아랑곳없을 텐데 / 深谷想應逃歲月
어이 또한 눈썹이 눈처럼 하얀가 / 如何亦作雪眉人
○동갑인 김연수(金延脩)의 집을 찾아가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다
태현경(太玄經)을 초하니 자운의 집 비슷한데 / 草玄眞似子雲家
일을 좋아하는 우리들 즐겨 찾아왔네 / 好事吾儕肯見過
미옥은 독 속에 길이 감추어 두지 않는 법이니 / 美玉不應長蘊櫝
황금은 모래에서 나올 날이 있으리 / 黃金行見一披沙
구멍 속에 추운 자라는 머리를 움츠렸고 / 穴中寒鼈藏頭角
시렁 위에 굶주린 매는 발톱을 오므렸구나 / 竿上飢鷹縮爪牙
나는 춤추고 그대는 노래 불러 기쁘게 놀았으니 / 我舞君歌歡意足
호탕한 풍류 명일 남에게 자랑하리 / 風流明日向人誇
[주D-001]자운(子雲) : 양웅(揚雄)의 자(字)로, 한(漢) 나라 때 문장대가(文章大家). 《태현(太玄)》ㆍ《법언(法言)》ㆍ《방언(方言)》 등의 저서(著書)가 있다. 《漢書 卷87 揚雄傳》
○정묘(丁卯) 십이월에 처음으로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밤에 숙직을 하다가 시를 지어 금중(禁中)의 제공(諸公)에게 보이다
뒤늦게 은총 입어 평범한 데서 나왔건만 / 晩承恩遇出平沈
남들은 그래도 이 한림이라 부르네 / 猶被人呼李翰林
옥당의 벼슬 이름은 참으로 아름다우나 / 玉署金坡名信美
자개상에 진수성찬(珍羞盛饌) 찾아볼 길 없구나 / 象床綺食事難尋
방불하게 갈대의 모양 그려낼 뿐인지 / 依俙堪畫葫蘆樣
늙고 병들어 작약 읊을 마음 없구려 / 潦倒無心芍藥吟
궁중의 누수 소리에 차가운 밤 깊었는데 / 宮漏添籌寒夜永
사두를 끝마치고 혼자서 이불 끼고 누웠네 / 詞頭草罷擁孤衾
○제공(諸公)의 화답시에 차운하다
옥당에 구름 개고 밤은 침침한데 / 切雲仙署夜沈沈
차가운 이슬 푸른 수풀에 뚝뚝 떨어지누나 / 寒露丁東滴翠林
마른 육포는 임금의 은택을 받았건만 / 枯腊方承雲雨潤
쇠잔한 수염은 눈처럼 희어짐을 모면할 길 없구려 / 衰髥難避雪霜尋
남들은 학이 초헌 타고 가는 듯하다 이르건만 / 人言老鶴乘軒去
나는 쓰르라미처럼 늦가을에 우는 것이 괴롭네 / 我苦寒螿抱葉吟
나의 기구한 운명으로도 한림원(翰林院)에 벼슬하여 / 薄命如吾猶得忝
시사가 없기에 향기로운 이불을 덮었다오 / 賴無侍史護香衾
○명예 구함을 풍자(諷刺)하면서
물고기 낚음은 고기를 먹기 위함이지만 / 釣魚利其肉
명예를 구하여 무슨 이익 있으리 / 釣名何所利
이름은 바로 실상(實相)의 손님이니 / 名乃實之賓
주인이 있으면 손님은 자연히 오는 거지 / 有主賓自至
실상없이 허명만 누리면 / 無實享虛名
한갓 이름에 누만 끼치는 거야 / 適爲名所累
용백(龍伯)이 자라 여섯 마리를 낚았으니 / 龍伯釣六鼇
이 낚시질이야 참으로 장하구나 / 此釣眞壯矣
강태공은 문왕을 낚았으니 / 太公釣文王
그 낚시질은 원래 미끼 없었네 / 其釣本無餌
이름을 낚음은 이와 달라서 / 釣名異於是
한때의 요행만을 기다림일세 / 僥倖一時耳
비유컨대 거울 없는 여자가 / 有如無鑑女
잠깐 얼굴을 단장함과 같아 / 塗飾暫容媚
분이 지워지고 참모습 드러나면 / 粉落露其眞
보는 자마다 외면하고 피하리 / 見者嘔而避
이름 낚아 어진 사람 될 수 있다면 / 釣名作賢人
어느 세대엔들 안연(顔淵)이 없을 것이며 / 何代無顔氏
이름 낚아 양리(良吏)될 수 있다면 / 釣名作循吏
어느 고을엔들 공수가 없으리 / 何邑非龔遂
야비하도다 공손홍이여 / 鄙哉公孫弘
정승되어 베이불 덮단 말가 / 爲相乃布被
편협하구나 호창수는 / 小矣虎昌守
돈을 팽개치고 우물 물 마셨다네 / 投錢飮井水
청백함을 남이 알까 두려워했으니 / 淸畏人之知
양진은 참으로 군자일세 / 楊震眞君子
때문에 내가 조명편을 지어 / 吾作釣名篇
허명(虛名) 좋아하는 선비를 풍자하노라 / 以諷好名士
[주D-001]용백(龍伯) : 옛날 용백국(龍伯國)에 큰 사람이 있어 키가 30길이 되는데, 몇 걸음에 오산(五山)에 이르러 한 번에 여섯 마리의 거오(巨鼇)를 낚았다고 한다.《列子 湯問》
[주D-002]강태공(姜太公) : 본성(本姓)은 강(姜)이요, 이름은 상(尙)이며, 자(字)는 자아(子牙)이니, 봉성(封姓)을 따라 여상(呂尙)이라고 하였다. 주 문왕(周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 가에서 만나 맞아들여 태사(太師)를 삼았는데,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 나라를 멸하고 주(周)의 천하를 세웠다. 《史記 卷32》
[주D-003]안연(顔淵) : 이름은 회(回), 공자(孔子)의 수제자.
[주D-004]공수(龔遂) : 한 선제(漢宣帝) 때 발해(勃海)에 도둑이 일어나 수령이 제어하지 못하자, 공수로 발해 태수(勃海太守)를 삼으니, 도둑이 양민으로 화하여 발해가 크게 다스려졌다. 《漢書 卷89 龔遂傳》
[주D-005]공손홍(公孫弘) : 한 무제(漢武帝) 때 승상(丞相)이 되어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고, 동각(東閣)을 열어 사류(士流)를 연접하여 그 봉록이 모두 빈객 접대에 들어갔으며, 자신은 현미(玄米) 밥을 먹고 베이불을 덮었다. 《前漢書 卷58 公孫弘傳》
[주D-006]호창수(虎昌守) : 무창(武昌)의 수령을 지낸 사람의 고사인 듯하나 미상.
[주D-007]양진(楊震) : 일찍이 형주 자사(荊州刺史)가 되어 행차가 창읍(昌邑)을 지나니, 전에 천거 받은 형주 무재(荊州茂才) 왕밀(王密)이 창읍령(昌邑令)이 되어 알현(謁見)하고 밤에 찾아와서 황금 10근을 바쳤다. 그러자 양진이 말하기를 “고인(故人)은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고인을 알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왕밀이 말하기를 “깊은 밤에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양진이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 하겠는가?” 하였다. 《後漢書 卷84 楊震傳》
○기사년 등석(燈夕)에 한림원에서 지어 올리다
문기장자시(文機障子詩) 2수
구문에 임금님 납시니 벽제(辟除) 소리 우레와 같고 / 九門淸蹕走驚雷
궁중의 화사한 연회 밤을 정해 열었어라 / 蘂闕華筵卜夜開
은촛불 그림자 속에 꿩깃발 도열했고 / 龍燭影中排羽葆
옥퉁소 부는 가운데 금술잔 보내왔구나 / 鳳簫聲裏送金杯
만세 삼창하니 삼신산 솟아올랐고 / 三呼萬歲神山湧
천년 만에 한 번 익는 선도(仙桃)가 실려왔네 / 一熟千年海菓來
시신에게 마음대로 즐기도록 허락해 주어 / 恩許侍臣司宴樂
어사화(御賜花) 가득 꽂고 취하여 부축받아 돌아왔노라 / 宣花萬揷醉扶廻
상서로운 아지랑이 감돌고 자신전(紫宸殿) 드높은데 / 祥煙繚繞紫宸高
보좌(寶座)의 중앙에 임금님 납시었네 / 幄座中央認赭袍
동부에서 노래 부르며 옥색두드렸고 / 洞府徵歌敲玉索
교방에서 기생 선발(選拔)하여 선도에 취했어라 / 敎坊選妓醉仙挑
구층의 향로에는 용뇌 향기 피웠고 / 九層爐爇金龍腦
사방을 비추는 등불에는 봉황기름을 사용했네 / 四炤燈燃白鳳膏
서왕모도 찾아와서 천세수 올리니 / 西母獻來千歲壽
제자들을 불러 운오를 치게 하였네 / 指呼弟子鼓雲璈
등롱시(燈籠詩) 4수
오색 구름 가운데 옥황에게 절하니 / 五色雲中拜玉皇
별과 달은 머리 위에서 깜박이네 / 壓頭星月動寒芒
도성 사람들은 천문의 찬란함은 모르고 / 都人不覺天文爛
은등의 깜박거리는 빛인가 의심하누나 / 遙認銀燈爍爍光
비단 등롱은 물결 속에 진주가 비친 듯하고 / 紗籠剪水分珠蚌
황금 궁전에는 밤이 깊어 밝은 달이 걸렸구나 / 金殿移天掛玉蟾
만호 장안(萬戶長安)에 고루 비쳐 불야성 이루었으니 / 炤遍鳳城渾不夜
계인이 물시계를 잘못 계산할까 염려되네 / 鷄人應誤漏壺籤
붉고 푸른 비단 등롱 연꽃처럼 아름다운데 / 絳碧紗籠菡萏開
용의 기름 불꽃을 토해 붉은 연기 휘도네 / 龍膏吐暈紫煙廻
대보름을 인하여 불꽃이 길이 연달아 / 憑渠好續常生焰
천추 만세의 장수 술잔을 비춰주네 / 萬歲千年炤壽杯
황금 등잔 불꽃 토해 홍사 초롱 투명(透明)하니 / 金燈吐焰透紅紗
동쪽에 해 돋아 새벽 놀 무리졌네 / 日散千暉暈曉霞
천하가 한 집 되고 임금님 인자하니 / 四海一家天子聖
상서의 빛에 일백 가지 꽃을 보리 / 瑞光看取百枝花
[주D-001]구문(九門) : 옛날 천자(天子)는 구문(九門)이 있었으니, 1은 노문(路門), 2는 응문(應門), 3은 치문(雉門), 4는 고문(庫門), 5는 얼문(臬門), 6은 성문(城門), 7은 근교문(近郊門), 8은 원교문(遠郊門), 9는 관문(關門)이다. 《禮記 月令》
[주D-002]동부(洞府) : 신선(神仙)이 사는 곳.《宋史 禮志》
[주D-003]용뇌(龍腦) : 용뇌수(龍腦樹)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결정체(結晶體)를 말한다.《本草》
[주D-004]서왕모(西王母) : 금모(金母)라고도 하니, 옛날 곤륜산(崑崙山)에 있던 선녀(仙女)라고 한다.
[주D-005]운오(雲璈) : 쇠로 만든 악기(樂器) 이름.
[주D-006]계인(鷄人) : 춘관(春官)에 소속된 관명(官名)이니 제삿날 밤에는 새벽을 알려 백관(百官)을 일어나게 한다. 《周禮 春官》
○운(韻)에 의하여 대가(大駕)가 진강후(晉康侯)의 모정(茅亭)에 납시어 지은 어제(御製)에 다시 화답하다 금중(禁中)의 여러 유신(儒臣)과 더불어 함께 지어 올렸다.
속세의 안목 궁중의 제도 본 적 없었으니 / 世眼無由覩九天
무슨 일로 잔칫상 베푸는지 알 길 없었네 / 不知底樣展盤筵
뜻밖에 청조의 공교한 혀를 인하여 / 却因靑鳥偏饒舌
요대에서 여러 신선들 향연(饗宴)함을 짐작하였지 / 認得瑤臺宴列仙
재상(宰相)의 가문에 임금님 행차 납시니 / 朱門翻作紫微天
온갖 풍악 갖추어 화사한 자리 옹위하였네 / 排比笙歌擁綺筵
어제(御製)의 칠언시 뉘라서 해석하리 / 上帝七言誰會了
구슬 궁전에서 학(鶴)과 같이 춤추시네 / 珠宮唯得舞胎仙
[주C-001]진강후(晉康侯) : 최충헌(崔忠獻)이니, 고려 때 권신(權臣)으로서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에 봉해졌다.
[주D-001]청조(靑鳥) : 삼족조(三足鳥)라고도 한다. 한 무제(漢武帝) 고사(故事)에 의하면 7월 7일에 홀연히 청조(靑鳥)가 날아와 궁전(宮殿) 앞에 모여 들거늘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이는 서왕모(西王母)가 찾아오려는 것이옵니다.” 하더니, 조금 후세 서왕모가 오는데 청조 세 마리가 서왕모의 곁에 모시고 왔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사자(使者)를 가리켜 청조라고 칭호하였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傳》
○다시 위의 운을 따라 진강후에게 올리다 금중(禁中)의 여러 유신(儒臣)들도 함께 지었다.
황옥의 앞 머리 하늘같이 드높은데 / 黃屋前頭摠是天
조그만 정자에 붉은 구름 감돌았네 / 紫雲猶繞小亭筵
일편의 어제시(御製詩)는 참으로 주옥 같아 / 一篇宸翰眞琳簡
읽어오매 속세 사람도 선풍도골(仙風道骨)된 듯 하여라 / 讀向人間骨欲仙
곽 분양(郭汾陽)은 당(唐) 나라를 회복했는데 / 汾陽再造聖唐天
갑제에도 오히려 임금님 납신 일 없었네 / 甲第猶無御幸筵
천고의 삼한에서 이제 처음 보았으니 / 千古三韓今始見
일개 재신(宰臣)의 문에서 구문의 신선 맞이했구나 / 一門能致九門仙
[주D-001]황옥(黃屋) : 임금의 수레.
[주D-002]곽 분양(郭汾陽) : 곽자의(郭子儀)이니 당 숙종(唐肅宗) 때에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여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다. 《唐書 卷137 郭子儀傳》
[주D-003]구문(九門) : 옛날 천자(天子)는 구문(九門)이 있었으니, 1은 노문(路門), 2는 응문(應門), 3은 치문(雉門), 4는 고문(庫門), 5는 얼문(臬門), 6은 성문(城門), 7은 근교문(近郊門), 8은 원교문(遠郊門), 9는 관문(關門)이다.《禮記 月令》
○초당에서 함자진(咸子眞)을 맞이하여 먼저 시를 지어 보이다
아름다운 절후 흘러가 머무르지 않으니 / 佳節駸駸去不留
서재에서 우울한 시름 어이 감내하리 / 可堪書室咄哉愁
꽃이 있으니 손님 맞아 감상하고 싶고 / 有花絶欲邀賓賞
술이 없으나 아내와 더불어 구해 오겠네 / 無酒猶能與婦謀
나를 위해 말머리 돌림이 어떠한가 / 爲我何妨廻鈿勒
그대 없으면 누구와 술잔 기울일쏜가 / 捨君誰與倒瓊舟
궁벽한 마을에 별미 없다고 말게나 / 莫言窮巷無兼味
우연히 한 자 길이의 농어를 얻어 왔네 / 偶得紅鱸玉尺脩
○함자진이 우군 판관(右軍判官)에 제수되어 지은 시를 차운하다
예로부터 참다운 장군은 서생에서 나왔으니 / 古來眞將出書生
그대 같은 담력은 군사 통솔함이 마땅하지 / 膽氣如君合董兵
막부(幕府)에서는 바야흐로 군령이 엄숙하고 / 帷幄方嚴軍政肅
조반(朝班)에서는 그래도 예조의 청환(淸宦)을 띠었구나 / 官班猶帶禮曹淸
상부(相府)의 벼슬에 오르지 못함을 한하지 말게나 / 莫嗟見奪鳳凰沼
공(公)이 성랑(省郞)에 제수되었다가 친혐(親嫌)으로 행공(行公)하지 못하고 예부(禮部)에 임명되었으므로 말한 것이다.(公拜省朗。以親嫌未出。改禮部。故云。)
웅장(雄壯)한 병영(兵營)에서 마냥 위엄 떨치네 / 嬴得伸威羆虎營
이는 남아가 세상 구제하는 기회이니 / 此是男兒康濟日
축하의 자리에서 술잔을 사양하지 말게나 / 賀筵休讓玉杯行
○영통사(靈通寺)에서 대가(大駕)를 호종(扈從)할 때 어느 천원(天院)의 자의(紫衣)를 빌어 입은 뒤에 되돌려 보내면서 시를 지어 주다
옥당의 늙은 몸이 임금 행차 따를 적에 / 玉堂老漢隨黃屋
금궐의 신선이 자의를 보내왔네 / 金闕仙人寄紫衣
푸른 산 소나무 사이 십리쯤 길에 / 十里靑山松下路
몸에 가득한 문채 아침 햇발이 시샘하구나 / 滿身文彩鬪朝暉
○월 수좌(月首座)가 시랑(侍郞) 조충(趙冲)에게 증여한 운에 차하다. 2수
설날 어찌 비둘기 놓아 줄 필요 있으리 / 正日何須手放鳩
성(姓)이 같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대의 가문 대대로 음덕 쌓았네 / 君家陰德世曾修
높은 재주와 귀한 문벌 겸비하였고 / 才高地貴身兼得
젊은 나이로 청환에 올라 명망이 거룩하네 / 年少官尊望最優
조 상국(趙相國) 영인(永仁)의 계자(季子)로 나이 20여 세에 시랑(侍郞)이 되었다.
손님 접대하는 풍류는 조승을 능가하고 / 愛客頭流傾趙勝
중을 심방하는 운치는 배휴를 압도하네 / 尋僧情況倒裴休
금문(金門)에서 밤마다 숙직함이 괴로워 / 金閨頗厭連宵直
이때에 좌시랑(左侍郞)이 되었다.
다석(茶席)에서 때로는 반나절을 소견(消遣)하네 / 茗席時容半日留
공은 내가 공자(孔子) 배움을 좋아하였고 / 喜我早攀尼父翼
나는 공을 추대하여 문장의 으뜸을 삼았네 / 推公長作華韻頭
평생에 다행히 한 형주의 얼굴을 알았으니 / 此生幸識荊州面
인간의 만호후가 어이 부러울쏜가 / 何羨人間萬戶侯
이상은 조시랑에게 증여한 것이다.
어이 비둘기 성품같이 온순함을 얻을쏜가 / 安馴那得性如鳩
평생토록 강직하여 일찍이 수양을 못하였네 / 强項平生負素修
백련사(白蓮社)에 들어와서도 도연명(陶淵明)처럼 술 마실 것을 생각하고 / 入社猶思陶令飮
하늘 가에 떠돌며 길이 도안의 행장(行裝) 본받았네 / 彌天長服道安優
뜬 세상 객지와 같음을 일찍이 깨달았는데 / 早諳浮世眞如寓
미관말직에 얽매어 있음이 부끄럽구려 / 愧把微官謾道休
초췌한 얼굴은 어부의 웃음거리됨이 괴롭고 / 憔悴苦遭漁父笑
천연한 자취는 가호의 머무름을 달갑게 여기네 / 遷延甘作賈胡留
기구한 운명 이르는 곳마다 가시가 등을 찌르는 듯하고 / 艱危到處芒攢背
세상을 열력해 오니 덧없이 서릿발만 머리에 가득하구나 / 俯仰無瑞雪滿頭
뒷날 암자를 짓고 나를 받아 줄는지 / 卜築他年容我否
신호문(神虎門)에 갓을 걸고 왕후를 사절하리 / 掛冠神虎謝王侯
이상은 월수좌에게 증여한 것이다.
[주D-001]설날……있으리 : 한단(邯鄲)의 백성이 정월 초하룻날 조간자(趙簡子)에게 비둘기를 선물로 바치니, 조간자는 그 비둘기를 날려 보내면서 “은혜를 베푸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였다. 《列子 說符》
[주D-002]조승(趙勝) : 전국 시대(戰國時代) 조 혜문왕(趙惠文王)의 아우로서 평원군(平原君)이라 부르는데, 천하의 인재를 받아들여 식객(食客)이 항상 수천 명에 이르렀다. 《史記 卷76 趙勝傳》
[주D-003]배휴(裵休) : 자(字)는 공미(公美)이니, 당(唐) 나라 때 명신(名臣). 불교(佛敎)를 숭상하여 평일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불교의 교리(敎理)를 연구하여 수만언(數萬言)을 연역(演繹)하였다. 《唐書 卷182 裵休傳》
[주D-004]한 형주(韓荊州) : 당(唐) 나라 때 명신(名臣) 한조종(韓朝宗)을 말한다. 그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이백(李白)이 글을 올려 이르기를 “살아서 만호후 봉함이 필요치 않고, 다만 한 형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이다.” 하였다. 《古文眞寶 卷2 與韓荊州書》
[주D-005]백련사(白蓮社) :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백련사를 결성(結成)하고 서신(書信)으로써 도연명(陶淵明)을 초청하니, 연명의 답서에 “나의 천성(天性)이 술을 즐기는데 법사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면 곧 가겠다.” 하였다. 혜원이 이를 허락하자 연명이 마침내 찾아갔는데, 그가 입사(入社)할 것을 권유하니 연명은 눈썹을 찌푸리고 돌아갔다. 《廬阜雜記》
[주D-006]도안(道安) : 진(晉) 나라 때 고승(高僧)이니, 불도징(佛圖澄)의 제자. 석가(釋迦)보다 존귀한 자가 없다 하여 석(釋)으로서 씨(氏)를 삼았으니, 후세의 불도(佛徒)들이 석씨(釋氏)라고 칭호한 것이 도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梁高僧傳 卷5》
[주D-007]가호(賈胡) : 서역(西域)의 상인(商人)이니, 복파장군(伏波將軍)이 서역의 상인과 같이 어느 한 곳에 당도할 때마다 문득 머무르는 까닭으로 손해가 많았다고 한다. 《後漢書 卷54 馬援傳》
次韻月首座贈趙侍郞冲 二首
正日何須手放鳩。取同姓。君家陰德世曾修。才高地貴身兼得。年少官尊望最優。相國永仁之季子。年二十餘侍郞。愛客風流傾趙勝。尋僧情况倒裴休。金閨頗猒連宵直。時爲左侍。茗席時容半日留。喜我早攀尼父翼。推公長作華韻頭。此生幸識荊州面。何羨人間萬戶侯。
右贈趙侍郞。
安馴那得性如鳩。强項平生負素修。入社猶思陶令飮。彌天長服道安優。早諳浮世眞如寓。愧把微官謾導休。憔悴苦遭漁父笑。遷延甘作賈胡留。艱危到處芒攢背。俯仰無端雪滿頭。卜築他年容我不。掛冠神虎謝王侯。
右贈月首座。
○학정(學正) 진화(陳澕)의 문금운(聞琴韻)에 차하다. 2수
사람과 거문고 암암리에 부합하니 / 人琴幸暗合
줄과 손이 서로 맞는구나 / 絃手穩相迎
예를 사모하니 마음이 더욱 맑고 / 寓古心逾淡
신선을 통했으니 몸도 가볍구나 / 通仙骨欲輕
바위에 흐르는 물결보다 청아하고 / 淸於岩溜落
골짜기에 불어오는 바람같이 그윽하네 / 幽却谷風生
곡조 끝나자 달도 지누나 / 聽罷月微側
우울한 내 마음 깨끗이 씻어다오 / 冷然洗我情
처량한 풍경은 상성(商聲) 곡조가 재촉하고 / 凄景調商促
따스한 봄 기운은 각성(角聲) 가운데 맞이하네 / 陽春撫角迎
달밤에 두어 곡조 마냥 퉁기니 / 數聲敲月漫
꽃 사이에 가볍게 메아리치누나 / 餘韻出花輕
옛 악보(樂譜)는 가슴 속에 환하고 / 舊譜胸中了
새로운 곡조는 상상(想像) 밖에 나왔네 / 新翻意外生
그대의 명곡(名曲)을 나에게 들려 주겠나 / 倩君能聽否
내 늙었지만 풍류는 남아 있다오 / 雖老尙鍾情
[주D-001]상성(商聲) : 오음(五音)의 하나이니, 가을 소리로서 굳세고도 맑다.
[주D-002]각성(角聲) : 오음의 하나이니, 빠르고도 맑다.
○운봉(雲峯)에 있는 노규 선사(老珪禪師)가 조아다(早芽茶)를 얻어 나에게 보이고 유다(孺茶)라 이름을 붙이고서 시를 청하기에 지어 주다
인간이 온갖 맛 일찍 맛봄이 귀중하니 / 人間百味貴早嘗
하늘이 사람 위해 절후(節候)를 바꾸네 / 天肯爲人反候氣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이니 / 春榮秋熟固其常
이에 어긋나면 괴상한 일이건만 / 苟戾於此卽爲異
근래의 습속은 기괴함을 좋아하니 / 邇來俗習例好奇
하늘도 인정의 즐겨함을 따르는구나 / 天亦隨人情所嗜
시냇가 차 잎사귀 이른 봄에 싹트게 하여 / 故敎溪茗先春萌
황금 같은 노란 움 눈 속에 자라났네 / 抽出金芽殘雪裏
남방 사람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아 / 南人曾不怕髬髵
험난함을 무릅쓰고 칡덩굴 휘어잡아 / 冒險衝深捫葛虆
간신히 채취하여 불에 말려서 / 辛勤採摘焙成團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리려 하네 / 要趁頭番獻天子
선사는 어디에서 이런 귀중품을 얻었는가 / 師從何處得此品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르는구려 / 入手先驚香撲鼻
이글이글한 풍로(風爐)불에 직접 달여 / 塼爐活火試自煎
꽃무늬 자기에 따라 색깔을 자랑하누나 / 手點花瓷誇色味
입에 닿자 달콤하고 부드러워 / 黏黏入口脆且柔
어린 아이의 젖 냄새 비슷하구나 / 有如乳臭兒與稚
부귀의 가문에도 찾아볼 수 없는데 / 朱門璇戶尙未見
우리 선사(禪師) 이를 얻음이 괴상하구려 / 可怪吾師能得致
남방의 아이들 선사의 처소 알지 못하니 / 蠻童曾未識禪居
찾아가 맛보고 싶은들 어이 이를쏜가 / 雖欲見餉何由至
이는 아마도 깊은 구중궁궐에서 / 是應蘂闥九重深
높은 선사 대우하여 예물로 보냄이겠지 / 體貌禪英情禮備
차마 마시지 못하고 아끼고 간직하다가 / 愛惜包藏不忍啜
임금의 봉물(封物) 중사시켜 보내왔다네 / 題封勅遣中使寄
세상살이를 모르는 쓸모없는 나그네가 / 不分人間無賴客
더구나 좋은 산수까지 감상하였네 / 得嘗況又惠山水
평생을 불우(不遇)하여 만년을 탄식했는데 / 平生長負遲暮嗟
일품을 감상함은 오직 이것뿐일세 / 第一來嘗唯此耳
귀중한 유다 마시고 어이 사례 없을쏜가 / 餉名孺茶可無謝
공에게 맛있는 봄술을 빚기 권하노니 / 勸公早釀春酒旨
차 들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 喫茶飮酒遣一生
오락가락하며 풍류놀이 시작해 보세 / 來往風流從此始
○다시 위의 운을 따라 지어 주다
서북쪽은 혹한(酷寒)에 손가락 빠지는데 / 西北寒威方墮指
남방에는 섣달 기후 봄과 같구나 / 南方臘月如春氣
좁쌀 같은 누런 싹 마디마다 맺혔으니 / 金粟黏枝已結纇
같은 하늘 아래 지방 절후 각기 다르네 / 均天所覆地各異
선가의 격조(格調) 너무나 높으니 / 禪家調格大高生
시고 단 맛 속세 따라 즐길쏜가 / 豈把酸甛隨俗嗜
쓸쓸한 방장에 한 물건도 없고 / 蕭然方丈無一物
솥에서 차 끓는 소리만 듣기 좋네 / 愛聽笙聲號鼎裏
차와 물을 평론하는 것이 불교의 풍류이니 / 評茶品水是家風
양생하는 천년의 복령(茯苓)이 필요치 않네 / 不要養生千歲虆
차잎이 일찍이 싹틈이 귀여우이 / 憐渠給給抽早芽
늙은 선사(禪師)에게 먼저 바치려 함인 듯 / 似欲先供老衲子
잠꾸러기 종놈도 훔쳐 마시니 / 睡鄕癡漢亦偸嘗
전날의 우레처럼 코 고는 소리 잠잠하구나 / 失却從前雷鼾鼻
옛날 남쪽 나라 한가히 유람할 적에 / 憶昔閒遊蠻國天
사시의 철 따라 새로운 맛 기억되는구려 / 四時隨分嘗新味
덥기 전에 향기로운 차 많이 얻기 어려우니 / 火前香茗得未多
소반에 가득한 봄 죽순과는 판이하구나 / 不似盈盤春笋稚
수많은 잎 따서 한 뭉치 이루었으니 / 摘將萬粒成一餠
한 뭉치에 천금인들 어이 쉽게 구할쏜가 / 一餠千錢那易致
더구나 이제 서울에서 곤경(困境)에 빠졌으니 / 況今憔悴京華中
뉘라서 나를 위해 발이 부르트며 찾아올쏜가 / 爲我何人重趼至
우리 선사는 승도(僧徒) 가운데 영수(領袖)라 / 吾師也是僧中龍
계율(戒律)에 어김 없고 덕행도 구비했네 / 梵行無虧禪德備
산같이 쌓인 금백도 시주(施主)하려 하거던 / 山堆金帛尙欲施
뉘라서 향기로운 차 아껴 보내오지 않으리 / 誰祕新香忍不寄
부디 간직하여 남에게 함부로 주지 말게나 / 收藏愼勿輕與人
마음의 티끌 씻어 물같이 맑게 한다오 / 除却靈臺澄似水
선사에서 봄 술을 빚으라 권함이 어이 잘못이겠나 / 勸師早釀豈妄云
만취한 후에야 차의 참맛을 알기 때문이지 / 欲識茶眞先醉耳
굶주린 서생 오래도록 군침을 흘려 / 書生寒餓長流涎
구복만을 위해 진미(珍味)를 생각하였다오 / 只將口復營甘旨
만약 유다를 보내주고 술도 생긴다면 / 若遣孺茶生稚酒
거룩한 일 우리들로부터 시작되리 / 勝事眞從吾輩始
[주D-001]방장(方丈) : 주지(住持)의 거실(居室)을 말함이니, 당(唐) 나라 왕현책(王玄策)이 서역(西域)에 사신 가서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석실(石室)을 수판(手板)으로 재어본즉 10홀(笏)이 되므로 방장이라고 하였다. 《潛確類書》
○옥당(玉堂) 손득지(孫得之), 사관(史館) 이윤보(李允甫), 사관 왕숭(王崇), 내한(內翰) 김철(金轍), 사관 오주경(吳柱卿)이 화답시(和答詩)를 보내왔기에 다시 운을 따라 화답하다
옛날에 신농씨 온갖 초목 맛보고 / 昔者神農嘗草木
방경을 저술함은 기혈을 보충하기 위함일세 / 著之方經要補氣
유독 차만은 기록 없이 버려두어 / 獨於茗飮棄不收
온갖 품종과 공효(功效)를 논하지 아니하였네 / 不與萬品論同異
성인의 말하지 않은 바를 뉘 먼저 평론했던가 / 聖所未到誰唱先
견혼 석연이 더욱 즐겨하던 바로세 / 蠲昏釋䬼尤所嗜
요사이 사고 파는데 속임수 많아 / 近遭販䰞多眩眞
간상(奸商)의 수중(手中)에 모두 떨어졌구나 / 競落黠商謀計裏
세속의 의원들이 선방에 어두운 것과 같아 / 有如俗醫迷仙方
망녕되게 산머루를 가리켜 칡덩굴이라네 / 妄把蘡薁云是虆
그 가운데 품평에 정묘한 자 있으니 / 箇中評品妙且精
오직 운봉에 숨어 있는 한 선사일세 / 唯有雲峰一禪子
섣달에 움트는 싹 평생에 가장 사랑하여 / 平生自笑臘後芽
맵고 강렬한 향기 코를 찌르는구나 / 辛香辣氣堪掩鼻
몽산에서 먼저 딴 차 우연히 구입하여 / 偶得蒙山第一摘
끓기도 전에 우선 맛보았네 / 不待烹煎先嚼味
미치광이 손 한번 맛보고 유다라 이름했으니 / 狂客一見呼孺茶
늙은 나이에 어린애처럼 탐내는데야 어이하리 / 無奈老境貪幼稚
강남 눈 속에서 따지 않았다면 / 不是江南冒雪收
이월 중에 어이 서울 당도하리 / 京華二月何能致
물건 팔림이 모두 사람에 달렸으니 / 物之自售皆由人
구슬도 다리 없지만 스스로 찾아오네 / 珠玉亦猶無脛至
시로써 논평하여 보계(譜系)에 대신하고 싶지만 / 作詩論詰欲代譜
붓 끝에 혀 없으니 자세히 진술할 수 없구나 / 筆端無舌莫詳備
유선으로 하여금 그 정수(精粹)를 발췌하게 하여 / 要令儒仙抉其精
허술한 종이와 추솔한 글씨로 써 보내오 / 硬牋麤字書以寄
일본(一本)을 써서 금림(禁林)의 제공(諸公)에게 보이다.(書一本示禁林諸公。)
다섯 친구들 연원 찾는 데 노력하였기에 / 五君騁思採淵源
거울에 비치듯 조금도 어긋남이 없네 / 毫髮莫逃如印水
시를 감상해 보니 다경보다 나으이 / 見詩猶勝見茶經
육생의 품평한 것도 찌꺼기에 불과하구려 / 陸生所品糟粕耳
한 구절은 실전(失傳)하였다.(失一句。)
격조 높은 이소경에 붙임은 옳지 않지만 / 調高未合綴離騷
시편에 실려 사성(四聲)에 연결함은 마땅하이 / 當繫詩篇聯四始
[주D-001]신농씨(神農氏) : 중국 고대(古代) 삼황(三皇)의 한 사람이니, 그가 백 가지 초목(草木)을 맛본 후에 비로소 의약(醫藥)이 있게 되었다. 《史記 三皇紀》
[주D-002]견혼 석연(蠲昏釋䬼) : 승도(僧徒)의 이름인 듯하나 미상.
[주D-003]몽산(蒙山) :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명산(名山). 차의 소산지(所産地)로서 그 차는 독특한 향기가 있어 상청봉(上靑峯)에서 소산되는 차를 몽정다(蒙頂茶)라고 한다. 《太平寰宇記》
[주D-004]육생(陸生) : 육우(陸羽)이니, 당(唐) 나라 때 명사(名士). 차를 심히 즐겨하여 다경(茶經) 3편을 지었는데, 이로부터 천하(天下)가 차를 숭상하게 되었다. 《唐書 卷196 陸羽傳》
[주D-005]이소경(離騷經) : 초사(楚辭)의 편명(篇名)으로 굴원(屈原)의 저작임. 굴원이 초 나라에 벼슬하여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겼는데 상관대부(上官大夫)가 그를 참소한 까닭으로 추방을 당하여 우수 사려(憂愁思慮)에 잠겨 지은 서정시(敍情詩)로서 사부(詞賦)의 으뜸이 된다.
[주D-006]사성(四聲) : 평성(平聲)ㆍ상성(上聲)ㆍ거성(去聲)ㆍ입성(入聲)이니, 사성으로서 음운(音韻)의 고저(高低)와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구분한다.
○손 한장(孫翰長)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기증하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문장가들이 / 古今作者雲紛紛
초목을 품제(品題)하여 호탕한 기개 발휘했네 / 調戲草木騁豪氣
장구(章句)를 마탁하여 스스로 기이함을 자랑했는데 / 磨章琢句自謂奇
사람들의 읊조림은 취미 각각 다르구나 / 到人牙頰甘苦異
장원의 시 홀로 대중에서 뛰어났으니 / 壯元詩獨窮芳腴
아름다운 문장 뉘라서 찬탄하지 않으리 / 美如熊掌誰不嗜
임금님이 구중궁궐(九重宮闕)에 불러들여 / 玉皇召入蓬萊宮
은대의 요직(要職)에 등용하였네 / 揮毫吮墨銀臺裏
그대는 낙락한 천길 소나무라면 / 君材落落千丈松
불초한 이 몸은 칡덩굴 같으이 / 攀附如吾類縈虆
그대와 동료(同僚)가 아니므로 언급(言及)하였다.(不與君同寮。故云。)
우연히 유다의 시를 지었는데 / 率然著出孺茶詩
그대에게 전해짐을 어이 뜻했으리 / 豈意流傳到吾子
시를 보자 화계 놀이 홀연히 추억되구려 / 見之忽憶花溪遊
화계(花溪)는 차의 소산지(所産地)인데, 그대가 진양(晉陽)에서 부기(簿記)를 맡아 볼 때 찾아가 보았으므로 화답한 시(詩)에 언급(言及)하였다.(花溪。茶所產。君管記晉陽時往見。故來詩及之。)
옛일 생각하니 서럽게 눈물이 나네 / 懷舊悽然爲酸鼻
운봉의 독특한 향취 맡아보니 / 品此雲峯未嗅香
남방에서 마시던 맛 완연하구나 / 宛如南國曾嘗味
따라서 화계에서 차 따던 일 논하네 / 因論花溪採茶時
관에서 감독하여 노약(老弱)까지도 징발(徵發)하였네 / 官督家丁無老稚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따 모아 / 瘴嶺千重眩手收
머나먼 서울에 등짐 져 날랐네 / 玉京萬里頳肩致
이는 백성의 애끊는 고혈(膏血)이니 / 此是蒼生膏與肉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바야흐로 이르렀네 / 臠割萬人方得至
한 편 한 구절이 모두 뜻 있으니 / 一篇一句皆寓意
시의 육의 이에 갖추었구나 / 詩之六義於此備
농서의 거사는 참으로 미치광이라 / 隴西居士眞狂客
한평생을 이미 술 나라에 붙였다오 / 此生已向糟丘寄
술 얼근하매 낮잠이 달콤하니 / 酒酣謀睡業已甘
어이 차 달여 부질없이 물 허비할쏜가 / 安用煎茶空費水
일천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마련했으니 / 破却千枝供一啜
이 이치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이없구려 / 細思此理眞害耳
그대 다른 날 간원에 들어가거든 / 知君異日到諫垣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하게나 / 記我詩中微有旨
산림과 들판 불살라 차의 공납(貢納) 금지한다면 / 焚山燎野禁稅茶
남녘 백성들 편히 쉼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 唱作南民息肩始
[주D-001]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의 별칭(別稱)으로,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담당하였다.
[주D-002]육의(六義) : 풍(風)ㆍ아(雅)ㆍ송(頌)ㆍ부(賦)ㆍ비(比)ㆍ흥(興)을 가리켜 말한다.
○장원(壯元) 방연보(房衍寶)가 화답시를 보내왔기에 차운하여 화답하다
거사 근년 들어 일만 인연 마쳤는데 / 居士年來了萬緣
오직 시광만은 옛 기습 남아 있구려 / 唯有詩狂餘習氣
세상에는 범연히 다루지 못할 물건도 있으니 / 物或不類尋常看
정밀히 분석하여 그 기이함을 기록했구나 / 窮搜細剖狀其異
이 차가 고급품인데 어이 시 없을쏜가 / 此茶品絶可無詩
하물며 평생에 가장 즐기던 것이랴 / 況復平生素酷嗜
멀리 이 자리에 반입됨은 뉘 공궤함이런가 / 悠然到此誰所餉
아마도 아지랑이 자욱한 강회에서 보내왔으리 / 想自江淮煙瘴裏
맑은 향취 새어나갈까 염려하여 / 爲恐淸香先發洩
상자 속에 겹겹이 간직하고 칡덩굴로 묶었어라 / 牢繅縹箱纏紫虆
깊이 숨겨 정든 친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니 / 祕之不敢示情親
녹록한 나머지 사람들이야 말할 게 있나 / 碌碌何曾數餘子
마음에 간직하여 차 알아주는 사람만 기다렸으니 / 寓心獨待識茶人
지기(知己)가 아니라면 뉘라서 그 진가(眞價) 알아주리 / 不是風斤誰斲鼻
퉁노구 깨뜨리고 불도 꺼버려 오래 끓이지 않으니 / 碎鐺撲火久不煎
경망한 아이들 훔쳐 마실까 염려했네 / 正怯兒曹輕品味
비유컨대 부귀의 집 깊은 규중에서 / 譬如富貴深閨中
어여쁜 처녀 기르듯이 하는구나 / 養得嬌姹鴉頭稚
눈이 높아 범상한 신랑에게 시집갈까 두려워했고 / 眼高深恐嫁凡婿
동상의 아름다운 낭군(郞君) 만나기를 원하였네 / 着意東床期欲致
내가 누구기에 감히 귀한 차 맛보는가 / 我今何者敢來試
뜻밖에 신선의 연분 만나서이네 / 意外忽逢仙分至
방공은 어엿한 하늘 위 사람이라 / 房公落落天上人
방공(房公)이 이때 내시(內侍)로 있었다.
저부(褚裒)의 가슴속에 춘추(春秋) 의리 갖추었네 / 褚裒皮裏陽秋備
인물 평론하는 여가에 차에 언급하여 / 評人餘論移於茶
그 내력 해설(解說)하여 보내왔구나 / 說脈論源聊見寄
읊어보매 모든 번민 말끔히 씻겨버려 / 讀了冷冷洗煩悶
만취한 얼굴에 찬물 뿌린 듯하여라 / 恰如醉面洒寒水
차 대하여 술 찾음이 미치광이 같으니 / 對茶索酒頗似狂
우습구나 먼저 말은 참으로 희롱이라오 / 可笑前言眞戲耳
다른 날에 그윽한 암자 찾아가 / 草庵他日叩禪居
두어 권 서책 펼치고 현묘한 이치 토론하리 / 數卷玄書討深旨
이 몸 늙었으나 오히려 물 길을 수 있으니 / 雖老猶堪手汲泉
한 바리때 물 떠놓고 참선할까 하노라 / 一甌卽是參禪始
[주D-001]동상(東床) : 극감(郄鑒)이 문생(門生)으로 하여금 왕도(王導)의 문하(門下)에서 사윗감을 간택하게 하였더니 왕씨 문중(王氏門中)의 여러 소년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자신(自身)을 칭양하였으나, 왕희지(王羲之)만은 배를 드러내고 동상(東床)에 누워 모른 체하자 그를 사위로 삼았다. 《晉書 卷80 王羲之傳》
[주D-002]저부(褚裒) : 자(字)는 계야(季野)이니, 진(晉) 나라 때 명신(名臣)이다. 젊어서부터 고상(高尙)한 운치가 있어, 환이(桓彝)의 말에 “계야는 가슴속에 춘추(春秋)의 의리가 있다.” 하였다. 《晉書 卷93 褚裒傳》
房狀元衍寶見和。次韻答之。
居士年來了萬緣。唯有詩狂餘習氣。物或不類尋常看。窮搜細剖狀其異。此茶品絶可無詩。况復平生素酷嗜。悠然到此誰所餉。想自江淮煙瘴裏。爲恐淸香先發洩。牢鎖縹箱纏紫蘽。秘之不敢示情親。琭琭편001何曾數餘子。寓心獨待識茶人。不是風斤誰斲鼻。碎鐺撲火久不煎。正怯兒曹輕品味。譬如富貴深閨中。養得嬌姹鵶頭稚。眼高深恐嫁凡婿。着意東床期欲致。我今何者敢來試。意外忽逢仙分至。房公落落天上人。房爲內侍。褚裒皮裏陽秋備。評人餘論移於茶。說脉論源聊
見寄。讀了冷冷洗煩悶。恰如醉面洒寒水。對茶索酒頗似狂。可笑前言眞戱耳。草庵他日叩禪居。數卷玄書討深旨。雖老猶堪手汲泉。一甌卽是參禪始。
[편-001]琭琭 : 碌碌
○손 한장(孫翰長)의 집에서 옛사람의 운을 차하여 봄눈을 읊다
정림(庭林)에 두루 내려 푸른 잎 눌렀으니 / 洒遍庭林壓綠叢
춥고 따뜻한 기후 하늘을 믿을 수 없구나 / 寒暄未可信天翁
강남에서 날아오는 제비떼 멈칫할 테며 / 防他江上南來鷰
북방으로 떠난 기러기 아마 뉘우치리 / 悔殺雲間北去鴻
매화나무 언덕에 나부끼니 꽃이 땅에 가득한 듯하고 / 梅塢飄將花滿地
버드나무 둑에 날아드니 솜털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하네 / 柳堤飛趁絮隨風
다만 절기(節氣)가 어긋남이 혐의스럽지 / 但嫌時令乖和氣
우리들 풍류 놀이에야 뭐가 해로울쏜가 / 豈害吾儕爛醉中
○기 평장(奇平章)의 만사(挽詞)를 한림원(翰林院)에서 지어 올리다
철석 같은 마음 세 조정을 섬겼으니 / 三朝翼亮鐵心堅
부귀 공명 사십 년을 누렸어라 / 富貴功名四十年
상부(相府)에서 일찍이 정승의 인끈 허리에 찼고 / 鳳閣早腰丞相印
오산에서 사신의 직책 겸임하였네 / 鼇山兼領史臣權
벼슬에서 일찍 물러나 한가함을 도모했는데 / 金章解早方圖逸
공(公)이 연로(年老)함을 빙자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公引年致仕。)
묘당(廟堂)에는 일이 많아 어진 인재 필요하네 / 紫府微忙亦要賢
지관이 쓸쓸하여 봄풀만 우부룩한데 / 池館蕭然空碧草
지관(池館)은 앵계리(鸎溪里)에 있는 퇴식재(退食齋)를 말한다.(鷪溪里退食齋也。)
옥 같은 사람 가버리니 눈물 금할 길 없네 / 玉簪零落淚如泉
[주D-001]오산(鼇山) : 발해(渤海) 동쪽에 있는 선산(仙山)을 말한다. 《列子 湯問》
○산호전(山呼殿) 내도량(內道場)의 주지 혜 수좌(惠首座)를 찾아가 자모란(紫牡丹)을 부(賦)하다
대궐 안에 있지 못한 자줏빛 모란 / 頑紅未合近宮闈
궁녀(宮女)의 옷 색깔을 닮았구나 / 却學中人身上衣
색깔이 고와 닭의 볏을 능가하고 / 色厚全欺鷄髻淺
향기 짙으니 사향도 무색하구나 / 香濃應笑麝臍微
임금님의 정을 쏟아 감상함을 받으려고 / 貪承萬乘鍾情賞
해마다 임금님께서 찾아와 감상(鑑賞)하셨다.(年年主上來賞。)
온갖 꽃 드문 시절 짐짓 기다렸네 / 故待千花入眼稀
궁중에서 귀히 여긴다고 구보에서 들었지만 / 舊譜曾聞紫中貴
범상한 재주로는 진가(眞假)를 모르겠네 / 才凡未識是耶非
○다시 화답하다
한 송이 신선의 꽃 궁중에 있어 / 一朶仙花在禁闈
해마다 길이 임금님 총애 받는구나 / 年年長近柘黃衣
조화옹(造化翁)은 붉은 빛깔 넉넉히 부여해 주었는데 / 天工過與紅顔釅
세속 안목은 도리어 자줏빛이라 부르는구나 / 世眼翻成紫色微
궁중에서는 일천 품종의 으뜸으로 전하는데 / 闕下方傳千品最
민간에서는 양경의 품종이 드물다 떠들어대네 / 人間喧道兩京稀
모란에 양경의 품종이 있다.(牧丹有兩京身。)
명성 있는 두목이 서로 만나본다면 / 聞名杜牧如相見
고운 모양 대하여 어이 수긍(首肯) 않으리 / 豈對姸姿更認非
두목(杜牧)의 말에 “들으니, 자운(紫雲)이라는 기녀(妓女)가 있다 하는데 누구냐?” 하였다.(杜牧云。聞有紫雲誰是。)
[주D-001]두목(杜牧) : 자(字)는 목지(牧之)요 호(號)는 번천(樊川)이니, 당(唐) 나라 때 명신(名臣)이다. 시부(詩賦)에 능(能)하고 풍류(風流)와 아량(雅量)이 있었다. 《唐書 卷166 杜牧傳》
○봄날 호협(豪俠)의 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 시를 짓다
이 몸 병들어 봄놀이도 시들하다가 / 自緣病肺懶尋春
오늘 아침에야 교외(郊外)에서 한가히 거닐었네 / 紫陌今朝散步巡
그대 집에서 술자리 열어 친구들 초청하여 / 賴有君家開劇飮
우리들로 좋은 시절을 그냥 보내지 않게 했네 / 免敎吾輩負芳辰
꽃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손님을 잘 만류하고 / 花顔嬌姹工留客
술 기운 강렬(强烈)하여 사람을 취하게 만드네 / 酒力麤剛解倒人
모란꽃 꺾어 춤추는 기녀에게 던져주고서 / 挼碎牧丹投舞妓
얼굴 붉히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누나 / 故看頩頰薄生嗔
○또 쌍비파(雙琵琶) 타는 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시를 부르다
머리 위에 옥로화 비껴 꽂고서 / 帶玉露花頭上揷
손에 든 금잔에 술 가득히 부었어라 / 滿金杯酒手中傾
한쌍의 기생 참으로 선녀 같은데 / 一雙倡妓眞仙子
함께 비파 울려 봉황의 소리 내는구나 / 齊把琵琶作鳳鳴
○책상 위의 세 가지 품종을 읊다
작은 화분(花盆)에 심겨진 석창포(石菖蒲)
온갖 물건 잘 자라고 쇠퇴함이 / 凡物之榮悴
모두 땅의 비옥하고 척박함에 달렸네 / 皆因地瘠肥
토질이 좋은 곳에 심었더라도 / 土肉厚封植
때로는 오히려 병들까 두려운 것인데 / 猶恐有時腓
아 너는 이 이치와 판이했으니 / 嗟爾異於是
성품이 기름진 땅과는 맞지 않는구나 / 性與膏泥違
조그만 화분의 밑바닥부터 / 區區硬盆底
잔돌 깨어 찹찹하게 쌓았어라 / 鑿鑿碎石圍
이것이 너의 뿌리를 내릴 곳인데 / 是汝託根處
땅의 기운이 어디로 올라오나 / 地脈安所歸
푸른 잎 자라나 무성해지니 / 綠葉滋暢茂
그래도 한 자쯤은 바랄 수 있네 / 尋尺猶可希
새벽녘 맑은 이슬 가장 귀여워 / 最愛淸曉露
구슬처럼 방울방울 맺혀 있구나 / 團團綴珠璣
쓸쓸한 책상 위에 놓여 / 蕭然几案上
길이 나와 서로 의지하누나 / 永與我相依
푸른 자기(磁器) 연적자(硯滴子)
어느 한 청의동자(靑衣童子) / 幺麽一靑童
고운 살결 백옥 같구나 / 緻玉作肌理
허리 굽실거리는 모습 공손하고 / 曲膝貌甚恭
얼굴과 눈매도 청수(淸秀)하구나 / 分明眉目鼻
종일토록 게으른 태도 없어 / 競日無倦容
물병 들고 벼룻물 공급하네 / 提甁供滴水
내 원래 풍월 읊기 좋아하여 / 我本好吟哦
날마다 천 수(千首)의 시 지었노라 / 作詩日千紙
벼루 마르매 게으른 종 부르면 / 硯涸呼倦僕
게으른 종 거짓 귀먹은 체하였네 / 倦僕佯聾耳
천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 / 千喚猶不應
목이 쉰 뒤에야 그만두었지 / 喉嗄乃始已
네가 옆에 있어 준 뒤로는 / 自汝在傍邊
내 벼루에 물 마르지 않았다오 / 使我硯日泚
네 은혜 무엇으로 갚을쏜가 / 何以報爾恩
삼가 간직하여 깨지 않으려 하노라 / 愼持無碎棄
죽연갑(竹硯匣)
외로운 대 온갖 풍상 겪었는데 / 孤竹飽霜雪
남방 사람들 경솔히 베었구나 / 南人輕剪截
묻노니 너의 소원 무엇인가 / 問爾心所屬
하찮은 물건되는 건 달갑지 않다오 / 凡百皆不悅
악공(樂工)들 부는 젓대 될 양이면 / 被人作笛吹
입술과 혀 닿음이 부끄럽고 / 恥趁脣與舌
아이들 타는 죽마(竹馬) 될 양이면 / 被兒作馬騎
사타구니 밑에 드는데 어이하리 / 出胯無奈劣
소원은 책상 위에 참여하여 / 願來几案間
날마다 시인과 친히 지내려 했네 / 日與詩人媟
이 서적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 此書有足嘉
서재(書齋) 가운데 진열함이 마땅하네 / 宜備書筵設
내 벼루 위 티끌을 막아주어 / 障我硯中塵
내 벼루 항상 깨끗하게 하였네 / 使我硯池潔
점친 사연 기록하고 시도 초하여 / 占書與裁詩
잠시도 쉴새없이 팔뚝 빠질 듯하구나 / 腕脫不容輟
너를 인하여 벼슬에 오른다면 / 緣汝若得官
너의 굳은 절개를 본받으리 / 效爾堅貞節
案中三詠
小盆石菖蒲
凡物之榮悴。皆因地瘠肥。土肉厚封植。猶恐有時腓。嗟爾異於是。性與膏泥違。區區硬盆底。鑿鑿碎石圍。是汝託根處。地脉安所歸。綠葉滋暢茂。尋尺猶可希。最愛淸曉露。團團綴珠璣。蕭然几案上。永與我相依。
綠甆硯滴子
幺麽一靑童。緻玉作肌理。曲膝貌甚恭。分明眉目鼻。競日無倦容。提甁供滴水。我本好吟哦。作詩日千紙。硯涸呼倦僕。倦僕佯聾耳。千喚猶不應。喉嗄乃始已。自汝在傍邊。使我硯日泚。何以報爾恩。愼持無碎棄。
竹硯匣
孤竹飽霜雪。南人輕剪截。問爾心所屬。凡百皆不悅。被人作笛吹。恥趁脣與舌。被兒作馬騎。出胯無奈劣。願來几案間。日與詩人媟。此意有足嘉。宜備書筵設。障我硯中塵。使我硯池潔。占書與裁詩。腕脫不容輟。緣汝若得官。效爾堅貞節。
○예성강(禮成江)에서 우연히 시를 읊다 2수 내가 천우참군(千牛參軍)으로서 조선(漕船 관선(官船)으로서 주로 세곡(稅穀), 군량(軍糧) 등을 운반한다)을 고사(考査)하였다.
죽림이 둘린 맑은 강에서 조선을 조사하니 / 竹繞淸江課漕船
백사장 가에서 사공들 굽실거리네 / 篙工羅拜白沙邊
수군들 뒤를 옹위하여 화각(畫角) 소리 요란하니 / 海軍擁後猶吹角
놀란 갈매기떼 가까이 오지 못하는구나 / 鷗鷺驚飛不自前
해오라기 날 때 시 읊는 운치 상쾌하고 / 江鷺飛時吟正快
조수 들어오자 말 소리도 웅장하구나 / 海潮來後語還雄
우연히 강호의 풍경 그려내니 / 偶然傳寫江湖景
근래에 글짓는 공부 늘었는가봐 / 錯認年來狀物工
○시(詩) 원고(原稿)를 불사르다 3백여 수를 불사르다.
소년 시절 가사를 저술하여 / 少年著歌詞
붓만 잡으면 멈출 줄 몰랐네 / 下筆元無疑
스스로 아름다운 구슬같이 여겼으니 / 自謂如美玉
뉘라서 감히 하자를 논할쏜가 / 誰敢論瑕疵
그런데 뒷날 다시 검열해 보니 / 後日復尋譯
편편마다 좋은 글귀 하나도 없구나 / 每篇無好辭
차마 상자 더럽힐 수 없어 / 不忍汚箱衍
불살라 밥 짓는 데 버렸네 / 焚之付晨炊
작년의 시문(詩文) 금년에 상고하니 / 明年視今年
흠절 예전과 다름없구나 / 棄擲一如斯
고 상시는 이런 때문에 / 所以高常侍
나이 오십에야 시 지었지 / 五十始爲詩
[주D-001]고 상시(高常侍) : 이름은 적(適)이요 자(字)는 달부(達夫)로 당(唐) 나라 때 시인(詩人)이다. 나이 50에야 시를 짓기 시작했지만 재사(才思)가 특출했으며 벼슬은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唐書 卷143 高適傳》
○응 선사(應禪師) 방장(方丈)을 심방(尋訪)하다 3수
거사의 귀밑털 서릿발같이 희었구려 / 居士皤然鬢欲霜
절을 찾아 스님과 담화하며 세월 보냈네 / 尋僧訪寺度年光
세상에 고명한 분 오직 선사뿐이니 / 世間只有禪公室
만날 적마다 현묘한 이치 들었어라 / 每到深斟大道漿
시의 풍정 담담하여 운치 없고 / 詩情淡薄渾無味
관가의 상황도 냉락하여 흥미 적구나 / 官況闌珊自少歡
가끔 난융 만나지만 이야기 도리어 시들하니 / 時訪懶融還懶話
푸른 등불 아래 포단에서 고이 졸았네 / 靑熒燈畔睡蒲團
포단에서 곤히 졸아 갓이 벗겨졌는데 / 蒲團睡熟落冠巾
방은 고요하여 인기척 없구나 / 空室寥寥不見人
고쳐 앉아 마음 맑혀 온갖 생각 사라졌는데 / 更坐觀心融萬想
휘영청 밝은 달도 티끌 한점 없구려 / 炯然明月自無塵
[주D-001]난융(嬾融) : 선사(禪師)의 이름.
○다시 옥당에 제수(除授)되어 시를 지어 벽 위에 쓰다
원래 옥당은 어진이 위해 마련됐는데 / 玉堂本爲待賢開
맑은 반열에 다시 들아오니 이 졸렬함이 부끄럽구려 / 重玷仙班愧不才
원리와 요원들 예대로 남아 있으니 / 院吏寮員仍舊在
다시 고향에 돌아온 듯하구나 / 依然如入故鄕來
○낭중(郞中) 이인로(李仁老)와 한림(翰林) 손득지(孫得之)가 화답해 왔기에 다시 위의 운에 차하다
은대와 옥당 마주 대해 서 있는데 / 銀臺直對璧門開
예로부터 한림의 청선(淸選) 더욱 고상했었네 / 自古尤難選翰才
한 발자국 화전(花甎)도 오히려 과분하거든 / 一步花甎猶過望
오유(汚儒)의 다시 들어옴이 얼마나 요행이런가 / 愚儒何幸得重來
○시장(市場) 가에 있는 묘 정자(苗正字)의 대은루(大隱樓)에 제(題)한 진 한림(陳翰林)의 시에 차운하다
내가 대문 닫아걸고 손님 없이 술마시기 원하지 않고 / 我不欲閉門飮酒省賓客
장안 네거리에서 술꾼을 모아놓고 큰 잔으로 마시고 싶었네 / 欲向長安市上大會酒徒浮大白
또 그윽한 방에서 가냘픈 목소리로 가사(歌詞) 부름을 원하지 않고 / 又不欲曲房密室唱小詞
호걸의 집에서 풍악 갖추고 노래 부르고 싶었네 / 欲向豪家俠宅高歌與吹笛
시름 있는 사람 얼굴 찌푸리고 근심을 말하지 않으면 / 愁人矉額不言愁
얼음 밑에 물 쪼르륵거리며 쾌활히 흐르지 못함 같다오 / 有如氷底之水嗚咽不快流
대장부 시름 있으면 큰 소리로 통곡해야지 / 丈夫愁來卽大哭
머리 떨어뜨리고 부질없이 눈물은 흘리지 않아야 하네 / 不宜暗泣空低頭
행복하구나 묘군은 큰 도시 가운데 숨어 있으면서 / 幸哉苗君大隱九市中
깊숙한 청산에서 솔잎 씹으며 물 마시는 자를 웃는구려 / 笑却喰松喫水靑山幽
○천원(天院) 백비화(白賁華)의 집에서 백낙천(白樂天)의 시운에 차하여 해당화(海棠花)를 읊다 이수재(李秀才)도 함께 지었다.
선생의 가꿔준 심정 아는 듯 / 似識先生用意栽
짐짓 좋은 절후 맞추어 활짝 피었네 / 故應恰恰趁時開
요염한 공비 임춘각에 모신 듯하고 / 龔妃嬌侍臨春閣
무산(巫山)의 신녀(神女) 양대(陽臺)에 내린 듯하구나 / 楚女閑過夢雨臺
햇빛에 비치어 술 취한 듯 얼굴이 붉고 / 映日醺酡顔更爛
수줍은 듯 수풀에 가려 웃음을 띠었네 / 隔林羞澁笑猶廻
잠깐 피었다 지는 꽃 꿈결 같기에 / 浮紅一餉終如夢
내일 아침 다시 술 싣고 오기로 기약했네 / 更約明朝把酒來
[주D-001]임춘각(臨春閣) : 진 후주(陳後主) 지덕(至德) 2년에 광소각(光昭閣) 앞에 결기(結綺)ㆍ임춘(臨春)ㆍ망선(望仙)의 세 누각(樓閣)을 세웠는데, 모두 침단향목(沈檀香木)으로 구조(構造)하였고 금은 보옥으로 장식하였으며, 기화요초(奇花瑤草)를 심어 사치를 다하였다. 후주(後主)는 임춘각에 거처하고 장 귀비(張貴妃)는 결기각에 거처하였으며, 공(龔)ㆍ공(孔) 두 귀빈(貴嬪)은 망선각에 거처하였다. 《南史 張貴妃傳》
[주D-002]무산(巫山)의 신녀(神女) :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 유람할 적에 꿈에 한 부인이 찾아와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신녀인데 그대가 고당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침석에 모시고자 왔습니다.” 하였다. 왕이 그의 소원대로 시침(侍寢)하도록 하였더니, 돌아가면서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정상(頂上)에 있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에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宋玉 高唐賦》
○유월 이십일 오랜 비가 홀연히 개어 손과 함께 동산을 거닐며 본 바를 기록하다
열흘 남짓 장맛비 짓궂으니 / 經旬鏁暗雨
반갑지 않은 손님 오래 머무름 같더니만 / 似厭惡客寓
오늘에야 날씨 깨끗이 개니 / 今日朗新晴
정든 옛친구 만난 듯하구나 / 如與故人遇
원림(園林)에 거닐며 홀로 시 읊으니 / 遶園行獨吟
맑은 그늘 사람의 발걸음 유인하네 / 淸陰引幽步
푸르른 나뭇잎 우거진 사이에 / 深深綠葉間
흰 이슬 방울방울 떨어지네 / 滴滴啼餘露
연못물은 거울같이 맑고 / 池鏡耿可鑑
담장의 등덩굴 점점 자라나누나 / 墻衣綠漸布
살구는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 杏子爛黃金
입에 넣으매 젖보다도 달구나 / 入口甘於乳
오얏은 주홍빛으로 익었구려 / 朱李倒紅腮
나와 성 같음이 가장 귀여워 / 最憐同姓樹
능금은 구슬같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 林檎綴珠琲
그 맛이 시고도 떫구나 / 頗覺味釅苦
오이덩굴은 울타리에 뻗어올랐고 / 瓜蔓走長籬
난초꽃은 그윽한 정원에서 향기 풍기누나 / 蘭華被幽圃
한가로이 자연의 조화 구경하니 / 悠哉觀物化
이것 역시 그윽한 취미 붙일 만하네 / 亦足養眞趣
○칠월 십일 대안사(大安寺)에 유람하여 시를 제(題)하다
기이한 절벽 사이로 오솔길 둘렸는데 / 路接巉巖絶壁前
흰 구름 뭉게뭉게 연기같이 솟아오르네 / 晴雲蓬渤湧如煙
흐르는 물 반석 사이로 굽이굽이 돌아 나가고 / 流泉遇石徘徊去
넌출진 칡덩굴 소나무 타고 꾸불꾸불 감겼구나 / 走葛緣松委曲纏
암자 고요하니 한가로운 세계요 / 僧院寂寥閑世界
동문 활짝 열렸으니 별다른 신선일세 / 洞門寬曠別神仙
뉘라서 선주(仙酒)를 나눠 보내어 / 何人乞與霞漿飮
티끌에 물든 이 창자 깨끗이 씻어볼거나 / 爲洗紅塵舊骨膻
○팔월에 홀연히 이화(梨花)가 만발함을 보고서 2수
봄꽃과 가을꽃 한 나무에서 거듭 폈으니 / 秋光春色忽同枝
하늘의 조화 원래 추측할 길 없구나 / 造物由來固莫涯
일년에 꽃 두 번 핌을 징험한다면 / 若驗一年花再發
수척한 이 얼굴도 다시 젊을 때 있을는지 / 衰顔儻有更紅時
소슬한 가을 바람 불어오는데 / 颯颯金風肅
때아닌 배꽃 만발하였네 / 娟娟玉蘂新
하늘의 조화옹(造化翁)이 술에 취하여 / 羲和天上醉
지나간 봄을 잘못 보냈는가봐 / 錯遣已歸春
○석양에 초당(草堂)에서 금객(琴客)을 맞이하여 술자리를 베풀다
석양에 온갖 감상 덧없이 착잡한데 / 落日無端百感生
띳집에 고요히 앉았으니 감회가 더욱 어떠하리 / 茅齋閒坐若爲情
서릿바람은 가을 수풀 붉게 물들였고 / 霜風釀作秋光釅
놀과 달빛은 늦은 풍경 장식했구나 / 煙月裝成晩景淸
옛친구 찾아와 거문고 울리는데 / 賴有故人彈綠綺
어린 아들 불러 술을 따르게 하였네 / 時呼稚子酌烏程
이때 내 먼저 주령을 내려 / 此時酒令吾先畫
한 곡조 끝나자 두어 잔 돌렸네 / 弄一聲來輒數觥
○눈을 읊다. 3수
하늘에 휘날리고 땅을 뒤덮어 끝이 없고 / 匝地渾天同浩浩
높은 산에 쌓이고 구덩이 메워 아득하구나 / 埤高塡塹混茫茫
소매에 나부끼다가 머뭇머뭇 사라지니 / 飄颻點袂逡巡滅
여섯 모를 이룬 그 이치 알 길 없구나 / 六出功夫未細詳
물에 들면 자취 없고 땅 위에는 무더기 이루는데 / 入水無蹤着地堆
처마 앞 날아가다 바람 만나 되돌아오네 / 過簷飛去遇風廻
너울너울 춤 추어 나비인가 의심하였고 / 却因喜舞全欺蝶
이름을 붙인다면 매화와 분간할 수 없겠네 / 若更儲名莫辨梅
은 봉우리 이루어 창문 앞에 나열하였고 / 簇成銀嶺擁窓前
구슬 바퀴 만들어 길가에 버려두었네 / 推作瓊輪委路邊
이것이 백염과 밀가루라면 / 若是白鹽兼粉麪
자기 집 뜰의 것도 혼자 사용하기 어려우리 / 自家庭砌尙難專
○수세(守歲)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 꽂음이 얼마나 괴상한가 / 門上揷桃何詭誕
뜰 가운데 폭죽 소리 시끄러운들 어이하리 / 庭中爆竹奈支離
벽온단으로 온역(瘟疫) 피함도 헛말이지만 / 辟瘟丹粒猶虛語
술마시기 위해 짐짓 사양하지 않았노라 / 爲倒醇醅故不辭
[주C-001]수세(守歲) : 섣달 그믐날 밤, 궁중에서는 폭죽(爆竹) 소리와 만세(萬歲) 소리가 가득하고, 사서인(士庶人)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지새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東京夢華錄》
[주D-001]대문……꽂음이 : 정월(正月) 초하룻날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를 꽂아 재앙을 물리친다고 한다. 《晉書 禮志》
[주D-002]벽온단(辟瘟丹) : 섣달 그믐날 밤 벽온단을 술에 타서 마시면 다음해 일 년 동안 온역(瘟疫)을 피한다는 전설이 있다.
○문 선로(文禪老)가 숯을 보내왔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추위 방어하는 데는 참숯이 천금 가치가 있어 / 禦寒珍炭千金直
차가운 화로가 밤새도록 따뜻하였네 / 渴火寒爐一夕溫
나머지 불에 손 녹임도 감사하니 / 感借餘炎容炙手
은혜 갚는 다른 날엔 숯을 삼키리 / 報恩他日直須呑
[주D-001]은혜……숯을 삼키리 : 예양(豫讓)은 전국 시대(戰國時代) 진(晉) 나라 사람으로 지백(智伯)을 섬기다가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에게 멸망되자, 주군(主君)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고 몸에는 생옻[生漆]을 칠하여 문둥병 환자를 가장하고 조양자를 암살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복주(伏誅)되었다. 《史記 卷86 豫讓傳》
○이른 봄날 임진강(臨津江) 나루에서 본사(本寺)로 돌아가는 문 선로사를 전송하며 강가에서 시를 구점(口占) 하다
무슨 일로 말을 멈추라 권했는지 아는가 / 胡爲勸駐馬
배 타고 떠나감을 보지 않으려 함이지 / 不欲見乘舟
후일 만날 때에 반가운 눈으로 맞이하겠지만 / 後會縱靑眼
아마도 오늘 떠나면 검은 머리 백발되리 / 此行應白頭
[주C-001]구점(口占) : 시(詩)를 초(草)하지 않고 즉석에서 입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문 선로사가 화답하기에 다시 그 운에 차하여 화답하다
석장(錫杖)을 짚고 성 밖으로 나가 / 出城飛一錫
출렁이는 강물에 외로운 배 기다렸네 / 候水漾孤舟
떠나는 행색 차마 볼 수 없어 / 行色不堪見
강물 등지고 서서히 고개 돌렸노라 / 背江慵轉頭
○상원일(上元日) 등석(燈夕)에 문기장자(文機障子)와 등롱(燈籠)의 시를 한림원(翰林院)에서 지어 올리다
문기장자(文機障子)
밤에 칙령 내려 아홉 금문 활짝 열고 / 夜勅金門九扇開
옥퉁소 소리 가운데 요대에서 연회 베풀었네 / 玉簫聲裏宴瑤臺
일백 가지 등불 비단 장막에 휘황하고 / 百枝燈影搖宸仗
만세산 그림자 술잔에 비쳐드네 / 萬歲山光入壽杯
어여쁜 기녀는 화문석에서 간드러지게 춤추고 / 踏席腰輕仙妓舞
날랜 광대들 줄 위에서 온갖 재롱 부리네 / 緣橦踉絓侲童才
태평시절 한가한 틈에 함께 즐김이 마땅하여 / 太平多暇宜同樂
모든 관원 밤을 새워 놀도록 허락하셨네 / 恩許千官徹曉陪
등롱(燈籠)
휘황한 불꽃은 꽃송이 가지런히 핀 듯하고 / 煌煌列燄花齊綻
엷고 가벼운 비단은 물같이 맑구나 / 薄薄輕紗水正澄
일만 사람을 한 그림자로 비추었으니 / 炤却萬人同一影
참으로 대왕등임을 비로소 알았네 / 始知眞箇大王燈
[주C-001]상원일(上元日) : 음력 정월 15일을 말하는데, 금오(金吾)에게 분부하여 밤에 통행금지를 풀게 하고 전후(前後) 각 1일에 걸쳐 관등(觀燈)놀이를 하게 하였다.
○김대년(金大年)이 기녀(妓女)에게 준 시(詩)에 차운하다. 병서
밤에 양군 남일(梁君南一)의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김군 대년(金君大年)이 취하여 잠들자 기생(妓生)이 빈 잔으로써 속여 권하였다. 그러자 김군(金君)이 일어나 마시려다가 허탕을 치고서 희롱삼아 시 일절(一絶)을 지어 증여(贈與)하기에 내가 즉시 화답하였다.(夜飮梁君南一家。金君大年醉眠。妓以空盞就勸誑之。金起而欲飮不得。因戱爲一絶贈之。予卽和之云。)
그대 낭원에서 실수로 술잔을 엎지르고 / 知君閬苑誤翻觴
귀양살이 당하여 전당을 내려왔네 / 見謫無聊下殿堂
옛 미친 버릇 때문에 실수는 했으나 / 坐爾舊狂雖失飮
그래도 신선 연분으로 평강에 들어가리 / 尙緣仙分入平康
[주D-001]낭원(閬苑) : 신선(神仙)이 거주하는 곳. 허작(許碏)의 시(詩)에 “낭원의 꽃 앞에서 술에 취하여 서왕모의 구하상 그릇 엎질렀네. 여러 신선들 손뼉 치며 경박함을 나무라니, 인간으로 귀양보내어 술미치광이 만들었구나.[閬苑花前是醉鄕 踏飜王母九霞觴 群仙拍手嫌輕薄 謫向人間作酒狂]” 하였다. 《神仙傳》
○칠월 칠석에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은하수 옆으로 비끼고 반달도 밝으니 / 銀漢橫斜月漸彎
이 좋은 밤 한쌍의 견우 직녀 마음껏 즐기리 / 良宵靈匹正成歡
여보게 어여쁜 아가씨 하나 불러 주게나 / 憑君要喚娥眉艶
하늘이나 인간이나 쾌락은 일반이라오 / 天上人間樂一般
○연 수좌(淵首座) 방장(方丈)에서 정 득공(鄭得恭)이 그린 어족자(魚簇子)를 감상하고서
물은 물고기의 집이라 / 水爲魚所家
물 잃으면 솥 안에 든 고기이지 / 失則鼎中鮮
사람이 물 속의 고기를 그리면서 / 人畫水中魚
솥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그린다면 / 如向鼎中傳
헤엄치고 노는 모습을 그리더라도 / 雖爲游泳態
오히려 물 잃은 것과 같으리 / 尙類失水然
정군은 참으로 신필이야 / 鄭君信神筆
현묘한 수법 하늘에서 받았네 / 妙手得於天
한 번 붓 휘둘러 수십 마리 그렸으니 / 一掃數十尾
물고기들이 산 것처럼 모두 팔팔하구나 / 發發皆鮪鱣
물을 얻어 형세 넉넉하니 / 得水勢已足
하필 잔잔한 물결 그릴쏜가 / 何必寫漪漣
지느러미 일어나 움직일 듯하고 / 䰇鬣欻欲動
눈동자 찬란하여 야광주 같구나 / 目力珠光旋
아마도 그대는 봉래도에 손님으로 있으면서 / 疑君蓬島客
오랫동안 바다 가운데 신선이 되었었나봐 / 久作水中仙
물고기 익숙히 보았기에 / 看魚飽且熟
손길 따라 떼지어 오르내리는 듯하구나 / 應手隨所沿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싶지만 / 擧指欲捫觸
뛰어나와 깊은 연못에 숨을까 염려되네 / 猶恐跳藏淵
나의 시 나른하여 기운 없지만 / 吾詩氣力苶
감히 활어편 지었노라 / 敢作㓉魚篇
○또 족자(簇子)에 쓴 시운(詩韻)에 차하여 주다
이 몸 비단처럼 사람의 재봉하는 데 맡겼으니 / 身如匹素付人裁
이 세상 어느 때나 입을 열고 웃어 볼거나 / 世上何時笑口開
별처럼 흩어진 수많은 집에 갈 곳 없어 / 星散萬家無處去
하늘가 헤매다가 공의 서재 찾아왔노라 / 天遊一室訪公來
난간 옆에 한가로운 구름 띠처럼 감돌고 / 閑雲傍檻輕縈帶
가지 위에 성긴 눈 매화인가 의심하였네 / 微雪黏枝乍學梅
혜원(慧遠)이 원래 술 마시지 못한다 말을 마오 / 莫道遠公元不飮
그래도 도연명(陶淵明)에게 술잔을 권했다오 / 尙容陶令勸含杯
[주D-001]도연명(陶淵明)에게……권했다오 :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도연명을 초청하니, 연명이 회답하기를 “내가 술을 즐기는데 법사(法師)가 허락한다면 곧 가겠습니다.” 하였다. 혜원이 이를 허락하자 연명이 마침내 그곳을 찾아갔다. 《廬阜雜記》
○다시 화답하다
봄 풍경 시 흥취 돋우어 진정할 수 없었는데 / 春搖詩思浩難裁
술 마시니 시름으로 찌푸려진 얼굴 활짝 펴지네 / 酒入愁眉皺正開
병든 다리 지팡이 짚고 이를 수 있는데 / 病脚尙將筇拄到
한가로운 몸 어이 말에 실려 올 필요 있으리 / 閑身何必馬駄來
기리계(綺里季) 어진 이름 상산에서 뜻밖에 찾았고 / 商山未擬尋名綺
매복(梅福)의 떠도는 자취 이제 오 나라 저자에 숨어 있구나 / 吳市如今隱姓梅
세상에 드문 붕새 만남이 얼마나 다행인가 / 何幸得逢希有鳥
오호의 넓음도 오히려 술잔같이 보이네 / 五湖猶可視如杯
이백(李白)의 붕부(鵬賦)에 “오호(五湖)를 술잔같이 보도다.” 하였다.(李白鵬賦云。盃看五湖。)
[주D-001]기리계(綺里季) : 상산 사호(商山四皓)의 한 사람이니 진(秦) 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상산에 숨었었다. 《高士傳》
[주D-002]매복(梅福) : 한(漢) 나라 때 명사(名士). 왕망(王莽)이 정사를 천단(擅斷)하자 처자를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들어갔는데 그후에 성명(姓名)을 고치고 오(吳) 나라 저자의 졸개(卒介)가 되었다고 한다. 《漢書 卷67 梅福傳》
○한장(翰長) 손득지(孫得之)가 화답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위의 운에 차하다
새로운 시 가위로 재단한 듯하니 / 新詩似着剪刀裁
어두운 눈에 비단이 펼쳐지듯 황홀하구나 / 老眼驚看錦段開
금방에 그대 이름 실린 일 일찍이 기억했는데 / 金牓記君曾看捷
옥당에 늦게 들어온 이내 몸 부끄럽구려 / 玉堂慙我晩攀來
평생의 교분(交分) 변치 않기로 기약하였고 / 始終交契期膠漆
선후의 공명 자연의 운명에 맡겼노라 / 先後功名任杏梅
그대의 포부(抱負) 바다 같음을 일찍이 알았지만 / 早識脩鱗橫海大
이 세상 술잔보다 좁은데야 어이하리 / 其如魯國小於杯
○계유년 맹춘(孟春) 십칠일에 한림(翰林) 진화(陳澕)와 밤에 수재(秀才) 임원간(林元幹)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하였다. 임군(林君)이 장편 율시를 써 보이기를 청하기에 내가 진공(陳公)을 시켜 운을 부르게 하고 시를 지었는데, 글이 한 자의 정정(訂正)도 없었고 한 식경도 경과하지 않았다 이날 운서(韻書)가 없어 진군(陳君)이 곧장 운을 부른 까닭으로 음운(音韻)이 차서가 없다.
얼음 풀려 시냇물 졸졸 흘러내리는데 / 凍派潺湲出
봄 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구나 / 春風料峭寒
나이 더하니 얼굴 늙어만 가고 / 得年顔欲改
새봄 느껴지니 마음 안정할 수 없네 / 感物意難安
뜨거운 화롯불도 이제는 싫어졌고 / 烘炭初嫌烈
서늘한 단삼(單衫) 시절 점점 다가오누나 / 涼衫漸近單
버들가지 겨우 움터 푸르러지고 / 柳纔擡眼綠
복숭아 꽃봉오리 날로 부풀어오르네 / 桃未吐脣丹
시냇물 가득하니 물고기들 즐거이 뛰놀고 / 水漫魚遊樂
수풀 따뜻하니 새들 떼지어 지저귀네 / 林暄鳥語歡
좋은 절후 이 밖에 다시 없는데 / 良辰此莫勝
아름다운 모임은 옛날에도 어려웠네 / 佳會古猶難
고요한 소나무 정자 아래 술자리 열었고 / 飮幸松亭靜
쇠잔한 촛불 가에서 시 읊었어라 / 吟從樺燭殘
술은 운액의 맛 능가하고 / 酒踰雲液酌
안주는 국영의 찬보다 낫구려 / 饌勝菊英餐
저 하늘로 장막삼으려 했거니 / 漸欲天爲幕
해 한나절 된들 무슨 아랑곳 있으리 / 何占日上竿
고상한 풍정(風情)은 달과 함게 맑고 / 高情穿月脅
표일한 뜻은 바람같이 나부끼네 / 逸思跨風翰
만취하여 비틀거리면서도 술잔을 탐하고 / 酩酊甘杯釂
뜬세상의 공명은 천운(天運)에 내맡겼네 / 功名任印刓
푸른 관복(官服)으로 박봉(薄俸)에 얽매여 / 靑衫猶寸祿
백발이 되도록 미관 말직 맴돌았네 / 白髮尙微官
푸른 비단으로 이 글 보호할지 모르겠지만 / 不分碧紗護
짐작건대 티끌에 버리지는 않으리 / 知非黃土團
가령 천일을 길이 취할 수 있다면 / 假如千日醉
평생을 고생한들 어이 바꿀쏜가 / 曷賽一生酸
가는 세월 잡아매기 어렵기에 / 歲月留難絆
거룩한 신선 꿈속에서도 구했노라 / 神仙夢亦干
속세의 일은 썩은 걸 쪼아먹음과 비슷한데 / 紅塵猶啄腐
단정에서 금단(金丹)을 얻을 길 없구나 / 丹鼎未呑丸
삼신산(三神山) 가는 길 슬피 바라보니 / 悵望壺天路
아득한 섬 바닷물에 잠겼어라 / 空沈陸海瀾
그대 만나 기쁘고도 미더우니 / 得君欣且服
조행(操行)이 바르고 단아하네 / 行已正而端
일찍이 시루 깨뜨려 뜻 잃었다가 / 失意曾遺甑
진군(陳君)이 근자에 공사(公事)에 관련되어 파면되었다.
홀연히 관을 꿈꾸고 벼슬에 제수되었네 / 除官忽夢棺
가자(加資)되어 한림(翰林)에 승진(陞進)하였다.
내 마음 병같이 좁음이 괴로운데 / 予心甁苦窄
그대의 뜻은 어이 바다처럼 넓단 말인가 / 子意海何寬
쌍으로 나는 학이 되어 / 忝作雙飛鶴
오색 난새를 찾아왔노라 / 來尋五色鸞
난새는 임군(林君)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곧장 흉금(胸襟)을 털어 놓을 테니 / 直須披肺腑
부디 흠절을 집어내지 말게나 / 愼勿覓痕瘢
옛일 이야기하자 창자 끊기는 듯하고 / 話舊腸先斷
사귄 정분 논하매 눈물이 흐르네 / 論交淚已汍
수후(隋侯)의 구슬 팔 곳이 없는데 / 隋珠無處售
조 나라의 화씨벽(和氏璧) 뉘라서 알아주리 / 趙璧有誰看
미천한 사람은 초야(草野)에 묻힘이 마땅하고 / 賤子便丘壑
낭군은 혁혁한 가문에서 장성하였네 / 郞君長綺紈
임군은 재상(宰相)의 아들이다.
마음은 물처럼 맑음이 사랑스럽고 / 心憐淸似水
말은 난초처럼 향기로움이 기껍구나 / 言喜臭如蘭
졸음은 쫓아도 다시 오고 / 睡魄驅還泥
시 주머니 기울이니 텅 비었네 / 詩源倒欲乾
지음하는 자 들어주지 않는다면 / 知音如不聽
유수곡(流水曲)을 뉘 위해 연주할쏜가 / 流水爲誰彈
[주D-001]운액(雲液) : 향기로운 술. 백거이(白居易) 시(詩)에 “운액은 육부를 씻어내리고, 양화의 기운 사지에 퍼지도다.[雲液灑六腑 陽和生四肢]” 하였다.
[주D-002]국영(菊英) : 국화(菊花). 《초사(楚辭)》이소경(離騷經)에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지는 꽃잎 먹었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하였다.
[주D-003]수후(隋侯)의 구슬 : 수후(隋侯)는 주(周) 나라 때 한수(漢水)의 동쪽에 자리 잡은 제후(諸侯)인데 그는 큰 뱀이 창자가 끊긴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약을 붙여 주었다. 그후 뱀이 강에서 큰 구슬을 물고 나와 은혜를 갚았으므로 그 구슬을 수후(隋侯)의 구슬이라고 이름하였다. 《淮南子 覽冥訓》
[주D-004]화씨벽(和氏璧) : 초(楚)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楚) 나라 여왕(厲王)에게 올리니, 여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다. 옥공이 돌이라고 하니 임금이 속였다고 하여 좌족(左足)을 베어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박옥을 올리니,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고 하매 그 우족(右足)을 베어버렸다. 그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니,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연유를 물었다. 변화가 말하기를 “보옥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선비를 간사한 자라고 하니, 그것이 슬퍼서 그런다.” 하였다. 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박옥을 쪼개보니 과연 진귀한 보옥이 나오므로 드디어 화씨벽(和氏璧)이라 이름하였다. 《韓非子 和氏》
[주D-005]지음(知音) : 음률을 잘 분별하는 것으로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말한다.
[주D-006]유수곡(流水曲) : 백아(伯牙)가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니, 종자기(鍾子期)가 듣고 말하기를 “아! 높음은 태산과 같고 양양(洋洋)함은 강물과 같도다.” 하였다. 《列子 湯問》
癸酉孟春十七日。與陳翰林澕夜飮林秀才元幹家大醉。林君請觀長篇律詩走筆。予使陳公唱韻賦之。文不加點。不容一瞥。是日無韻書。陳君直唱。故音無次第。
凍派潺湲出。春風料峭寒。得年顔欲改。感物意難安。烘炭初嫌烈。凉衫漸近單。柳纔擡眼綠。桃未吐唇丹。水漫魚游樂。林暄鳥語歡。良辰此莫勝。佳會古猶難。飮幸松亭靜。吟從樺燭殘。酒踰雲液酌。饌勝菊英餐。漸欲天爲幕。何占日上竿。高情穿月脇。逸思跨風翰。酩酊甘杯釂。功名任印刓。靑衫猶寸祿。白髮尙微官。不分碧紗護。知非黃土團。假如千日醉。曷賽一生酸。歲月留難絆。神仙夢亦干。紅塵猶啄腐。丹鼎未呑丸。悵望壺天路。空沈陸海瀾。得君欣且服。行已正而端。失意曾遺甑。陳近者以公事免官。除官忽夢棺。還資入翰林。予心甁苦窄。子意海何寬。忝作雙飛鶴。來尋五色鸞。指言林君。直須披肺腑。愼勿覓痕瘢。話舊膓先斷。論交淚已汍。隋珠無處售。趙璧有誰看。賤子便丘壑。朗君長綺紈。林君相門子也。心憐淸似水。言喜臭如蘭。睡魄驅還泥。詩源倒欲乾。知音如不聽。流水爲誰彈。
○임군(林君)이 또 반송(盤松)을 그린 병풍을 가지고 고시(古詩)를 써 주기를 청하기에, 다시 진군(陳君)을 시켜 운을 부르게 하여 시를 짓다
옛날 강남 건너갈 적에 세찬 물결 눈발 같아 / 昔渡江南驚浪如飛雪
만산 무너지고 우레 울리는 듯하였네 / 萬壑崩騰雷電裂
조각배 물결 따라 흘러가는데 / 舟隨浪高下
강 가운데 용 한 마리 꿈틀거렸네 / 中有一龍屹
홀연히 솟구쳐 그 머리와 뿔 소상히 보았는데 / 起來相齒其頭其角我細看
눈 깜짝할 사이 도로 없어졌네 / 過眼俄然還復滅
용은 활같이 꾸부정하고 / 龍欲屈如弓
소나무는 쇠처럼 굳센 거라오 / 松欲硬如鐵
소나무 굳세지 않으면 뼈 없는 것과 같고 / 松不硬似無骨
용이 꿈틀거리지 않으면 피 없는 것과 같지 / 龍不屈似無血
이제 이 소나무 참모습과 비슷한데야 어이하리 / 今看此松無奈似箇形
구름 물결 일렁이는 천년혈에서 꾸부정한 허리로 엎어져 있구나 / 曲腰橫脅昂伏雲浪千年穴
그 당년 내가 바다 신선 찾아가 / 賴我當年尋水仙
봉래도의 금궁 은궐 두루 열력하였네 / 備歷蓬島金銀闕
용을 보지 않았다면 어이 소나무 짐작할쏜가 / 不覩龍安知松
수염과 갈기 휘날리며 날리려다가 도로 주저앉았구나 / 掀髥奮鬣欲走還蹶蹶
그대 참으로 용이라면 어이 이곳에 서려 있으리 / 汝是眞龍寧向此中蟠
복숭아꽃 피고 물 출렁이는 춘삼월 기다리게나 / 好待桃花水漲春三月
○거울을 보고 시를 지어 양 교감(梁校勘)에게 증여(贈與)하다. 2수
능화경(菱花鏡)에 쌓인 먼지 털기를 겁낸 것은 / 怯把菱花拂古塵
수척한 모습에 마음 상할까 두려워서이네 / 恐緣形瘦轉傷神
오늘 아침 비춰보니 은근히 기쁘구려 / 今朝一覽眞堪詑
불그레한 얼굴 그래도 봄기운 띠었구나 / 面暈猶紅鬢尙春
천 수 시 짓느라 양편 귀밑털 희어졌고 / 千首詩中雙白鬢
만 집의 술잔에 입술 붉어졌구나 / 萬家杯底一朱脣
거울 속에서 마주 대하여 빙그레 웃어보니 / 分明邂逅坐相笑
단청으로 그린 화상보다 훨씬 낫구려 / 却勝丹靑謾寫眞
○양 교감이 화답해 왔기에 다시 위의 운에 차하다
옥거울 맑아 먼지 붙일 곳 없지만 / 玉鏡淸澄不受塵
마음만은 비춰내지 못함이 우습구려 / 笑渠猶未映精神
내일 아침 술 깨거든 아예 비춰보지 말게나 / 明朝酒醒應休炤
홍안의 잠깐 봄 잃어버릴까 하노라 / 坐失紅顔一日春
나의 스승 공 부자(孔夫子)는 정상(頂上)이 오목하였고 / 我師魯叟猶圩頂
우리 선조 노자(老子)는 입술이 두터웠다네 / 吾祖玄元亦厚脣
춘경의 거울 가운데 모습이 / 誰謂春卿鏡中態
두 어른 화상과 비슷하다 뉘 말했던가 / 依俙如畫兩君眞
[주D-001]춘경(春卿) : 이규보(李奎報)의 자(字).
○꾀꼬리 소리를 듣고서
해마다 늦봄에야 나타나니 / 已分年年殿暮春
절반쯤 떨어진 꽃 한탄해 무엇하리 / 千紅半謝不須嗔
공교한 울음 소리 풍악을 연주한 듯하고 / 解調淸管聲音雅
날씬한 몸매 황금빛으로 도금했구나 / 偸鍍黃金羽翼新
경박한 소년들 먼저 들음을 자랑삼고 / 薄行少年誇聽早
노래 배우는 아가씨 질투의 눈물 흘리누나 / 學歌嬌女妬啼頻
머리들어 아름다운 모양 감상하고 싶은데 / 擡頭欲賞毛衣好
높은 나무로 옮겨 앉아 친압(親狎)할 도리 없구려 / 飛轉喬林未易親
○흥천사(興天寺) 앞 강가에서 우연히 읊다. 2수
푸른 강물 하늘에 닿고 하늘은 강물에 연달았는데 / 碧水接天天接水
엷은 구름 안개 같고 안개는 구름 같구나 / 薄雲如霧霧如雲
벌판에 벼 익어 문 앞에 거두어들이고 / 村畦稻熟門前穫
마을에서 베 짜는 소리 길에까지 들리네 / 野店機鳴路上聞
산은 여울 따라 둘려 있고 물은 산을 돌았으니 / 灘廻山下水環山
산 굽을 적마다 길이 여울에 격했구나 / 山曲時時路隔灘
오솔길 외로운 마을에 접어들고 해 저문데 / 路入孤村殘日落
푸른 하늘 구름 걷히고 조각달 떠오르네 / 碧天雲破月如彎
○유어(游魚)
우물거리는 물고기 잠겼다 다시 떠오르니 / 圉圉紅鱗沒復浮
마음껏 즐겨함을 사람들 부러워하네 / 人言得意好優遊
그러나 생각건대 잠시도 편안할 겨를 없다오 / 細思片隙無閑暇
어부 돌아가면 해오라기 다시 침노한다네 / 漁父方歸鷺更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