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 윤진철
감꽃이 피었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이 왔다. 여린 가지 잎 새에 등 기대고 있던 감꽃이 실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질 때면, 어머니의 해묵은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감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작은 연녹색 열매가 맺혀 있다. 감이 열린 것이다. 모든 감이 가을에 빨갛게 잘 익길 희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알이 차츰 굵어져 살구 크기가 될 즈음 푸른 가지에서 초록 빛깔을 띤 풋감이 떨어진다. 아쉬움이라도 나타내려는 듯 툭툭 마당을 때린다. 나무에서 떨어져 땅에 구르는 풋감이 애잔해 보인다. 감나무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감을 남기고 나머지는 떨어뜨린다. 어쩌면 가지에 남은 감이 더 튼실한 과일이 되게 하려고 연약한 풋감이 스스로 떨어 지나보다. 익어보지 못하고 떨어진 감이 마당에 널브러져 있다. 줄잡아 스무 개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는 장독대 빈 항아리에 소금을 한 줌 넣고 풋감을 담는다. 항아리에서 감은 떫은맛과 짠맛이 만나 단맛을 만들어낸다. 결실로 가지 못한 설움을 달래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감을 삭히는지도 모른다.
하늘에 맞닿을 듯 내 고향 ‘안어실’은 척박하기만 한 산골이다. 어머니는 만삭에 밭일을 하시다가 갑자기 나타난 뱀에 크게 놀란 일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형은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말을 잘하지 못하였다. 늘 혼자 집안에 있을 때가 많았다. 감꽃이 떨어지면 실로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놀기도 하고, 손가락마다 감꽃을 반지처럼 끼워 넣고 보란 듯이 어머니를 불렀다고 한다. 앞마당의 감나무는 형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유난히 가물었던 해에 형은 감나무 옆 돌담에서 놀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형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풋감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궁벽한 산골에서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첫아이를 품에서 놓쳐버리셨다. 어머니는 슬픔을 이겨낼 방도가 그저 눈물밖에 없었다. 여덟 살 나이에 풋감처럼 떨어져간 형은 내게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시간이 흐르듯 아픔도 자연스레 흐르는 것일까. 잔잔한 바람에 형의 기억이 묻힐 즈음 누이가 태어났다. 떨구어버린 아픔을 겪은 어머니는 더 없이 행복해 하셨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단란했던 순간의 행복조차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찬바람이 소스라치게 스며들던 그해 봄, 감꽃이 떨어지듯 누이도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갔다.
한밤중 앞집 양철지붕에 풋감이 ‘툭’하고 떨어진다. 마치 가슴에 응어리가 맺힌 어머니의 세월을 아프게 두드리는 소리인 듯 말이다. 수 없이 들어온 이야기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보니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얼마나 원망하고 싶은 하늘이었을까. 자식을 잃은 그 아릿한 기억들을 혼자 감당하기엔 눈물겨웠을 것이다. 작은 꽃들이 피어나는 봄, 연초록 잎사귀가 바람에 하늘거리면 무심히 독백을 하시곤 한다.
“큰아가, 난 네가 여름 한 철 다 보내고 찬바람 날 때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다. 익은 감도 떨어지고 선감도 떨어지는구나.”
지난여름 태풍에 마당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큰 감나무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한 채 쓰러져 버렸다. 밑둥치에 움푹한 구멍이 뚫린 고목이었지만 의연하게 백황색의 감꽃을 많이도 피워냈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다보니 그루터기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듯 먹감나무가 되어 있었다.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감나무의 먹감무늬는 어머니의 회환의 주름살과 닮아 있었다.
“바보자식을 낳았다.”
“부모가 자식을 앞세웠어.”
동네 아낙들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어렵게 얻은 두 자식을 앞세운 비통함. 주위의 수군거림과 멸시에 비루한 목숨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에게는 평생 품고 살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상처였을 것이다.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에 느닷없이 툭 떨어뜨리는 감나무의 삶을 보며 가슴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리라. ‘더는 풋감으로 떨구면 안 된다. 남은 자식들 밥은 굶기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고 한 많은 운명을 견뎌내셨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지난날 홀로 고통을 참으며 사남매를 감싸 안은 먹감나무가 되셨다.
개울물이 흐르듯 숙명처럼 산골에서 살아온 어머니시다. 마당에 있었던 감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의 아린 기억을 보듬고 싶었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쓰러진 그 감나무와 함께 어머니의 가슴앓이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감나무 잎 사이로 햇살이 내린다.
[윤진철] 수필가. 2017《에세이스트》등단
참척의 비통을 우리가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 우리는 감꽃목걸이를 걸고 놀았는데 감나무의 덜어내고 솎아냄이었어요. 단단한 감나무에 먹감이 들듯, 가슴 아픈 고통을 두 번이나 겪으신 어머니! 먹이 졌을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이제는 사라지기를 기원하는 아들의 마음이 아프게 와 닿습니다.
첫댓글 ' 감나무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감을 남기고 나머지는 떨어뜨린다. 어쩌면 가지에 남은 감이 더 튼실한 과일이 되게 하려고 연약한 풋감이 스스로 떨어 지나보다. '
'그루터기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듯 먹감나무가 되어 있었다.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감나무의 먹감무늬는 어머니의 회환의 주름살과 닮아 있었다.'
묵직하게 와 닿는 아픔 한 조각과 만났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나무가 우리들의 집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집이나 한 그루 정도는 있고 잘 자라고
고은 글 감사합니다!
감나무는 참 기특해요.
집집마다 많은 선물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