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
지난 1950년에 만들어진 광복절 노래 가사중 일부이다.
위당 정인보가 노랫말을 만들었고 곡은 가곡 '보리밭'을 작곡한 윤용하가 만들었다.
노래가 만들어지고 한국전쟁도 발발했지만 광복의 기쁨을 찬미했고 민족의 영속을 염원했다.
광복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미`일간 전쟁의 결과물이었다.
미국은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일본에 떨구었고 일본은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역사는 진화하든지 퇴보하든지 물레방아처럼 삐그덕거리며 돌아가는 듯,
광복을 맞은 지 72년이 지났는데 이 땅에는 다시 그 당시 원자폭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륙을 넘나드는 폭탄이라는 군사적 긴장으로 권력을 유지해가는 자,
그가 모든 원인의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것은 사나운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었더라도
젖소와 독사가 먹는 시냇물의 비유처럼 사악한 자에게 햇볕은 두렵거나 독을 만드는 것이었다.
^
우리가 내밀 카드는 무엇이지?
군사적 긴장을 먹고사는 북의 지도자에게
이제 거짓된 대화의 제스츄어라도 불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자신감보다는 벼랑끝으로 몰린 위기감이 느껴진다.
방향이 남쪽이든 태평양 건너의 섬이든 그 자가 발사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공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멸이 현실로 다가오리라는 것은 그 자도 저 자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
두 번의 왜란을 겪은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을 후세에 남겼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인데,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54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가?
말 폭탄을 쏘아대는 그 자와 저 자사이에 끼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무명의 무관이었던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풍전등화의 나리에서 나라를 구한
유성룡이 징비록을 후세에 남긴 화두를 찾는다면 그것은 외교였다.
징비록의 시작도 그 앞의 성종조에서 시작한다.
일본에 정례적인 사절단을 보냈던 시기인데, 한 번은 사절단 대표가 지병으로 대마도에서
조기 복귀하면서 그 후 교유가 중단되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짖는 개가 물지 않는다지만 그것도 개나름이니 위기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 땅은 '이상한 평온'을 유지한다.
카드로 내밀 물리적인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외교이다.
그냥 외교가 아닌 교활한 외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들에는 녹두꽃이 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