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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언어교회설교
예배시간: 2025년 3월 20일 목요일 오후 2시
예배장소: 은혜샘교회
제1부 예배와 기도
성경봉독: 마태복음 26장 35절, 74절-75절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제목: ‘한번의 장담, 세번의 부인’ 조영찬 전도사
지난주에는 십자가로 인해 발생한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과 헬라인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죄인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통로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안전할까요?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위해 죽기까지 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던 베드로가 순식간에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믿음은 입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본성에 의해 강력하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말한 대로 언행일치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 그 어떤 고난이나 시험도 달게 받겠다고 맹세하기는 쉽습니다. 교회에서 큰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하기는 쉽습니다. 감정에 도취 되어서 뜨겁게 통성기도를 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여러가지 어려움과 시험이 닥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180도 태도가 돌변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형제도 사랑하고 분노도 참겠다고 울부짖고 기도하던 사람이 교회 문턱을 나서는 순간 돌변해서 마구 욕설을 퍼붓고 화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한 사람도 예외가 없는 인간 보편의 모습입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과도하게 신앙에 열중하면 그만큼 신앙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벌어져서 심각한 인격 분열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른바 위선의 늪에 빠지기 쉬운 상태입니다. 의도적으로 위선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원하는데 속에 치유되지 않은 자아가 가만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로 예수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세번의 물음에 의해 세번의 사랑고백을 반복했습니다. 세번의 부인을 치유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관계 회복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과 치유를 받았음에도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 본성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격하게 믿음을 고백해 놓고 나서 반드시 3배의 부인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부인 방법과 현장이 다를 뿐 근본은 베드로와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완전하게 시인하고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참으로 받아들였다면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혈기내고, 차별하고, 말씀 읽기를 싫어하고, 기도하기 귀찮아하고, 상처받은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남의 사소한 잘못에 관용을 할 줄 모르는 등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운 죄성들이 여전히 우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체념하고 그렇게 모순된 채로 살아야 할까요? 그렇게 방치하면 진짜로 위선적 신앙인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두 얼굴을 직시하고 둘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죄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손길을 멈추지 못합니다. 한번의 믿음 고백 뒤에는 예수님에 대한 세번의 망치질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그것에 절망해서 구원을 포기하면 가룟유다가 됩니다. 반면에 끝까지 주님의 자비하심에 힘입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타인을 못박고 가족을 못박으며 살았던 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계속 십자가를 지우려 하고 자기는 한사코 십자가를 모면하려고 하는 강한 반골 기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번번히 십자가를 배반하며 살던 베드로가 마침내는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이때 십자가는 패배와 수치가 아니라 승리와 영광의 표상입니다. 비로소 죄성과 자아를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고 참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결국 우리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자아들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유다,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군인, 예수님에게 침 뱉고 조롱한 이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 그 모든 인물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의 다양한 표상들일 뿐입니다. 사람을 이분법 해서 그들은 악이고 우리와 나는 다르다 이렇게 믿고 싶은 유혹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그런 이분법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래서 남들은 다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고 자기는 절대로 구원을 잃지 않을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모습은 바리새인의 전형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바로 선민사상이 투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 안에 있으니 안전하고 율법을 거부하는 이들은 멸망의 자식들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런 율법주의 선민사상이 지금은 믿음의 선민사상으로 탈바꿈했을 뿐 본질은 똑같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이 확실하고 저들은 안 믿거나 잘못 믿으니 구원받지 못할 족속이라고 매도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런 이분법에 넘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에 대한 특권이나 선민의식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는 아무도 의인임을 자처할 수 없다는 냉엄한 진실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비상조치를 취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한 사면과 해방의 선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더 이상 이분법에 도취되지 못합니다. 우리와 그들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십자가의 원수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도 내가 은혜를 입었으니 모든 이들도 나와 같이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한번 구원받았다고 땡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히 자기부인을 훈련해야 합니다. 한시도 십자가를 내려놓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과 동행하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지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심리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준비, 관용할 준비, 화해할 준비는 늘 미숙합니다. 하지만 혈기와 분노, 정죄, 몰이해, 책임 회피, 약자 차별 등 부정적인 것들은 늘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넓은 문과 트인 길이어서 언제든 우리가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좋은 면보다 죄성이 강하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세번을 부인했다면 그만큼 사랑의 언어와 믿음의 언어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바울처럼 우리를 책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충고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풍조여서 옳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또 아무나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신뢰와 존경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책망과 조언을 해줄 상대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런 상대가 없다면 외로운 사람입니다. 베드로에게 바울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서로 책선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시인했다가 세번 부인했다면 다시 세번을 사랑 고백함으로 치유와 회복을 받아야 합니다. 또다시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실수해서 바울같은 조언자에게 책망을 받는다면 더욱 분발해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그처럼 한결같은 발걸음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승리를 성취하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의지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넘어지는 정도와 빈도가 강해집니다. 자기 의지로 뭔가를 결심한 사람은 언제든 의지가 흔들릴 때가 옵니다. 하지만 자기를 의지하는 것을 멈추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실수를 계속해서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자기의 영과 육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는 승리의 날이 오게 됩니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합니다.
공동체소식
1. 시각장애인목회자를 위한 성경지도 세미나
지난 3월 18일-19일 양일간 AL소리도서관 주최로 시각장애인 목회자를 위한 ‘손으로 보는 AL촉각 성경지도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성경지도를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촉각화한 지도를 통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상세히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시각장애로 인해 인물과 시간 중심의 성경 읽기를 해 왔는데 성경지도 덕분에 지리와 공간적 배경에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지도 세미나를 주최해주신 AL소리도서관 정민교 대표님과 박성수 부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 2부 명칭 변경
2부의 명칭을 ‘소통과 공부’에서 ‘소통과 성장’으로 변경합니다.
소통은 언어적인 모든 교류를 의미하며 성장은 자기계발과 자아실현 등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합니다.
중보기도
1. 오늘 주신 말씀을 따라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완수할 수 있도록 붙들어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늘언어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 위에 단ᆫ단히 뿌리내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나라가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하루속히 정국이 안정되어 국민들이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요청받은 기도 제목과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2부 소통과 성장
1. 성경공부
본문: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주제: 하나님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공부하고 묵상합시다.
2. 감수성 이야기: 언어감수성
"언어 감수성이라는 건 언어에 대한 민감도입니다. 말이라는 건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 하는 거죠. 그럼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민감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계가 있는 말에는 민감하지만, 자신과 관련이 없는 말에는 둔감하죠. 그러니까 내 말이 잘 들리려면 상대의 감수성으로 내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말이 어떻게 상대에게 들릴까 혹시 내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게 언어 감수성입니다."(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3. 수어
- 모든 동작은 주먹을 쥔 상태에서 시행한다.
- 엄지1지, 검지2지, 중지3지, 약지4지, 소지5지
21) 기르다
왼손 1지를 세운 곳에 오른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오른손 5지 부분을 왼손 1지에 대고 가볍게 치면서 위로 올립니다.
22) 어른
양손을 구부려 어깨 위에서부터 약간 위로 올리면서 정지시킨 후 (자라다), ‘사람’ 수화를 합니다.
즉, ‘자라다’ + ‘사람’입니다.
23) 낳다
양손을 펴서 양 5지를 하복부 가까이에 대고 동시에 아래로 내립니다.
24) 노인
오른손 1지를 턱밑에 손등이 보이게 대준 후 손바닥이 보이게 손목을 돌려준 뒤, ‘사람’ 수화를 뒤이어 해줍니다. 즉, ‘늙다 + 사람’ 이라는 동작입니다.
25) 청인
지금까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반인을 ‘정상인’ 이라고 말해왔는데 농인은 ‘청인’ 이라고 말합니다.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비정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일반인, 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소리만 들으면 다 정상인이고, 못 들으면 모든 기능에 다 장애를 갖고 있나요? 그건 절대로 안되는 말입니다. 소리 듣는 기관이 건강하니까 청인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시겠죠? ‘청인’ 이라는 말은 오른손을 약간 구부려 입 앞에서 두 번 돌린 후에 ‘사람’ 수화를 하면 됩니다.
26) 농인 (=농아인, 청각장애인)
‘농인’ 은 오른손으로 귀에 대었다가 입에 댄 후에 ‘사람’ 수화를 합니다.
복습
1) 인사 (회의)
2) 안녕하세요
3) 만나다
4) 반갑습니다 (기쁘다, 즐겁다)
5) 헤어지다 (이별하다)
6) 슬프다
7) 미안하다
8) 고맙다 (=감사하다)
9) 말하다
10) 괜찮다
11) 수고하다
12) 남자
13) 여자
14) 사람 (=인간, 인류)
15) 결혼 (<->이혼)
16) 남편 (<->아내)
17) 되다
18) 소년 (=꼬마<->소녀)
19) 어린이
20) 청년
21) 기르다
22) 어른
23) 낳다
24) 노인
25) 청인
26) 농인 (=농아인, 청각장애인)
3. 상담과 치유
우리 안에는 여러가지 상처와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지속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심리상담, 동료상담 등을 통해 자기의 문제를 발견하고 조언을 받아들여서 개선해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완전한 상담자는 예수님입니다. 기도와 성경공부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상담과 치유를 받으시는 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제3부 친교와 힐링
3부는 하늘언어교회 본가로 이동하여 자유롭게 대화, 놀이, 힐링, 애찬 등을 나누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