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11일(목) 시편 119:73-96 찬송 121장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인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79.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
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5.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개역 개정)
92-93절)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시인은 92절에서 자신의 모습을 고난 중에 처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멸망’이라는 말을 떠올릴 만큼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어지는 93절에서 자신이 살게 되었다고 노래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하나님의 법이 그에게 있어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즐거움’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24절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데
그것은 고난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위로의 의미를 지닌 기쁨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그러한 기쁨이 넘치도록 충만했음을 나타내준다.
무슨 말인가?
그는 멸망을 떠올릴 정도의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에 역사함으로 그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하였고
그에게 생명을 줄 뿐 아니라 넘치는 기쁨까지도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 어째서 그토록 지속적으로 176절에 달하는 본시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그토록 애절하게 붙들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기계적으로 히브리 알파벳 22개에 8절의 분량을 맞추기 위해서
그러한 노고를 다했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시켜서 이를 억지로 기록한 것인가?
이는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이 무려 176졀에 달하는 본시를 기록하고
또 거의 매절마다 하나님 말씀과 관련된 표현을 포함시킨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92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말씀이 자기에게
너무나 크고 놀라운 감격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시인은 본시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감격이 본시에 서려 있기에
본시를 접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도 하나님 말씀에 젖어들게 되고
그의 감격과 감사, 감동과 기쁨을 전해 받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에 놀라운 감사와 감격, 기쁨을 채워준다.
눈물 골짜기 같은 인생길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하늘의 기쁨을 채워주며,
절망의 자리에 처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상처 입은 자에게 치료와 회복을 주며,
가난한 자에게 하늘의 부요함을 채워준다.
심령이 곤고하고 주린 자에게 세상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만족을 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메는 자의 방황을 종식시키고
진리의 길, 견고한 길을 제시해 준다.
이처럼 놀랍고 은혜로운 말씀, 감격과 감사, 기쁨을 주는 말씀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며 안타까운 인생길에서 지쳐 쓰러져 가고 있는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면 말씀을 펼쳐야 한다.
그리하면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의 팔을 붙잡을 수 있다.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그분의 자애롭고 은혜로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 말씀이 우리들의 삶의 모든 질고와 슬픔을 벗기고
기쁨과 희락으로 덧입히심을 체험하게 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3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