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누가 독을 풀었는가
다섯 명의 천지회 군웅들은 계속해서 맴돌았다. 기력을 운행시켜 멈추 려고 했으나 아무리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중 한 사람의 도는 속도 가 약간이라도 늦추어지면 그 병자는 재빨리 달려들어 튕기고 밀쳐서 도는 속도를 빨라지게 했다. 이 정경은 마치 어린아이가 탁자 위에다 동전을 돌리는 것과 거의 같았다. 다섯 개의 동전을 탁자 위에 돌려 놓 고 그중 한 개라도 도는 속도가 늦추어져 쓰러지려고 하면 그 아이는 바로 달려들어 손가락으로 그 동전을 다시 튕겨 돌리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그런 광경을 쳐다보고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쩍 벌어져 놀 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쌍아는 그의 옆에 바짝 붙어 간이 콩알만해 져서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삼삽육계 줄행랑을 치자!]
쌍아는 말했다.
[빨리 장가(莊家)로 가시죠.] [맞다, 장가에 도착하기만 하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야. 그곳은 세력 이 큰 장원이니까 이놈들을 혼내 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쌍아는 오지영을 끌고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 병자는 팽이를 아주 즐겁게 돌리고 있었다. 한 쌍의 노부부는 얼굴 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명의 하인들은 박수 를 치며 갈채를 보내고 옆에서 주인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그 병자는 풍제중이 똑바로 서서 좌측장을 높이 쳐들고 우측장을 아래 로 향하여 고송교립세(古松橋立勢)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자 즉 시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오른쪽 어깨를 튕기었다. 풍제중은 오른쪽 다리를 뒤로 한 발짝 물러나서 어깨를 약간 옆으로 비키며 공격 을 피하였다. 그러나 감히 손을 써서 반격을 하지는 못했다. 그 병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팽이 노릇도 못하는 못난 사람 같으니라구!]
그리고 손을 내밀어 또다시 풍제중의 오른쪽 어깨를 튕기었다. 풍제중 은 또 뒤로 물러났는데 뜻밖에도 좌측 어깨에 한 줄기의 크나큰 힘이 밀려들어옴을 느꼈다. 삽시간에 자기 몸을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게 되 었다. 그 병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몸이 급속도로 돌기 시작했 다. 그는 천근추(干斤墜)의 공력을 써서 몸을 똑바로 세우려 했으나, 그 병자가 등뒤에서 힘껏 튕기자 몸이 더욱 빨리 빙빙 돌기 시작하였 다. 오지영은 그 병자가 그들을 못살게 굴자 문득 한 가지 꾀가 생각났 다. 즉시 절뚝절뚝 앞으로 몇 걸음 걸어나가 넘어진 듯 땅바닥에 쓰러 졌다. 쌍아가 있는 힘을 다해서 잡아 끌었으나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 려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매우 다급해졌다. 그가 적에게 진상을 말할 까 봐 염려되어, 왼손으로 그의 아래턱을 잡아 쥐고 있는 힘을 다하여 비틀자 오지영은 입을 쩍 벌렸다. 위소보가 가죽 장화에서 비수를 뽑아 들더니 그의 벌어진 입 속에다 칼을 밀어넣고 휘두르자 그의 혓바닥이 싹뚝 잘려져 나갔다. 오지영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쌍아는 위소보가 이 자를 살해한 줄로 여기고 외쳤다.
[상공(相公), 빨리 도망치세요!]
두 사람은 앞을 향해서 나는 듯이 도망쳤다. 두 사람이 얼마 달리지 않 아 등뒤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자가 말을 타고 뒤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왼쪽 바위 투성이의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작은 길을 빠져나와 돌무더기들이 흩어져 있는 데로 뛰어들었 다. 그 병자는 한 명의 하인과 함께 말을 타고 뒤쫓아왔다. 두 사람이 탄 말이 바위 투성이의 산등성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자 그 하인은 말에 서 뛰어내려 외쳤다.
[너희 꼬마들은 절대로 무서워하지 말아라. 오직 도련님께서 함께 놀자 고 하시는 것이니 빨리 돌아오너라.]
위소보는 말했다.
[어른들은 팽이 돌리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위소보는 더욱 빨리 달렸다. 그 하인은 바위 투성이를 혜치고 뒤쫓아왔 다. 위소보와 쌍아는 발이 빠르기 때문에 그 하인이 잡을 수가 없었다. 그 병자가 외쳤다.
[숨바꼭질하자고?]
즉시 말에서 내려와 기침을 계속하면서 남쪽에서 뒤쫓아 올라왔다. 위 소보와 쌍아는 몸을 돌려 동북쪽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들은 반대로 그 하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 하인이 몸을 덮쳐 위소보를 잡으려고 했다. 위소보가 구난(九難)에게 전수받은 신행백번(神行百變) 의 내공을 써서 몸을 살짝 피하자 그는 허공만 잡을 뿐이었다. 쌍아는 일 장을 가하여 그의 허리를 내리쳤다. 그 하인은 그녀의 나이가 매우 어린 것을 보고는 조금도 마음의 방비를 하지 않은 듯 초식도 쓰지 않 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우측 팔을 비틀었다. 쌍아의 좌측장이 질풍처럼 내려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허리를 적중시켰다. 그 하인은 너무 아파서 악,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바로 이때 쌍아가 그의 우측 손목을 잡고 비틀어 버리자 우두둑 소리가 나면서 그의 손목 관절이 으스러져 버렸다. 그 병자는 어,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이쪽 바위에서 저쪽 바위로 건너뛰고 몇 번이고 이렇 게 뛰어서 몸을 날려 쌍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병자가 왼손을 휘두 르자 쌍아의 머리에 있던 모자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카락이 흩어 져 내려왔다. 병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 이거 아가씨로군!]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잡았다. 쌍아가 얏! 하고 소리 를 지르며 쌍회룡(雙廻龍)이라는 일 초를 써서 두 팔꿈치를 뒤로 툉기 자 그 병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다!]
그리고 왼손을 우측으로 휘감아 그녀의 두 손바닥을 잡아서 등 뒤로 돌 리더니 이어서 오른손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그녀의 두 손 목을 두 바퀴 정도 휘감더니 머리카락으로 두 손을 묶어 버렸다. 그리 고는 껄껄 웃었다. 쌍아는 다급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공, 빨리 도망치세요. 빨리 도망치세요.]
그 병자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눌러 혈도를 찍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절대로 도망칠 수가 없을걸?]
병자는 쌍아를 내버려둔 채 위소보를 향해 뒤쫓아갔다. 순식간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위소보는 이리 뛰고 저리 몸을 날리면서 바위 사이로 도망쳤다. 그 병자는 몇 번인가 잡을 기회가 있었으나 그의 신행백변 공력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다. 그 병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숨바꼭질하는 재주가 정말로 비상한데?]
위소보는 내공이 부족하여 한참을 뛰자 이미 숨이 헐떡헐떡 차올라왔 다. 잠시 후면 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
[너는 나를 지금까지 잡지 못했다. 이제 내가 너를 잡을 차례다. 빨리 도망치거라. 내가 너를 잡고 말겠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몸을 돌려 그 병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 병자는 킥 킥 웃더니 과연 정말로 몸을 돌려 도망치는데 역시 바위들 사이로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위소보는 그 병자가 무공은 높지만 사람됨이 멍청하 고 바보스러우며, 나이는 사십 살이 넘어 보였지만 행동은 마치 어린애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몸놀림이 재빨라서 바위들 사이 에서 금방 동쪽에서 보였다가 순식간에 서쪽에 나타나 그 신속하고 민 첩함이 마치 귀신 같았다. 위소보는 경이롭고 놀라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틀림없이 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내 손 안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그는 거짓으로 뒤쫓는 척하면서 쌍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단숨에 그 녀를 끌어안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봐! 이봐! 나는 한 사람을 둘러메고도 너를 잡을 수가 있지.]
그 병자는 껄껄 웃더니 크게 외쳤다.
[빰빠라 빰, 나팔을 불어라. 콜록콜록....허풍 떨지 말아라!]
위소보는 쌍아를 껴안고 그 병자를 추격하는 척 가장하며 멀리 도망쳤 다. 그 병자가 외쳤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놈. 나를 잡지도 못하면서....콜록콜록....]
그리고 위소보를 향해서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위소보는 외쳤다.
[너는 기침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다.]
말을 하면서 그를 향해 뒤쫓는 시늉을 하였다. 그 노부인은 먼 곳을 쳐 다보고 있다가 소리를 쳤다.
[못된 놈, 감히 내 아이를 곯려서 기침을 하게 만들다니!]
획, 소리가 나면서 돌멩이 하나가 허공을 뚫고 날아왔다. 돌멩이는 비 록 작았지만 날면서 나는 파공성은 실로 예리했다. 위소보는 아이쿠, 하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숙여 피하였다. 잽싸게 몸을 피했지만 그래도 한걸음 늦어 그 돌멩이가 장딴지에 와서 적중되었다. 그는 쌍아와 한 덩어리가 되어 땅바닥을 굴렀다. 그 노부인은 말했다.
[잡아오너라!]
다른 남자 하인이 몸을 날려 다가와 위소보와 쌍아의 뒷덜미를 거머쥐 고 그 노부인 앞에 데리고 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병자는 껄껄 웃고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쓸모없는 놈, 엉터리 같은 놈, 콜록콜록....한 번 자빠지더니 우당탕 소리를 내네.]
위소보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서천천, 풍제중 등은 이미 긴 밧줄에 꽁꽁 묶여 마치 염주알처럼 한 줄 로 묶여 있었다. 한 명의 여자 하인이 긴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으며 오지영조차도 그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묶여 있는 사람들은 가슴 에 얼굴을 파묻고 두 눈을 꼭 감은 모습이 이미 지각을 상실한 듯하였 다. 그 노부인은 말했다.
[이 계집아이는 남자 분장을 하였군! 흥! 너의 그 분근착골(分筋錯骨) 의 수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그리고 너의 그 신행백변의 공력은 누 구에게 배운 것이냐?]
위소보는 깜짝 놀라며 생각했다. (이 노파의 눈은 상당히 예리하구나. 나의 공력 이름을 알고 있다니.) 다른 사람이 자기의 공력을 알아보는 걸 보면 자기의 신행백변의 공력 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위소보는 자기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졌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신행백변이요? 당신은 내가 신행백변의 공력을 할 줄 안다고 말 씀하시는 거예요?]
그 조부는 말했다.
[꿈도 꾸지 말아라. 네가 날뛰는 꼴을 보니 개도 그렇게 뛰지는 않을 것이고 기어가는 게도 그렇게 기어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찌 신행 백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말했다.
[이것은 당신 스스로가 신행백번이라고 말을 한 것이오. 내 입에서 그 런 말이 나온 것이 아니오. 내가 어찌 신도백변(神跳百變)인지 아니면 신파백변(神爬百變)인지 알겠소이까?]
그 병자는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신도백변도 할 줄 알고, 신파백변도 할 줄 안단 말이지? 하하하! 재미 있군! 재미있어!]
그는 몸을 숙여 위소보의 등을 찍었다. 위소보는 한 줄기 뜨겁고 따뜻 한 기가 몸 속으로 똑바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비가 되어 있던 사지가 갑자기 활발해지면서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말했다.
[당신은 혈도를 푸는 재주가 정말로 대단하오.]
그 병자는 말했다.
[빨리 기어 보시지. 기어서 백 가지의 변화를 연출해 보시지. 거북이가 기는 흉내를 내고 조개가 기어다니는 흉내를 내야 비로소 신파백변이라 고 말할 수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신파백변의 묘기를 부릴 줄 모르오. 당신이 만약에 할 줄 안다면 당신이 한번 시범을 보여 주시오.]
그 병자는 말했다.
[나도 할 줄 몰라. 무학의 대사(大師)는 다른 사람의 공력을 모방해야 될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독창적으로 무엇인가 창출해야만 비로소 대사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 아버지, 무학 가운데 신파백변이란 공력이 있습니까?]
그 노옹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은 무학의 대사이므로 이 세상에 이러한 공력이 없다면 당신 스스 로 창출해 내어 신파문(神爬門)이란 문파를 하나 세워 보시는 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노부인은 위소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녀 의 일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그 노부인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들을 한번 살펴보았다. 아마 아들이 위소보가 부추기고 선동하는 말을 듣고 정말로 그 무슨 신파백변이라 하는 새로운 공력을 창출한다고 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아들이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 서 위소보에게 물어 보았다.
[자네는 이름이 무엇인가? 사부는 누구시지?]
위소보는 내심 생각했다. (이 두 명의 늙은 요괴와 한 명의 어린 요괴....아니지, 어린 요괴가 아니고 젊은 요괴. 이들의 무공은 너무 막강하므로 나는 도저히 이들을 무찌를 수가 없다. 알면서도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별 수 없이 그들 을 좀 속여야겠군. 내가 만약 오삼계의 친구로 가장한다면 그들은 나를 못살게 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지영을 홀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는 성이 오가이며, 이름은 지영이라고 합니다. 자는 현양(顯揚), 양 주부 고우현(高郵縣) 사람입니다. 나의 백부인 평서왕은 멀지않아 북경 까지 들어오실 것이오. 당신들이 만약 나를 못살게 군다면 평서왕께서 는 절대로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노부부와 그 병자는 크게 놀라고 의아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곧 그 병자가 말했 다.
[아니야, 가짜야! 평서왕에게 어찌 당신과 같은 조카가 있단 말이야.]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어째서 가짜란 말이오! 그렇게 못 믿고 의심이 나면 평서왕의 집 안에 대해.한번 물어 보시오. 내가 만약 한 가지라도 틀리게 대답한다 면 그때 당신이 내 머리를 치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 병자는 말했다.
[좋아! 평서왕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물건이요, 아니면 사람이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진원원이었는데 나중에 진원원이 나이가 들자 그는 사면관음(四 面觀音)이라는 미인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지금 그가 마음속으로 제일 좋아하는 미인은 팔면관음(八面觀音)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오.]
그 병자는 말했다.
[미인이 뭐 좋단 말인가? 내가 말하는 것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 란 말이오.] [평서왕에게는 세 개의 귀중한 보물이 있는데 그 세 개의 보물이 바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오. 첫째로는 흰 호랑이 가죽이고, 두 번째 로는 크기가 계란만한 홍보석(紅寶石)이며, 세 번째는 호랑이 가죽 무 늬의 대리석 병풍입니다.]
그 병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알기는 잘 아시는군. 자, 좀 보시지.]
그가 옷고름을 풀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거머쥐고 바깥으로 휙 젖히자 옷 안에 껴입고 있던 가죽옷이 나타났다. 그 가죽옷은 하얀 바탕에 검 은 줄의 무늬를 하고 있었다. 바로 횐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 어, 이것은 평서왕이 제일 아끼는 흰 호랑이 가죽인데 당신이.... 당신이....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훔쳐 올 수가 있었소이까?] [훔치기는 누가 훔쳤단 말이야? 평서왕이 나에게 준 것이지.]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소이다. 내가 나의 매형인 하국상에게 듣기로 는....]
그 병자는 말했다.
[하국상이 당신의 매형이라고?]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 사촌 매형이요. 내 사촌 누나 오지....오지방(吳之芳)은 그에 게 시집을 가서 마누라가 되었소. 나의 매형은 싸움을 참 잘하지요. 그 래서 평서왕 휘하의 십대총병(十大總兵) 중의 한 사람이 되었소.]
그 병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은 맞는 말이오. 평서왕이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를 초 대해 주었는데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가시지 않고 나 혼자 거기에 갔 었지. 평서왕은 친히 나와 함께 대작을 하셨어. 그 휘하의 십대총병도 모두 다 왔었지. 당신 매형이 맨 첫줄에 앉아 있더구먼.]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소, 그리고 마보(馬寶) 형님, 왕병번(王屛藩) 형님, 장국주(張國 柱) 형님, 그들 모두 최고의 장군들이고 그 위풍과 위세는 정말로 대단 하지요.]
병자는 말했다.
[당신 매형은 이 휜 호랑이 가죽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소?]
위소보는 그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과장되게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꾸며 댔다.
[나의 매형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옛날 진원원이 최고의 총애를 받을 때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어떤 사람이 말해 주기를 그 휜 호랑이 가죽을 이불로 삼아 삼 일 동안 덮기만 하면 금방 그 감기가 낫는다는 말을 해주었소. 그래서 그녀는 오.... 아니 평서왕에게 그 휜 호랑이 가죽을 달라고 하였지요. 평서왕이 말씀하시기를 '당신에게 며 칠 동안 덮으라고 빌려 줄 수는 있어도 당신에게 줄 수는 없소. 이것은 천하에서 제일 상서로운 보배로 팔백 년만에 휜 호랑이가 한 마리 나타 난다고 하는데 설령 그 호랑이가 나타난다 해도 그것을 잡을 수도 없고 그 가죽은 더욱이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오.' 이 횐 호랑이 가죽은 방에 다 걸어 놓기만 하여도 귀신이나 악마들이 그것을 보고 멀찌감치 달아 나 버립니다. 몸에 병이 있다면 약을 먹고 이 휜 호랑이 가죽을 이불삼 아 덮으면 며칠 안 가서 씻은 듯이 나아 버리지요. 사람들이 패구(牌 九)로 노름을 할 때에도 좌문(左門)을 청룡(靑龍)이라 부르고, 우문(右 門)을 백호(白虎)라고 부르지요. 청룡피(靑龍皮), 백호피(白虎皮)는 모 두 가격을 말할 수 없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노부인은 조용히 그가 줄줄이 꿰뚫어 맞추는 말을 듣고 있었다. 노부인 은 아들 몸에 병이 있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그것이 유일하게 관심을 갗 는 일이었다. 흰 호랑이 가죽을 이불로 삼는다면 기침을 적게 할 수 있 다는 말을 듣고는 비록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평서왕이 이 보물을 너에게 주었느냐? 너야말로 대단한 인물이 로구나. 또한 너는 그 가죽을 가지고 옷을 만들어 입었으니 정말로 똑 똑하다. 만약에 이 휜 호랑이 가죽이 정말로 병을....병을 낫게 할 수 만 있다면....]
병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몸에는 아무런 병도 없는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너는 정말 하늘을 날으는 용이고, 온 산을 휘젓고 다니는 호랑이지. 이 몇 사람들은 모두가 강호의 호걸들인데 네가 이들을 팽이 처럼 가지고 놀지 않았니. 정말 재미있게 한바탕 놀았구나.]
병자는 껄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소리에는 기침이 섞여 있었다. 노 부인은 말했다.
[너는 저녁에 잠을 잘 때에도 이 가죽옷을 이불로 삼고 꼭 덮고 자도록 해라.]
병자는 고개를 돌리며 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옹은 손가락 으로 풍제중 일행을 가리키며 물어 보았다.
[이 사람들도 모두 평서왕의 휘하인가?]
위소보는 내싣 생각했다. (내가 그 역적놈의 조카로 둔갑한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 데 만약 서 형님 일행을 보고 오삼계의 휘하라고 하면 그들은 절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또 그들은 강직하여 절대로 굴하지 않을 사람들이니 잘못했다가는 마각이 드러날 것이다.) 그는 말했다.
[그들은 모두 나의 휘하 사람들이오. 우리들은 평서왕께서 의거를 일으 키자 그의 부마와 공주가 경성에 잡혀 도망쳐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평소에 오응웅 형님과 저는 서로 의기 투합하고 교분이 두 터웠지요. 그래서 나는 이 친구들을 데리고 북경에 가서 그 부마를 구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 일은 비록 위험하지만 모두들 의리로 뭉친 사람들이고 설사 기름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라 해도 우 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들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우리는 그 일을 반드시 해낼 것이외다.]
이 몇 마디의 말을 할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호기가 치솟아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노옹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박을 당하여 꼼짝 못하고 있는 풍제중 일행에게 다가가 손을 몇 번 움직여서 그들을 묶고 있던 포승을 풀어 주었다. 이어서 그들의 등과 허리를 몇 번 툭툭 쳤다. 그러자 그 들은 지금까지 막혀 있던 혈도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노복이 쌍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어 주 었다. 노옹은 위소보를 향해서 말했다.
[자네의 말만으로는 전부 믿을 수가 없네. 자네가 평서왕의 조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위소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르신, 그것은 정말 난감하군요. 나의 어머니, 어버지를 호주머니 속 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지요. 우리가 북경 에 가서 부마를 만나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미 황제 에게 잡혀갔다면 우리는 건녕 공주에게 가서 공주를 만나 보도록 하지 요. 공주께서는 틀림없이 당신들에게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정 말로 평서왕의 친척인지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북경에 도착하기만 해 봐라. 내 어찌 너희들 같은 녀석들을 두려워 하 겠느냐? 설사 정말로 너희들에게 잡혀서 건녕 공주를 만난다 해도 공주 께서는 내가 설령 옥황상제라고 사칭을 해도 틀림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씀을 하실 것이다.) 노옹과 노부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참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 였다. 위소보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웃으며 말했다.
[아! 있습니다. 나에게 평서왕이 써준 서찰이 있습니다. 이 편지를 다 른 사람이 보면 아마도 우리 집안은 멸족을 당할 것이요. 그러나 당신 들은 평서왕의 친구이니 한 번 본다고 해서 그리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 을 것 같군요.]
그는 말을 하면서 손을 품속에 집어넣어 사윤황이 거짓으로 만들어 준 그 서찰을 꺼내어 노옹에게 건네주었다. 노옹은 서찰을 꺼내서 기울어 지는 석양빛 아래에서 읽어 보았다. 위소보는 그들이 이해를 못할까 봐 염려되어 해석해 주었다.
[백사(白蛇)를 죽이고, 대풍가(大風歌)를 부르는 것은 바로 주원장(朱 元璋)을 뜻하는 것입니다....]
잠자코 있으면 중간이나 갈 텐데 그 옛날 유방(劉邦)이 백사를 죽이고 대풍가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주원장을 끌어들여 이야기했던 것이다. 다 행히 노옹과 노부인은 정신을 집중하여 편지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 말을 그리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노부인은 편지를 보고 나서 말했 다.
[틀림없는 사실이군. 평서왕은 한고조(漢高祖), 명태조(明太祖)와 같은 양심을 품고 있고 이자를 청해다가 장자방(張子房), 유백온(劉伯溫)과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기려고 하는군. 이보시오, 영감. 평서왕은 이번 의 거사가 순전히 명의 황실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이 편지 의 말투를 보니 흥! 그는.... 꿍꿍이 속이 정말 대단하군요.]
그녀는 위소보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는 나이가 이렇게 어린데....]
말을 더 계속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찌 장자방, 유백온 등 그런 큰 인물들과 비견된 단 말인가?) 노옹은 편지를 잘 접더니 봉투 속에 집어넣고 위소보에게 되돌려 주면 서 말했다.
[과연 틀림없는 평서왕의 조카님이시구려. 조금 전엔 실례가 많았소이 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서천천 등은 정신이 들어 위소보가 자칭 오삼계의 조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보자 퍽이나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리나 평소 소향주(小香主)는 꾀가 많은 모사꾼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위소보는 내 심 생각했다. (이 어르신께서는 얼마 전에 몽고인 한첩마 앞에서 오삼계의 아들로 가 장했었다. 아들도 됐었는데 그의 조카가 된들 뭐가 대수롭단 말인가? 빌어먹을! 다음엔 오삼계의 아버지로 변신을 하자. 때에 따라서 변신을 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면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 다.) 이미 날은 저물어 어둑어둑하였다. 여러 사람은 들판에 서 있었다. 차 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그 병자는 계속해서 기침을 했다. 위소보는 물었 다.
[어르신과 노부인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 노옹은 말했다.
[우리들의 성은 귀(歸)씨요.]
위소보는 생각했다. (많고도 많은 성 가운데 무슨 성을 못 가져서 하필이면 거북이 귀(龜) 란 성을 가졌을까? 정말 웃기는 일이로구나.) 노부인은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날이 저물 모양이니 적당한 곳을 찾아 묵도록 하지요. 다른 일은 천천히 상의해도 늦지 않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 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위에 인가가 있는 모양이니 우리 그곳에 가서 하룻밤 묵어 가기로 하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장가의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사실 이곳은 장가와 십여 리 떨어져 있었고 주위에는 산들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인가의 연 기는 볼 수 없었다. 남자 하인들은 두 마리의 말을 끌고와 노옹, 노부 인이 타도록 도왔다. 노부인과 병자는 한 마리의 말을 함께 탔다. 그녀 는 아들의 등뒤에 앉아 그를 꼭 껴안았다. 위소보 일행은 각자 타고 온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네 명의 하인은 뒤 따라 걸었다. 한참 가다가 위소보는 쌍아를 향해서 큰소리로 말했다.
[너는 말을 빨리 달려가 앞에 있는 마을이 큰 마을인지 아니면 작은 마 을인지 살펴보도록 하여라. 그리고 한두 칸 정도의 큰 방을 빌어서 빨 리 물을 데우고 귀가의 도련님께서 따뜻하게 인삼탕을 잡수실 수 있도 록 하거라. 또 그 집 주인에게 돈을 넉넉히 주어 뜨거운 물을 준비하도 록 하여 우리가 당도해서 그 뜨거운 물에 발도 좀 씻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도록 하자꾸나.]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쌍아는 옆에서 대답을 하였다. 위소보는 품속에 서 큰 은 덩어리를 하나 더듬어 꺼내면서 정신을 잃게 할 수 있는 약을 한 봉지 꺼내 쌍아에게 같이 건네주였다. 쌍아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건 네받고 질풍처럼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노부인의 얼굴은 희색이 만면하였다. 위소보가 뜨거운 물을 데우고 인삼탕을 끓이라고 분부하는 소리를 듣자 흡족한 모양이었다. 그들 일행이 몇 리를 나가자 쌍아가 다시 돌아왔다.
[상공, 앞에 있는 것은 큰 읍도 아니며 마을도 아닙니다. 다만 크나큰 장원이 있습니다. 집안 사람들이 말하기를 집의 남자들이 모두 외출을 했기 때문에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돈을 주어도 그들은 받으 려 하지 않았습니다.]
위소보는 이 말을 듣자 욕을 해댔다.
[멍청한 계집 같으니라고. 그들이 받거나말거나 우리는 가면 될 것이 아니냐?]
쌍아는 대 답했다.
[예,예.]
노부인도 말했다.
[우리는 단지 하룻밤만 묵어갈 뿐이야. 남자들이 없다고 한들 우리가 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거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행은 장씨 집 장원에 도착했다. 남자 하인이 문을 두드리자 한참 후 에야 늙은 노복이 걸어나와 문을 열었다. 그 노복은 반벙어리에 반귀머 거리였으므로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그 노복은 단지 집안에 남 자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병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집안에 남정네들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많은 남자들이 왔지 않느 냐?]
그는 몸을 날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노복은 이에 밀려 한쪽으로 물러섰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들어가 그 집의 대청에 자리를 잡고 정좌 했다. 노부인은 말했다.
[장 어멈, 손 어멈은 빨리 가서 물을 데우고 밥을 하게나. 주인집에서 손님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니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하겠네.]
그 노복은 곧바로 주방을 찾아 들어갔다. 서천천은 이 장씨 집에 와 본 적이 있었다. 위소보가 온갖 수단과 교묘한 말로 이 무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을 속여서 함정과 그물 속으로 끌어오자 내심 기뻐서 춤 이라도 추고 싶은 지경이었다. 여러 형제들은 계단에 앉아 마각이 노출 될 것을 염려하여 병자와 위소보가 있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 다. 노옹은 오지영을 가리키며 물었다.
[입 속에 피를 흘리고 있는 사내는 어떤 사람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이놈은 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놈으로 우리가 도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관청에 밀고할까 봐 그래서....그래서 그의 혀를 잘라 버렸습니 다.]
노옹은 처음부터 그에 대해 내심 의혹을 품고 있었는데, 위소보가 하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반신반의하여 오지영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물 어 봤다.
[자네는 조정의 관리인가? 정말 그러한가?]
오지영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몇 번인가 까무러쳤기 때문에 상황 판 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옹은 또 물었다.
[자네는 어떤 자가 모반을 획책하려는 것을 알고서 조정에 밀고하려고 했는가?]
오지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남쪽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무장이 모반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 습니다. 그 무장의 성은 오씨인데 그분이 병력을 일으키기만 하면 천하 가 흔들리는 것이죠.]
그 노옹은 다시 오지영에게 물었다.
[그의 말이 사실인가?]
오지영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노옹은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았다. 위소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믿는 눈치였다. 그는 의자 에 돌아와 앉으며 위소보에게 물었다.
[오형의 무공은 어느 사부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오?]
위소보는 대답했다.
[나의 사부님은 여러 분 계시지요. 하나, 둘, 셋 모두 세 분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저는 본래가 멍청하고 게을러서 그 무엇도 제대로 배우 지 못하였지요.]
노옹은 내심 생각했다. (네 놈이 무공을 잘 연마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의 신행백변의 경공(輕功)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위소보가 보여 준 신행백변의 경공은 구우일모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의 몸놀림과 발놀림은 틀림없이 신행백변이란 상승의 경공 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시 물었다.
[당신은 누구에게 경공을 배우셨소?]
위소보는 내심 생각했다. (이자가 끝끝내 나에게 경공을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물어 오니 틀림없 이 나의 사태(師跆) 사부님과 원수지간임에 틀림없다. 절대로 말할 수 없지. 이자는 오삼계의 일당이고 대체로 서장(西藏)의 라마들과 교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서장에 대라마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의 이름은 상결(桑結)이라는 분이 십니다. 그분께서는 곤명 평서왕의 오화궁(五華宮)에서 나를 만나 보시 고 내 무공이 너무나 빈약하여 사람들과 싸움을 할 때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도망가는 방법이라도 배우는 것이 좋겠 다고 하시며 며칠 동안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 공력을 배 울 때 매우 고생을 해서 내 스스로는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었지요. 그 런데 어르신과 노마님, 그리고 이 신강력장(身强力壯)하시고 정신백배 (精神百倍)하신 귀 도련님을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군요.]
노부인은 위소보가 자기 아들을 '신강력장, 정신백배'라고 칭찬하자 자 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며 아들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마음에 기쁨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 영감! 이 아이가 며칠 동안 정신이 아주 든 건 사실이에요.]
노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들이 피곤하여 의자에 기대어 있는 모습은 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괴 로웠다. 그는 위소보를 향해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되었구려. 그렇다면 됐소이다.]
노부인이 물었다.
[그런데 그 상결은 어떻게 철검문(鐵劍門)의 경공을 할 줄 알게 되었을 까?]
노옹은 말했다.
[철검문 중에는 옥진자(王眞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서장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적이 있었지.]
노부인이 말했다.
[아! 맞습니다. 그는 본래 목상도장(木桑道長)의 사제입니다. 아마 그 는 그때 서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전수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쌍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당신의 무공은 누구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오?]
노부부는 그녀롤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무공 전승 내력이 아 주 중요한 일이나 되는 듯한 눈치였다. 쌍아는 두 사람이 똑바로 쳐다 보자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저는....저는....]
그녀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위소보가 재빨리 말했다.
[이 여자는 저의 계집종입니다. 상결 라마께서 그녀에게도 역시 무공을 가르쳐 주셨지요.]
노옹과 노부인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똑같이 말했다.
[절대로 아닐 것이다.]
병자가 다시 큰소리로 기침을 해댔다. 기침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노 부인은 급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노옹 역시 고 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보았다. 여자 하인이 주방에서 인삼탕과 뜨거운 차를 받쳐들고 나왔다. 그리고 병자에게 다가가 그의 기침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기침이 잠시 멈추자 인삼탕을 건네주어 그가 마시도록 도왔으며 병자가 인삼탕 을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릇을 열어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 작하였다. 서천천 일행에게도 찻잔이 돌아갔다. 노옹이 차를 마시고 다 시 쌍아에게 무언가를 물어 보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로 간 후였 다. 노옹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손 어멈에게 물었다.
[이 차를 끓인 물은 어디에서 길어 온 것인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속으로 외 쳤다. (큰일났구나! 큰일났어! 이 망할 늙은이가 알아차렸구나.)
[저와 장어멈이 함께 물을 끓인 것입니다.]
손 어멈이 이렇게 대답하자 노옹은 다시 물었다.
[어떤 물을 사용한 것이냐?]
손 어멈과 장 어멈과 함께 대답했다.
[주방에 있는 항아리의 물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 물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물은 매우 깨끗하 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털썩털썩 소리가 나더니 두 명의 남자 하인이 땅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노부인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몸이 뒤뚱거렸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머리를 감싸며 외쳤다.
[차 안에 독이 있다!]
서천천 등은 차를 마시지 않았으나 서로 눈짓을 하고 일제히 거짓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하였다. 쨍그랑,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 들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위소보는 외쳤다.
[아이쿠!]
그 역시 땅바닥에 쓰러져 눈을 꼭 감았다. 장 어멈과 손 어멈이 동시에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은 우리들이 끓인 것입니다. 주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 았습니다.]
그 노부인은 말했다.
[항아리에 약을 집어넣은 것이다. 얘야, 너는 좀 어떠냐?] [괜찮습니다. 아직은....]
병자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더니 역시 정신을 잃었 다. 손 어멈은 말했다.
[인삼탕에는 물을 더 넣지 않았습니다. 인삼탕은 우리들이 다려서 가져 온 것입니다.]
노옹은 말했다.
[옆에서 물을 끓일 때 그 수증기가 들어갔을 것이다.]
노부인은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아이는 너무 허약하니까. 그래서....그래서....]
그녀는 급히 손을 내밀어 병자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이마를 만지는 손은 계속해서 벌벌 떨고 있었다. 노옹은 내공을 운행시켜 뱃속에 들어 있는 약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억제하면서 말했다.
[빨리 가서 차가운 물을 길어 오도록 하여라.]
장 어멈과 손 어멈은 차를 마시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이렇게 괴상한 사 건이 일어나자 놀란 나머지 혼비백산하여 급히 안쪽으로 달려갔다. 노 부인이 말했다.
[이 집이 수상쩍습니다.]
그녀는 몸에 병기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숙여 남자 하인의 허리 에서 칼을 뽑아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땅바닥이 빙빙 도는 듯하여 더 이상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 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가락이.칼자루에 가 닿았지만 힘이 없어 칼자 루를 쥐지 못했다. 노옹은 의자에서 왼손으로 턱을 기대고 눈을 감았 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연신 몸을 기우뚱거렸다. 위소보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이러한 상황들을 살펴보았다. 쌍아가 한 무리의 여자들을 이끌고 나타나자 노옹이 갑자기 일장을 휘둘렀다. 하 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그 일 장을 맞아 멀리 날아가더니 의자 위에 떨어졌고 의자는 대뜸 박살이 났다. 서천천 등은 큰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투어 노옹의 앞으로 달려갔다. 달려가 보니 노옹 역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풍제중은 그의 혈도를 짚고 또 노부인과 병자의 혈도를 짚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껄껄 웃으면서 외쳤다.
[셋째 마님, 안녕하십니까?]
한 무리의 여자들 중에 한 여자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였다. 그 여자는 바로 장씨 집안의 셋째 마님이었다. 위소보가 인사를 하자 급히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위 도련님, 도련님께서는 우리들의 크나큰 원수를 잡아 주셨습니다. 정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 우 리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위 도련님, 이리 오셔 서 우리 사부님을 만나 보시죠.]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노란 옷을 입은 여자 앞으로 갔다. 그 여자는 손 을 내밀어 조금 전에 노옹에게 일 장을 맞아 나가떨어진 여자의 등을 톡톡 치고 있었다. 그러자 그 상처를 입은 여자가 확 하고 소리를 내더 니 새빨간 피를 토해 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 했다.
[이제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워 듣는 사람의 간장을 녹이는 듯하였다. 위 소보가 얼핏 보니 이 여자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였으나 목소리는 마 치 소녀처럼 아름다워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금 환(金環)이 얹혀 있었으며 발은 맨발이었고 허리에는 수를 놓은 허리띠 를 감고 있어서 차림새가 매우 이상하였다. 머리카락은 이미 하얗게 세 었으나 얼굴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단지 눈 가장자리에 약간의 주름살 이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추측할 수 없었다. 머 리카락을 보아서는 육십이 넘어 보였으나 얼굴을 보면 삽십 살 안팎으 로 보일 뿐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셋째 마님의 사부이므로 위소보는 즉시 앞으로 나가 무 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할머니 누님, 절 받으십시오.]
그 여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이가 지금 나에게 뭐라고 했느냐?]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셋째 마님의 사부이시니 제가 응당 할머니라고 불러야 되겠지요. 그러나 어르신네의 모습을 보니 아무리 많이 보아도 저의 누 님뻘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머니 누님이라고 부른 것 입니다.]
그 여자는 킥킥 웃더니 말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자네의 누님뻘이라면 자네의 동생도 될 수 있지 아니한가?]
위소보는 대답했다.
[만약에 제가 뵙지 않고 어르신네의 목소리만 들었다면 그때는 어르신 을 할머니 동생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여자는 몸을 젖히며 깔깔 웃더니 말했다.
[정말로 재미있는 사람이군. 입에 참기름을 바른 듯 말이 번지르르하니 정말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어. 그러니 귀 사백(歸師伯)과 같은 영웅 도 자네의 재간을 당해 내지 못하여 속고 말았지.]
그녀의 이 말이 떨어지자 모든 사람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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