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26) 관우의 출전, 안량을 베다
한편, 모사 전풍(謀士 田豊)과 허유는 원소의 출정 문제를 가지고 내전으로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허유가 말한다.
"전풍 형! 어렵사리 주공을 설득시켜 놨는데, 어찌 공격을 저지시켜 놓았소?"
"당신의 계획이 틀리고 내 전략이 완벽하기 때문이오."
전풍은 허유를 무시하는 말투로 쏘아 붙이 듯이 말했다.
"그래요? 주공께서 전형보다 나를 신임하니까 질투를 하시는 것은 아니고요?"
"천만에, 내게 그런 마음이 있다면 질투 할 만한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지, 어찌 허형을 상대로 하겠소? 다만, 당신의 전략은 지금 싯점에 실행하기에는 무모하다는 것이오."
"그래요? 질투뿐 아니라 날 원망하고 있는게로군요."
허유는 전풍의 대답하는 태도가 몹시 못 마땅 했지만 책사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流)한 태도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전풍은 허유와는 달리, 말 끝에는 적의(敵意)가 숨어 있었다.
전풍이 말한다.
"허형! 주공이 당신에게 내린 곤장을 기억하시오? 흉터는 아물더라도 고통은 오래 기억하시오."
하고, 말하며 허유에게 건방지게 나서지 말라는 투로 말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어찌 또 그때 일을 핑게로 나를 몰아세우는가? 당신은 매양 그런 날이 없을 것 같은가?"
마침내 허유도 전풍에게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전풍은 허유를 돌아보며 말한다.
"허나, 나는 당신처럼 곤장이나 얻어 맞고 말을 바꾸지는 않네! 난 주공께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충언을 고하지, 누구처럼 맘을 바꾸진 않아!"
"이런! ..."
허유가 전풍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역시, 세치 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두 사람의 논쟁은 아는 사람이 들어도 기막힌 것이었고, 이들이 논쟁하는 한, 그 끝은 보이지 않을 지경이이었다.
그 순간, 전령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치며 명령서를 들고 뛰어나간다.
"주공깨서 안량 문추는 조조군을 공격하라 하신다!"
"뭐라?"
전풍은 깜짝 놀라며 달려가는 전령의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때 허유는 당연하다는 듯이
"허허허! ..."
하고, 전풍이 들으라는 듯이 호쾌하게 웃으며 점잖은 수염을 내리쓸었다.
전풍은 내전 계단을 황급히 뛰어 올랐다.
주공을 뵙고, 전쟁의 부당함을 간하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허유가 전풍의 뒷통수에다 한 마디 내갈긴다.
"전 형! 조만간 그 소릴 지를 줄 알았소!"
...
그 시간, 내전에서는 원소가 문무대신에게 명한다.
"닷새 안에 전군은 여양에 도착하라! 늦으면 참한다."
그때 전풍이 내전으로 뛰어들며 소리쳐 원소를 불러대었다.
"주공! 주공?!..."
전풍의 외침에 원소는 귀찮은 존재를 만난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전풍은 듣거라! 군심을 현혹하는 말은 삼가라!"
하고, 전풍의 외침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전풍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주공! 한 마디만 들어 주소서! 꼭 전쟁을 하시겠다면, 허창은 안 되옵니다. 연진과 관도로 나누어 공격하시옵소서. 그리고 안량은 용맹하나 지략이 없어 선봉은 안됩니다!"
하고, 간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탁자를 <탁> 하고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군심을 교란시키려 해?"
"주공!"
그러나 원소는 인상을 찡그리며 호령한다.
"여봐라! "
병사 둘이 뛰어들며 명을 받든다.
"예!"
"전풍의 지위를 박탈하고 마굿간에 보내, 마부나 시키게 하여라!"
하고, 매몰찬 명령을 내린다.
"주공!"
"물러가! 꺼져! ... 끌어 내!"
원소는 화가 동해,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숙고해 주세요, 주공! ~..."
전풍은 두 병사에 의해 끌려 나가면서도 소리쳐 아뢰었다.
두 병사에 의해 양쪽 팔이 끼어, 대롱대롱 매달려가던 전풍을 발견한 것은 계단을 올라오던 허유였다.
"잠깐, 잠깐!"
허유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매달려 끌려가던 사내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한다.
"저런,저런! 누군가 했더니 전풍 형이로군요! 왜? 마굿간 지기를 하시게?"
허유는 고소(苦笑)를 머금고 말했다.?
"큰소리 허풍만 치는 전풍인줄 알았더니, 말도 잘 부릴 줄 아시는구려?"
그러자 모욕을 받은 전풍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고서 갑자기 허유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퇘!"
"이크!"
소매자락으로 얼굴의 침을 닦아낸 허유가 병사들에게 호령한다.
"끌고 가라!"
"주공! 주~우 공 ~!..."
전풍은 병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주공을 애처롭게 불러대었다.
...
한편, 원소가 허도를 목표로 군사를 일으켜 온다는 급보가 전해지자, 조조는 전군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출정식을 열고, 십오만 군사를 친히 몰고 여양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관우가 적토마에 청룡 언월도를 비껴들고 나타났다.
"승상! 원소와 접전한다던데, 소장이 선봉에 서겠소."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어조로 조조에게 고했다.
그러자 조조는,
"운장! 당신은 그동안 형님 생각에 식음을 전폐 했다던데, 과연 그런가?"
"....."
관우는 조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조는 관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한 어조로,
"이번에는 수고할 것 없네! 돌아가 푹 쉬면서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게나,"
하고, 말하면서 이번 전쟁에는 관우를 데려갈 생각이 없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관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이내, 전군에 명한다.
"출발!"
"네! 출발하라!"
그러자 출전을 알리는 장고와 나팔소리가 동시에 하늘을 뚫을 듯, 땅이 꺼질 듯,우렁차게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뿌우우! ~...뿌 우우!~... 둥! 둥! 둥! 둥! ...."
"웃싸! 웃쌰! 웃쌰! ..."
"착! 착! 착! 착! ....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북소리, 나팔소리, 병사들의 힘찬 군호소리, 그리고 그들이 지축을 울리며 밟는 군화소리와 자욱한 먼지 구름속에 관우의 소리는 뭍혀버렸다.
...
여양의 넓은 개활지(開豁地)를 마주보고 대치한 양군(兩軍)은 초전(初戰)에 승기를 잡기 위해 세차게 부딪쳤다.
조조는 여포의 부하였던 용장 송헌(宋憲)을 불러 말했다.
"내 들으니, 자네가 여포의 수하로 있을 때 용장으로 이름을 날렸다지? 지금 나가서 안량과 한번 싸워보아라!"
송헌은 의기양양하게 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는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안량의 창에 맞아 머리가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저런 , 안량은 과연 용장이로구나! 그렇다면 위속(魏續)이 나가서 송헌의 원수를 갚도록 하라!"
위속 역시 전날 여포의 수하 용장이었다.
위속이 명을 받고 번개같이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 역시 안량의 창에 찔려 대번에 피를 뿜으며 말에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저런, 저런! 저자를 당할 자 뉘 없는 가?"
조조가 이런 광경을 보고 탄식하듯 뇌까렸다.
"소장이 나가 싸우겠나이다!"
이번에는 서황(徐晃)이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 역시 칠팔 합 싸우다가 세가 몰리자 본진으로 쫓겨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를 보고 모든 장수들이 겁을 집어먹고 감히 싸우려 나서지를 못한다.
"엉? 안량이 이렇게도 용맹하던가? 반나절 만에 장군 둘을 치다니, 그렇다면 저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겠는데,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나?"
조조가 실망과 염려가 교차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정욱이 말한다.
"주공! 안량을 칠 자가 꼭 한 사람 있습니다."
"누구? 관우 말인가?"
조조는 정욱의 속을 꿰뚫어 보는 대답을 하였다.
"네, 관우입니다. 예전에 단칼에 화웅의 목을 벤 것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지, 허나 공을 세운 뒤에 날 떠날까 걱정스러워,"
"주공! 유비가 살아있다고 가정해 보시죠. 그럼 유비가 투항할 곳은 어디겠습니까? 분명 원소겠지요.
그러니 관우를 출전시켜 원소의 장군을 쳐버리면, 원소가 홧김에 유비를 죽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원소가 유비를 죽이게 되면, 관우에게는 오직 주공 뿐이 아니겠습니까?"
조조는 정욱의 말을 듣자 갑자기 말을 <뚝> 끊었다.
그리고 속으론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척도 하지 아니하고 조인을 부른다.
"조인?"
"예!"
"속히 관우를 불러라! 적토마가 빠르니, 금방 올 것이다. 내가 술잔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니, 모래 정오까지 오라고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
"네, 주공!"
그리고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조조는 군사들을 물렸다.
그것은 안량도 마찬가지로 이날, 초전의 승기는 원소군의 대장인 안량이 확실히 잡았다.
관우는 조조의 명을 받자, 즉시 두 형수를 찾아 뵈었다.
"제가 이번에 조 승상의 명을 받고 싸움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 몸조심해서 무사히 돌아오시기 바라오. 그리고 싸움터에 나가시면 황숙이 어디 계신지 좀 알아 보고 오소서."
"제가 어찌 그것을 잊고 있겠습니까. 머지않아 형님을 뵈올 날이 있으리라 짐작되오니 안심하소서."
관우는 두 형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이내 어양으로 달려갔다.
조조가 도착을 명한 그시간, 조조군은 원소군과 다시 넓은 개활지에서 마주 보고 대치하였다.
양군은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각기 방어막을 치고 전고(戰鼓)를 울리며, 창으로 땅바닥을 두드리고, 군화발로 땅을 차면서, 승리의 군호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엇! 엇! 엇! 엇! ..."
"우쌰! 우싸! 우쌰! 우쌰!..."
"둥! 둥! 둥! 둥!...."
그야말로 천지가 떠나갈 듯이 서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그때, 조조군 앞으로 적토마를 타고 청룡 언월도를 비껴든 관우가 나타났다.
조조는 관우를 보고 전투마차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조조를 발견한 관우가 조조의 전투마차 앞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
"명을 받고 관우가 왔소!"
하고, 고하자 조조가 관우에게 묻는다.
"운장! 저건 원소의 군대일세 웅장하지 않은가?"
"낡아빠진 기왓장일 뿐이오!"
관우는 호기 당당한 어조로 대꾸했다.
조조가 원소군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자가 원소의 주장 안량인데, 여포 못지 않턴데!"
"내게 목숨을 바치러 나온 것 같소이다!"
관우는 전혀 기죽지 않은 소리로 대꾸했다.
"자네 아주 오만하구먼!"
"내 당장 저 놈의 목을 가져오겠소."
"농담 삼가게, 만약 못 가져오면? 어쩌나?"
"그럼 내 목을 가지시오!"
"좋다! 술을 따라라!"
조조가 부하에게 명하자 관우가 적토마를 돌려 적진으로 나간다.
"북을 울려라!"
조조의 명이 떨어졌고, 진고가 세차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
적토마의 새로 박은 편자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원소의 적진으로 내달렸다.
"웬 무명지졸이냐?"
적장 안량은 가소로운 소리를 내뱉으며 진격해 오는 관우에게 마주달려 나갔다.
그리고 관우와 안량이 단 한번 부딪쳤을 뿐인데, 서로 말과 말이 한번 비켜갔을 뿐인데, 마주쳤다 사이가 멀어져간 사이에 말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단 한 사람은 안량이었다.
관우는 적토마를 돌려, 땅바닥에 고꾸라진 안량의 목을 청룡도로 베어 칼 끝에 꿰어들고 돌아왔다.
"와 아!~ ... 와! 와! 와! 와!..."
조조군은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이와 동시에 관우와 안량의 싸움을 지켜보던 조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축하하옵니다! 관우가 공을 세웠습니다."
조인이 신이 나서 들뜬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싸움으로 인해, 유비의 목숨이 위태로워 진다면 나는 그게 더 기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