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민수기 14장 11-20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하나님께서 많은 이적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호하시며 지키신다는 것을 증명하셨음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멸시하였기에 전염병으로 그들을 심판하고 모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 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멸하신다는 표현은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정탐꾼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그에 대한 이스라엘 자손의 반응의 핵심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말씀하셨던 언약의 핵심 중 하나인 땅의 약속을 신뢰하느냐의 문제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 자손의 반응은 단순히 연약한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가나안 땅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언약 관계 안에서 거져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이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영적 전쟁이었다. 가나안은 영적으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에 해당된다. 옛성전을 정복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성전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 땅의 주인이시기에 본질적으로 땅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마찬가지로 심령 속의 새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신도들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으면 되는 것이다.
천국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안정된 고향을 떠났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행군했던 것처럼 옛사람을 벗하며 살지 않고 심령 속의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행진하는 성도를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며 마침내 천국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모세는 자신을 죽이려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루신 역사에 근거하여 호소한다. 둘째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얼마나 악한지에 집중하기 보다 이방인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명성에 근거하여 호소한다. 셋째로, 모세는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한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자손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근거는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며 아무런 소망이 없던 이스라엘 자손을 먼저 찾아와 건져주신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있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라는 표현에서 더디하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숨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분노의 감정을 호흡으로 다스리시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인자가 많은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인자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신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먼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친히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 14장 21-25절「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에는 유보 사항이 있었다.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시험하였으며 순종하지 않았기에 약속의 땅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하고 모세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손을 시작할 것이라는 처음의 심판 내용 보다는 완화되었지만,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는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출애굽 1세대 중에는 오직 가나안 정탐 후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 보고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 들어가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날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광야로 들어갈 것을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두려워하는 아멜렉인들과 가나안인들을 피해서 홍해 길을 따라 갈 것을 말씀하셨다. 홍해 길은 신 광야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에시온게벨로 향하는 길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두려워하는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지만,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 믿음으로 나아갔다면,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안겨주셨을 것이다. 가나안과의 전쟁이라는 큰 모험을 치르기에 앞서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모두 도망가버렸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찾아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오늘날 믿음의 신도들도 예수를 믿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자기의 육신적인 눈으로 믿으므로, 세상에 대해서 넘어질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시련과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다름아니라, 바로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옛사람과의 전쟁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