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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52회>
씬 오장자집 별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도영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왕건장군은 천하의 명장이고 참으로 장부 중에 장부라 들었습니다. 헌데 이처럼 금성을 가벼이 보셨단 말입니까..?
변사부 허허허... 낭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씀 드렸듯이 이 사람은 왕장군에게 무예를 전수한 사부이올시다.
도영 .........
변사부 그만한 예를 모르고 그만한 사정을 모른 채 저희들을 이곳까지 보냈겠사옵니까..? 혹, 결례되는 것이 있었다면 마음을 푸시지요? 저희 왕장군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왕식렴 그렇습니다. 소생이 아마도 잠시 낭자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사옵니다. 결례를 용서하시오소서.
그제서야 도영이 빙긋이 웃는다.
도영 저희 아버님은 이제 연로하셨습니다. 이곳에 모든 일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이치 허허, 그랬소이까, 낭자..? 처녀의 몸으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도영 왜요..? 여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 그런 말씀이십니까..?
이치 아, 아니올시다. 그런 것이 아니고...
도영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자면 그런 편견부터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해설 장화황후 오씨. 훗날 태조왕건의 두 번째 황후로서 고려 제국 제2대 황제에 오르는 혜종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 여인, 목포의 호족 오다린의 딸로서 대대로 지금의 나주인 금성 관내 목포 땅에서 살아온 여인이다. 그녀는 여러 가지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성격이 상당히 활달했으며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이 여인이 지금 중요한 금성의 향배를 놓고 그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변사부 허허허, 낭자. 저희 세 사람이 오늘 낭자에게 여러 번 혼이 나고 있소이다. 그만 하시지요, 허허허.... 아버님께서는 어디를 가셨습니까..? 다시 한번 뵈었으면 좋겠는데....
도영 지금 금성 관아에 가 계십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일을 의논하고 계실 겝니다.
모두들 ....... (긴장하는 눈빛이고)
도영 너무 걱정들은 마시어요. 어차피 우리의 사정을 알고 오신 분들이라 하셨사옵니다. 그렇다면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식렴 (반가워서) 그렇습니까, 낭자...?
도영 자, 잠시 더 편이들 쉬고 계십시오. 곧 먹을 것을 장만해 올리겠습니다.
도영이 나가고 세 사람은 서로를 본다.
이치 (긴장하며) 태수와 만나고 있을 겝니다.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아마도 오늘이 제삿날이 될 겝니다.
왕식렴 하지만, 전 낭자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뭔가 기대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마는...
변사부 좀 더 기다려 보지요...
씬 금성 관아
오다린과 종례는 그저 앉은 채 아무런 말이 없다. 오다린이 고개를 들어 종례를 본다. 종례는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젓고 한숨만 반복하고 있다.
오다린 (찻잔을 보며) 차가 다 식었소이다.
종례 ..............
오다린 이제 가부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소이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가 될 것입니다.
종례 ....................
오다린 답답하오. 참으로 답답해.......
종례 사실대로 수달장군에게 고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오장자와 나는 결국 백제국에 속해있는 사람들이올시다.
오다린 정말 그리해도 되겠소이까? 후회가 없으시겠냐는 것입니다?
종례 그야..........
오다린 물론 우리는 이땅에 사는 사람들이올시다. 허나, 견훤황제는 어떻소이까..? 그 사람은 신라의 장수였소이다?
종례 허허... 이보시오, 오장자..?
오다린 타고난 백제며 신라며 고려가 어디 있소이까..? 지금 싸우는 것은 삼한이 통일되는 과정이올시다. 우리는 그중 백제의 충성하였지만 지금은 그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소이다.
종례 (답답하다. 한숨만 쉰다)
오다린 우리는 이제까지 미루어온 세금 때문에 질책을 받고 있소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나라에서 내린 공역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종례 ..............
오다린 헌데 이제 그들을 고발한다고 생각해보시오. 나는 세금을 내기 위해 저들과 행했던 밀무역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적과 내통하였다는 의심까지 받게 될 겝니다. 종례 태수께서도 책임을 모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오.
종례 그렇다고 저들 말대로 금성을 내어주자는 겝니까..? 그랬다간 이곳 금성은 그야말로 불바다에 쑥대밭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다린 우리에게 밀사를 보내온 사람은 왕건이라는 장수입니다. 그는 우리도 잘 아는 송악 대상 왕륭 성주의 아들입니다.
종례 ........... (점점 귀를 기울인다)
오다린 우리와 같은 장보고 장군의 후예지요. 생각해 보시구려. 그 증표를 내 앞에 가지고 왔소이다. 우리가 형제라는 증표를 말이에요.
종례 으음......(무거운 신음만)
오다린 우리가 누구에게 매이고 산 사람들이오이까?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온 뱃사람들이에요. 바다의 사람들 말이에요..
종례 ............ 그럼 저들과 함께 하면 앞으로 어찌되는 것이오이까..?
오다린 그에 대한 보장과 약속을 받아야겠지요.
종례 그리구요...?
오다린 뜻이 맞아지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종례 ........... 목숨이라...? 목숨이라.......?
씬 오다린의 집 외경
하인들이 집을 둘러싸고 감시하고 있다. 집사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씬 동 집 별채
문이 열리며 도영과 시종들이 음식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온다.
도영 시장들 하실 터인데... 좀들 드시지요?
왕식렴 아버님께서는 우리를 이곳에 가두어 두라 하셨습니다. 낭자께서 이러 하시면 후에 곤욕을 치르지 않으시겠습니까..?
도영 (웃으며) 집안의 모든 일은 제가한다 하였습니다. 어서들 드시지요?
변사부 허허허... 낭자께서는 대단한 담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도영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변사부 우리는 그야말로 잘못하면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그런 임무를 가지고 왔소이다. 그런데도 전혀 동요함이 없이 우리를 대하니 담력이 크다 할 수 밖에요.
도영 호호호..... 그리 보아주시니 감사하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게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는 알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모두들 ......... (할말이 없다)
도영 물론 소녀도 도울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녀의 아버님께서 댁들이 가지고 오신 보검을 보시고 흔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보검이 없었다면 댁들은 모두 벌써 수달장군의 병영으로 끌려가 있겠지요. 음식이 식습니다. 어서들 드시지요?
이들이 헛기침을 날리며 말없이 수저를 든다. 도영이 미소 띄며 보고 있다가 다시 묻는다.
도영 왕건이라는 분... 참으로 놀라운 혜안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사정을 어찌 그리 꿰뚫고 있었습니까..?
왕식렴 허허허...저희 형님께서는 그런 분이시지요.
도영 그래서 백계산 옥룡사 스님까지 모시고 오셨습니까? 듣자하니 왕건장군은 도선대사님의 속가 제자라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변사부 그렇소이다, 낭자...
도영 참으로 들을 수록 대단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스승의 이름을 빌어 적국의 큰 땅을 취하려 들다니... 이야말로 얼마나 영악스러운 일입니까..?
모두들 ........? (먹다 말고 놀라서 본다)
도영 아니 그렇습니까..? 왕건이라는 장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생각할 수록 놀라운 사람이에요.
도영의 말에 더이상 아무도 대꾸를 않는다. 그저 헛기침만 날리며 수저를 놀릴 뿐이다. 그야말로 영악한 것은 도영인 것이다.
도영 제가 아직 아버님이 가지고 계시는 서찰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만약에 이곳에서 힘을 보태주면 그곳에서는 이곳을 취하고 영원히 지킬 묘책이 과연 있는 것입니까?
왕식렴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낭자?
도영 호호호호.... 그러시겠지요. 알만 합니다.
웃는 도영의 표정에서...
씬 정주 포구
유장자와 왕건이 그 포구에 서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저쪽에는 엄청나게 웅장한 배들이 건조되고 있다.
유장자 생각보다 많은 재원과 시일이 걸리고 있구먼 그래. 어지간한 배들은 조금씩 손을 보아 쓸 수가 있겠지만 큰 전함들은 생각 밖으로 힘이 들어....
왕건 ...... 그럴 것이옵니다, 장자어른.
유장자 군사들의 훈련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왕건 이미 바다에 경험이 많은 수군들을 별도로 모아 비밀리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사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송악의 군사들도 합류를 시켰사옵니다.
유장자 그리해야겠지.
왕건 훈련은 주로 저의 결의형제들인 유부장과 능산 부장, 박술희 부장이 맡고 있사옵니다.
유장자 음.... 믿을만한 사람들이지.
왕건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대대적인 수군이 될 것이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 정주와 송악 주변의 훈련장에 모여 있다는 것이옵니다. 혹 이번 거사가 흘러 나가기라도 한다면 모든 일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옵니다.
유장자 비밀을 지키는 일은 신경을 쓰지 말게나. 몇몇 목공들을 제외한다면 이것이 함선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네. 대부분의 인부들은 그저 상선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
왕건 저들 속에 혹시 백제의 첩자가 끼여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더욱 더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유장자 그 점이라면 마음을 놓으시게. (다시 함선들을 보며) 저 배들을 모두 바다 위로 띄워 놓는다고 상상을 해보게. 그야말로 장관이겠구먼. 아주 볼 만할 것이야. 허허허.... 참으로 그 날이 기다려지네 그려.. 이야말로 역사에 기록될 대전이 되겠네 그려, 아니 그런가..? 허허허...
왕건 ...............?
씬 동 집 별채
부용이 왕건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다. 부용 모가 그런 부용을 한숨을 쉬며 쳐다본다.
부용 모 그 많은 허드렛일을 부용이 네가 다 하고 있단 말이지..? 하이구, 세상에....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부용 괜찮사옵니다, 어머니... 할만하옵니다.
부용 모 폐하께서도 이번에 다녀가시면서 너와 왕장군의 혼사를 말씀하셨다 더구나.
부용 ...........
부용 모 기왕에 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꺼내시면 너희 아버님께서는 대차게 좀 밀어보실 일이지. 왜 이렇게 답답함만 고집하시는지 모르겠구나?
부용 ...........(그저 미소만)
부용 모 호호호... 하긴 이 에미도 그간 왕장군을 지켜보았다만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장부더구나. 너의 아버님께서 마음을 빼앗길만도 하시다. 어찌 되었거나 이제 너는 꼼짝없이 왕장군의 아내가 될 운명인 모양인게다.
부용 .......... 소녀도 그렇게.... 각오하고 있사옵니다.
부용 모 뭐라..? 그렇게 각오를 했어..?
부용 정숙한 처녀가 홀로 있는 총각의 시중을 들고 있사옵니다. 이미 이곳으로 와서 장군의 뒤를 보살필 때부터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옵니까..?
부용 모 하긴... 하긴 그렇구나. 네 마음이 이미 그리 되었다면 단단히 다짐을 해야 할 것이야. 어떤 고생이나 결과가 있더라도 참고 말이다.
부용 예, 어머님...... (입술을 꼭 다문다)
부용 모 한때 이 에미는 왕장군을 너의 배필로 맞는 일에 많은 고심을 하였단다. 반대도 하였고.... 그건 황후마마의 일 때문이었지. 허나 이제는 아니다. 그것은 이미 과거사에 불과한 것....... 부용아.......
부용 예, 어머니......
부용 모 진실된 사람일수록 옛 사람을 못 잊는 법이니라. 네가 왕장군의 그 빈 마음을 채워주어야 할 것이니라. 황후마마께서 떠나버린 그 빈자리를.......
부용은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씬 황후전
백일 상이 차려져 있다. 강장자와 백씨가 두 태자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장자 두 태자마마의 백일 되심을 감축 드리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고맙사옵니다, 아버님, 어버님.
백씨 많은 친족들이 선물을 보내왔사옵니다. 천천히 풀어보시오소서.
강장자 아아구.. 우리 태자님들께서 하루가 다르게 크시옵니다.
연화 두 아이들을 키우노라니 어머님, 아버님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크셨는지 새삼 깨닫게 되옵니다. 그 동안 제가 서운하게 했던 일들은 다 잊으시오소서.
백씨 별 말씀을 다하시옵니다. 서운이라니요.......?
연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더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사옵니다.
백씨 ...............
연화 헌데 폐하께서는 오늘이 태자들의 백일이라는 것을 아시기나 하시는 것인지..........?
강장자 아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가 있겠사옵니까?
연화 그런 일에는 워낙에 무심하신 분이 아니옵니까?
백씨 괜한 걱정이시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 아니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는 마마를 대하시는 것이 예전과는 아주 달라지셨사옵니다. 정무가 바빠서 그러시지 곧 이곳으로 납실 것이옵니다.
연화 그렇기야 하겠지요.
강장자 암요, 오시고 말구요. 그보다도 마마..?
연화 예, 아버님....
강장자 얼마 전에 문중에서 우리 집안을 맡을 양자를 들였사옵니다.
연화 ........... (냉소로 본다)
강장자 모름지기 한다하는 가문이 아니옵니까..? 마땅히 대를 이어야 하고.... 마마께는 사내 동생이 하나 생기는 것이옵니다.
연화 다 들었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하옵니까..?
강장자 예.....?
연화 딸인 제가 황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대부인 소리를 들으시고 아버님은 대부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황제 다음가는 명예를 갖고 계시옵니다.
두 부부 ............?
연화 명예로 족할 줄 아셔야 합니다. 아버님은 아직도 폐하를 모르십니다. 결코 반가워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강장자 하오나, 마마... 이는 집안의 후사를 잇기 위함이옵니다. 그렇다고 기왕에 결정한 일을 폐하께 말씀을 아니 올릴 수도 없고... 허허허.....
씬 대전
궁예와 아지태를 비롯하여 종간과 은부가 함께 해 있다.
종간 정주를 다녀오셨다 들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렇소이다. 가서 보니 아주 흡족하더이다. 사방 천지에 배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것들이 머지않아 왕장군의 인솔하에 백제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허허허.....
아지태 대단한 계획이었사옵니다, 폐하... 감히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사옵니다. 왕장군은 실로 놀라운 사람이옵니다, 폐하.
종간 ............?
은부 (눈치를 보다가) 하오나 워낙 대대적인 공역인지라. 너무 세상에 드러나 있는 것 같사옵니다.
종간 본래 큰 일을 하자면 비밀이란 그다지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적절한 때에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할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궁예 옳은 말이오. 이미 상당히 진척이 되었습디다. 앞으로 몇 달만 있으면 결과가 눈에 보일 것 같아요.
종간 그곳에 아학사도 함께 가셨사옵니까..?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허허허.... 폐하께서 특별히 동행하시자 하여 이몸이 수행해 올렸사옵니다. 가서 유익한 말들도 나누었고...
종간 ...... (떫다)
아지태 왕장군 그 사람 젊은 사람이 아주 총명하고 배포가 큰 인물이었사옵니다. 이 나라를 위해 참으로 그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없이 든든했사옵니다.
종간 .......... (말하기도 싫다)
은부 내원어른, (눈치를 보다가) 왕장군은 뜻밖에도 그 자리에서 도선비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냈사옵니다.
종간 도선비기...?
놀라는 종간의 표정이 역력하다. 모두들 그런 종간을 본다. 궁예가 웃는다.
궁예 핫하하하... 역시 내원은 민감하게 반응을 할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종간 그래서 어찌되었사옵니까..? 도선비기를 어찌하였다 하옵니까..?
궁예 은장군, 들은 대로 이야기하여 주시게나..
은부 그 도선비기를 옛날 도선대사가 계시던 백계산의 옥룡사로 가지고 갔다 하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끈으로 하여 금성의 호족들을 만난다 하였사옵니다.
종간 (눈을 감고 생각한다) 도선비기는 송악과 왕장군에 관한 예언서이옵니다. 괴기스럽고 요망하기가 짝이 없는 예언이라 들었사옵니다. 마땅히 수습하여 그 원인을 알아보아야 할 책이옵니다.
궁예 글쎄, 내원은 이렇다니까....? 우리가 다 설명을 들었소이다. 그것에 혼란한 난세를 살아가는 방법이 씌어있다 하였소이다. 돌아오는 대로 내가 태워버리라 일렀소이다.
종간 폐하... 마땅히 신이 그것을 살펴보고 또한 알아야 할 것이옵니다. 소문으로만 전하여 온 도선비기이옵니다. 그것을 왕장군이 갖고 있었사옵니다. 살펴보아야 하옵니다, 폐하.
아지태 이미 태워버리라고 하셨다 하지 않사옵니까..? 허허허, 내원어른... 우리 학인들이 볼 때는 그런 예언서 따위는 아주 미천하게 보옵니다. 어찌 그런 것에 그리 연연하시온지.....
종간 (격하여) 무엇이라....?
아지태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기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마는...
모두들 ........... ?
아지태 매사 훌륭하신 내원어르신께서 다른 것은 다 좋으신 데 바로 그런 면에서 생각이 잘못되신 것 같사옵니다. 쓸데없는 세상 소문만 믿고 송악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신 것이 오늘날 나라에 돌이키기 어려운 실수로 되었사옵니다.
종간 ..........실수?
아지태 송악은 왕씨 가문이 일군 땅이옵니다. 황제의 자리는 그처럼 많은 호족들이 다투어 일구어 놓은 여러 땅들을 다스리는 자리시옵니다. 작은 땅에 연연하시어 폐하를 이곳으로 잘못 모셔온 것 같사옵니다.
종간 닥치지 못할까..?
궁예 ...........?
은부 아학사. 어느 안전이신 줄 아시오..? 폐하께서 계신 자리요. 어찌 그리 경망스러이 입을 놀리는 것이오..?
종간 폐하... 이 자가 학문은 알았으되 겉만 알고 있사옵고, 인물이 큰 척하고 있으나 실은 괴변만 늘어놓는 소인배이옵니다. 현혹되지 마시오소서. 황도는 이곳 송악으로 족하옵니다. 철원이란 가당치도 않사옵니다.
궁예 허허, 이보시오, 내원. 그토록 침착한 사람이 어찌하여 둘이만 마주앉으면 이리 역정을 내시는 게요..? 이래서는 이야기가 아니되지... 아니 되요. 이런, 쯧쯧쯧...... 다음에 이야기하십시다. 내 오늘은 좋게 의견을 좀 나누려고 했는데...
종간 폐하... 이 자를 믿지 마시오소서. 나라에 크게 해악을 끼칠 자이옵니다.
아지태 허허허, 내원어른... 말씀이 지나치시옵니다. 신은 그저 폐하를 위해 살고 죽기 위해 황도로 올라온 사람이옵니다. 어여삐 보아 주시오소서.
종간 그 입을 닥치지 못하겠는가..?
궁예 (주변 보다가 도리질) 아니 되겠군... 다음에 이야기하십시다. 기왕에 도읍을 옮기는 얘기가 나왔으니 조정에서 공론화 시켜 보십시다. 나는 오늘 황후전에 좀 가 보아야겠소이다. 음.....
궁예가 기분이 안좋아 일어선다. 아지태가 종간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종간은 그만 눈을 감아버린다.
씬 동 궁궐 어느 전각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다. 모두 근심스런 표정으로 중심부에 앉아있는 박지윤을 보고 있다.
박지윤 지금 대전에서는 황제폐하를 모시고 내원어른과 은장군, 아지태라는 사람이 모여 환담을 하고 계신다 하십니다. 이 사람이 알기로는 아마도 그 황도를 옮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
박지윤 엊그제도 우리가 의논을 나누었지만 폐하 주변에서만 이 일을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신료들의 의견을 모아
전해 올려야 할 것입니다. 배현경 환도 문제는 전쟁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올시다. 심사숙고 하셔야 할 사안으로 사려되옵니다.
홍유 그렇사옵니다. 나라 이름을 바꾸시고 새롭게 하신다 하여 굳이 황도를 옮길 필요까지는 없을 줄로 아뢰옵니다.
환선길 하지만, 이 사람도 오래 생각해보니 폐하의 뜻이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지겸 타당성이라니요..? 어째서 말입니까, 환장군..?
환선길 백성 중에 무리를 일으켜 오늘의 제국을 창업하신 분이시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도와 백전 백승하였소이다. 그리고 제국의 막중한 소임을 담당하는 신료들이 되었소이다. 그 분께서 하신다면 하는 것입니다.
이흔암 소장도 환장군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바이옵니다.
김락 하지만 백성들이 고단한 일입니다. 황도를 옮기는 일이 우리가 성 열 개를 빼앗는 것 보다 결코 쉽지 않소이다.
김언 그건 그렇소이다. 어려운 일이고 말구요.
종희 하지만 환장군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우리들의 주인이십니다. 주인께서 하시고자 하시는데 반대만 할 수야 없지 않소이까..?
박지윤 허허, 이걸 어찌한다.....? 이렇게도 결론이 안 나서야....
장자1 좀더 시간을 가지고 의논들을 해 보시지요, 광치나 어른....
장자2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라도 의견이 모아져야 말씀을 올리든지 아니 하든지 할 것이 아닙니까..?
씬 황후전
궁예가 즐거운 표정으로 두 어린아이를 보고 있다.
궁예 세월 참 빠르구나. 어느새 백일이 지났어. 허허허.... 황후께서 태자들을 아주 건강하게 잘 키우셨구려.
연화 신첩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사옵니다. 유모들의 고생이 많았사옵니다.
궁예 물론 유모들도 상궁들도 다 고생이 많을 게야.
제조상궁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황후전의 상궁도 고생이 많을 게야... 이름이...?
슬이 슬이라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렇지.. 그래.. 허허허... 우리 아기씨들이 참으로 단단해 보이는구먼..
강장자 폐하의 정기를 받아 탄생하신 태자님들이옵니다. 건강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그 누구보다 장인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듯 합니다.
강장자 하하하. 이를 말씀이시옵니까? 하옵고 폐하... 소신에게도 이제 아들이 생겼사옵니다.
그러자 궁예는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 해서 강장자를 보고 연화와 백씨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강장자는 주책없이 계속 말한다.
강장자 신의 집안에 사내 자식이 없사옵니다. 아무래도 훗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문중에서 한 젊은이를 택하였사옵니다.
궁예 ........?
강장자 곧 함께 입궐하여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궁예 양자라...? 양자를 들였다...?
강장자 예, 그러하옵니다. 집안을 잘 보존하려면 역시 아들이 있어야 되지 않겠사옵니까? 곧 인사라도....?
궁예 그럴 필요 없소이다.
강장자 예...?
궁예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내가 끼여들 일은 아니오 마는 그냥 지내면 될 것을 굳이 양자를 들여서 무얼 하시겠소? 장인께서는 아직도 부족한 게 많으신가 봅니다, 허허허....
연화 .............?
백씨 ............(안절부절못하고)
강장자 소신은 그저.... 장차 황제폐하에 오르실 태자님을 생각하여..... 그 뒤라도 도와드리고자....
궁예 태자의 뒤를 왜 장인께서 걱정하신 단 말씀이오..?
강장자 폐하.. 그... 그런 것이 아니 오라..
궁예 이제 백일 지난 어린아이들이오. 벌써 그 뒤까지 생각하셨단 말씀이오..? 대단하시구려. 도대체 얼마나 더 큰 영화를 원하시는 것이오이까..?
강장자 아, 아니옵니다... 그런 것이 아니옵고...
궁예 사람이 사는데는 중도라는 것이 있소이다. 만족할 줄을 아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오. 그 분수를 모르게 되면 자칫 불행해질 수 있지요. 아니 그렇소이까, 황후?
연화 ..............
궁예 나에게 처남이 생기면 그 처남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또, 그 처남이란 사람이 누이인 황후를 믿고 권세를 부리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이 황실에 전혀 필요치 않은 외척의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부터 장인어른을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강장자 예, 폐하.... 신이 그만... 일을 가벼이 생각했나 보옵니다.
궁예 허허허.. 알았으면 되었습니다. 황후께서 이런 일을 잘좀 설명해 주시지 않고...
연화 ............(역시 궁예는 생각했던 그대로이다)
궁예 나는 말입니다. (두 아이를 어르며) 어렵게 세운 이 나라를 그렇게 아무렇게나 뒤를 물려주고 싶지 않소이다. 적어도 한 나라를 맡는 인물은 그에 적합한 모든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외다. 자질 말입니다.
씬 정주 유장자의 집 외경
유장자 (E) 금성에 가 있는 세작들의 보고가 올라왔네.
씬 동 집 별채
왕건이 유장자와 함께 마주해 있다.
유장자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는 것 같네.
왕건 어찌하고들 있다 하옵니까..?
유장자 그곳에 장사관계로 우리 집사장이 부리는 수하들이 두어 사람 금성 포구에 박혀 있다네. 그들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왕건 일이 잘못 되었사옵니까..?
유장자 글쎄... 내가 듣기로는 자네가 보낸 송악 사람들이 오장자집 후원별채에 연금되어 있다는 구먼...
왕건 그렇다면 일이 꼬인 것이 아니옵니까..?
유장자 아아, 뭐 그렇다고 그렇게 비관적으로는 생각하지 마세나. 방금 전 들어온 소식일세. 그곳에서 여기까지는 이틀길이야. 지금쯤 상황이 변해 있을 수도 있을 것일세.
왕건 .............(답답한 한숨)
유장자 내가 보검을 왕장군 자네에게 준 것은 바닷사람들의 깊은 의리를 건드리고자 함이었네. 적어도 금성의 오다린이란 사람은 바다를 아는 사람일세.
왕건 하지만... 금성의 대표적 호족이옵니다. 그 세력과 영향력도 클 뿐 아니라 금성 중에서도 요지인 목포 일대의 장자이옵니다. 쉽게 우리의 뜻에 동조를 할런지요...?
유장자 허허허... 왕장군.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네. 결과를 기다려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일은 모두 잘 되고 있네 그려. 아주 잘 되고 있어...
씬 금성 오다린의 집 외경
씬 동 곳간
왕식렴과 변사부, 이치들은 모두가 초조한 기색들이다.
이치 벌써 이틀이 지났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우리를 가두어 놓으려는지......
변사부 기다려 보십시다. 어쨌든 이곳의 낭자가 다녀갔고 일이 잘 될 것이라 귀띔하였소이다. 믿어보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소이까?
이치 한 시각이 급한데 이렇게 앉아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왕식렴 좀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저들은 그야말로 평생을 살아온 기반과 영토와 목숨까지 거는 일입니다. 결코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치 .......허긴 그렇겠지요...
변사부 하지만 조금전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일단은 기대를 해 보는 수 밖에요. 이 댁의 낭자... 도영낭자라고 했던가요..? 허허허.... 아주 대단한 여장부입니다. 그 낭자를 믿어 보십시다.
씬 오장자의 처소 밖
여전히 집사와 장정들이 집안을 경계하며 오가고 있다.
씬 동 집 방안
오다린이 갈등에 잠겨 있다.
오다린 (E)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벌써 며칠이 그냥 가버렸어. 종례 태수는 아직도 대답을 못하고 있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진퇴양란이 따로 없구나.
도영 (E) 아버님, 계시옵니까..?
오다린 오냐... 들어오너라.
도영이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오다린의 눈치를 살핀다.
도영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옵니까?
오다린 응.... 도영이로구나. 아니다... 염전에서 오는 모양이로구나.
도영 예, 아버님... 그 일도 그 일이거니와 주변 사정을 좀 알아보느라 돌아다녔사옵니다.
오다린 주변 사정은 왜...?
도영 고려국의 밀사들이 우리 집에 온지 벌써 사흘째이옵니다. 행여 수달장군이나 다른 곳에서 안다면 큰 일이 아니옵니까..?
오다린 그렇지... 그건 그래. 하지만,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와 종례 태수 뿐이란다.
도영 시간을 오래 지체할 일이 아니옵니다. 이런 혼란한 전시에는 사방 천지에 첩자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옵니다. 서둘러 끝내시오소서.
오다린 난들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느냐..? 하지만...
도영 결단을 내시오소서. 저들과 뜻을 함께 하시던지 아니면....
오다린 아니면...?
도영 지금이라도 수달장군의 병영에 알려 저들의 목을 베시오소서.
오다린 목을....? (그러다 도리질)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 남겠느냐..?
도영 허면... 지금이라도 결정하시오소서. 종례 태수님은 더 이상 기다리지 마시오소서.
오다린 ...........그래서..?
도영 소녀.... 송악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보았사옵니다.
오다린 ...... 그래, 그랬더니..?
도영 그들은 진정 아버님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고민해 오신 것은 견훤황제가 아버님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오다린 음, 그거야.....
도영 송악을 도와주시오소서. 저들은 바다의 의리를 앞세워 아버님께 왔사옵니다. 그 의리를 받으시오소서.
오다린 ........그래서?
도영 저들은 우리와 똑같은 바다 사람들이옵니다. 아버님께 다시 옛 영화를 돌려줄 것이옵니다.
오다린 .............? (한숨) 견훤대왕이 저들처럼 바다만 알았더라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씬 완산주 궁궐
박씨와 궁인들이 사냥에서 돌아오는 견훤들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신료들이 함께 돌아오고 있다. 이들은 막 궁궐 문 안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며 각자 황후에게 예를 올린다.
박씨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별고 없으셨사옵니까?
견훤 암, 별고는 무슨... 재미있는 사냥이었소이다. 허허허... 어 피곤하구구먼... 하지만 대전에서 일은 좀 봐야겠지..? 들 가세...
견훤은 싸늘하게 박씨를 지나쳐 고비와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박씨는 의아한 얼굴로 신검과 양검을 쳐다본다. 풀이 죽어있다. 신료들이 예를 올리며 한쪽으로 몰려가고 박씨는 묻는다.
박씨 이보게, 내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전 내관 그것이... 저.....
박씨 어서 말해보게.
신검 사냥터에서 별로 성과가 좋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라 아버님께 야단을 맞았사옵니다.
박씨 왜 그리들 변변치가 못하느냐. 아바마마의 눈에 드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이더냐?
양검 ..............
신검 소자도 모르겠사옵니다. 괜히 아바마마 앞에서 서면 소자들은 주눅이 드옵니다. 그것을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박씨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찌 황제자리를 물려 받을 수 있겠느냐? 마음을 독하게들 먹거라. 다 저것 승평부인
때문이니라. 저것 때문이야.
씬 정전
견훤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모였다.
견훤 그래.. 잠시 사냥을 다녀왔네 마는... 그 동안 별일은 없었는가?
최승우 예, 폐하. 군단이 주재해 있는 여러 고을들에서 훈련의 결과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이미 대부분의 전쟁준비가 완료되고 있사옵니다.
견훤 암, 암... 그렇게 되어야지. 다른 일은..?
최승우 헌데 고려의 내부 사정이 좀 시끄러운 듯 하옵니다.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아지태라는 자의 주장에 따라 국도를 옮기는 일이 여전히 고려조정을 시끄럽게 하는 모양이옵니다.
견훤 그래....? 계속좀 그래 주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신라를 도모할 때까지만 말이야. 허허허... 이젠 다 되었어. 짐이 날짜만 잡으면 되는 게야. 길일을 잘 택하도록 하세. 그리하여 전군을 동시에 대대적으로 투입하도록 하세.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이번에는 보란 듯이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해. 대 백제국의 군대가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천하에 알려야 한단 말씀이야. 암.... 이번에는 정말 수달이가 심심하겠어. 전선에 함께 가야 하는 것인데 말씀이야..?
최승우 아니옵니다. 서남해는 수달장군이 필요한 곳이옵니다. 이번에는 그대로 두시오소서.
견훤 글쎄, 내 그래서 파진찬의 말을 듣기는 들었소이다마는... 허허허... 그 친구가 그렇게 얌전히 있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란 말씀이야... 하하하하.......
씬 금성관아 외경
수달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씬 동 관사 안
수달과 종례가 마주 앉았다. 수달은 떠벌리고 있고 종례는 그저 무거운 표정 그대로이다.
수달 그 동안 참으로 적조 했소이다. 한동안 산성의 군사들과 훈련을 하느라 눈코뜰새가 없었소이다. 허허허...
종례 알고 있습니다, 장군....
수달 여기 뿐만 아니라 우리 백제국 곳곳에서도 군사들이 훈련에 돌입해 있소이다. 벌써 여러 달되었지요.
종례 알고 있습니다, 장군....
수달 물론 나는 이곳에 머물면서 금성과 더불어 서남해 일대를 지키라고 명을 받았소이다.
종레 아, 예....
수달 (술을 마시다말고) 헌데... 이보시오, 태수? 어디가 불편하신 모양이오..?
종례 아, 아니올습니다. 불편은요..?
수달 그래서 말씀인데 말이오. 이 수달이가 누구요. 대 백제국 황제폐하이신 견훤대왕님의 의형제이올시다. 의형제 말이오.
종례 예. 예... 어찌 이 사람이 모르겠소이까..? 아, 그때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까..?
수달 아, 참 그랬지. 그랬어요.... 암, 기가 막힌 날들이었지.
종례 ........... (역시 무표정하고)
수달 해서 말인데... 이렇게 대대적으로 신라를 향해 군사를 일으켜 가려고 하는데.... 우리 서남해가 다른 성들에 뒤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아니 그렇소이까..? 내가 폐하의 동생인데 말이오?
종례 하지만 장군.....
수달 아아, (손을 저으며) 압니다. 어렵지요...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 더 호족들을 다잡아야지요. 그것이 태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까? 아니 그렇소이까..?
종례 ...............
수달 우리는 소금이라는 엄청난 재원이 있소이다. 오장자를 더욱 닦달해 보시오. 그 사람은 아직도 쌓아놓은 재물이 많을 것이외다.
종례 장군.... 더 이상 어찌 닦달을 하라 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도 많이 지쳐 있습니다.
수달 허허, 이렇게 원... 닦달을 하면 나온다니까요.
종례 ........ (도리질하며 눈을 감고 한숨만...)
씬 오다린의 집 외경
씬 동 집 방안
어둠 속에서 촛불만 일렁거리고 있다. 여전히 오다린과 도영이 마주해 있다. 그 앞에 두 자루의 보검이 놓여있다. 오랫동안 오다린은 거푸 한숨만 내쉰다.
오다린 이와 똑같은 보검이 본래는 세 자루였다 들었느니라. 원래 바닷사람들은 정표를 좋아한단다. 오래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신의와 믿음의 표시 말이다.
도영 ...............?
오다린 우리 조상님들의 형제들이 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형제가 되자 하는구나....?
도영 결심을 하셨사옵니까..?
오다린 (긴 한숨) 어찌 하겠느냐..? 어차피 내가 뜻을 먼저 정하면 결국은 종례태수도 따라올 것이니라. 어딘가는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번 더 속아보자꾸나.
도영 왜 속는다 하시옵니까..? 이제부터는 더 이상은 힘이 있는 자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옵니다.
오다린 어떻게...? 무엇으로..?
도영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약속을 받아 내시오소서. 수달 장군이 견훤대왕에게 자신의 힘을 인정받아 금성을 장악했듯이 이번에는 아버님과 태수어른께서 궁예 대왕에게 이 금성을 주고 그만한 댓가를 받으시오소서.
오다린 댓가를 받아...?
도영 그러하옵니다. 그 일을 소녀가 맡아 하겠사옵니다.
오다린 네가 말이냐..?
도영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뜻을 정하셨으니 저들에게 가시오소서. 가서 아버님의 결심을 알려 드리시오소서.
오다린 ............... 결심이라? (끄덕이며) 결심이라..? 그래, 가자꾸나.
도영 ...........?
그런 부녀의 얼굴에서... 디졸브되면...
씬 동 집 별채
긴장이 흐르고 있다. 모두들 오다린을 보고 있다.
왕식렴 지금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저희들에게 뜻을 함께 하신다 하셨사옵니까..?
오다린 그렇소이다. 공자. 그대들이 가져온 보검의 의미를 믿어 보기로 하였소이다.
왕식렴 정녕 결심을 하신 것이옵니까..?
도영 그렇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 금성을 고려국 땅에 귀속시키기로 하셨습니다.
변사부 장자어른...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어려운 결심을 주시어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일동 고맙사옵니다, 장자어른....
그때, 문이 벌컥 열린다. 모두들 놀라서 보면 그곳에 종례가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오다린 아니, 종례 태수가 아니시오..?
종례 그렇소이다. 방금 전 수달 장군과 헤어져 이곳으로 오는 길이외다. 역시 오장자의 말씀이 맞는 것 같소이다.
오다린 ..........?
종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애원을 해도 저들은 우리의 실정을 모릅니다. 우리의 길을 가십시다.
오다린 (손을 잡으며) 고맙소이다, 종례 태수, 고맙소이다.
왕식렴들이 그제서야 안도를 하며 두 사람을 본다. 도영이 웃고 있다.
도영 주안상을 마련해도 되겠사옵니까, 아버님..?
오다린 암, 그래야겠지. 한번 거하게 차려 보거라. 허허허.... 자 들 앉으십시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논의해 보십시다. 이 금성 땅을 백제국이 아닌 고려 땅으로 만드는 일 말이올시다.
도영 생각할 수록 이 일을 꾸민 왕건이라는 장군이 대단한 분 같사옵니다. 아마도 어쩌면 우리가 오늘 이런 결론을 내리라는 것까지도 그 분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다린 그럴 수도... 있겠지.
도영 소녀가 한번 가서 그 왕장군을 보아야겠사옵니다.
오다린 뭐라...?
도영 이번 일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옵니다. 비록 우리가 뜻은 모았으나 아직 고려에서 우리가 원하는 약속은 받지 못하였사옵니다.
종례 허긴....
도영 잠시 더 이분들을 이 곳에 인질로 잡고 계시 오소서.
세 사람 ...... (당황하여) 아니, 저 낭자...?
도영 모든 일은 철저하고 완벽해야 하옵니다. 백제 땅안에 고려의 영토를 세우는 일이옵니다. 소녀가 왕장군을 만나보겠사옵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정확하고 확실해 지지 않겠사옵니까..? 아니 그렇사옵니까, 아버님....?
기가 막힌 왕식렴들의 모습과 끄덕이는 두 사람, 그리고 그렇게 당차게 웃는 도영이의 모습에서.......
<5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