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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오언 (Michael Owen) 전 축구선수
출생 1979년 12월 14일 (만 39세), 영국
신체 173cm
데뷔 1996년 '리버풀 FC' 입단
수상 2001 발롱도르 외 5건
경력 2012~2013 스토크 시티 FC 외 8건
사이트 공식사이트, 트위터
성명: 마이클 오언 (Michael Owen) 남자
출생시 이름: Michael James Owen
생년월일: 1979년 12월 14일 22시 20분 (오후 10시 20분)
출생장소: 영국 Chester, 53n12, 2w54
시간대: GMT h0e (표준시간)
출처: 자서전/전기 (확인한 점성술사-Taglilatelo)
양 력: 1979년 12월 14일 22:20
음/평: 1979년 10월 25일 22:20 남자
시 일 월 년
丁 乙 丙 己
亥 卯 子 未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92 82 72 62 52 42 32 22 12 2.6
현재 나이: 41 세 (2019년 기해년)
대운 시작: 2 세 6 월 1 일
현재 대운: 申
오웬의 고백.."아들, 희귀병으로 사실상 실명 상태"
[OSEN=이인환 기자] 이인환 입력 2019.09.16.
아버지의 심정. 마이클 오웬이 자서전서 아들의 희귀병에 대해 고백했다. 영국 '미러'는 지난 15일(한국시간) '타임스'의 인터뷰를 인용해 "오웬은 그의 아들 클라이너가 희귀병으로 인해 사실상 맹인이라는 것을 고백했다"라고 보도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리버풀, 뉴캐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오웬은 최근 선수 생활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통해 앨런 시어러와 갈등 등 여러 가지 사실을 폭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런 오웬에게 말하기 힘든 개인사가 있었다. 14살이 된 아들 클라이너에 대해 오웬은 "그는 나를 이어서 축구 선수로 뛸 수 없다. 희귀 유전병으로 인해 '사실상' 맹인 상태다"라고 고백했다.
오웬의 아들 클라이너가 앓고 있는 '스타르가르트병'은 8세에서 15세 사이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망막의 기능이 퇴화되어 시력이 극도로 저하된다.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의 시력은 계속 저하될 뿐만 아니라 색을 구별하는 능력 역시 둔해지게 된다. 시력 전반적으로 정확성이 떨어지게 되면서 시야 식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작 스타르가르트병의 뚜렷한 치료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들의 병을 털어놓은 오웬은 "이전까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대서특필되기를 원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오웬은 "클라이너는 사실상 맹인이다. 망막의 퇴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경기 중 공을 보는 것이 힘든 상태다"라고 아들의 몸상태에 대해 밝혔다.
전설적인 공격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다 보니 그의 자식들도 출중한 운동 신경을 자랑한다. 오웬의 장녀 젬마는 승마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클라이너 역시 2대 축구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곤 했다.
오웬은 "여러 사람들이 그를 보며 '쟤도 축구 선수가 될까'라고 물으면 직접 나서서 '나보단 못하지'라고 답해야만 했다"라고 아픈 기억을 공개했다.
마이클 제임스 오웬 (영어: Michael James Owen, 1979년 12월 14일, 체스터 ~) 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로,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스토크 시티는 물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공격수로 활동했었다. 축구 은퇴 후, 그는 경마 사육사 겸 소유주가 되었다.
전 축구 선수 테리 오웬의 아들인 마이클 오웬은 체스터 출신으로, 1996년에 리버풀 소속으로 성인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리버풀 유소년부를 거쳐 1997년 5월에 처음으로 출전한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의 온전한 첫 해에 그는 18골로 구단 내 공동 최다 득점자였다. 그는 이듬해에도 같은 업적을 반복해 1997년과 2004년 사이에 리버풀의 최다 득점자로 명성을 떨쳤고, 반복되는 오금 부상에도 불구하고 검증된 골잡이임을 증명했다. 2000-01 시즌, 리버풀은 UEFA컵, FA컵, 그리고 풋볼 리그컵을 한꺼번에 석권해 컵 3관왕을 달성했고, 오웬은 이 공로로 그 해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리버풀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216번 출전해 118골을 기록했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 297 경기에서 158골을 집어넣었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오웬은 리버풀 지지자들의 투표로 선정된 "콥을 들썩이게 한 100명의 선수들" 목록에 14번째에 이름을 올렸다.[3] 2004년, 펠레는 오웬을 살아있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목록인 FIFA 100에 등재했다.[4]
2004년 여름, 오웬은 £8M에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겼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후보 선수로 주로 기용되었다. 그는 라 리가에서 13골을 기록하고 이듬해에 잉글랜드 무대로 돌아가 £16M의 가격으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2005-06 시즌을 믿음직하게 시작한 오웬은 이어지는 18달의 기간에 걸쳐 잦은 부상으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복귀 후, 그는 주장 완장을 받아 2007-08 시즌에 선수단 득점 1위를 기록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2008-09 시즌 후 강등되면서, 오웬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자유 이적했다. 그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3년을 보내고 2012년 9월에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 오웬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도합 150골 이상 득점한 8명의 선수들 중 한 명이다.[5] 그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연소 100골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6] 2013년 3월 19일, 오웬은 2012-13 시즌 후 은퇴할 것임을 밝혔다.
국가대항전에서, 오웬은 1998년에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고, 잉글랜드의 역대 최연소 출전 선수이자 최연소 득점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98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국내외 특급 유망주로 떠올랐고, UEFA 유로 2000, 2002년 FIFA 월드컵, 그리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4번의 주요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부상을 당해 재활에만 1년이 걸렸다. 간간히 주장 완장을 차기도 한 그는 잉글랜드 최다 출전 11위를 기록했고 국내 최다인 공식 대회 26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웨인 루니가 경신했고, 국가대표팀 출전 경기를 모두 합산해 89경기에서 40골을 득점했고,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2008년에 치렀다.[7]
유년 시절[편집]
오웬은 체셔주 체스터 출신으로, 테리 오웬과 자네트의 넷째 아이로 태어났다.[8] 그의 부친은 전 축구 선수로, 체스터 시티와 에버턴에서 활약했었다. 오웬은 7세가 되었을 때 축구를 시작했고, 마이클의 가능성을 알아본 부친은 그를 가문 내 가장 유망한 선수로 여기기 시작했다.[8] 유년 시절 에버턴을 응원했던[9] 오웬은 10세가 될 때까지 북웨일스 플린트셔 하워든의 렉터 드루 초등학교를 다녔고, 국내 최고의 스카우터들이 그를 성장을 주시했다.[10]
여덟에 오웬은 디사이드 지역 초등학교 U-11 부서의 일원으로 뽑혔다. 9세였을 때에는 주장을 맡았고, 열에는 한 해에 97골을 기록해 이언 러시가 20년 동안 가지고 있던 같은 선수단의 최다 득점 기록을 깼으며, 이언 러시의 기존 기록을 무려 25골차로 제쳤다.[11][12] 오웬은 게리 스피드의 최다 출장 기록을 깼는데, 11세 이하 대회에 8살 때부터 3년에 걸쳐 전 경기를 출전했다.[12] 오웬은 몰드 알렉산드라 유소년부에 소집되어,[8] 8세때 하워드 로버츠 인근 체육 교사가 지도하는 U-10 부 소속이었고, 로버츠 선생은 나이가 차지 않은 그를 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허락했다.[8] 오웬은 몰드 알렉산드라 첫 출전 경기에서 골을 넣었는데,[11] 상대는 인근의 숙적 배길트로 이 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11] 그는 몰드 알렉산드라 1년차에 24경기 출전해 34골을 기록하기에 이르었다.[13] 디사이드를 떠난 오웬은 북웨일스 하워든 고등학교에 입학해 여기에서도 학교 대표로 출전했다.[10]
사생활[편집]
오웬은 1984년, 초등학생 시절 루이즈 본살을 만났다.[169] 부부는 북웨일스 플린트셔의 하 서턴 저택을 매입해 오웬의 차와 본살의 말들을 두고 있다. 둘은 2004년 2월 14일에 첫 맞선을 보아 2005년 6월 24일에 체셔 주 체스터의 카든 공원 호텔에서 결혼했다.[170] 부부는 본래 차택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세웠지만, 결혼식 장소 허가권을 받으려면 3년 동안 다른 당사자들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들었기에 계획을 바꿔야만 했고,[169] 등록된 사무실에서 평상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르고 이튿날에 자택 마당에서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둘 사이에 장녀 젬마 로즈가 2003년 5월 1일에 출생했다.[171] 2006년 2월 6일에는 아들 제임스 마이클이 태어났다. 셋째 에밀리 메이는 2007년 10월 29일에 출생했다.[172] 2010년 2월 26일, 넷째 제시카가 태어났다.[173]
오웬이 뉴캐슬에서 활약하기 위해 섬나라로 복귀했을때, 그는 구단의 훈련에 참가할 때 헬리콥터 비행으로 합류하기 위해 매일 인근의 BAE 시설을 방문해 배웠다. 따라서, 오웬 자택의 마당에 비행사가 되기 위해 훈련할 때와 돌아다닐 때에 쓰일 유로콥터 도핀을 주차할 헬기 착륙지점이 설치되었다.[174] 오웬은 보험비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뉴캐슬 유나이티드 훈련에 비행으로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175]
오웬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지역 인근의 율로에 대가족이 살 거리를 통째로 매입했다.[176]
2004년, 오웬의 누나 캐런이 그녀를 납치하려던 두 젊은이에게 습격을 당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두 젊은이는 도망쳤다.[177]
오웬은 차 몇 대와 헬리콥터 한 대를 소유하며, 경마와 노름을 즐긴다. 그는 경주마 몇 필도 소유하고 있고, 이 말들은 톰 다스콤이 훈련한다.[178] 그는 주요 경마 대회인 2011년 애스콧 왕립 대회[179]와 2015년 두바이 골드컵에서 우승한 브론 팬서를 키웠다.[180] 전 축구 선수인 리치 패트리지는 그의 매형이다.[181] 2015년 1월, 오웬은 스프레덱스 출판사에 자택이 저당 잡힌 것으로 보도되었다.[182]
2017년 11월 24일, 오웬은 애스콧에서 컬더 프린스를 타고 준우승을 거두었는데, 그는 골든 웨딩을 탄 톰 챗필드-로버츠를 제쳤다. 그는 찰스 왕태자와 콘월 태자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201미터 '왕태자 시골 자선 대회'에 10명의 아마추어 기사들 중 한 명이었다.[183]
오웬은 몇 차례 광고에 출연해 인생에 큰 족적을 남기고 유명세를 탔다.[184] 2001년, 그는 "네슬레 스포티스" 아침 시리얼의 광고 표지를 장식했다. 그는 페어질 세제의 광고에도 몇 차례 출연해 계약으로 £1M을 벌어들였다.[184] 오웬은 프로 에볼루션 사커 2008의 표지를 장식한 두 명의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185] 1998년부터 오웬은 스위스의 손목시계 제작사 티소의 홍보대사였고, 재규어 자동차 제작사와 계약 상태이다.[186][187]
오웬은 어린이 드라마 영웅에서 무로에서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드라마에서, 오웬은 찰리 브루스의 방에 어려운 시기에 대한 조언을 위해 직접 등장했다.[188]
오웬은 은퇴 후 고향의 구단이자 그의 부친이 2010년 3월에 파산으로 문을 닫고 하부 리그로 내려가 재결성된 구 체스터 시티의 선수였기에 체스터의 활동에 공헌할 의사를 보냈다.[189]
2013년 4월, 오웬은 마크 웨버 포뮬러 원 선수와 함께 SNS사 스포츠롭스터의 소주주가 되었다.[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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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주 팔자에 관성이 없는데...아들이 있으니...문제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