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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천 승 세
할매바위를 싸고 멍울멍울 모인 타래솜 같은 구름이 한 줌 시원한 빗줄이라도 뿌릴 듯 잔뜩 웅크리더니 이내 드문드문 파란 하늘 구멍을 내곤 눈돌림 질이었다.
먼 눈어림에도 대봉산 산자락은 뿌연 흙바람을 설치고는 눈이 맵도록 지글지글 탄다. 꽁지발이 아프도록 시퍼런 하늘을 이고 맴돌이를 쳐봐도 비가 오실 기미라고는 좀체 없다. 마른 바람질 한 번에도 신작로는 온통 황토 먼지 속에 싸이고 물줄을 찾아 파득대는 할미새가 숨가쁘게 도랑골을 탄다.
이만한 가믐이라도 천만다행이다 싶은 것은 보릿대에서 곰삭은 두엄 냄새가 나도록 보리농사는 파장을 봤고, 상동면 열두 고을로부터 샘말 방개둥에 이르기까지 그런대로 타작마당 일손은 서두르게끔 된 사실이었다.
배미말 산당터를 돌아 시오리를 실히 물줄을 뻗치다가 샘말 방개둥을 빠지면서는 다섯 갈래로 물골을 펴던 왕자냇물이 벌써 두달째나 빼득거리는 차돌더미를 불볕 아래 내솟으며 바짝 말랐다. 상동면 수리조합이 바닥나 밀떡처렴 쩍쩍 결을 찢으며 갈라져보기는 샘말에다 농사를 부쳐먹은 뒤 처음 당하는 오진 가뭄이다.
용배는 아무 곳에나 가리지 않고 푸썩 주저앉는다. 고무신 콧날에 한 삽질은 될 만한 흙먼지가 얹히면서 뽀얀 황토 먼지가 인다. 오장이 틀리도록 쥐어짜는 참매미 울음도 가닥가닥 겨우 이어지며 어지간히 용심을 쓴다.
“진장헐 놈어 불볕은…… 원, 숭헌 놈의 개불질도 다 당허네그랴…… 썩어질 놈의 보릿대는 믄 지랄났다고 다 펴서는……끌끌.”
물 한줌 제대로 못 먹어서는 보릿대만 훤칠하게 키를 뻗고, 그나마 왕골자무 밑의 마른 빈대 꼴로 겨우 에젖만 키우다가 시든 보리를 그까짓거 기를 쓰고 털어봐야 몇 섬일까만, 용배는 보리발 생각만 해도 가슴속에서 화덕블이 타는 것이었다.
상동면에서 기껏 백여 리 치닫는 거리였지만 대장춘만 해도 풋각씨 가마골 같은 훤한 수로가 와 닿았다. 상동면이 온통 가뭄에 폭푹 쪄서 생지옥처럼 인심이 마르는데도 수로의 꿀물로 밭가랑을 적시는 대장촌은 오진 대풍이라지 않는가.
용배는 말라 짜들어진 몰초를 인두불 다지듯 곰방대에다 재고는 불을 당긴다. 볼따귀가 뻐근하도록 한 모금 길게 빨아 내뿜는다. 펄펄 끓는 불볕 속이라 그런지 대통으로 빨리는 담배가 사뭇 불김이다. 입천장이 따근하도록 얼얼한 몰초연기가 유독 입맛을 망친다.
연신 쓴 입맛을 다셔대며 관자놀이가 저려오도록 궁리를 해봐야 뾰족한 묘안이 없다. 그저 쌀줌이라도 벌어 치성을 드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보리밭에다 불을 처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석조 영감의 기세 등등한 낯짝에다 생색을 내고 볼 일이고, 배미말 최가놈에게 보란 듯이 허세라도 부릴 참이었다.
필시 할매바위에 큰 재앙이 붙은 것이렷다. 논 한 뙈기 없는 살림에 읍내 장터까지 찌는 삼복을 훈김으로 멱질을 하면서까지 쏘시개 나무짐을 네 행보나 했었고, 늦봄에야 밀기울 떡으로 푸짐하게 뱃속을 채워본 뒤, 구경 한 번 못 해본 금싸래기 같은 쌀 두 되를 바꿔, 숨줄이 입 속에다 끈끈한 엿물을 설쿠도록 곧장 뛰어서는 이내 할매바위에다 잿쌀로 바치지 않았던가.
속창자가 명주올이 되도록 기름기라곤 벌써 이태전에 잊은 블쌍한 놈 잿쌀 두 되가 흙가루만도 못했을까, 할매바위 고랑신은 용배의 간절한 소원을 딱 입맛 다셔버리고는 저렇게 불솔 같은 훈김만 이고 섰다.
옛날, 저수지 옆에다 부쳐 먹던 상답 열 마지기에서 오진 쌀톨로만 스물 세 가마씩 털어 먹던 때야 칠만 원 같은 돈쯤 투전판 눈치끝발 재기 무섭게 눈 딱 감고 인심 써버리던 한판 기분에 족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까짓 칠만 원이 청대 같은 보리밭 아홉 가랑을 숨도 못쉬게 목줄올 움켜쥐었다.
할매바위 위에서 불볕을 내려쏟고 있는 불덩이 같은 해를 눈이 썩어져라 맞쳐다보고 있으니 금세 새큰한 눈물이 사르르 고이면서 종아리는 장마철 개울 건너온 두꺼비 뒷다리만큼이나 후들후들 지랄이다.
용배는 사뭇 할매바위 고랑신이 밉다 못해 고랑신이 거릉거릉 가래를 끓이면서 상기 숨줄을 잇고 있다는 저놈의 비녀 꼭지쯤을 한아롬 볏단올 후벼치는 시퍼런 낫날로 요절이라도 못 낼까 싶은 것이다.
용배의 움푹 패인 볼때기를 힐끗 곁눈질하다 말고 망경댁은 땟물이 꼬지꼬지 흐르는 가랭이를 아무렇게나 벌려 털썩 주지앉으며 숨넘어가는 소리다.
“그만저만 보시고는 한잠 시들기라도 하시제는…… 썩어질 놈의 보리밭 눈에다 생불 쓰고 보면 못해? 못할 꺼여…….”
“잡것아 주둥이나 단속혀. 지랄친다고 사설은 문자사설이엿? 보리밭이 으째 썩어? 아니, 믓이 썩엇?”
“이치가 안 그라요? 칠만 원이 뉘 애기 이름이라고 하늘에서 떨어질 끄라우 상여간 속에 죽어 나자빠졌을 끄라우. 꼼짝없는 일이제머…….”
“후웅ㅡ보리 키가 청대 같은디 칠만 원에 멘단 말이냐아? 아, 누구 맘대로? 어엉?”
“엇따 간쪽이여으! 무담씨 역정을 대고 지랄이시네거. 믓을 잠쉈다고 오기는 저렇게도 깔대같이 억셔빠졌으까잉?”
고래고래 악을 써대며 외쪽마루가 덜그덕덜그덕 보채도록 껑충껑충 뛰는 폼이 징 박은 풋망아지 설치는 꼴이다. 그런 용배를 홀기면서 톡톡 쏘는 망경댁의 심술도 어지간히 군물이 오른다.
용배는 땀에 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목줄을 타고 치솟는 홧김을 애써 참는다. 불김이 목 뒤로만 처얹히는 꼴로 돌잡이 도리질이 무색하게 초랭이 방정을 떠는 용배의 거동이 통개구리 삼킨 오리 방정처럼 파득댄다.
하루 종일을 눈이 아프도록 쳐다봐도 질리기는커녕 저절로 콧노래가 솟고 곁에만 가도 싸아하니 비린 보리 향기가 한 가슴을 다 채우던 보리밭이, 글쎄 단돈 칠만 원에 뗀다니, 꼬리 잘리운 살모사처럼 독물을 뿜고 오도방정질을 안 떨게 됐더냐.
샘말 풀난 자리 죄다 싹 쓸어봐라. 용배네 보리밭처럼 그만큼이라도 농사를 치른 보리발이 또 어디에 있던가 보릿대 키도 다른 밭에 비해 갑절은 실히 컸고 대마디에 유목 청무살이 오른 품이 한두어 섬쯤은 더 털어내고도 남을 숫자렷다.
“허어―환장칠 놈어 막장 아니냐.”
생각이 끝간곳 모르게 미치자 용배의 입에서는 절로 뜻 모를 비명이 샌다. 불볕을 담은 눈이 벌침 맞은 것처럼 맵고 사큰거린다. 순간 어질어질한 정신을 애써 모두고는 있는 힘올 다해 기둥을 껴안고 선다. 후들거리는 장딴지에 힘을 주毛 세월 편한 때면 밤마다 으레 그랬듯 망경댁의 낭창거리는 허리통을 바싹 조일 때처럼 기둥에다 두 가랭이를 똬리로 감아 죈다.
용배의 눈 속으로 보리밭이 술렁대는 것이다. 한바람 몰아가면 보리밭은 온통 비릿한 보리멸 냄새에 흠뻑 떠서는 출렁출렁 댕기춤을 춰댔다. 코 안이 맥맥하도록 보리멸 냄새가 파랑질이다.
용배는 두 눈을 딱 감은 채 홉사 성실한 사람처럼 벌름벌름 대구 냄새를 들이마셔 본다. 이내 모가지가 저리도록 울음 같은 홧김이 터져 샌다.
“밭도 내 것이고 보리 씨도 내가 묻었다. 내 손 안에서 보릿대가 다 컸고 내 손끝에서 멸이 다 펐다! 용배가 안 털어 묵으면 누가 털어 묵냐? 누가?”
그만 기력이 다해 기둥을 감아쥐고는 스르르 주저앉는데 망경댁이 맞받아 장단을 쳐본다.
“말이사 을메나 오지냐아? 그라제만 몰강스런놈어 속창아리들이 으디 그라요? 요새같이 궁할 때 당장 빚 돌라 하면 뻘건 두 손바닥만 멀쩡할지 뻔히 알고는 꿩도 묵고 알도 묵겄다는 석조 영감 심술이 눈에다 쌩불 키고 지랄인디…….”
“흥! 어림 콧물도 없다! 이무기 같은 놈의 그 심통을 누가 몰라서? 허제만 멱줄이 뜯겨서는 피도랑을 갈고 나자빠지기 전에는 어림 반푼도 없다. 배내가랭 이에서 밥풀올 뜯어먹을 놈들, 후응!”
“우리 보리발을 보면 그 노랭이 속이 상투춤을 추게 생겼제머. 이고오 ― 속에서 풀무질을 하능가 원, 시끌사끌 지랄이게…….”
산나물이라고 배실배실 시들어빠져서는 돼지도 못 먹을 것올 무슨 금싸래기라도 되는 양 아랫배 사추리에다 꼭 안아 낀 망경댁이 허기에 지친 탓인지 활줄처럼 허리를 다 굽히고는 연신 아이고 아이고 방정맞은 신음을 뱉으며 뒤안으로 돌아간다.
산나물죽이나마 하루에 두 끼를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다. 결쭉한 곡기에다 간물을 말아 어금니가 뻐근하도록 시어빠진 청무순을 터억 숟갈에다 걸쳐서는, 인중이 당기도록 한숨에 삼키고는 배꼽이 마슬을 돌게끔 시원한 용트림 질을 곁들여본 적 언제였던가.
한 웅큼이나 겨우 남았던 좁쌀가루마저 경끼가 일어 밤새 칭얼대는 쌍둥이 어린것들 주둥이에다 홀려줘버리고는 집 안엔 어쩌다 잘못 흘린 곡식톨 한 알 찾아볼 수 없다.
돋아나기가 바쁘게 캐먹어버리는 탓인지 가까운 산 속을 온종일 뒤져봐야 바구니 밑바닥을 덮기도 채 모자라고 해서 한 바구니 가뜩 나물을 캘려고 이십 리나 족히 되는 가파른 산길을 헤매다보면 장딴지에 버얼건 멍울이 돋쳐 며칠이고 쑤시고 아리기 일쑤였다.
용배는 땅이 꺼져라 길기도 한 한숨을 내뱉다 말고는, 쫓긴 동냥쟁이처럼 어슬렁 싸립을 들어서는 은순이년이 눈에 들자, 겨우 사그라져가던 분통이 다시 치어올라 또 한 차례 사주리 트는 형리 본새렸다.
“이런 염병을 헐 년아 믄 지랄났다고 동네방네 갈고 댕김시러 야단이엇? 방구석에 안 처백힐라냐, 엉?”
제풀에 몇 번 텅텅 발을 굴러대니 흡사 열무 뜯다 들킨 오리꼴로 은순이년이 벼락같이 방문을 열고 자취를 감춘다.
문지방을 훌쩍 넘는 은순이년 가랭이가 어쩌자고 저렇게 배배틀려버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용배의 가슴속으로 검불 불같은 설움과 열기가 화지끈 솟는다.
샘말 싹 쓸어 은순이년 같은 처녀가 없었다. 박 속처럼 새하얀 살결에다 몸뚱이엔 포동거리는 복살이 올라 배미말 최가가 아니래도 사내꼬타리라면 죄다 군침에 엿물을 달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원찮은 이유로 신방에서 하롯밤 새기가 무섭게 소박맞고 쫓겨온 뒤로는 시들시들 못 돼가는 꼴이 꼭 서리맞은 고명호박이다.
“쳐죽일놈어 가시내! 아니, 으짜자고 흘릴 것올 안 흘려? 엉?”
그 생각만 하면 밭갈이를 하다가도 곡괭이 쥔 손이 삿대차일질올 치던 터라 역정에 못 이겨 버럭 악을 쓰고 만 용배는 금세 아차 싶다. 이 소리만은 은순이년이 안 들었어야 했을 걸 그랬다 싶어 멋쩍게 헛기침 몇 번을 쥐어짜보는데 벌써 두 끼니나 굶은 뱃속이 얼씨구 맞장단질을 친다.
생각할수록 배미말 최가놈이 밉다. 아니 최가놈보다도 상동면을 다 쓸어 제일 가는 부농이랍시고 그 날캄한 눈꼬리를 번뜩번뜩 굴리면서 호들갑올 떠는 원창댁이 더 밉다.
말이야 밉다지만 용배의 지글지글 끓는 속이 어디 그것뿐인가, 분김대로라면 맷돌에다 년놈을 갈아도 분통은 남아돌 것이었다.
원창댁이 세 차례나 몸소 행보를 했고 최가놈은 해거름만 됐다하면 그저 용배의 중의 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통에 벼 열 닷섬을 받기로 하고 선뜻 은순이년을 내놓았지만, 명색이 혼사날인데, 소금물에 손등 적셔낼 수도 없는 일, 석조 영감 비위에다 살살 뜸물을 지펴서는 급전 이만 원에다 곡기 열 가마를 얻어내 혼사를 치렀던 것이다.
그 돈 이만 원과 곡기 열 가마값이 칠만 원이란 장리를 줄레볼레 새끼쳐석는 보리밭 아홉 가랑을 숨 못 쉬게 움켜쥐었다 생각하니 새삼 불김이 온 가슴에 다 찬다.
세상에 그런 이치는 없으렷다. 첫날밤올 새우고 아직 신랑도 기침을 않은 꼭두새벽에 원창댁 이 다리미를 들고 성큼 신방으로 들어서더란다.
“으디 보자아ㅡ 으디 보자아一.”
요망스러운 눈꼬리에다 잔뜩 명주주름을 잡고는, 그저 대견해서 실실 웃음기를 흘리며, 몸종을 불러 비누하고 대야물을 떠오라고 수선을 떨더니 두말 없이 훅ㅡ이불을 걷어 치우더라는 것이다.
놀라 깬 최가놈이 허검지겁 옷을 꿰입으며 어무니도! 어무니도! 하고 경끼를 떨어보지만 원창댁은 마무가내 미친 사람처럼 요판을 바삐 샅피더니 떠억 입을 벌리며 혼이 빠지더란다.
“아니 이 일이 워짠 일이라냐! 시상에 이런 변이 또 으디 있당가! 윗따 이 꼴이 믄 난리여? 으디서 화냥년이 집에 기어들었구나! 시상에! 시상에!”
은순이년은 영문을 몰라 채 꿰입지도 못한 옷가지를 주워들고는 겨우 사추리만 가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만 있고 최가놈도 어리벙벙 혼이 나가 앉았는데 원창댁의 그 해괴스러운 말이 독살스럽게 벼락을 치더란다.
“내가 며느리 셋 봤제만 이런 숭헌놈의 일은 처음 당하네그랴! 느그 성들은 셋이나 다 숫처녀만 만났어야! 셋이나 다 내 손으로 피를 빨어서는 다르미질로 싹싹 문대서는 첫이불을 개어줬느니라. 그란디, 아, 그란디 이것은 으째 그것이 없다냐? 요판이 으째 이렇게 깨끗하다냐? 아니, 웅당지사 흘려 있어야 할 것이 으째 없당가? 엉? 아이고 이 손하고 다르미 부끄러워서 으짠당가!”
부잣집 대청 아래 묶여온 촌닭 꼴로 은순이년은 그저 놀라 토끼 간이다 되는데 그만 최가놈의 삽자루 같은 발길이 은순이년 면상을 서너 번 치어받는가 싶더니 원창댁은 더욱 기가 높아 고래고래 악올 쓰더란다.
“나가! 썩 나가라! 약조한 곡기가마나 쌤매서는 후딱 쫓아보내! 시상에 쌍것들하고는…… 그래 여기가 으디라고 개구멍처럼 들쑥날쑥 썩 어빠진 지집년올 각씨라고 속여 보냈으그1나? 시상에 통도 크제 통도 커!”
복날 더위 추세에 늘여 뺀 황구 혓바닥처럼 한 발을 늘여 뺀 혓바닥으로 훼훼 오진 방정을 떨던 원창댁은 손에 들었던 다리미를 급기야는 내동댕이치며 금세 실성하더란다.
원창댁이 내려붙인 다리미에서 시뻘건 숯불들이 지글지글 마루를 태우고 그 불이 바직대며 지레 시들어 재가 될 때까지 정신을 빼고 앉아만 있던 은순이년은 그만 피에 미쳐버린 것이다.
날만 궂어도 은순이년 헛소리는 천만 번이고 똑같았다. 양 가랭이 속에다 얼굴을 묻고 죽은 듯이 앉아 있다가도 통알 삼킨 뱀 모가지 꼴로 하늘 속을 우러르며 연신 “피! 피!”다.
은순이년이 쫓겨온 바로 그날 밤 더없이 분한 일이 그예 터졌다. 첫날 밤 신방에서 있었어야 할 그것이 무슨 일인지 이튿날 밤에야 터졌다.
눈이 뒤집힌 망경댁이 원통해서 목을 놓았고 용배는 피가 흐른 요판을 부욱 찢어들고는 황소숨을 씨근덕거리며 그 길로 읍내 최가놈 집올 향해 치달렸다. 배미말 가는 길이 그렇게 서러워보기는 상동면에 호적을 올린 뒤 처음이었다.
“은순이 에미한테는 나도 피를 못 봤어! 사람이 으찌게 다 한가지란가? 지집년 사추리 속이 으찌게 다 한속이랑가? 그래도 은순이 에미는 동네가 쩡쩡 울리는 방정한 숫처녀였는디…… 이것을 봐! 이것이 믓잉가? 피가 아니고 믓이여! 없는놈 딸년은 이렇게 생트집 잡고 쥑여놔도 괜찮당가? 하늘이 멀쩡혀! 하늘이 내려다보네!”
목틀린 장닭처럼 실성해서 날뛰던 용배는 최가놈 머슴들에게 그예 쫓겼다. 약속한 쌀은 보내줄 테니 죽은 듯 처박혀 있으란 지가 벌써 석 달인데 그나마 쌀가마 소식은 영 꿀먹은 벙어리다.
관자놀이를 연신 꾹꾹 눌러대며 대구 도리질인 것이 실은 다른 속셈에서지만 그여코는 생각 밖의 분통이 터진다.
기왕 칠만 원은 빚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석조 영감과의 싸움에서는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용배는 더 괴롭다.
“아…… 꼭 이겨사제, 아암. 봐라! 누가 보리를 털어 묵는가…….”
석조 영감의 딸 달순이를 시샘 않으려 해도 은순이년만 보면 절로 울화통이 터지는 용배다. 배미말 최가놈이 달순이를 맞아간 것이다.
원창댁은 은순이년에게 했던 것처럼 그런 꼭두새벽에 신방에 들어와 합죽한 주둥이를 호박살 씹듯 그렇게 오무려 물고 실실 웃음기까지 흘리며 신나게 다리미질을 했다지 않은가.
높은 대청에 앉아, 긴 장대부삽으로 막 똥 갈기려는 닭들의 엉덩이에다 잼싸게 부삽을 갖다 받쳐서는 갓 튀긴 옥수수알처럼 따그르 구르는 닭똥을 받아 휘익 두엄 쪽으로 던지는 일로 하루 해를 다 넘기는, 그 깔끔하고 독살스러운 원창댁 앞에서 석조 영감 면상에다 찰엿 같은 가래침을 앵겨 칠만 원을 뿌리려니 하고 용배는 불끈 주먹을 쥐어본다.
천수답 부쳐먹는 농가래야 기껏 세 집, 죄다들 열 마지기가 실히 넘게 저수지 물받이에다 부치는 상답농군들 틈에 끼여 용배는 그나마 논 한 뙈기 없는 동냥치나 다름없다.
여섯 식구 목줄이 걸린 보리밭 아홉 가랑만이래도 이것만은 절대 남의 손에 넘길 수 없는 것이라구 다짐하며 끓는 불볕을 그대로 받으며 벌렁 나자빠진다. 자꾸 처지는 뱃가죽에다 있는 힘을 다 모으고,
“여보게 망경댁. 노물버무리 한줌이라도 아껐다가 할매바위에 다 제 안 올릴랑가?”
소리쳐보지만 망경댁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도 없다. 땡볕 아래론 그나마 잘쑥한 허리춤을 기를 써 곧추세운 불개미떼들이 기척도 없는 물줄을 찾아 외길로 뻗쳤다.
벌써 엿새째나 가을 샛바람에 알밤 지듯 뚝뚜욱 한두어 방울 건성으로 빗물을 떨구다가도 첩첩한 구름덩이는 그새 파란 하늘을 군데군데 열고 모진 더위만 내쏟던 터였다.
비 한 방울 적시지 못한 보리밭 가랑에 바람기가 일 때마다 배실배실 타가는 보릿대가 뽀얀 흙먼지 속에서 곧 끊어질 듯 배득거린다.
보리톨이 채 여물기도 전에 이삭들은 누렇게 떠 지레 곁여무는가 하면, 입김만한 바람에도 말복 송충이 떨어지듯 툭 하곤 이삭이 떨어져 날리기 일쑤이니, 산나물이래야 어금니가 맞치도록 질겅 질겅 씹어야 겨우 진물이라도 빠지는 억센 것이나마 가뭄에 콩꼴이다.
벌써 이틀째 뱃속이 비었다. 백일이 갓 지난 어린 쌍둥이 빼놓고 실성한 은순이년도 산나물을 뜯노라 온종일 산 속을 헤매지만 단님이가 뜯어온 한 조리만큼한 나물까지 합쳐 쏟아놔야 입 안에 퍼런 풀기도 못 적시고 만다.
“허이―이러다가는 영락없이 지는구나! 석조 영감한테 져? 헛참―아니, 불여시 콧날 같은 고 원창댁년하고 최가놈을 한데 묶어 용질을 친대도 분이 안 삭는디, 허어 참; 진다? 져? 즈그덜이 언제적 상감이라고 흥?”
바들바들 떨리는 가랭이에다 힘을 주고 끄응―등줄이 저리도록 힘을 쓰며 겨우 일어선 용배는 보리밭께를 보다 말고 기겁이다.
“엉?…… 저껏이 인자 제 보리밭맹끼 잠풀까지 솎아주고 지랄이세, 허어 ―一.”
기분 같아서야 그냥 한달음에 내쳐 멱살을 쥐고 두엄지게 푸둣 밭가랑에다 메꼬나붙이고 싶지만 신음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풀썩 무릎을 꺾고 만다.
마룻장이 울리는 바람에 새까만 파리떼 새로 가쁜 숨을 내쉬던 어린 것들이 금세 자지러진다. 한 놈은 곧 숨이 넘어갈 듯 강그러지고 또 한 놈은 그나마 겨우 우는 시늉이라도 하듯 소리에 맥이 없다.
“시상에 내 새끼덜! 을메나 창사가 고프끄나. 에미가 믓을 묵었어야제 자네들 배를 불려주제. 젖통이라고 쑤세미같이 쪼글쪼글 오그러붙어서 믓으로 느그덜 뱃속을 채워준다냐!”
저고리 섶만 스척도 병치입 같은 주등이를 내두르며 보채는 어린것들에게 망경댁은 나뭇가지처럼 퍼런 힘줄만 갈래갈래 불거진 젖통을 들이대며 울먹인다. 코가 생생하게 저려와 금세 눈물을 부른다.
“시상에 내 새끼덜! 빨아봐여! 억척스럽게 빨아보랑께! 에미 젖통에서 믓이 나오겄냐? 물줄처럼 줄줄 젖줄이 흘르끄나? 이 속창아리 없는 것들아 끌끌.”
“사설은 그먼허고 대고 젖줄을 짜줘. 그래야 젖줄이 트제 원.”
“헛참, 말 한번 멋지네 거. 젖줄이 으디서 터져라우? 보틀 대로 보타버린 젖통에서 믓이 새? 속이 폭폭해서 썩는 판에…… 시상에 이놈 섯바닥은 펄펄 끓네여! 이마빡도 불댕이같이 흑혹 찌는구먼…… 이고 복쪼가리 없는 것들아. 으짠다고 이런 에미년 가랭이로 생겨 빠졌으끄나? 봉알들이 아까워서 으짜끄나, 웅?”
“단님이는 으디 갔는고?”
“가기는 으디 가? 노물 뜯는다고 산고랭치는 다 쏘아다니겠제. 많이 뜯어와야 죽 쒀준다고 이 모진 에미가 으찌께나 볶았던지 아메도 그 말이 무서워서 노물 뜯는다고 기쓰고 있능갑다.”
양팔로 두 어린것올 싸안은 망경댁의 눈에서 또록또록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어린것들이 섬찟섬찟 놀라 젖꼭지를 뱉어내고 더 강그러진다.
용배는 부시시 설어나 앉아 스르르 눈을 감는다. 눈앞에서 총총 밴 보리톨들이 톡톡 튀어내리고 귓바퀴로는 고막이 따갑도록 탈곡기가 웅웅 돌아간다. 생각대로 두 섬은 실히 더 털어냈고 빈 밭으로는 금세 진초록 콩잎들이 너훌너훌 잎올 영군다.
털썩 주저앉는 소리에 겨우 눈알을 부라려 뜬 용배는 나물 바구니 밑바닥도 채 못 채운 은순이가 병아리 모는 암탉처럼 고개짓을 해대는 통에 눈앞이 어지럽다.
“쌀 받어 와! 쌀 받어 와!”
은순이년의 눈 안에 독기가 서렸다. 실성한 주제에도 하루 몇 차례씩은 정색을 하고 어금니를 빠드득 간다.
“이고 웬수여으! 으째 정신까지 마슬 돌리고는 실성해서 이 지랄이여? 섯바닥 칵 깨물고 차라리 디져!”
망경댁의 앙상한 주먹이 은순이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쥐어박지만 은순이는 그때마다 머리통만 혼들 뿐 꼼짝 않는다.
순간 용매의 가슴속에서 불기둥이 솟는다. 까짓것 머리통이 깨지도록 맞았으면 맞았지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창댁네 창고에서 쌀 여섯 가마만 빼내고 말리라. 밤길을 택해 읍내에서 수리장터까지 달구지로 실어 날라 털보 싸전에다 팔면 오만 원은 얻어논 계산이다.
“아니, 워째서 그 생각을 못 했다? 사리가 바른 방도를 두고 워째 이렇게도 속만 끄렸댜?”
용배는 토방에 내려서기가 무섭게 싸립께로 내닫는다.
“으디 간당가?”
“내 보리밭 허세비 좀 내쫓고 옴세. 이틀을 굶었어도 그깐놈의 허세비 하나 내쫓는 것은 호박에 칼 꼽기여.”
“허세비라니, 믄 소리랑가?”
“석조놈 말이여!”
용배는 목젖에 차일질을 치는 단숨올 물고 줄창 보리밭께로 내닫는다. 밭가랑에다 오랜만에 오기힘이 밴 장딴지를 터억 올려놓는데 막 황토흙이 묻은 뺑코구두 콧날이 코 앞에 닥친다.
“남의 보리밭 잡초는 워째 솎는 거여? 부러 심을 청한 것도 아닌디.”
용배는 두말없이 석조 영감의 앙상한 어깻죽지를 턱 거머잡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송충이 같은 석조의 콧수염을 겨냥하고는 냅다 차돌 같은 머리통을 벼락쳐놓고 본다.
“옴메 에 ㅡ코빵 깨지 네 에 ―一.”
허위대에 딱 알맞게 곧 강그러지는 석조 영감의 비명이 육모초즙 삼킨 어린것 경끼나 다를 게 없다.
“네, 네 이놈! 이놈아 네놈이 백주 대로에서 이런 불법만행올 강행했어! 엉? 네놈을 의법조치 안 할 내가 아녀! 사후 일체 책임은 네놈한테 가중되능겨! 이놈, 이노옴一.”
“지애미 문자연설 누가 듣자 혀? 빚 갚어주면 되능 거 아녀? 으짠다고 남의 보리발은 넘봐? 아 당장 여기서 퇴장허란 말여! 아, 어섯!”
용배는 내친김에 석조 영감을 불끈 업어 줄달음을 놓다가 두엄지게 푸듯 끄웅ㅡ안간힘을 곁들여 길가 질척한 웅덩이에다 메꽂는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 네놈이 빚을 갚어? 천장에서 피가 새는 가난에 으디서 돈을 맨들어낸다고! 이놈.”
“원창댁허고 약조사항만 이행허면 되능겨. 은순이년 몸값은 그저 떼어먹어질 줄 알어? 엉?”
“이놈아, 네 푼수에 우리 사돈까지 건들였겄다? 헛참―내 개좆같은 놈의 꼴을 다 본다. 네 이놈 당장 두고봐라! 네놈 몸 한 곳이 성하게 배겨 난가.”
“진장칠 놈의 것 당장은 믓이고 또 두고보는 것은 믓이여? 보리밭은 명줄이 끊어져도 내 것이여! 해부아! 을메던지 해부아!”
용배는 갑자기 휘몰리는 허기에 겨우 밭가랑까지 가 피식 주저앉는다. 배실배실 말라가는 보릿대 한 움큼을 쥐고 벌름벌름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말고 꺼실꺼실한 손등으로 애써 입을 틀어막는다. 손만 떼면 목구멍까지 치어오른 울음이 분별없이 터져나오고 말 것 같은 것이다. 그 향긋한 보릿대 냄새가 어린것 볼따귀 냄새보다도 더 좋았고, 명줄을 자른대도 이 보릿대만은 기어코 움켜쥐리라 울음을 삼키는 것이다.
샘말 통틀어 몇 집―그 중에서도 석조 영감 집처럼 새경놓고 사는 알부자들은 그런대로 불볕이고 타는 보리고 아랑곳없었지만 자갈산을 경계로 용말까지 뻗은 십여 부락은 사실상 발칵 뒤집혔다.
인심도 날이 갈수록 매정해가서, 한 끼니나 겨우 풋내를 맡을 나물 한 움큼도 허한 곳에는 둘 수 없는 것이, 나물바구니 곁에서 재채기 한 번 하느라 몸을 돌리는 순간이면 바구니째 감쪽같이 없어지는 일도 있고보면, 샘말 사람들은 해거름이면 서로들 마실도 끊었다.
망경댁은 부황이 들어 몸뚱이가 갑절은 부어 변소길도 어려웠고, 단님이는 눈꼽 떨어졌다 하면 칡뿌리 하나 캐려고 자갈산 속에서 숫제 살았으며, 은순이는 그 독기서린 눈도 이젠 희멀겋게 며 “쌀 받어 와!” 소리도 못 하고 죽은 듯 방 속에 처박혔다. 어린것들 칭얼대는 소리도 모판 넘기는 가락처럼 자지러만 지고――一―.
홧김이 북새를 놓는 바람에 그만 석조 영감에게 어지간한 찜질을 해버렸던 죄로 용배는 그새 다섯 차례나 지서 행보를 하며 동네북처럼 이손 저손에서 심심찮은 매질을 받아 한 자리만 옮겨 누우려도 청승맞은 비명이 예사다.
허기진 것은 고사하고라도 당장 견디다 못해, 지서주임이 시키는 대로 모레까지 석조 영감의 빚을 갚기로 했고 만약 빚을 못 갚을 때에는 즉시 보리밭을 양도한다는 각서에다 꾸욱 지장까지 눌러주었으니, 이젠 석조 영감이 보리밭 속에다 칸막을 친다 해도 우격다짐할 건덕지가 없다.
그간 마음 터억 놓고 뻔질나게 보리밭을 오락가락하는 석조 영감 좀 봐라. 퇴종한 황소 등골처럼 뼛가래가 앙상한 어깻죽지를 잔뜩 추켜세우고는, 공진회 때 장판을 쓸었던 춤가락까지 곁들여 어지간히 여윈 발목대기를 활개짓에 따라 부러 거들대며, 데데하게 갖다 문 곰방대 하며, 그새 석조 영감 거동은 청청 오기가 서렸다.
이젠 보리밭 푸념하기도 지쳤고 그보다도 눈 번히 뜨고 보리밭을 빚에 떼이나 싶으니, 살가죽만 남아 배실거리는 목줄에서 겨우 가락거리는 맥줄에다 우정 한숨을 곁들여, 벌써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용배다.
생각하면 그럴수록 원창댁의 심보가 더럽다. 혼사 치른답시고 볏섬은 받았다 치자. 물줄같이 멀쩡한 은순이년에다 무슨 트집을 못 잡아 겨우 그런 매정스러운 방법으로 아들놈 오입 한 번 시키고 말았으면 준다는 쌀이라도 용배에게 돌아와야 합당한 이치가 아닌가. 오죽 분통이 터겼으면 그랬을까만, 석조 영감에게다 해버린 찜질로 성미깨나 있는 사람으로 점찍어버린 것들은 기껏 지서 사람들뿐, 용배를 아는 샘말 사람들은 모두 용배의 덕성을 알아줬다.
원창댁 일만 해도 그랬다. 마올 사람들은 죄다 그런 좋은 딸년 멀쩡하게 폐인 만들어놓고 비위는 경치게도 좋아 이렇게 참느냐고들 성화다. 자기들 같았으면 벌써 누가 죽든 끝장을 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용배는 싸아 매워오는 콧날올 손등으로 쓰윽 문질러버리지만 햇닭 알자리만큼 결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원창댁이 은순이년 하룻밤이라도 데려간 것은 숫제 돈놀음으로 해본 투전판 아닌가 뻔질나게 가문가문 찾는 것이 하필이면 샘말 싹 쓸어 제일 가난한 용배 딸년을 며느리로 식구를 만들 의사는 애당초 없었을 게다. 그 최가놈 색정을 아는지라 그저 아들놈이 탐내는 은순이년 데려다가 직성 한 번 풀어준 계략이다. 널빤자 같은 최가놈 가슴 아래 깔려 그예 죽는가 싶게 바둥댔을 은순이년을 생각하면 머리끝까지 피가 거슬렸다.
물씬물씬 땀내가 오르는 중의 가랭아에다 얼굴을 묻고 이런저런 생각에 골똘해 있던 용배는 따그르 아금니가 맞치도록 분통을 씹는다. 아무리 생각해야 동네 사람들 말이 맞나 싶은 것이다.
빚 칠만 원 그까짓 것 고심할 게 뭔가 원창댁네 창고쯤 훤히 알고 있겠다. 쌀 여섯 가마만 끄집어내 줄행랑을 친대도 저희들이 할 말이 또 있을까 말이다. 저희들 편에서 큰일 삼지도 못할 것이 이 일만큼은 용배의 허파가 두 쪽이 난대두 맞덮어논 그릇이다.
용배는 부시시 일어나면서 주먹을 꼬옥 쥐어본다. 더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오늘 밤에 원창댁네 창고를 뜯어내린다. 가서 창고 동정이나 살펴보려니 하고 싸립께로 발을 옮기는데 귀에 익은 계집애의 째지는 듯한 비명이 거푸 들리면서 수선스러운 발짝 소리들이 싸립께로 몰려든다.
용배는 발돋움을 한 채 싸립 밖 언덕길을 쳐다보다 말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단님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싸립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와 쓰러지는가 싶더니 시펴런 낫을 들고 뒤쫓던 사내아이 둘이가 기겁해서 되돌아 언덕길을 치달려가버린다.
단님이의 손아귀엔 칡뿌리가 꼬옥 쥐어져 있는 품이 사내애들이 캔 것을 훔쳐 달려온 낌새다. 망경댁이 수선통에 뛰쳐 나와 단님이의 꼴을 보고는 허옇게 눈알을 뒤집어 깐다.
“아이고 이 꼴이 믄 일이랑가? 아니, 니가 믓올 묵었다고 금줄 같은 놈의 핏물로 멱을 감는대야? 이고 시상에 이 피! 이 피가 대체 으디서 나오는 피라냐? 웅? 어디?”
어깨 뒤쪽으로 허옇게 뼈골이 드러나도록 낫자국이 깊게도 패였다. 단님이는 목 아래깨로 온통 핏물칠을 하고 있으면서도 눈 한 번 까딱않고 칡뿌리만 뜯는다. 어린것 눈에 소름이 돋도록 독기가 서렸다.
“시상에에ㅡ어린것이 올매나 허기에 미쳤으면 아프단 말 한 번 않고는 이렇게 칡뿌리만 뜯는다냐? 시상에 이 칡뿌리 감추는 것 좀 보씨요 예! 으짜먼 이럴끄라우! 그나저나 물줄같이 새는 놈의 피를 으찌게 막아사 쓴다냐 이고, 이고.”
망경댁은 치마폭을 부욱 찢어 단님이의 어깻죽지를 감싸면서 이내 목을 놓고 만다.
“얼뜩 쑥고를 해줘! 쑥고를 발라사 피가 멎제.”
용배는 등줄로 차디찬 식은땀을 일구면서 싸립기둥을 붙들고 비틀 몸올 가눈다.
“이 근방에 쑥이 있어사제. 땅 속에 있는 뿌리까지 다 캐어 묵어서는 쑥이라고 낯짝도 못 보는디 으째사 쓸고.”
연신 핏물을 홀리며 앉아서도 그저 우적우적 칡뿌리만 씹는 단님이의 눈은 어린것답지 않게 파들파들 초랭이를 떤다.
용배의 가슴 속에서 불솥 같은 열담이 차오른다. 횟배 떼려고 마신 휘발유 뒤끝처럼 쨍쨍 우는 역한 단내가 코 안에 다 찬다.
중의 가랭이를 둘둘 걷어붙이고는 손바닥에다 찰엿 같은 가래침을 퇴퇴 붙여앵긴 용배는 소주불이 오를 때처럼 씨근대며 싸립을 나선다. 이 눈 안에 누구든 들었담 봐라. 석조놈이고 최가놈이고 원창댁이고 간에 가리지 않고 떡메질을 쳐 분통올 풀 것이었다.
용배는 비틀비틀 논길을 걸으면서 몇 번이고 피가 배도록 입술올 깨문다. 이내 논길을 치달리는 성난 줄달음이다. 고래등 같은 원창댁네 기와집이 해거름 노올을 받아 을씨년스럽게도 섰다. 길기도 한 돌담길을 돌아 창고에 이르니 머슴 하나 얼씬 않는다. 창고문은 머리통만한 자물쇠를 달고 굳게도 잠겼다.
간단없이 저 널쪽 같은 판대기 다섯 장만 뜯어내면 일은 식은 죽사발 둘러마시기나 진배없다. 설령 들킨대도 머슴놈까짓 것 메다꼬느면 될 것이고, 원창댁이나 최가놈에게 들키면 어쩐다, 용배는 이 대목에 생각이 미치자 휘휘 고개를 내젓는다.
그만 울음이 솟을 것 같아 창고 옆 아카시아 울타리에 몸을 숨기고는 풀썩 쪼그려 앉는다. 아무래도 판대기는 낫으로 깎아내야 그 중 쉬울 것 같다 생각하는데 발목이 꺾이면서 삭신은 낙지살처럼 피식 쓰러져버리고 만다.
용배가 싸립 좀 멀리 이르렀을 때였다. 집 안에서 울리는 망경댁의 곡성이 유독 오장을 다 긁는다. 고의춤을 바싹 추켜세우고는 허겁지겁 싸립 안에 들어선 용배는 활활 타오르는 군덕불 가에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동네 아낙네들을 본다. 망경댁 옆에서 실성한 은순이년이 더 혼이 빳게 울고 앉았다.
“쑥을 뜯을라고 보니이 쑥이 있어야제에―그나마 그 지랄 같은 놈의 쑥때가 하나도 안 뵀다면 내 불쌍한 딸자식 이 에미 품속에서라도 죽었제에―이놈의 쑥이 오 리 가다 하나 있고 십 리 가다 하나 섰고오―그래서 그놈의 것 반 양재기를 뜯는디 으찌께나 더디든지이―뜯어 와서 봉께는 검불 옆에 누워 있는디 영낙없이 자는 줄만 알고느은―이 미련한 에미년은 쑥을 찜시러도 자지 말라고 자지 말라고 소락때기만 쳐대다가아―쑥고를 더덕더덕 묻히다 봉께는 아 글씨 죽었단 말이여어―그새 피가 으찌께나 흘렀는지 쥐어짜도록 배어서는 그참에 내가 정신을 잃었는지 눈이 뒤집혔는지 별안간 독기가 올라서는 내 새끼 죽인 놈 나도 그놈을 쥑일라고오―샘말부터 홅은 것이 진섬, 매밭굴, 앞말, 주곡, 사당까지 싸악 뒤져봐도 영영 못 찾고느은―이고 이고 이 일을 으째사 쓰꼬오―이고 이고오―.”
망경댁은 설움이 끝이 없다. 단님이의 얼굴에다 미친 듯이 볼을 부벼대며 불김에 드.러나는 실성한 얼굴에도 온통 시꺼먼 피칠을 했다.
“에끼년! 에끼년! 시상에 칡뿌리 묵고 싶어 그놈 뺏어묵다 가아―그늠 묵다가 디지라고 이 모진 에미가 니를 키웠으끄나아―시상에 배때지가 을메나 고팠으면 아픈 줄도 모르고 피가 물줄같이 새는디도 이놈의 주둥이로 칡뿌리만 씹드니이――에미가 뺏어묵으까봐서 이놈의 눈으로는 에미를 흘기고느은―아이고 으찌께 산대야 으찌께 산대야아 아이고오一.”
망경댁은 늘어진 단님이를 싸안고 앉아 몸부리을 친다.
용배는 금세 혼이 빳는다. 죽은 자식이 이렇게도 멀단 말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몰초를 재 물고 성냥불을 긋는다. 그제야 동네 아낙들이 용배를 알아차리고는 새삼스러운 곡성을 쏟는다.
뚝뚝 떨어지는 짭질한 눈물이 하냥 몰초의 불을 끈다. 낫자루에 다 침을 앵겨붙이고는 싸립을 나온다. 아무도 못 들을 곳에서 실커장 울음이나 쏟고 싶다. 축축한 언덕배기를 기어오르는데 정수리가 뻣뻣하게 저려 온다.
목줄이 당기면서 막 질긴 울음이 터지지만 용배는 이를 갈며 참는다.
“후웅―워떤 놈들에게 눈물을 뵈! 이것이 으디 용배냐아―.”
벌떡 일어서기가 무섭게 배미말을 향해 치닫는다.
할매바위 한뼘 남짓 위로 열사홀 호박덩이 같은 달이 막 돈는다. 용배는 뛰다말고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고는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연신 빈다.
“할매바위 고랑신님 워째 이리 모질뀨우. 단님이도 바쳤구마는…… 인자 비나 뿌려주시지라우. 그래사 빚을 갚지랍녀. 믿구만요 믿어유. 그라고 우리 단님이 좋은 자리 골라 묻어주시게라우, 할매바우 고랑신니임――.”
용배는 언제 빌었더냐 싶게 다시 낫자루에다 침을 앵긴다. 내쳐 내닫는다. 원창댁네 집 담 밑을 돌다가 환한 봉창 앞에서 잠시 멈칫 선다.
쌀가마를 빼내는 데야 이쯤에서부터는 도둑고양이 담 타듯 해야 하련만 용배는 무슨 일인지 서슴없이 후적후적 걸어나간다. 뱃속이 후련하도록 헛기침마저 네댓 차례 쥐어짜고는 창고문 앞에 서기가 무섭게 문짝에다 텅텅 낫날을 내꽂는다. 온몸이 땀줄에 젖는다.
한쪽 송판이 비적비적 금이 가는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뒤가 환하게 밝아온다. 머슴 둘하고 최가다. 용배는 헛것이라도 본 양 그저 정신없는 낫질 이다.
“아니, 아니 이런 통 큰 놈의 도적놈을 봤어? 안 놀 참이여? 안 그칠 것이여?”
최가가 단김에 용배의 낫자루 든 손을 비틀어 잡는다.
“이것 놔! 이놈아 쌀 열 가마를 네놈 손으로 안 건네니 헐 수 없는 노롯 아녀? 쌀만 내놔! 그냥 땅 속으로라도 삭어들 뎅께.”
“아니 이런 상놈의 영감 보게? 아니 믓이 어째? 어따아―.”
용배의 볼따귀에서 번쩍 불벼락이 인다. 순간 용배의 낫자루 든 손이 타작보리 도리깨질처럼 간곳없이 허공을 내젓는다.
“쥑여서는 안 되여! 나는 네놈들처럼 사람을 생골로 잡아 쥑이진 못혀! 안 쥑여! 못 쥑여! 지리 가, 가아一¬.”
고막이 쩡쩡 울리는 비명 소리와 함께 용배는 낫자루 든 손에 이끌려 피식 쓰러지고 만다. 최가놈이 벌렁 눈을 뒤집어 깠다. 머슴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줄행랑을 쳤올 때에야 용배는 낫자루를 논다.
용배의 뜬 눈이 사뭇 시리다. 맵싸한 눈물이 돈다.
용배는 최가의 배 위에서 내리자마자 풀썩 고꾸라진다. 사지가 문풍지 떨 듯 제멋대로 논다. 손톱이 후벼 터지도록 땅바닥을 기어가던 용배는 땀물로 밴 손등올 중의 가랭이에다 씻어내다 말고 섬뜩 놀란다. 피다. 끈끈한 선지가 달빛에 검다.
그제야 용배는 정신없이 내닫는다. 할매바위 고랑신도, 보리밭도, 믿을 것이라곤 세상 천지에 아득하다. 석조 영감의 손으로 보리밭이 넘어가기 전에 보릿대 냄새나 혼이 빳도록 맡아둘 일이었다.
최가가 벌렁 횐창을 뒤집어 깠으니 빚갚을 길은 송진 속에 불개미 기듯 훤한 이치였고 내 손으로 탈곡기를 돌리며 뿌연 보리멸 먼지 속에서 있기도 다 틀렸다.
겨우 아홉 가랑 보릿대에 보리톨이 밴 건 기껏 여섯 가랑쯤 털어낼 것이고 나머지는 죄다 지레 말라 불쏘시개다.
용배는 싸립 앞에 길게 늘어져 뻗는다. 훈훈한 땅김이 눈물이 나도록 맵다. 땅결을 파고 듬뿍 처넣던 곰삭은 두엄 냄새다. 장딴지가 뻐근하도록 삽질로 두엄을 떠 콩밭 물줄에다 질척질척 가래질이나 떠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을 것이었다.
핏발이 서 마냥 쓰린 눈 안으로 단님이를 안은 채 실성해서 앉아 있는 망경댁이 검불질에 덧보인다. 용배는 망경댁을 불러본다. 소리는 목젖에 결려 바들바들 떨다 만다.
관솔불이 풀무질올 받듯 용배의 식은 가슴이 스렁스렁 불김을 안는다. 지게다리를 붙들고 무릎을 세워 용배는 보릿단을 치듯 검불단을 싸얹는다. 지게가 기울도록 검불단이 얹혔다.
용배는 죽을 힘을 다해 끄웅 지게대틀 세운다. 찢긴 중의 가랭이가 한 차례 요동을 치더니 시큰한 무릎이 겨우 뿌드득 소리를 내며 종아리를 세운다. 보리밭 가랑이 꿈 속처럼 멀다. 오진 샛바람이 보리밭올 휘몰고 간다. 치렁치렁 골올 판 가랑이 속에서 배싹 마른 보리들이 억척스레 결올 부빈다. 용배는 황소숨올 씨근덕대며 마낭 섰다. 그저 샘말에 삽을 박은 선친들 묘자리도 볼 면목이 없다.
“웬수여! 이 웬수여…….”
등에 진 검불단에 모진 바람이 비낀다. 중의 가랭이가 펄럭일 때마다 역한 피비린내가 오른다.
기어코 가슴 한구석이 헐리면서 걷잡올 수 없는 울음이 터진다.
한번 뛰어들면 죽어도 보리밭 속에선 나오지 않을 결심이었다. 중의 띠를 푸는 손이 뻣뻣하게 굳는다.
중의 띠를 풀어 다시는 엎어지지 않게 제 몸과 지게를 단단히 묶는다. 자칫하면 허기에 지쳐 검불짐올 놓칠 판이었다.
“이구 웬수여! 이 웬수여! 싸악 타버려! 아조 잿골올 내고 싸악 타버려!”
용배의 손에서 드윽 성냥불이 그어진다.
――확――바지직, 바지직 ――.
지게의 검불짐에 당긴 불길이 둥제불 솟듯 불기둥올 세운다. 불길은 금세 용배의 중의 가랭이를 다 싼다.
“이 웬수여 싸악 타버려! 아조 하늘 속까지 싸악 타버려!”
용배는 기세 좋은 불길을 싣고 미친 듯 보리발 속으로 뛰어든다. 샘말 한복판에서 인 불길은 마올을 다 밝히고도 남았다.
― 1973년
2016년 12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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