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는 여자
이화련
나는 불 꿈을 자주 꾼다. 집이 불타고, 느닷없이 길이나 산에 불이 붙는다. 잊을 만하면 비슷한 꿈을 다시 꾸는데 장소와 등장인물이 바뀌어도 결말은 늘 같다. 내가 어떻게든 불을 끈다. 어렵게 물을 구해 끼얹고, 급한 김에 옷을 벗어 훌치기도 한다. 불길을 잡느라 하도 용을 써서 온몸이 뻐근한 채 잠을 깰 때도 있다.
같은 꿈을 두고 풀이가 엇갈린다. 어떤 이는 불이 재물과 성공을 뜻하는데 왜 껐느냐 하고, 어떤 이는 근심 걱정의 불씨를 잘 꺼버렸다 한다. 불을 꺼서 행운이 달아났다는 말은 씁쓸하고 불운을 물리쳤다는 말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남편의 해몽은 놀림에 가깝다. 끄다 끄다 꿈에서도 불을 끄느냐며 웃는다. 평소 전깃불을 끄던 습관이 꿈으로 이어졌다는 소리다. 서로 다른 불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솔깃한 데가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꿈을 경험한 것이 기억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 했다. 하루의 잔상이 곧 꿈이라 했으니 남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불 끄는 게 몸에 뱄다. 그렇게 된 데는 남편 영향이 크다. 그는 ‘불 켜는 남자’이다. 날이 저물기도 전에 불부터 밝히고 대낮에 곧잘 전등을 켠다. 우리 집은 동남향 단독주택이라 햇빛이 잘 들건만 자꾸 빛을 보탠다. 보탤 뿐 아니라 빛을 덜 때도 전등을 이용한다. 밭일이 바빠지면 우리는 새벽부터 일하고 저녁을 일찍 먹는데 소박한 밥상이 빛으로 충만하다. 오후 6시, 길어진 여름 해가 서쪽 창에 걸려 부엌이 온통 빛 바다가 된다. 짱짱하게 여문 햇살이 막판 힘을 몰아 반투명 유리를 거침없이 뚫고 식탁으로 쏟아진다. 숟가락이 붕 뜨게 눈이 부시다. 눈살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앉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불을 켠다. 강렬한 햇빛에 순한 불빛을 섞어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란다.
별로 알뜰하지 않은 내가 불 앞에서 짠순이가 된다. 음식은 물론 옷이며 집기도 풍성풍성해야 성에 차는데 불은 다르다. 불이 너무 밝으면 소중한 무엇이 헛되이 타버리는 것 같다. 함부로 써서 없애버린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다. 난방용 보일러도 마찬가지다. 온도를 높이면 조절기에 불이 들어오는데 그것도 오랫동안 꺼지지 않으면 눈에 거슬린다. 추위 타는 식구들을 생각해 참기는 하지만 일정온도를 넘어서면 손이 근질거린다.
태워 없애는 것을 아까워하는 내 성정은 아무래도 내림이지 싶다. 생전에 아버지도 걸핏하면 집안의 불을 꺼버리곤 했다. 아니, 웬만한 어둠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트기 전이나 땅거미 질 무렵 아무렇지 않게 새끼를 꼬고 둥구미를 엮고 신문을 읽었다. 불 좀 켜자 하면 다 보이는데 왜 켜느냐고 했다.
집에 특별한 일이 있거니 손님이 와도 아버지의 불 인심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들렀을 때도 그랬다. 기차와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초겨울 해는 벌써 지고 추녀 밑 알전등이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밀려 타작이 늦어지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아버지가 빈 마당을 밝히는 일은 별일이었다. 사위 온다고 마음 썼겠지만 불 밝은 환대는 거기까지였다.
그날 밤, 신랑과 나는 잠을 설쳤다. 저녁상을 물리고 자리에 누웠는데 한밤중 스르륵,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팔을 뻗어 벽을 더듬자 잘 돌아가던 보일러가 뚝 멈추었다. 가뜩이나 외풍 심한 방이 금방 식었다. 나는 익숙해서 괜찮은데 남편은 포시랍게 자란 티를 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자꾸 뒤척였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다. 복받치는 애틋함이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난방 스위치에 닿았다. 윙,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아버지의 헛기침이 섞이고, 다행이 방문이 또 열리지는 않았다.
그때 아버지를 거역했던 딸이 부전여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마땅찮은 듯 그렇게 말하면 반박할 수 없다. 나도 가끔 같은 이유로 아버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이 분가해 둘만 남으니 잎 떨어진 나무의 가지처럼 서로의 습성이 드러나고, 불 켜기 좋아하는 남자와 불 끄는 여자가 찔그락짤그락 부딪친다. 그래도 큰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남편이 양보한다. 부전여전인데 어쩔 것인가. 아내를 탓하면 장인을 탓하는 셈인데 점잖은 사위 체면에 어쩔 것인가.
나도 양보하려 애쓰긴 한다. 쓸데없이 불이 켜 있어도 모르는 척 기다렸다 조용히 끈다.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 괜찮다는데도 굳이 남편이 불을 켜 주면 배려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세월 덕도 있을 것이다. 켜자거니 끄자거니,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았으니 흉보며 닮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내가 먼저 불을 켜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키지 않아도 그가 알아서 불을 끈다.
듣자하니 불이 밝아야 공부도 잘 되고 눈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그동안 우리 집은 충분히 밝았을까 돌아보는데 갑자기 가슴을 스치는 어둑한 느낌, 내가 혹시 남편의 꿈과 희망, 그 불마저 꺼버렸는가.
그는 학생 때부터 산악부원으로 암벽을 탔고 히말라야 등반이 꿈이었다. 정상까지는 못 오르더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했다.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산을 찾았다. 전국의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며 그려 보았을 그 먼 곳의 웅장한 설산!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꿈과 마주했을 것이다. 히말라야뿐이랴. 젊은 날 세웠던 그의 계획들은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와 살면서 대체로 바뀌거나 흐지부지되었다.
하필이면 불 끄는 여자를 만나 덜 행복했을 남자가 해거름 어스름에 잠겨있다. 새로운 기타 곡을 연습한다고 악보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구부정하다. 그 당당하고 탄탄하던 어깨는 어디로 갔나·…. 주저앉았던 애틋함이 고개를 든다. 서둘러 불을 켠다. 3단 등불이 모처럼 활짝 피어 거실이 별나게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