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숭림사 ‘청소년 템플스테이’
- 템플스테이 현장을 가다
▲ 무더운 여름, 청소년들이 익산 숭림사에 모여 참선을 한다. 지도법사의 안내에 따라 가부좌를 튼 청소년들은 풀벌레소리에 귀기울이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참선실수에 진지하게 임했다.
성당 다니다 사찰서 첫 하룻밤…
예불 참선 발우공양 “리셋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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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당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불교 사찰을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 드문 일이다. 지난 7월24일부터 이틀간 전북 익산시 웅포면에 자리한 숭림사(주지 지광스님)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20여명 가운데 천주교 전주교구 함열 성당에 다니는 중.고등학생이 16명이나 되었다. 천주교 청소년들은 절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랐다.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발우공양, 참선, 108배 등 불교의 수행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며 더운 날씨와 맞섰다.
처음 절집에서 생활하게 된 청소년들의 얼굴에는 긴장된 표정이 가득 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절집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숭림사를 포근하게 안은 함라산의 울창한 나무와 계곡이 청량(淸凉)했다. 청바지를 벗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절집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발우공양이었다. 숭림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학생들도 마찬가지. 발우에 밥을 담고, 반찬을 담고, 말 한마디 못하고 식사를 해야 한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음식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집에서 왜 반찬투정을 했는지 돌아보았다. 하지만 어려움은 그때부터였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깜빡했나 보다. 깨끗하게 발우를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남긴 고춧가루가 발견되었다. 전체가 퇴수(退水)를 골고루 나눠 마셔야 하는 ‘벌칙’을 받아야 했다. 난감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어둠이 멀리서 찾아오고 있었다. 전북 서부지역인 군산과 익산에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물인 보광전(普光殿)에서 저녁예불을 올리는 시간이 됐다.
고려 충목왕 1년(1345)에 창건된 숭림사의 중심 전각인 보광전은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전각이다. 700년이 넘은 사찰에서 드리는 예불은 남다른 경험이었다.
“지심귀명례~” 예불을 모시는 지광스님의 목소리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졌고, 왠지 모르는 숙연함에 속세에서 묻혀온 티끌과 번뇌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부처님께 절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본 지광스님은 “참으로 기특하다”면서 “부처님께 절하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 뿐 아니라 누구나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를 알게 한다”고 격려했다. 자광스님은 “이웃종교 의식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동참하는 모습에서 포용하는 마음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익산 숭림사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불교수행법과 불교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고찰(古刹)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져 갔다. 공양과 예불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린 후에 참선 실습에 들어갔다. 지도법사의 안내에 따라 경내에 있는 전통불교문화원 대중방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전통불교문화원은 숭림사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신축한 건물이다. 오후8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 진행되는 참선 실습. 모두 입은 다물고 마음은 열기 위해 자신과 싸워야 했다. 풀벌레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스님들처럼 치열하게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각고의 정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법 수행자답다. 10여분이나 흘렀을까. 몸은 비비 꼬이고, 머릿속 생각은 10만8천리를 달아나지만 그래도 ‘인내’는 배웠으니 소득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천주교 전주교구 함열성당
16명 중고등생 템플스테이
울창한 숲 청량한 계곡물
학업 스트레스 확~ 날려
참선을 마치고 주지 지광스님과의 차담시간이 이어졌다.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청소년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여느 차담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지광스님은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역대 모든 성인들은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았던 분들”이라면서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종교인의 바른 자세”라고 강조했다. 녹차 한잔을 앞에 놓고 야심(夜深)한 산사에서 진행된 스님과 천주교 신자들과의 대화는 다종교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지만 컸다. 1박2일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천주교 청소년들의 얼굴에는 생전 처음 체험한 불교문화에 대한 반가움이 가득했다.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한 지광스님은 1980년대 중반 폐사 위기에 놓인 익산 숭림사로 주지로 부임한 이후 사격(寺格)을 일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지난 4월에는 10여 년간 38억2000여만 원을 들여 진행된 5차 불사를 회향했다. 올해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된 숭림사는 전국 어디에서 누구든지 찾아오는 도량으로 변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함라산 둘레길 걷기, 곰나루 나루터 탐방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포함하는 등 자연과 문화와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말에는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를 계획하고 있다.
익산=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언제든지 찾아와 마음의 짐 내려놓길”
숭림사 주지 지광스님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성인의 가르침은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익산 숭림사 주지 지광스님〈사진〉은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천주교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지광스님은 “천주교 학생들은 아무래도 사찰체험이 낯설고 힘들 수 있는데, 열심히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면서 “종교간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웃종교의 공간에 와서 직접 체험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불교세가 취약한 지역에서 20여 년째 포교와 불사에 전념하고 있는 지광스님은 “이제 불교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면서 “템플스테이는 단순히 불교문화를 알리는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현대인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템플스테이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지광스님은 “누구든지 찾아와 사찰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짐을 내려놓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청소년 한문교육, 다문화 가정의 쉼터, 웰빙시대에 맞는 휴식형 템플스테이 등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천주교 신도 청소년 체험 소감 /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참선등과 같은 수련은 처음으로 리셋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만족스럽다” (하수민)
“성당에서 절을 간다니 이상한 생각과 평소에도 템플스테이는 관심이 있어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왔다”며 “예절과 발우공양을 배우고 저녁공양을 먹었는데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식사방법에 놀라서 살면서 가장 힘든 저녁을 먹은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스님들의 대단한 절약정신과 그로인한 실용성에 깜짝 놀랐다” (김경민)
“수련복도 입어보고 향도 피워보고 부처님께 절도 해보고 스님과의 대화도……. 모두 처음 이었다”며 “끈기가 없던 내가 참선도 해보고 마음정리를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김영경)
[불교신문 2646호 /8월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