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추모하는 현충일이었다. 국가기념일인 이 날 박근혜 대통령 역시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를 위한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강조하며 그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그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도 없었을 것임은 몇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기려야 할 현충일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 분들의 뜻을 기리고 보훈가족들에 대한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지켜낸 조국이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면목없습니다>
호국의 달인 6월,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은 애국지사, 순국선열, 호국영령들의 원혼들이 보다못해 무덤에서 분연히 일어날 것처럼 참담하고 암울하기만 하다.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밝힌 것과는 다르게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은 국가적 지원은 고사하고 독립 이후 이승만 정부에 고스란히 편입된 친일파들에 의해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사회적 약자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고, 6.25 참전 희생자들 역시 제대로 된 국가보훈이 이루어지지 않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처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현충일, 삼일절 등은 그 뜻이 무색하리만큼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이 날이 무슨 날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만 있다. 중학생들의 태반이 삼일절과 현충일 등의 국가기념일의 유래와 의미를 모르고 있고,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대학생들은 현충일이 뭔지도 모르고 현충일을 기념하기 위해 술판을 벌이는 어이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냉정한 현실이다.
■ 역사교육의 부재가 만들어낸 참상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교육이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 역사교육의 심각한 폐해가 고스란히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교과서가 검정 본심사를 통과해 사회적 논란을 가열시키고 있는 가운데, 이 교과서가 최종 합격이 되면 우려했던 대로 역사왜곡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더욱 증폭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가 두 달 전에 쓴 글에서 '이렇게 가다간 몇 십년이 지나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나면 모 극우인사의 망언처럼 김구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을 듯 하다'라며 역사왜곡 및 역사교육부재에 대한 우려스러움을 표현했는데, 이 교과서의 검정 본심사 통과를 계기로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미 이명박 정부 이후로 이승만·박정희의 미화와 왜곡이 본격화되었고 뉴라이트 계열을 주도하고 있는 극우세력들의 뿌리가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친일파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삼일절, 그리고 어제 현충일 추념사의 진심을 곡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과는 전혀 반대로 나타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이율배반과 위선의 정치는 종국에는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과 정부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어제 필자는 위에 열거한 사실들에는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이제 기술할 내용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분노는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여서 좀체로 감정을 추스리기가 힘든 지경이다.
■ 전두환의 현충원 안장? 제정신이야?
전두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는 이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또 다시 장문의 글을 남기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런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국가수준과 국민수준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논란이 거듭되면 될수록 국가적 망신만 초래할 따름이다.
2차세계대전 전범들이 묻혀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과 평가를 생각해 보라. 전두환의 현충원 안장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일본이 다른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씻을 수 없는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다면 전두환은 자국민을 상대로 반민족적인 범죄를 자행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전두환의 실체와 전두환 일가의 추악한 행적들은 필자가 이전에 포스팅한 글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 포스팅된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전두환 뿐만 아니라, 수구보수세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역사왜곡의 참상 역시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을지의 여부가 현충일을 맞아 새삼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미납 추징금과 장남인 전재국의 역외탈세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전두환, 그는 훗날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외환죄, 살인죄 등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두환은 국가반란죄와 내란죄 수괴혐의로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형을 확정판결 받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전두환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법의 사각지대, 즉 헛점이 너무나 많고 원칙은 편법에 의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바로 이 헛점을 전두환과 전두환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두환의 경호실장이었던 안현태가 바로 이 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언급한 대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벌률'에 의거, 전두환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이 법률은 사면·복권된 경우에 한해서 안장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고, 이 경우에 국가보훈처의 안장대상 심의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얼마든지 안장시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안현태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안현태 역시 사면·복권되었고 국가보훈처의 심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당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이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실은 국가보훈처가 얼마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전두환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 보수우경화된 대한민국, 전두환의 현충원 안장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급속도로 빠르게 보수우경화 되고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으로 본다면 전두환의 국립현충원 안장은 사회적 논란이 있을지는 몰라도 거의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이 잠들고 있는 그곳에, 국가반란과 내란을 저질렀던 반란의 수괴이자 총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으며 자국민을 살상한 살인자가 함께 누워있는 풍경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필자가 이상한 건지, 이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그런건지 마치 진흙탕을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현충일이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추모하는 날이라지? 도대체 무엇을 추모하고, 무엇으로 넋을 위로한다는 건가?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에 바친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 월세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나라,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대부분이 가난속에 사회적 약자로 방치되고 있는 나라, 김구와 안중근과 유관순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러도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바로잡지 않는 나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나라, 그래서 아이들이 삼일절도 현충일의 의미도 모르고, 민족반역자인 이완용을 독립지사로 알게 만드는 나라,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반란수괴이며 무자비하게 자국민을 살상한 중죄인을 보호해주고 예우해주는 것도 모라자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지도 모르는 나라, 이런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 것이며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인가?
잠이 오지 않는다. 답답하고, 화가나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어제가 현충일이었다지?
이런 막장같은 현충일,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비가 내린다. 억수같이 퍼부어 댄다. 이 비는 그분들이 흘리는 걸까? 참 많이도 온다. 세상을 삼킬듯이, 그분들의 피눈물이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으로, 깊고 깊은 그 곳으로, 그 분들의 통곡과 울분이 비가 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세상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 완전히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