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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글쓴이 박태균 / 등록일 2025-03-18
탄핵을 둘러싼 이슈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또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이 개헌문제이다. 수정 후 40년이 되어가는 현 헌법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1948년 이후 이미 9차례의 개헌이 있었는데, 이렇게 30년이 넘도록 개헌이 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이전의 9차례 개헌 과정과 그 내용이다. 1952년과 1954년, 그리고 1969년과 1972년의 4차례 개헌은 단지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만을 목적으로 한 개헌이었다. 1954년 개헌에서 주요 산업의 국유화라는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이 수정되었다는 특징이 있었을 뿐, 4차례 모두 대통령의 권력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개헌이었을 뿐이었다.
개헌의 흑역사와 1987년 개헌의 한계
1960년과 1962년, 그리고 1972년과 1987년의 개헌에서는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정부 형태의 변화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다른 개헌에 비해 큰 폭의 내용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의 부정부패와 대통령의 전횡을 막기 위해 헌법 부칙을 개정한 4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시대적 변화와 문제 해결을 담고 있는 개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각각의 개헌 과정을 보면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를 얻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개헌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회에서 통과된 개헌안은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동의를 받았지만, 이는 통과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강력한 정부의 관권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국민투표에서 정부가 올린 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52년과 1954년, 그리고 1972년의 개헌은 야당이나 시민사회와의 협의 없이 정부 여당이 독자적으로 진행하였고, 1969년의 개헌은 여당이 국회 별관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1952년의 개헌은 계엄령 하에서 이루어졌고, 1954년 개헌안은 통과 여부가 국회에서 번복되기도 했다(사사오입 개헌).
1962년과 1972년, 그리고 1980년의 개헌은 엄밀히 말하면 위헌, 위법적 개정과정을 거쳤다. 입법기관의 논의와 투표를 거치지 않았고, 개헌안 마련도 입법기구가 아닌 초헌법적 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가재건최고회의(1962), 비상국무회의(1972), 그리고 국가보위입법회의(1980)가 그것이다. 1972년 개헌안 마련에는 중앙정보부가 개입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국민은 1987년 헌법의 개정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6월 항쟁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냈던 국민들은 법적 절차에 의거하여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국민의 합의를 담은 민주적 헌법이 제정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기 치열했던 헌법 개정의 논의도, 1986년의 직선제 개헌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둘러싼 여야 간의 논의도 1987년 헌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물론 시간상으로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전에 헌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로 인해 개헌 논의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원하는 내용을 반영하면서 정치적 타협의 과정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1962년의 헌법으로 돌아갔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대통령이 권력을 휘두르는 데 이용될 수 있어서 제헌헌법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계엄 관련 조항을 삭제하지 못했다. 위수령 관련 법률도 계속 유지되다가 2018년에야 폐기되었다.
섣부른 개헌 논의, 또 다른 분열 초래할 수도
그렇다면 현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면, 충분한 숙의를 거쳐 사회적 변화를 반영할 수 있을까? 현재 사회 상황을 고려한다면, 섣부른 개헌 논의는 또 다른 사회적 분열의 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 같이 사회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부분 수정이 가능한 수정헌법 체제의 변화까지 포함해서, 충분한 숙의와 중립적 논의과정을 거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 섣부른 개헌 논의가 진행된다면, 이는 더 큰 사회적 논란을 부를 수 있으며, 이는 1987년의 전철을 또 한 번 밟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정 정파들의 독단이나 정치적 목적을 배제하지 못한다면, 개헌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 글쓴이 : 박 태 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저서]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2015)
《베트남 전쟁》(2023)
《한국전쟁》(2005)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