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영생이니라 -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죄에 계속 거하는 자에게 지불되는 대가가 사망이라는 의미이다. '삯'에 해당하는 헬라어 '와소니아'는 흔히 '병사들의 급료'의 의미로 사용된다.
비록 '와소니아'가 딤전 5:18에서는 단순히 노동자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나머지 구절들에서는 군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일꾼과는 달리 군인들이 철저하게 군사적인 의무에 매여있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처럼, 사람이 '죄의 종'으로서 죄에게 충성함으로 '사망'이라는 대가를 받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와소니아'는 그 다음에 언급되는 은사와 대조되고 있다. 이 '은사'는 '일한 것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용어다.
그리고 이 '은사'는 성도가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의 열매를 얻게 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성도는 구원의 전과정에 있어서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사로 값없이 '의', '성화', 그리고 '구원'을 받게 되므로 결코 자랑할 수 없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스토트(J. Stott)는 본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불신자는 '자기 의'로 특정지워지면 본절과 같이 자신을 '비참한 피조물'로 인식하지 못한다. 성숙되지 못한 성도는 '자기 확신'으로 특정지워지며 자기를 구원할 자에게 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성숙된 성도만이 '자기 혐오'와 '자기 절망')의 상태에 이르게 되며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조금도 거하지 않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한다.
이 사람은 자기의 곤고함을 알아 믿음으로 구원을 위해 호소한다." 이와 같이 스토트는 본절을 거듭나지 못한 자의 탄식이 아니라 거듭났으며 성숙된 성도의 탄식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구원을 위한 호소'는 단순히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호소(Murray)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간의 갈등을 극복케 해달라는 호소이다.
불신자 또는 거듭나지 못한 자는 자기속에 일어나는 두 법의 투쟁을 깨닫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으로 인해 탄식하지 않는다. 곤고한 사람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탈라이포로스'는 개역 성경의 번역과 비슷하게 '심한 고난을 겪는 사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절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여 '비참한 사람'으로 번역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혹자는 바울이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한 것은 절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고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지금 바울의 탄식은 선을 행하고자 노력하지만 항상 실패한 자신의 형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전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절망감과 비참함을 탄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통'이나 '고민' 정도로 '탈라이포로스'를 해석하게 된다면 탄식하는 바울의 심정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사망의 몸 - 숙명적인 인간의 운명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의 몸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망'은 '죄의 결과'로 초래되는 것이므로 죄의 세력을 의미한다.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 '은사와 부르심'(타 카리스마타 카이 헤 클레시스)에 대한 해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혹자는 두 개의 다른 범주라 하고 (2) 혹자는 바울이 부르심을 가장 중요한 은사로 여겨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이 견해대로 하면 '은사와 부르심'은 '은사, 그중에서도 부르심'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3) 가장 유력한 견해는 이것을 증언법으로 보는 견해로서 이 견해에 의하면 '은사와 부르심'을 '부르심의 은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한편 이러한 은사는 9:4, 5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부르심의 은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유일한 위치로 부르셨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메타멜레타'가 헬라어 본문에서는 문장의 첫머리에 와서 강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후회라고 하는 것을 결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후회하심에 대한 표현이 몇 군데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후회하심'(나함)이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여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심히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을 돌이키거나 변심하지 않으며, 실수하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달리 신적 불변성을 갖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