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학기 수업진단평가서
수업 과목: 서양 고대 철학
수업 일자: 2012. 03. 15.
이 름: 송혜성
1. 오늘 공부한 학습 주제와 학습내용 중 학습주제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용어를 5개 쓰시오.
― 로고스(logos), 미토스(mythos),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 아르케(archê), 존재(Being).
2. 위의 중요한 용어를 활용하여 학습주제를 200단어의 문장으로 논술하시오.
― 단적으로 말해, 서양 고대 철학에서 로고스(logos)란 인본주의적 세계관, 미토스(mythos)란 신본주의적 세계관을 뜻합니다. 로고스(logos)의 논리는 인간의 이성이 절대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전개되며, 미토스(mythos)의 논리는 신(God 또는 gods)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는 전재 하에서 전개됩니다. 완전한 대립항인 셈입니다.
B.C.7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로 대표되는 서양 고대 사회의 주류 사상은 미토스(mythos)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theogony)」란 저서를 통해서 이 세계가 미토스(mythos)적 입장 아래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는 지를 설파했습니다. 인간이 불가해적(inscrutability)인 것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무능력함을 긍정하고, ‘신으로부터의 전언(傳言)’이라는 방식을 취하여, 신들의 진원지인 무(無)를 상정한 혼돈(Chaos)과 그것들 사이의 에로스(eros)적인 번식으로 이 세상의 창생원리를 설명한 것이죠. ‘끊임없이 의심의 단초를 파고드는 인간의 사유’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겐 태생적으로 그러할 능력이 없음을 긍정하고, 자신은 어떤 초월자에 기대었다는 전제로 자신의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한 상태에서 세상의 구조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B.C.5세기경에 이르러, 이러한 미토스(mythos)적 세계관은 밀레투스의 탈레스가 주창한 이론에 의해 공격받게 됩니다. 탈레스는 “만물의 기원(archê)은 물(water)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엮어낸 것이 이 세계라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넘어간 것이 아니라, 주위의 객관적 대상물을 잘 관찰한다면 만물의 기원에 관한 모종의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여긴 것이죠. 그는 ‘물(water)’에서 그것을 발견했으며, 이를 만물의 기원(archê)으로 삼고, 동일한 맥락에서 ‘변하지 않는 것(Being)’과 ‘변하는 것(Becoming)’으로 만물을 구분 지어, ‘변하는 것(Becoming)’을 끊임없이 쪼개다 보면 나오는 것, 즉 영원하고 안정되고 궁극적인 대상으로서의 ‘존재(Being)’가 이 세계 창생소멸의 근간에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것이 물(water)이 아니겠느냐, 하는 가정을 세우게 됩니다. 만물의 창생소멸을 불가해(incomprehensibility)한 법칙의 작용으로만 설명하고 넘어가려는 미토스(mythos)적인 주장에 대한 반박인 것입니다. 그의 이론은 로고스(logos)적 사고가 이룬 최초의 업적이었으며, 당대 고대 그리스 사회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고, 오늘날 리얼리즘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3. 오늘의 학습 내용 중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 형식으로 쓰시오.
― 수업 범주를 초과하는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배운 기독교 신학은 ‘신은 존재한다.’, ‘신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하려는 일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쓰셨기에 무오하다.’라는 네 가지 전제를 바닥에 깔고, 성경 안에서 연역적인 논리들을 도출해 낸 학문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전제는 다시 증명과정을 거쳐야 하는 명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 골자입니다..(물론 어째서 그러한 전제가 통용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설은 가능합니다만...) 교수님 말마따나 결국은 미토스의 세계관인 셈입니다. 그러나 신학에 내포된 주요 논리의 흐름은 연역적 도출을 해낸 것이기에 연역적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역적 방법론은 철학적 방법론에 속한다고 알고 있으며, 로고스적 사유의 일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선 미토스와 로고스를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재차 말씀하고 계셔서 약간의 혼동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을 방법론적인 로고스와 세계관적인 로고스를 구별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다른 부분에서 개념 이해가 미흡한 것인지 짧게나마 첨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오늘의 수업활동에서 재미있었거나 인상적인 것 또는 수업 방법 중 개선을 바라는 의견이 있으면 쓰시오.
― 거듭되는 질문들을 통해 개념 이해가 보다 명확하게 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장이 입장인지라(목사 자제, 신학 유학 예정) 철학적인 질문을 하라고 하시면 기독교적인 것들과 연결시켜서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수업의 내용과 엇나가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가급적 지양해야 할지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니가 출발하는 연역의 꼭지점이 뮈토스에 있는 것이지. 니가 제시한 제일원리들은 모두 다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고 계시를 통해 주어진 것들이지. 로고스는 그것들 조차도 검증하고 참이라고 밝혀질때만 받아들인다. 성경의 진리는 그런 검증과정없이 단지 참이라고 믿을 뿐이지.
교수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만, 약간 입장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머릿속에 정리된 개념에 대해 조잡하게나마 서술해 보자면, 신학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연역적인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즉, '연역적 방법론=논리적 사고=철학적 사유=로고스적 사유' 입니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신학이 진리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학이 비 논리적이다'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정의를 빌리자면, 제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신학의 영역은 로고스적 관념을 적용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학문이라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제가 제시한 제일원리들이 모두 다 검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따지고 보면 자연과학도 귀납에 의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100%로 검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과학철학자 포퍼와 쿤이 반증주의와 패러다임론을 제창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수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무신론을 부르짖고 있음에도 이 세계에 아직까지도 종교가 존속하고 있는 이유를 비단 종교를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교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성 속에 살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종교라는 관념이 존속되고 있는 이유는,
신의 존재가 귀납적인 차원에서 상당부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감정적 흐름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연역적으로 신이 100% 존재한다거나 100%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로고스적 사유가 이룩한 최초의 업적이라는 탈레스의 이론도 "'물'은 어디서 왔는가?" 로고스적 질문 이상은 것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검증하고 참이라고 받아들인 것이 아닌 셈입니다. 신학도 마찬가지 맥락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존재하는가?"란 질문에 귀납적 차원에서 몇가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는 있으나,(귀납은 표본집단의 문제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00%존재한다는 논리적 검증만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신학은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뮈토스와 로고스를 결합하려는 시도는 신학이 기독교 종교라는 포용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신학은 신에 대한 이성적인 탐구이다. 그런 탐구를 자연신학이라고 하지. 그것은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래서 로고스적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신학은 신이 야훼라든지 예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정녀 탄생도 말하지 않고 신이 남성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자연 신학에서 신은 초월자이지. 무색 무취 비인격적인 존재를 초월해 있는 존재. 그것이 우리가 로고스를 통해서 도달하는 신의 개념이지.
그런데 이런 자연 신학이 아니라 신학에 기독교라는 색체를 덧입힌 기독교 신학은 무늬만 로고스이지 뮈토스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보다는 계시가 우월하다. 성경은 자체 모순 적인것임에도 불구하고 즉 비이성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기독교 신학이 로고스라면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로고스 신학이 될 수 있겠지. 동정녀 탄생, 창조, 오병이어 이것들은 로고스로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린 그것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의미에서 로고스를 넘어선 것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이 로고스가 되려면 기독교를 버리고 순수하게 자연신학으로 가든지(그것은 모든 기적들을 제거해 버린다) 아니면 더 이상 이성적인 것 이상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이다. 탈레스는 물까지만 알고 있다. 물은 검증될 수 있는 것이니까. 기독교도 그러면 거기까지만 이야기 해야한다. 인간 예수만. 완전한 신이면서 완전한 인간? 그것은 뮈토스다 로고스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21세기에도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만이 로고스(아폴론적 요소)와 뮈토스(디오뉘소스적 요소)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로 삶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과 이성으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이성적인 부분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지. 분명히 말하지만 뮈토스라는 것이 이성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내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로고스와 섞어서 잡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지. 종교를 현대과학으로 설명하는데 성공하면 그것은 3년도 못간다.
종교는 뮈토스는 로고스와 과학과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과 유사하거나 동화된다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지.
일차적으로, 교수님께선 '신학'이란 카테고리에 이신론까지 포괄하셨고, 저는 오로지 기독교의 것만을 '신학'이라 주장해 충돌을 빚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교수님의 답을 통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로고스'란 것의 개념도 보다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로고스는 '이 세상은 전적으로 전능한 초월자의 능력에 기대어 돌아간다.'의 논리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이 세상은 인간이 규명해 낼 수 있는 모종의 법칙과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 이것은 아직 100% 완벽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언젠간 완벽해질 것이다.'라고 믿는 관념이군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주장한 이상적 '통합 이론'과 연결시켜 생각하니 보다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선, 일단 저는 계시 신학적인 입장입니다만, 계시 신학적 입장이라고 해도 기독교 신학이란 게 분파가 하도 다양해서 자기들끼리도 왈가왈부하기 바쁜지라, 서로 성경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전부 다 드러내 놓고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여기에서 제가 뭐라 말할 처지는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로고스와 뮈토스는 출발점이 다르다!"라는 교수님의 말씀과 "로고스는 로고스로만 남을 때 가치있고, 뮈토스는 뮈토스로만 남을 때 가치있다!"는 교수님의 주장만큼은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