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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필사한 동화를 올려요. <복수의 여신>이라는 송미경 작가의 단편집 중에 한 편이랍니다. 시의성 있는 주제의 작품들이 진한 감동을 주더라고요.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
송미경
나는 얼굴로 햇빛이 스치는 시간에 눈을 뜬다. 벽돌 빌라 반 지하, 동쪽으로 창이 한 개 있는 집. 앞집은 비어 버린 지 오래다.
작년 여름 물난리가 났을 때 우리 집도 앞집도 천장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우리 윗집 102호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까지 물이 찰랑거렸고 엄마와 나와 아빠는 동네 임시 대피소인 중학교에 갔다.
우리는 엄마의 가방과 내 책가방, 옷 몇 가지와 자명종 시계, 그리고 라디오를 들고 대피했다. 이불을 들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 집 이불은 대피소에 가져갈 만한 게 아니었다. 솜은 납작하게 죽었고 모서리가 다 터졌고 때가 많이 타 있었다.
다행히 임시 대피소에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있었다. 지금 내가 덮고 있는 이 이불이 바로 그때 엄마와 내가 받은 것이다. 이불 한가운데 바위 위에서 부르짖는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모서리에는 중국산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임시 대피소에서는 식사 때마다 도시락이 나왔고 컵라면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작은 크기의 생수병도 쌓여 있었고, 동화책이나 인형 같은 기증품들도 아이가 있는 집마다 나눠주었다. 우리는 칠판 옆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 특보로 재해 상황을 보다가, 다 같이 시트콤을 보며 웃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 동네에 물난리가 났던 그때를 댈 것이다. 게다가 우리처럼 지하에 살다가 물난리를 겪은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위로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에 엄마는 오랜만에 들떠있었다. 가끔 아빠가 킁킁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곤 했지만,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뒤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집집마다 피해 상황을 살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우리 집에 와 보고 그 어떤 집보다 피해가 크다고 했고, 도배를 다시 해주고 물에 젖어 부서져 버린 낡은 가구 중에 몇 가지를 교체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텔레비전 이야기를 했고 직원들은 그것 또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물난리가 난 것은 동사무소 직원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직원들은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은 꽤 괜찮은 집이 되었다. 아빠가 직장에서 해고된 뒤 두 번째로 이사 온 이 집은 창고 같기도 하고 동굴 같기도 했다. 물난리가 나기 전에도 이미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모서리는 들떠 있었다.
지금 이 집은 벽지도 깨끗하고, 침대는 없지만 깨끗한 매트리스와 부드러운 이불, 베개가 있다. 텔레비전도 이쏙, 라디오도 있고, 밥은 없지만 전기밥통도 이쏙, 동화책과 인형도 있다.
지난가을 어느 날 이른 아침 엄마는 아직 잠이 덜 깬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내가 돈을 버니까. 은행 카드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고.”
엄마는 코트를 입고 가방을 멘 채, 종이에 볼펜으로 수칙을 적었다.
“이런 건 왜?”
“이대로만 하면 돼. 엄마 없는 동안.”
“내일 와?”
“거기서 먹고 자야 돈을 받을 수 있어. 이제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엄마가 일을 해야 해. 엄마는 일 년 있다 와.”
“내일이 아니고? 다음 주도 아니고?”
아직 이불을 몸에 감고 누워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혼자 두고 가면 어떡해.”
“아빠 있잖아. 아빠가 네 밥은 챙겨 먹일 수 있을 때 엄마가 돈을 벌어 와야지.”
나는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이미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팔 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요즘 1분에 한 번씩 오른팔 돌리기를 한다. 전에는 트림 소리를 내고 목 돌리기를 했는데 엄마가 못 하게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빠는 잘 때 빼고 쉬지 않고 팔 돌리기를 했고 엄마는 아빠가 팔 돌리기를 할 때마다 가슴을 쳤다. 병원에서는 아빠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복합성 틱 장애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아빠는 1분에 한 번,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낸 뒤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팔을 앞뒤로 돌리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아빠의 입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철문이 힘겹게 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무토막끼리 아주 세게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복 자락을 비비적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스윽, 히익 하는 그 소리를 우리 가족은 1분에 한 번씩 들어야 했다.
아빠는 재작년만 해도 한 회사에 다니다 같이 해고된 아저씨들을 만나러 나가곤 했다. 농성장에서 다쳐서 왼팔을 못 쓰게 되었지만 아빠는 여전히 아빠였다. 아빠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가 죽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와 아빠는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그 아저씨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럴수록 나는 소리에 더 집중했다. 엄마 아빠가 큰 소리로 하는 이야기보다 작은 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더 잘 들렸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잠든 밤이면 해고된 아저씨들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빌린 돈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우리가 또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잠든 척하며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목소리를 가늘고 높았고, 아빠 목소리를 거칠고 낮았다. 엄마 목소리가들리고 조금 뒤 아빠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 목소리가 들리고 아빠 목소리가 들리고…….
그러나 아빠는 스윽, 히익 하는 소리를 점점 심하게 냈고, 그런 다음부터 엄마와 아빠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빠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1분에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오른팔을 허공에서 크게 한 바퀴씩 돌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때마다 한숨을 쉬었는데 나중엔 아빠와 말하는 것을 피했다. 아빠는 마치 그런 소리를 내고 그런 몸짓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내게 엄마가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살려면, 잘 들어, 우리가 살려면, 엄마가 정신 차리고 일을 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는 평생 이런 곳에서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일 년만 참아. 학교 다닐 수 있지? 아빠가 밥은 해 줄 테니까.”
엄마는 아나운서가 재해 뉴스 속보를 전하듯 정확하고 침착하게 무언가를 계속 말했지만 나는 소리치며 울고 엄마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매달리느라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가 이럴까 봐 말 안 하고 편지만 남겨 두려고도 했어. 그런데 엄마가 약속을 꼭 지킬 거라는 걸 네가 알아야 하니까.”
엄마는 아주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콧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었고 재채기까지 했다. 엄마는 휴지를 내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엄마는 어차피 가야 해. 그러니까 인사를 제대로 하자.”
엄마가 떠나는데 울지도 않고 아주 바른 자세로 서서 두 손을 배꼽 위에 포개고 허리를 굽혀 인사할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열세 살, 혹은 열네 살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열한 살이었다.
열한 살은 원래 나중에 후회할 일들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돈을 모아 두지 않고 한꺼번에 다 써 버린다거나, 이를 닦지 않고 학교에 간 뒤 하루 종일 찜찜해하는 것 들이다.
그날 엄마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거다. 나는 엄마를 잘 설득해야 했다. 내가 굉장히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말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언제나 몸을 깨끗이 씻고 숙제부터 할 것이며, 다 먹은 밥 그릇은 싱크대 개수통에 담가 둘 것이며, 절대로 손가락을 빨리 않을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매일 청소도 돕고 바퀴벌레도 잡아 주겠다고 말해야 했다. 또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내지 않게 할 비법들을 생각해 내서 엄마에게 알려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중요한 순간에 무작정 울기만 했다. 엄마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작은 가방은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내가 울며 가방을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가방끈이 끊어져 버렸다. 엄마는 잠시 가방끈을 보더니 정말 화가 난 표정을 짓고는 단숨에 집을 나가 버렸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닫힌 문만 보았다. 분명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엄마를 따라 나서려면 겉옷을 입고 신발도 신어야 할 텐데, 그러는 동안 엄마는 아주 멀리 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 서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아니면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를 상상하느라 발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움직이는 순간 엄마가 아주 멀리 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스윽, 히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 소리를 낸 뒤 팔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아빠는 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밥도 지을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었지만, 엄마를 잡는 법은 몰랐다. 아빠는 더 멍하게, 표정도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비슷한 꿈을 몇 번 꾸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면 나는 내복 바람에 맨발로 문을 연다. 문손잡이는 너무 차가워서 잡고 돌릴 때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내 몸은 가벼워지며 공중에 떠오른다. 하늘을 나는 꿈과는 달랐다.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었고 원하는 속도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헬륨 풍선처럼, 바람이 이끄는 대로 한없이 어딘가로 떠오르기만 했다. 내 몸은 천장에 부딪혔다가 지하 계단으로 떨어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계단 난간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허우적거리며 1층으로 올라가려고 애썼다.
몸은 가볍지만 움직이는 것은 느렸다. 엄마를 잡으려면 차라리 달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허공에 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1층 난간에 매달려, 몸이 더 높이 떠오르지 않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엄마는 한쪽이 끊어진 가방끈을 손에 친친 감은 뒤, 다시 그 손을 난간을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옷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그 커다란 옷 가방 때문에 하늘로 떠오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엄마의 가방은 헬륨 풍선 끝에 달린 조그만 돌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가방을 자세히 보았다. 그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꿈틀거리다가 점점 크게 울렁거리더니 마침내 무엇이 되었다. 그 가방은 나였다. 내가 가방이 된 것이다. 엄마는 내 팔목을 잡고 있었다. 엄마가 옷 가방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내 팔목이라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래서 나는 힘껏 웃다가 얼굴을 간질이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나는 너무 오래도록 넋을 놓고 웃느라 엄마의 손도 놓치고 지하 게단 난간도 놓친 채 다시 한없이 날아오르는 헬륨 풍선처럼 가벼워졌다.
순식간에 내 몸은 햇살이 들어오는 벽돌 빌라 1층 현관 앞을 지난 뒤 벽돌 빌라 2층, 3층, 4층 그리고 옥상으로, 그렇게 영원한 곳으로 떠올랐다.
‘풍선들은 아주 높이 날아오르면 언젠가는 터진다지. 조금도 아름답지 않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슬퍼하다가 엄마가 내 팔뚝을 아주 세게 꼭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면 나의 몸은 조금 무거위지는 듯했고 나는 다시 가방인 척 엄마의손에 잡혀 있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무거워서 벽돌 빌라 1층까지올라가지도 못했고, 올라간다고 해도 나는 가방이기 때문에 엄마가 어디로 가든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꿈은 다행히도 늘 그렇게 행복한 순간에 끝났다.
오늘은 엄마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때까지 7개월 남은 날이다. 스윽, 히익 하는 소리만 내는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내가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 1분에 한 번씩 스윽, 히익 하는 소리를 내고 팔을 돌릴 뿐이다. 다행히 아빠가 하루에 세 번 쌀을 씻고 밥상을 차리고 화장실에 가고 텔레비전을 보기 때문에 나는 설거지만 하면 되었지만 그것도 내겐 힘든 일이었다. 물론 내가 열세 살이나 열네 살이거나 엄마가 1년 후에 떠난 거라면 이보다 나았을 거다. 어쩌면 매일 된장과 간장, 마른 김 같은 것을 먹지 않고 엄마가 자주 해 줬던 오징어볶음이라든가 순두부찌개, 혹은 잡채처럼 어른들만 만들 수 있는 것들도 할 수 있었을 거다. 왜냐하면 1년이면 나는 열두 살이 된다. 열두 살은 열한 살보다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나이다.
엄마는, 그러니까 내게, 1년 정도 그런 것들을 잘 가르쳐 주고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몇 개월 사이에 빨래도 할 수 있고 전기밥솥도 만질 수 있고 라면도 끓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굉장히 힘들게 알게 된 거였다.
엄마는 아빠가 나를 돌봐 줄 거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아빠는 날이 갈수록 더 이상해지기만 했다.
엄마가 돈 벌러 간 뒤 아빠는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동굴 속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이라도 꾼 사람 같았다. 나도 그 옆에서 아빠와 함께 동굴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면 구석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왼쪽으로 누워 1분에 한 번씩 허공에 팔을 돌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처음엔 아빠가 악몽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주었지만 나중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불이 켜고 아빠를 깨우면 아빠는 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정말로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가끔이라도 왔다면 나는 더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그 사실은 나를 안심시켰다. 왜냐하면 그건 엄마가 약속을 아주 잘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1년 동안 올 수 없다고 했으니까 오지 않은 거고, 1년 뒤엔 올 수 있다고 했으니까 1년 뒤엔 정말 꼭 돌아올 것이다. 1년이 되기 전에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엄마가 영원히 우리를 떠나고 싶어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택배로 상자를 보내 왔다. 나는 택배아저씨가 오면 언제나 아빠를 앞세웠다. 엄마가 남기고 간 생활 수칙에, 누가 오면 언제나 아빠를 앞세우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사람을 쳐다볼 때 또렷이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문 앞에 서서 스윽, 히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을 돌리며,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는 있었다. 그건 이 집에 열한 살짜리 작은 여자아이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아빠와 나는 택배 상자를 받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뜯어보았다. 상자엔 우리가 한 주 동안 먹을 것들이 들어 있었고 물건이 들어 있을 때도 있었다. 아빠와 나는 상자가 온 날이면 언제나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꺼내서 상자 옆에 앉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물론 엄마가 적어 준 수칙에는, 상자가 오면 그 안에 든 것을 냉장고에 잘 정리해 두고 다음 상자가 올 대까지 조금씩 아껴 먹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가 껍질을 벗겨 내고 잘라서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포크와 함께 쟁반에 올려 내주던 사과와 배 같은 것을 몽땅 한꺼번에 여섯 개까지도 먹어 치웠다. 처음에는 그런 아빠한테 화가 났지만, 나중엔 나도 아빠 옆에서 그렇게 했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택배 상자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아주 잠깐이지만 엄마와 아빠와 내가 아직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세수를 한 적도 머리를 감은 적도 없다. 처음엔 집에서 나는 냄새를 참지 못했지만 아빠가 1분에 한 번씩 내는 이상한 소리에 익숙해진 것처럼 좋지 않은 냄새에도 익숙해졌다. 냄새를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었다.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집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거나 바퀴벌레가 낮에도 당당하게 기어 나오는 것 정도는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이제 엄마가 오는 것이 걱정된다.
집 안은 엄마가 떠날 때보다 훨씬 더러워져 있는데 나는 어떻게 청소해야 할지 모른다. 보일러실에 쌓아 둔 과자 봉지나 비닐봉지, 종이 조각 따위가 너무 많아졌다. 아빠와 나도 너무 더러워졌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오래 학교를 가지 않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면 화를 낼 것이다. 우리 집엔 전화기도 없고 아무도 집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은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아빠와 이 집을 보면, 너무 화가 나서 이번엔 1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 같은 것은 하지도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택배를 보내지도 않고 영원히 우리를 떠나 버릴 것이다.
엄마는 헬륨 풍선처럼 가볍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풍선 끝에 달린 돌덩이를 끊어 버리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아빠가 1분에 한 번씩 팔을 돌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대신, 1분에 한 번씩 청소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아주 잘할 수 있을 거다. 1분에 한 번씩은 비닐봉지들을 찾아내고, 1분에 한 번씩은 종이 조각들을 찾아내고, 1분에 한 번씩은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와 과자 부스러기 들을 찾아낼 것이다. 아빠는 1분에 한 마리씩 바퀴벌레를 잡아 줄 것이다. 아빠는 하루도 되지 않아 보일러실 바닥이 잘 보이도록 치울 수 있고, 그 다음은 싱크대의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은 그릇들을 욕실로 몽땅 가져가서 물에 불려 놓았다가 깨끗이 설거지를 할 거다. 그다음은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고쳐 줄 것이다. 음식 찌꺼기 때문에 막혀서 물이 내려가지 않는 싱크대 배수관도 뚫어 줄 것이다. 물론 1분에 한 번씩은 오른쪽 팔을 돌려야 하겠지만 배수관을 뚫을 때 1분에 한 번씩은 팔을 돌리는 것 정도는 방해가 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아빠는 이제, 1분에 한 번 돌리던 팔마저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빠는 나와 엄마 때문에 불에 데었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 때문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빠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어떤 날은 택배로 오징어를 보내온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날은 가스레인지에 오징어를 굽다가 불을 낸 나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엄마의 수칙에 따라 가스레인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던 나는 마지막 남은 오징어 한 마리를 반드시 불에 구워 먹고 싶어졌다. 나는 오랜만에 가스레인지 밸브를 열어 불을 중간으로 조절하고 오징어를 구웠다. 냄새가 아주 좋았다. 집 안을 덮고 있던 퀴퀴한 냄새를 오징어 냄새가 모조리 집어삼켜 버렸다. 내가 오징어를 불에 올리자마자 아빠는 팔을 돌리며 부엌으로 왔다. 밥을 할 때 말고는 내가 뭘 해도 관심 없던 아빠가 내가 오징어 굽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어쩐지 불편했다. 늘 허공을 보고 있던 아빠가 예전처럼 정확하게 나를, 그리고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곁눈질로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나를 왜 보고 있는지 캐내고 싶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아빠가 팔을 데인 건 아빠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빠가 나를 보아서 내가 놀랐고, 그래서 오징어를 굽는 데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하루 종일 생각한다. 오진어가 알맞게 익어 갈 즈음 내가 불을 조절하려다 실수로 가스 불 손잡이를 강한 불 쪽으로 돌린 순간, 불길이 커져 아빠가 맨손으로 오징어를 꺼낸 순간 말이다. 그때 아빠의 너덜거리는 내복 소매에 불이 붙었다. 만약 수도꼭지가 고장 나지 않았고 개수통에 밀린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지 않았다면 아빠는 개수통의 물속에 불붙은 옷을 집어넣을 수 있었을 거다. 처음에 아빠의 옷에 붙은 불길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읻. 그러나 아빠는 멍하니 보고만 있느라 불길을 키웠다. 그리고 곧 내가 도와줄 수 없을 만큼 펄쩍펄쩍 정신없이 날뛰기 시작했다. 아빠는 소매 끝에 붙은 불은 다행히도 꺼져 버렸지만 이번엔 부엌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빠가 그렇게 물건을 던지지만 않았어도 나는 가스레인지 불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수저통과 밥상보와 음식 배달 광고 책을 던졌다.
그때 택배 아저씨가 오지 않았다면 벽돌 빌라 전체가 불타버렸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불을 끄거나 아빠를 말리지는 못했지만 초인종을 누르는 택배 아저씨,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본 택배 아저씨에게 문을 열어 줄 수는 있었다. 다행히 택배 아저씨의 응급처치 덕분에 불길은 번지지 않았다. 우리 집 부엌과 마룻바닥과 천정과 벽이 흉하게 변했을 뿐이다.
동네 사람들은 아빠와 내가 맨발로 빌라 앞에 서 있는 것을 마치 거대한 두 마리의 쥐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나는 그날 이후 아빠가 스윽, 히익 소리를 내면 나도 따라서 스윽, 히익 하는 소리를 내고 아빠가 팔을 돌리면 나도 따라서 팔을 돌렸다. 심지어 나는 아빠가 소리를 내지 않을 때도 그 소리를 내고 아빠가 팔을 돌리지 않을 때 팔을 돌리기도 했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 행동을 하지 않을 때도 그걸 언제 할지 계속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처럼 자연스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아빠를 따라 했다. 아빠를 따라 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그것은 아빠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아빠가 가끔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유도 없이 웃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아빠가 나를 보며 웃는 것은 다행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매트리스에 누워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이불을 덮고 초점을 멍하게 만들어서 방을 보다가 아빠의 소리가 들리면 그때마다 엄마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스윽, 히익, 엄마’라는 소리가 1분에 한 번씩 울린다. 1분은 60초고 ‘스윽, 히익, 엄마’는 3초 정도 되는데 그 시간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리는 거다.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 순간에는 혹시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걱정한다. 집이 깨끗해지기 전에, 아빠의 스윽, 히익 소리와 팔 돌리기가 멈추기 전에, 아빠의 화상 물집이 가라앉기 전에, 아빠가 다시 취직하기 전에, 내가 깨끗한 모습으로 학교 가기 전에, 엄마가 돌아올까 봐 걱정이다.
나는 매일, 1분에 한 번은 엄마를 기다리면서 아빠와 ‘스윽, 히익, 엄마’를 하고 있다.
(원고지 57매)
첫댓글 스윽, 히익, 엄마 소리가 다 읽난 후에도 들려오는 울림이 있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전 왜 자꾸 눈물이 나죠 ㅠㅠ 동화가 이렇게 슬픈 법이 어딨어요 ㅜ
어린이에게 엄마는 무조건 따뜻한 이름이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부르는 엄마는 너무 슬프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