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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3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증언할 것인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언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할 용기도 없고, 어떻게 증언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의외로 나보다도 더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회를 알려준다고 까불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미디어를 통해서 특별히 SMS 등을 통해서 모든 종교에 대해서 아주 박학다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잘못된 종교관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으로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고 탄식할 때도 많습니다.
복음 선교의 모든 원칙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면 복음 선교의 구체적인 방법을 예수님께서 설계해 주고 계십니다. 이 방법은 아주 경영학적이고, 전략적이어서 복음 선교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략적으로 이 방법을 전수해 주신 것입니다.
제 1 원칙은 자신을 잘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내가 나를 잘 살펴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먼저 자신을 잘 살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자성(自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사도가 되도록 끌어올려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잘 살펴보고 현실을 진단한다면 복음말씀에 충실한 사도가 되는 길을 알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을 선포할 준비를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2 원칙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할 때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을 죽이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현대인들은 편한 것을 너무 찾습니다. 조금이라도 육체적으로 고단한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지식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두려움이고,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무엇을 선교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증언할 것인지 하느님의 영께서 알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두려운 것은 악마의 간교한 유혹입니다. 인간은 그 유혹에 잘 빠져버립니다. 유혹에 빠져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은총을 주시어 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3 원칙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 은총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살게 하시고,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시는 은총에 감사하면서 효성스러운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복음화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화가 되어야 하느님의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 4 원칙은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어두운 데에서 들은 것을 밝은 데서 선포하고, 작은 소리로 소근 거린 소리를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선포해야 하고, 복음의 말씀을 복음의 말씀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증언해야 합니다. 선포하는 데에는 말로써 선포할 수 있으며, 행실로 선포할 수 있고, 기도와 격려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격려와 희생으로 하는 선포를 요즈음 빨랑까(Palanca : 스페인 어 : 지렛대)라는 말로 통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방법과 시기는 각자에게 성령께서 안배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중에 들으십시오. 용기를 내는 것이 네 번째 원칙입니다.
제 5 원칙은 이제 사람들에게 자랑하십시오. ‘나는 하느님의 자녀 된 인호(印號)를 받았다고 하십시오. 세례 때 머리에 세례수로 십자가를 그리며 수호성인의 이름으로 인호를 찍었으니 영구불멸의 인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인호를 받았으니 예수님을 안다고 하십시오. 안다는 것은 그분의 자녀가 되거나 그분과 한 형제간이 되거나 그분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제 증언하십시오. 아주 떳떳하게 증언하십시오. 예수님과 같이 감옥에도 갈 것이고, 십자가에 못도 박힐 것이고, 매달리기도 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도 안다고 증언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축일7월 13일 성녀 데레사(예수의) (Teresa of Jesus)
신분 : 수녀
활동 지역 : 로스 안데스(Los Andes)
활동 연도 : 1900-1920년
같은 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성녀 로스 안데스의 예수의 테레사(Teresia de Jesus de los Andes, 또는 예수의 데레사)는 1900년 7월 13일 칠레(Chile) 산티아고(Santiago)의 상류 가정에서 후아나 페르난데즈 델 솔라르(Juana Fernandez del Sola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었던 그녀는 프랑스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인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10월 1일)의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성인전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극복하며 모든 것 위에 다른 사람을 두는 방향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다. 그녀의 자기 변화에 더 큰 영감을 준 것은 첫영성체 때였다. 이를 통해 그녀는 주어지는 모든 것을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다.
1919년 5월 7일, 19살의 나이에 후아나(또는 후아니타 Juanita)는 로스 안데스의 카르멜회 여자 수도원에 입회하여 같은 해 10월 14일 착복식을 하고 예수의 테레사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영성 생활의 체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편지 쓰기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녀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치명적인 발진티푸스에 걸려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을 석 달 남겨 두고, 또 6개월의 법정 수련 기간을 완료하기 직전에 그녀는 죽음의 위험 중에 있는 상태에서 관면을 받고 1920년 4월 7일 첫 서원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12일, 그해의 사순시기 성주간 중에 선종하였다.
성녀 예수의 테레사가 선종한 후 그녀의 시신은 산티아고에서 90km 정도 떨어진 로스 안데스의 아우코 린코나다(Auco-Rinconada) 순례지에 모셔졌다. 매년 10만 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그녀의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 이곳을 찾을 정도로 그녀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여성과 젊은이들에게 잘 알려진 그녀의 생애에 대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가 1990년대 초 칠레에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그녀는 1987년 4월 3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3년 3월 21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칠레의 첫 번째 성인이자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성인으로 선포된 첫 번째 맨발의 카르멜 여자 수도원의 수녀이다. 또한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10월 15일), 예수 성심의 성녀 테레사 마르가리타 레디(Teresia Margarita Redi, 3월 7일),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10월 1일), 십자가의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Teresia Benedicta, 8월 9일)와 더불어 맨발의 카르멜 여자 수도원에서 다섯 번째로 테레사 이름을 가진 성녀이다.
축일7월 13일 성 에즈라 (Ezra)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4/5세기BC
같은 이름 : 에스드라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성문서에,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역사서에 속하는 구약성경 에즈라서는 후반부(7-10장)에 가서 등장하는 주인공 에즈라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였다. 에즈라서는 느헤미야서와 함께 바빌론 귀양 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도움이라는 뜻을 지닌 성 에즈라(Esdras)는 바빌론으로 귀양 간 유다인들의 사제이자 율법 학자로서 페르시아 정부의 유다인 담당 기구 안에서 조언자의 직무를 맡고 있었다.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7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다인의 공동체를 다시 이룩할 명령을 받았다. 약 1,500명의 유다인과 많은 성전 봉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도착해(7장 이하) 법을 선포하고 그것을 의무적으로 지킬 것을 명하며 타민족과의 혼인을 금지하였다(9장 이하). 이는 많은 동포가 이민족들과 혼인하여 민족의 순수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페르시아로 돌아갔으리라고 본다.
축일7월 13일 : 성 요엘 (Joel)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4세기BC
같은 이름 : 조엘
요엘서는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예언서로 브두엘의 아들 요엘(1,1)이 선포한 말씀으로 모아져 있다. 요엘은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뜻을 지니며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 등 구약성서 후대의 역대기계 문헌에는 18회나 언급되지만, 그 외에는 사무엘 예언자의 맏아들 이름으로 단 한 번만 사용된다(1사무 8,1). 그래서 요엘이 오래된 이름이기는 하지만 구약성서의 후대에 와서 흔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구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요엘 예언자가 언급되지 않는다. 요엘서 자체에서도 요엘 예언자 개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이 유다 지방, 특히 예루살렘과 그곳의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그가 유대인이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요엘은 성전에서 거행되는 종교 의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이사야나 에제키엘처럼 이스라엘인들의 잘못된 종교 의식을 비판하였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가뭄과 메뚜기 떼의 침입으로 성전에서 매일 바쳐야 하는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외적 궁핍보다 더 큰 불행으로 여긴다(1,9. 13. 16). 또한 그의 많은 표현도 전례 용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하던 ‘전례 예언자’였으리라고 추측된다.
다른 한편, 기존의 성서에 정통한 요엘은 선배 예언자들의 사상을 어어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미 공포한 말씀을 다시 선포하고 그들의 어구나 어휘를 인용하고 재활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예언자를 ‘성서 예언자’ 또는 ‘성서 해설가’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예언자로서 요엘의 성격을 흐리게 하거나, 그의 독창성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기원전 4세기 초엽이 요엘 예언자의 시대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로, 유대인들은 민족과 땅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나름대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가 감행한 종교개혁 덕분에 예루살렘 성전은 유일한 성소로 자리를 굳히고, 그곳의 모든 전례도 이미 잘 정비되어 거행되고 있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예수의 데레사 자매님과 요엘, 에즈라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