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ㅡ
결혼한 사람이면 누구나 해마다 돌아오는 결혼한 날을 기억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결혼 기념일을 잊지 않았다.
올해만!
먹고 살기 급급해서가 아닌, 무심코 지나다 보니 아내의 입술이 한뼘 빠진 것을 보면 "아차!"
이미 후회가 소용없이 되어버린 것을!
23살 어린 나이에 노총각에게 시집온 아내는 온갖 고생을 다하며 시집살이를 했다.
년년생으로 남매를 낳고, 시어머니와 가끔 오시는 시아버지 수발 ㅡ
당연히 명절이면 타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부모님 계신 곳으로 모이기 마련 ㅡ
상주하며 술만 마시면 주정을 부리던 시동생 ㅡ
무슨 제사는 그렇게나 빨리 다가오던지!
급기야 누님의 아들이 근처 대학에 왔다고 숙식을 부탁하고 도시락까지 싸야했던 아내였다.
한 마디로 내 머리카락을 잘라 짚신을 삶아줘도 모자란 아내의 지극정성이었던 지난 세월 ㅡ
남편이란 자의 바람까지 아내의 일생은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인고의 역사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인척들 발길도 끊어졌고, 아내에게 평화가 온 듯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끝날 줄 알았던 고행은 다시 시작된다.
아들 녀석에게 손주가 태어나자 다시 육아의 길로 걸어야 했던 내 아내 ㅡ
딸아이도 아기를 낳아 멀리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내는 먼 그곳까지 원정 육아돌보미를 했다.
손주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숨 놓는가 했더니 아들에게 다시 쌍둥이 남매 출산 ㅡ
며늘아이가 친정에서 두 아이를 데려오자 다시 쌍둥이 때문에 좋아하는 등산은 커녕 공원 둘레길도 못 걷는다.
이렇게 고생이 끝도 없는 아내에게 올해만큼은 결혼기념일을 꼭 챙겨보겠노라고 곳곳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한 나 ㅡ
그 덕분에 아내에게 선물을 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신발은 많다.
옷을 해주고 싶었다.
홈쇼핑에서 본 예쁜 블라우스를 입은 모델에게 아내 모습을 캡쳐 ㅡ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워낙 선천적으로 예뻐서 밀가루 포대를 씌워도 요즘 뜬다는 '송가인'이보다 예쁜 아내였다.
처녀 시절, 함께 길을 걸으면 우리에게 쏠린 시선 때문에 거리를 걷기 힘든 시기도 있었던 아내이다.
어제는 금요일이라 아들 집에서 아내가 반찬을 만들어 가려고 집으로 오는 날이다.
옷 박스를 싣고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마구 뛰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아내가 나를 그냥 두지 않을 듯해서이다.
입었던 옷을 훌훌 벗고 내가 사 준 블라우스를 입고 거울을 보겠지!
멋진 스타일의 자기 몸을 비쳐본 후 만족스런 표정을 짓겠지!
그리고 다시 블라우스를 벗고 요염한 미소를 짓겠지!
아내는 속옷까지 벗을 것이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나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겠지!
기분만 좋으면 아내는 여상상위를 고집하곤 했다, 신혼 시절에는!
나는 오늘 밤, 아득히 멀어져간 신혼 시절의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밑에 깔려 허우적이며 몸부림을 치겠지!
생각만 해도 안전 운전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몸떨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기 전에 방 안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들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챙기러 온 딸내미와 손주들이 와 있다.
아무래도 신혼의 달콤함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듯하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잊지 않고 기념일에 맞춰 블라우스라도 받은 아내는 감격해 한다.
가난한 내게 시집 와 평생을 고생한 내 아내에게 작은 선물로나마 위안을 줬다는 기쁨만 있어도 만족이다.
오래 전 잊힌 노래가 생각난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란 유행가!
오늘은 그 노래를 몇 번이고 들으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보내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azR_FII25_0
첫댓글 마도친구 글쓰는재주도 프로급이네요ᆢ공감!
삶의 이야기방에 한번올려 보심도 좋을것 같구만ᆢ
답글햇수가 대단할것같은데
아내사랑하는마음 애뜻함이
마치, 내 남편마음을 훔쳐본듯 잔잔한 미소지어본다오~^^
봄 비내리는 오늘도 해피하루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