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길; 세례자 요한과 이벽 세례자 요한
1요한 2,29-3,6; 요한 1,29-34 / 주님 공현 전 화요일; 2023.1.3.; 이기우 신부
이제 교회의 전례력은 주님 성탄 팔일 축제를 마치고 공현을 준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안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한민족의 역사 안에서는 이벽 세례자 요한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이 예언자적 소명을 맡아 수행하였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레위 지파 소속의 사제였습니다. 레위 지파의 사제들은 다윗 시절에 대사제가 된 사독(히브리식으로는 차독)의 뒤를 이은 사두가이파라 불리었는데(2사무 8,16), 남북 역대 왕조에서 간헐적으로 출현한 예언자들이 모조리 박해를 당하던 시절을 거쳐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는 왕도 예언자도 없어진 이스라엘에서 종교지도자의 지위를 넘어 사실상 독보적인 국가지도자로 자처하였습니다. 이들은 레위 지파에게 배당되는 십일조 수입은 물론이요,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서 거두는 성전세 수입에다가 속죄의 제사를 드리려는 이스라엘인에게서 받아 냈던 제물 수입까지 받아서 치부를 했는데, 이 수입이 얼마나 막대했던지 당시 이스라엘의 중앙금고 기능을 할 수 있을 만치 예루살렘 성전은 복마전(伏魔殿)이었습니다.
사두가이파에 속하여 안락한 세습 사제의 길을 걸을 수는 없었던 요한은 사두가이파에 반대하여 독립적인 에세네파 공동체를 세운 독신 사제들처럼 독신 사제로서 일생을 살면서, 아버지 즈카르야의 예언대로(루카 1,67-79) 바빌론 유배 이후 4백 년 동안 끊어진 예언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와 어머니 엘리사벳 같은 아나빔들이 이사야가 전해준 예언을 잊지 않고 4백 년 넘는 세월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전통을 완성하고자 드디어 메시아가 오셨음을 외치고자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감안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마르 1,2-4). 그런데 사도 요한은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적 지성을 갖춘 사제로서 예수님을 알아본 종교적 안목으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사두가이들의 속죄 제사 관행으로는 도저히 없앨 수 없었던 세상의 죄를 메시아께서는 마침내 없애시리라는 예언으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진리와 평화를 실현하시려는 하느님의 섭리는 역사적 맥락에서 준비되고 나타납니다. 조선 사회의 어둠이 짙어갈 제 천주교 교리에서 진리를 깨닫고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명을 택한 이벽 역시 이 땅에 복음 진리를 처음 들여오기까지 오묘한 역사적 맥락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이벽의 5대조 이경상은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 당시 영의정이었고 병자호란의 패배로 세자인 소현을 볼모로 보내야 했을 때 따라갔던 수행원이었습니다. 북경에 와 있던 아담 샬 신부는 마테오리치의 초청으로 온 독일 선교사였는데, 그가 소현세자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아마도 세례까지도 주고 나서 귀국길에 교리책과 성물을 다섯 궤짝이나 주자 이를 조선으로 가지고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서양 문물의 도입을 두려워한 조정 대신들의 음모로 소현세자가 독살당하고 나니 이경상은 “저 서양 서적과 성물을 담은 궤짝을 열어보면 집안이 망할 것이니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 후 150여 년이 흐르자 5대손 이벽은 ‘천주실의’를 비롯한 천주학 서적은 물론 서양의 과학문물 서적들을 남들보다 일찌감치 그것도 마음껏 읽고 보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벽보다 먼저 이 책을 비롯한 천주학 서적을 읽은 선비들은 숱하게 많았습니다만 오로지 이벽만이 신앙 진리를 깨달았다는 점이 오묘한 섭리의 시작으로서 복음의 씨앗이 이 땅에 내린 뿌리였습니다.
이벽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서양 선비 마테오리치의 권위를 빌려 돌파하고 하늘 천(天)을 자연의 하늘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느님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이 이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명망높았던 선비 권철신을 열흘 걸려 설득하고, 그가 좌장으로 있던 강학회의 선비들에게 가서, 천주실의에 담긴 기초적인 교리 지식은 물론 신구약성경의 내용을 섭렵한 묵상을 한시로 적어 ‘성교요지’를 지으니 그 강학회 선비들도 본시 실학에 대해 가졌던 학문적 관심을 비로소 천주학으로 전환하였으며, 종내 천주교 신앙 공동체에 합류시킬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일원이었던 이승훈을 북경에 보내 세례를 받게 하고 그로부터 다시 세례를 받아 정식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으니 이것이 한국교회의 시작이었고, 이렇듯 선교사 없이 자발적인 노력으로 자생적으로 교회를 설립했다는 점이 오묘한 섭리의 싹이 되었습니다.
천주교를 우리 민족에게 자발적으로 도입하여 자생적 교회 설립의 역할을 수행한 이벽 세례자 요한은 문중박해를 받아 식음을 전폐당해 죽었지만, 강학회 동료 선비들이 그를 계승하여 겨레의 빛을 비추어주었으니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이벽이 들여온 그리스도 신앙 진리를 온 겨레에게 빛으로서 비출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시대를 달리하여 예수 공현을 준비한 이 두 예언자 덕분에 비로소 진리의 빛이 어둠 속을 걷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비추어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교요지를 짓고 난 이벽이 한문을 배우지 못한, 그러나 종교적 심성은 양반 선비들보다 더 뛰어난 백성을 위해서 한글 4 4조로 지은 ‘천주공경가’룰 소개하니, 글에 담긴 뜻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 네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 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 임금용안 못보았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 영원무궁 영광일세(이벽, 천주공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