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연주, 그리고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뮤지션을 흔히 싱어송라이터라 부른다. 현재까지 확인된 기록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1934년 리갈레코드에서 <가신님에게>라는 창작곡을 발표했던 김정숙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그녀의 음반을 소개한 광고 글을 보면 김정숙은 송도 출신이고 ‘희세의 미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반을 발표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음원이 확인된 적은 없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음반이 확인된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박인희다. 숙명여대 불문과 출신인 그녀는 방의경보다 앞선 1971년 8월에 창작곡 <그리운 사람끼리>를 발표했다.
박인희의 뒤를 이어 이연실, 김광희, 김현숙 등도 비슷한 시기에 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에서 이들 역시 여성 싱어송라이터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창작곡 발표가 아닌, 온전한 앨범 개념으로 창작 독집을 발표한 사람은 방의경이 최초였다.
방의경은 정미조와 함께 ‘이화여대의 노래 잘하는 쌍두마차’로 통했다. 그녀는 1970년 첫 창작곡 <겨울>을 시작으로 30여 곡을 작곡했다. 방의경은 “노래를 창작할 때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전깃줄에 감전되듯 저절로 가사와 곡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그녀의 창작곡을 최초로 수록한 음반은 1972년 500장 한정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당시 대학생 싱어송라이터들의 아지트였던 서울 충무로 음악감상실 내쉬빌 멤버들이 참여한 이 음반에 그녀는 창작곡 <불나무>를 발표했다.
1972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방의경의 유일한 독집은 당대의 어두운 사회 현실을 맑고 아름다운 은유적인 가사로 표현한 포크 명반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요즘 음악을 듣는 기준으로 이 음반을 듣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열악한 편곡과 단순한 사운드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음반의 사운드는 단출한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방의경의 목소리에 이따금 새 소리, 파도 소리 같은 자연 효과음이 삽입된 것이 전부다. 각 곡의 멜로디는 동요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하지만 맑고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만큼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언젠가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
영혼의 샘을 흐르게 하려 하니
황혼이 지는 때에 그림자 되려네
귀한 나의 친구랑 함께 걷도록
별들이 뛰노는 하늘바다 푸르러도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고
양지바른 들이면은 발길을 맞추세
귀한 나의 친구랑 함께 걷도록
생각나는 추억이라고 말하지 말고
내쉬는 숨소리들도 닮게 하려니
어둠이 돌아서고 한길로 모여야지
귀한 나의 친구랑 함께 걷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