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에서 타이거즈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남자
"현재 이 경기장이 작아서 우리 선수들을 담을 수 없어 보인다."
1. 광주에서 장사를 하려면 무조건 TV가 있어야 해요. 저녁에는 타이거즈 경기가 나와야죠. 안 그러면 아무리 맛있는 집이어도 망해요.
2. 광주는 왜 타이거즈의 도시가 되었을까요? 그 쓰리고 슬픈 시절 야구장은 소리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을 거예요. 심한 지역 차별 속에서 승리의 노래 <비내리는 호남선>을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겠죠. 그래서 애정의 순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 같아요.
3. 이런 팬덤은 대를 잇잖아요. 게다가 성적도 좋았고. 광주 출신인 저도 그래요. 초대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이었고, 무등경기장을 밥 먹듯 다녔어요. 그래서 올해 타이거즈 라인업도 꿰고 있죠. 최원준이 입대 전 퍼포먼스 보여주고, 1루수에 이우성이나 황대인이 WAR 2+ 정도 해주면 우승 기대할 수 있다고 봐요.
4. 그런데, 저는 지난해부터 타이거즈의 강고한 아성에 발길질을 하는 한 사내에게 푹 빠졌어요. 광주FC 이정효 감독이죠. 2021년 연말 광주 축구팀을 맡은 뒤 이듬해 2부 리그(K리그2)에서 우승하고, 작년에는 K리그1에서 3위를 했어요.
5. 덕분에 올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죠. 말도 안 되는 성과였어요. 야구씬에 '엘롯기'가 있었던 것처럼 축구씬에는 '대대강광'이 있는데, 이쪽이 더 심하거든요. 시민 구단이어서 예산이 너무 적으니 '엘롯기'처럼 해체되기 어렵죠. 시가 재정난을 겪고 있는 광주FC는 그중에서도 특히 예산이 가장 적고요.
6. 선수단 연봉만 봐도 알 수 있어요. 3위를 했지만 올해 광주FC는 꼴등이에요. 전북 현대가 198억이고 울산 HD가 183억인데, 광주FC는 고작 59억. 당연히 국가대표 선수가 한 명도 없죠. 작년에 한 명 나왔는데, 연봉 많이 주는 다른 구단이 데려갔어요.
7. 이런 선수 구성으로 3위가 되고,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니 기적에 가까운 거죠. 그러니 광주FC가 이정효 감독과 2022년 1월에 2년 재계약을 한 뒤, 2023년 12월에 3년 재계약을 했어요. 꼭 잡아야 할 감독이니까요.
8. 이정효 감독은 2022년 K리그2 우승 후 '전용 훈련장' 필요성을 역설했어요. 광주시는 지난달 천연 잔디 2면의 연습장이 공사를 시작했죠. '성장할 수 있는 팀'을 원하는 건 이정효 감독을 잡으려면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기본적인 여건이니까요.
9. 올해 광주FC는 지난해 성적을 이어가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어요. 이순민, 티모 등 핵심 선수가 이탈했고, 다른 팀들이 광주FC의 전술에 대응책을 가지고 나올 거라고 봤으니까요.
10. 하지만 두 게임을 치른 현재 광주FC는 K리그1 1위에 올랐어요. 아직 두 게임뿐이지만 광주 프로축구팀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죠. 그리고 이 승리 후 이정효 감독은 더 큰 '전용 축구장'에 대한 바람을 말했어요.
11. 현재 광주FC는 1위을 계속 달려도 관객 수는 꼴등을 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오늘 심심한 서울 경기가 열렸던 상암에는 5만 명이 넘게 왔지만, 광주는 꽉 차더라도 7,800명 밖에 못 오는 사이즈예요.
12. 오늘 광주 전용 축구장에 5,786명이 왔어요. 꽉 차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죠. 하지만, 이런 관중 규모에 머무르면 팀을 더 높은 단계로 성장 시키기 어려울 거예요. 2연승을 모두 직접 관람한 강기정 광주 시장의 명문 축구팀 만들기 바람도 이루기 어려울 거고요.
13. 이정효의 마법은 이미 축구장을 벗어났어요. 전용훈련장은 공사에 들어갔고, 광주FC 팬들 사이에서는 광주 지하철 2호선 개통과 연계한 전용 축구장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오가고 있죠.
14. 만약 올해 광주FC가 K리그1 우승을 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경기장 밖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말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 광주의 야구팬들은 어떻게 바뀔까요? 유니폼에 어떤 기업 스폰서로 새겨질까요?
15. 저는 이정효가 있는 한 이런 가능성이 꽤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많은 이들이 '효버지', '대정효'라고 부르고 있고, 클린스만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던 시절, 축구팬들 사이에서 국대 감독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으니까요.
16. K리그 팬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길 거예요. 그래도 나중에 기회 되면, K리그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왜 이정효가 2002 월드컵 히딩크 이후 한국 축구의 변곡점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많은 축구인들이 이정효의 '상징성'을 응원하는지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