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6년전인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공격하겠다고 북한서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공비 31명이 세검정백사실에서 조석고개라는 마을동네를 넘어 가다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우리군과 경찰하고 대치하여 교전이 벌어졌다. 있을수 없는 정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당시 나는 그 골목길에서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결혼한지 3년이 안된 큰형이 사는집 문간방에서 얹혀 살고 있었다. 바로 현관문을 나서면 철조망이 치렁치렁 둘러진 능금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앞산 안쪽이 백사실이였다.
지난주말 걷기모임 길동무동호회에서 33명이 자하문 최규식 경무관동상(1.21.사태시 종로경찰서장으로 교전시 전사했고 일계급 특진을 추서함)앞에서 북악스카이웨이를 돌아 백사실까지 걸었다. 작년에도 여길 왔었고 올봄에도 백사실 올라가는 길에서 편의점을 하는 후배를 보러 왔었다. 그때만해도 내가 살던 낡은 기와집을 비롯 동네가 그대로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동네를 모두 허물었고 재개발한다고 펜스친것을 보고 놀라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 지켜 보았다.
세검정에서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뜨거운 청춘의 시절 13년을 보냈고 1979년 겨울, 결혼하여 화곡동으로 분가하였다. 그곳서 나는 토박이들을 7명정도 사귀었는데 지금도 일년에 서너번은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 중에 결혼을 앞둔 아들딸 둘을 내가 주례를 서준바 있고 딸쌍둥이를 낳은 친구는 나더러 이름을 지어달래서 옥편을 보고 한글사전을 보며 김가은.김나은이라고 지어 주었는데 어느덧 44세가 된 고참 은행원으로 잘 살고 있다.
지금은 한명도 세검정에는 살고 있지 않지만 모임이 지속되어온 건 한친구가 건설회사 중역으로 잘 나갈때 모여라하고 수시로 호출을 보내 밥과 술을 열심히 사주었고 심지어 아파트 건설현장에 수당많이 주는 야간경비도 취직시켜주기도 했다. 더욱 대단한것은 우리가 고등학교다닐때 가정이 어려워 고교진학을 못하는 친구를 맥주회사 사장하시던 친구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영등포공장 전기조수로 취직시켜주어 40년을 근무하고 나왔고 지금도 빌딩 전기실서 일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잘 뭉쳤다.
세검정은 청와대와 광화문이 지근거리인 종로구 관할이지만 전철도 없는 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은 동네나 다름없다. 누구나 어린시절의 마을은 정답고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개발의 바람속에 많이들 사라지고 있다.그럼에도 내가 살던 집이 지금까지도 고향에 있다면 그건 행복한거고 좋은 추억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것이다.
첫댓글 언덕저편1 님의 글을 읽으니 나도 내 어린 시절이 생각 납니당
우리 집안은 광화문에서 400 년을 살았다고 합니당
그래서 인지?
나는 피난 가서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종로구 종로 3가 장사동에서 4 살 때부터 8 살 때까지
광화문 에서 나 11살 때 부터 17살 때 까지 살았구
그 이후에 내 나이 29 살때까지 종로 3가 몇 군데 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길동무 등으로 종로를 나갈때 이면 내가 살던 곳을 가보곤 하는데?
내가 살던 집이 흔적도 없이 없어진 곳도 있구 아직도 건재한 집도 있습니당
나도 내가 살던 곳을 가면 과거가 생각 나곤 합니당
나도 그냥 내 이야기도 써 봤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미국간지 56년이 된 작은형은 20년전 한국에 와서 본인이 살던 대광고등학교 담벼락밑에 있던 신설동 철망지붕집을 흥미롭게 찾아가 본적이 있지요...수구초심이라고 옛날살던집은 잊기가 어렵지요. 대다수가 먹을게 없던 못살던 집안은 7-8명이 보통 한방서 살기도 했답니다.
저는 세검정이란 동네가 참 좋았습니다.
거기에는 추억이 있지요.
졸업반 때, Air Line 입사시험을 치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요.
잠 잘 곳이 없으면,
아버지가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이 뻔 하였기에,
고종 오빠가 고종 언니 집 까지 같이 가기로 해 주었습니다.
시험장까지도 오빠가 에스콧트 해 주었지요.
그곳은 아담한 소쿠리 동네에,
북악 스카이웨이가 만들어진지 얼마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하문을 지나면 조용하고 정원들이 잘 꾸며진 동네였지요.
청와대 바로 뒤라, 안전구역이었습니다.
저도 길동무 따라, 수필방 벙개에서,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내 고향 아닌 곳 치고는
그동네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 곳인데,
조금은 변해 있었지요.
언덕저편님의 글이
젊고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네요.^^
그러면 콩꽃님은 항공회사에 다니셨군요? 궁금합니다. 저도 첫직장이 대한항공입니다. 아주 서울시내서 가깝지만 시골스러운 동네가 세검정입니다. 세검정에는 조선시대때부터 한지와 장판지를 만드는 가내수공업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구요. 제가 1966년까지 금호동꼭대기 판잣집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이모한테 빚보증을 잘못서 판자집이 날라갔고 내동생하고 부모님은 상계동판잣집으로 옮겼고 저는 신혼인 세검정형집으로 왔답니다. 당시만해도 세검정 개천가에 콩기름으로 발라 언덕배기에 말리는 장판지냄새가 동네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1.21사태때는 TV뉴스로 보았고 77.8년 정릉에 살때 세검정앞을
늘 지나다녔습니다. 그리고 8년전쯤 인왕산 북악산 연계산행때
자하문과 북악산의 김신조 소나무를 보았습니다
청와대뒷산인 북악산에 오르면 김신조 소나무라고 써붙힌 총알이 스쳐간 자국이 있는 나무를 보게 되죠.. 당시 참 처참한 순간이였을겁니다.
저도 몇 년전인가 거기가 통행 금지 구역에서 막해제하던 시기에 걸어봤습니다. 부드러운 황토길에 우거진 길옆나무들에서 새들의 청아한 노래소리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남니다.
통행금지 해제구역이 된지 아마 5년도 안되었습니다. 문재인정부때라고 여겨집니다.
인왕산애 자라잡은
나의중고교 대학까지
그언덕길을 10년동안 다녔답니다
지금은
지하철이 없어서인지
그쪽은 많이 낙후돼있더군요
눈오는날
미끄러워 어떻게다녔는지
가물가물 하네요
그땐
마을버스라는것도 없어
자가용아니면 걸어서
다녓는데
우스개소리지만
동창들끼리 만나면 지금도
다리가튼튼하다고 ㅎㅎ
아 그리고
그사건 겪었어요
내가중2였었나?
그길로버스가 다니면 무서웠었지요
아마도
청운상고 윗길일거에요
지금은 그길이 없어졌드라고요
그동네서 학교를 다녀 누구보다도 기억이 나실겁니다. 거기에 있는 학교가 청운상고가 아니고 경기상고입니다.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가 지금도 모여있죠.
추억 속의 세검정이 변하면 많이 아쉽겠군요.
백사실 나도 이번 가을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자하문서 백사실까지 걷기좋은 코스입니다. 원래 대형중국집이자 결혼식 주로하는 하림각서 점심에 짜장면이나 볶음밥먹고 헤어졌는데 지난주부터 점심에 55000원하는 코스요리만 판답니다.
역사적 사건과 젊음의 기억이 남아있고 멋진 친구들을 사귄 곳이라 더없이 뜻 깊은 곳이겠습니다.
제가 서울에 20년이 넘게 살았지만 세검정은 한두번 지나가본 기억밖에 없네요.
저에게 언덕저편님의 세검정 같은 곳은 대구 방천 가의 중동이란 곳과 건들바위 가까이의 수도산 입니다. ㅎ
저는 꼭 가보고 싶은 산이 대구 팔공산하고 광주 무등산입니다. 올가을에는 꼭 다녀 오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사모바위 근처에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가 있어
보존을 해 놓았더라구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사모바위에 몇번 가본적이 있습니다만 공비들 흔적은 보질 못했습니다. 이제 가을하늘이 청명하니 다시금 북한산을 갈때가 되였습니다.
우연히 서울에 놀러 갔다가
그날 1.21 세검정 옆 홍은동에 있었습니다.
그때일 생생하게 기억 하고요.
세검정 .홍은동 앞 흐르는 개천이 꽁꽁
얼어 붙었고 그위에서 작전에 투입될 국군
장병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들..
그때 그 군인 아저씨들 정말 고생도 많았고
몸 사리지 않고 훌륭히 작전 수행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