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팝(K-POP)의 세계적인 현재 위상과는 달리 1960년대 한국 음악시장은 아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다. 드물게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내한공연이 성사되면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1950년 9월 17일 미국가수 알 존슨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밥 호프를 비롯해 1954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미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 피트 시거는 참전용사로 내한했고, 1957년 베니 굿맨 악단이 시민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1960년대부터 내한공연이 급증했다. 1962년 상송 보급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베트 지로는 한명숙의 ‘노란 샤스의 사나이’를 한국어로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1963년 워커힐 호텔 개관 기념공연을 위해 루이 암스트롱과 냇 킹 콜, 패티 페이지가 내한해 국내 팬들을 흥분시켰다.
1966년 6월 12일 장충체육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던 팻 분은 한국을 총 5회 방문해 두터운 국내 팬덤을 자랑했다. 1967년에는 브렌다 리, 빌리 본 악단 등이 내한해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했고, 1968년에는 일본 가수로는 처음으로 프랭크 나가이가 시민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1969년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공연은 조용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내한공연 이후 해당 가수들의 빽판은 수요와 공급이 급증했다.
1969년 토니 달라라가 칸초네 가수로는 최초로, 샹송가수 줄리엣 그레코도 서울 시민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1970년에는 플레터스와 앤 마그렛, 1972년에는 밀바가 칸초네 열풍을 일으켰다.
《낫 킹 콜, 한국에 오다》 1965년 힛트레코드
냇 킹 콜(Nat King Cole)은 두 번 한국을 방문했다. 해외 투어 일환으로 성사된 그의 첫 내한공연은 1963년 3월 1일부터 3일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백 코러스로 포코인스가 함께 했다. 1965년 냇 킹 콜은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성황리에 열었다.
공연 직후 발매된 실황음반에는 한국어 ‘아리랑’과 ‘감사합니다’, ‘곧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냇 킹 콜의 육성이 담겼지만 귀국 직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앨범은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앨범이 되었다. 한편 1965년 2월 16일자 《조선일보》 7면에는 냇 킹 콜의 죽음을 자세히 전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기사다.
美國 人氣歌手 / 「낫·킹·콜」 死亡 / 1月에 肺癌 除去 手術
【할리우드 15日 發 UPI 急電 東洋)=本社特約】한세대를 통하여 미국 최고의 인기를 기록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부드러운 음성의 가수인「낫·킹·클」이 15일 암으로사망하였다.
「콜」은 지난 1월 25일「산타·모니카」근치에있는 성「요한」병원에서 왼쪽 폐로부터 암을 제거하기위한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그의「컨디션」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1963년 3월 1일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낫 킹 콜' 내한공연 광고.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Cliff Richard 내한공연 미원제공》 1969년 대아음반
《크리프 리차드 한국공연 실황특집》 1969년 유니버어살 레코드
클리프 리처드 공연 팸플릿, 클리프 리차드 공연 티켓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는 《한국일보》 초청으로 1969년 첫 내한공연이 결정되었고 서울 시민회관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10월 16일에서 18일까지 열렸다.
국내 개봉했던 영화를 통해 이미 인기가 상당했던 클리프 리처드는 한국에 두 개의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었다. 생일 다음 날 도착한 입 국장에서는 여학생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모습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여학생들이 그를 향해 속옷까지 벗어 던졌다는 이야기는 오보이다. 공연 영상을 보면 꽃과 손수건, 그리고 선물 보자기가 무대로 날아가는 것이 확인된다. 한편, 클리프 리처드는 2003년 두 번째 내한공연을 했었다.
《조선일보》는 1969년 10월 16일 7면에 실린 기사를 통해 그의 내한 소식을 상세히 알렸다. 다음은 기사 내용.
人氣歌手 환영 해프닝
〇…영국의 팝송가수 클리프 리처드(29)군 일행 6명이 내한한 15일 낮 김포공항은 마중나온 2백여명의 한국 소녀팬들로 수라장을 이루었다. 비틀즈 스타일에 몸에 찰싹 달라 붙은 감색 상의와 갈색바지를 입은 리처드군이 트랩을 내려서자 그의 초상화를 든 소녀팬들은 송영장에서 발을 구르며 일제히 기성을 질렀다.
〇…뒤이어 리처드군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출구로 몰린 소녀들은 그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흐느끼는 등 광태를 부려 마침내 기동경찰이 출동, 겨우 진압(?)했다. 이날 환영나온 소녀들은 대부분이 학교를 결석하고 나온 단발머리 여학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