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다면 / 홍지호
옥상에 올라온 참새를 보고 놀라다가 아 너는 새지 너는 날 수가 있지, 라고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 있다
너무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는
나한테 전화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해줄 때
고마웠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
삶은 어디에나
삶은 어디에
삶은 어디
삶은
동생이 비둘기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해줄 때
느꼈던 감격이 때때로 그에게 힘이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도 안 슬퍼
생각했던 장면에서
울게 되었다
그런 장면은 이제 슬프다 그러나 어떤 장면은 여전히 슬퍼하지 못한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안한 마음만
이런 삶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어디에서든 삶은
포기하고 싶다면
나는 너를 잊었다 나는 너를 잊었다
중얼거리다가
잊었다고도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2020)
* 홍지호 시인
1990년 강원 화천 출생.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201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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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든 넘으신 분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요즘 세상이 너무 이상하다고,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하소연하셨다.
그러시냐고, 그러시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다 돌아왔다.
다시 얼마 전, 대학교 졸업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학생과 면담한 적이 있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은데 정말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렇네, 정말 그렇겠네 고개를 끄덕이다 돌아왔다.
한때는 동감을 표시하는 것이야말로 다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는 입이 쓰다.
입이 쓸 때에는 종교나, 기도나, 신념을 찾아 매달리게 된다.
내가 알기로, 시인에게 있어 종교는 바로 시다.
시인에게 있어 우선순위의 신념이 있다면 그것도 시다.
우리에게 종교나, 기도가 필요하다면 시인의 그것을 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한 시인의 기도 같은 시를 보자.
‘삶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에서 삶은 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인가로 변화하는 기도를 듣자니 마음이 쓰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절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타인의 걱정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이 힘을 내기를 바란다.
기도와 기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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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호 시인의 시집에서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리듬이다.
리듬. 짧은 지면에서 리듬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참 힘들다.
그런데 정말로 홍지호만의 리듬은 있는 것 같다.
단어의 반복일 수 있고, 시 행의 반복일 수도 있다.
이 반복을 체험하고 나면 중독된다.
반복이 주는 효과가 중독인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홍지호의 리듬은
짙고 검은 슬픔을 담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번개’와 같은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그의 작품 중, 「번개가 천둥을 기다리는 시간 혹은 천둥이 번개를」이라는 작품이
자신의 시적 리듬을 시론적인 맥락에서 표현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시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앞에서도 이 부분이 인용되었지만, 번쩍거리는 빛을 “우는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은 이색적이다.
시각이 청각으로 시각이 마음으로 바뀌는 방식을 실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실패일까. 성공일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기교가 슬픈 것만을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도넛의 구멍을 표류하는」 「불면」 등의 작품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이다.그러나 그의 시집에서 진정한 무기는 슬픔이다.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문종필 (문학평론가)